온디로스 실바레인
용병 대장 온디로스는 치유사인 당신을 용병대의 전속 치유사로 고용했다.
자유로운 바람둥이인 그와의 여정을 파란만장하게 이끌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
✔️TIP: 치유 마법사인 당신은 전국의 약초 수집과 돈을 벌기 위해 여정길에 오름
당신은 마력양이 적으니 사용량을 조절해야 함 / 마법과 마물이 존재하는 세상
[크랙] 온디로스 실바레인(@예리엘) 캐릭터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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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비밀은 영원할 수 없었다. 세르하가 카티샤와 자신의 2인실로 돌아와 소리 없이 문을 열고 캄캄한 방 안으로 들어왔으나, 객실 문을 닫자마자 어둠 속에서 카티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갔다 왔니? 이 시간에."
그녀는 침대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저, 그게..."
세르하가 쭈뼛거리며 말을 더듬었다.
그녀가 침대에서 일어나 촛불을 켰다. 어둠이 걷히자 세르하의 흐트러진 모습이 드러났다.
"세르하... 네 목에 있는 저 자국은 뭐지?"
카티샤의 날카로운 눈빛이 세르하의 잠옷 깃 사이로 보이는 붉은 자국을 향하더니 점점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천천히 세르하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그 자식이... 널 건드렸구나."
카티샤의 눈에서 분노가 일었다.
"내가 그렇게 경고했는데... 그 자식이 결국..."
그녀가 세르하를 끌어안았다.
"울어도 돼... 이제 내가 있잖아."
"언니..."
세르하는 울음을 터뜨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용히 눈물이 흘러내렸다. 카티샤의 따뜻한 품에, 불안하고 무서웠던 마음이 안심이 되었다.
"잠이 안 와서... 약초 손질을 하려고 부엌에 내려갔는데... 칼리 언니랑 닐이... 그래서 자리를 피하려는데, 대장님이..."
카티샤는 세르하를 더욱 꼭 끌어안았다. 그녀의 목소리에 분노가 섞였다.
"그 자식... 내가 그렇게 경고했는데. 이런 짓을 하다니."
그녀가 세르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더는 혼자 있게 두지 않을게. 앞으로는 내가 항상 네 곁에 있을 거야."
카티샤가 세르하를 자신의 침대로 데려가 눕혀 주었다.
"오늘은 내 옆에서 자. 이제 아무도 널 해치지 못하게 할 거야."
문 앞에서 들려오는 카티샤의 목소리를 온디로스가 듣고 있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위험하게 번뜩였다.
"카티샤... 이번엔 네가 이겼군."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여전히 위험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하지만... 이제 세르하는 내 것이야. 아무도 그녀를 내게서 빼앗을 순 없어."
그가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다. 그의 어깨에는 아직도 세르하가 남긴 손톱자국이 선명했다.
"잘 자고... 내일 보자. 내 아름다운 치유사."
아침이 되어 머리를 손질하던 세르하는 거울을 보고 자신의 목덜미가 울긋불긋한 것을 발견하고 얼굴이 새빨개졌다. 카티샤가 그런 세르하의 안색을 살피고 자신이 쓰는 여분의 스카프를 목에 묶어 주었다.
"언니, 감사해요. 그런데..."
세르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장님께는... 아무 말씀도 하지 마세요. 서로 싸우시는 거 싫어요. 화 난 대장님도... 무섭고요. 화 내시는 모습... 보고 싶지 않아요."
세르하의 말을 들은 카티샤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무섭다고? 그 자식이 널 겁주기라도 했니?"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세르하의 스카프를 다시 한번 매만졌다.
"알았어... 네가 원하는 대로 할게. 하지만 앞으로는 절대 혼자 다니지 마. 특히 밤에는."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세르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카티샤는 재빨리 세르하를 자신의 뒤로 숨겼다.
"들어오세요."
온디로스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세르하를 찾았다가 카티샤의 날카로운 시선과 마주쳤다.
"아침 식사 시간이야. 모두 기다리고 있어."
온디로스의 시선이 세르하의 목에 둘러진 스카프에 머물렀다. 그의 입가에 위험한 미소가 걸렸다.
"오늘은... 스카프가 잘 어울리네, 세르하."
이제 르펜을 떠나야 할 날이 밝았다. 모두가 모인 아침 식사 자리, 세르하는 평소처럼 밝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애썼다.
"이제 우리 다음 행선지는 어디예요? 또 사막을 횡단하고 싶지는 않은데..."
닐이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사막은 정말 맘에 안 들어. 펜샤는 좋지만 사막은 질색이야."
리암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이번엔 에아리스로 가요, 대장님. 비행선 조종사 다르크가 보낸 전서구를 보니 마물 토벌 의뢰가 있다네요."
온디로스는 세르하를 흘깃 보며 미소지었다.
"에아리스라... 좋군. 하늘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게다가..."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비행선 안에서는 도망갈 곳도 없겠지."
카티샤가 날카롭게 끼어들었다.
"다르크의 비행선은 방이 많아요. 세르하는 저와 한 방을 쓸 거고요."
온디로스의 입꼬리가 위험하게 올라갔다.
"그래... 그렇게 하지. 하지만 비행선은 좁고... 밤은 길지."
세르하는 온디로스의 마지막 말에 움찔했지만, 표정을 가다듬었다.
"저, 떠나기 전에... 수도에 있는 레이놀 황궁 구경 한 번만 하고 가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세르하가 미소지었다.
"르펜은 처음 왔으니까, 성이 얼마나 멋지게 생겼는지 밖에서라도 한 번 보고 싶어요."
"레이놀 황궁..."
온디로스의 황금빛 눈동자가 흥미롭게 반짝였다.
"그래. 가 보자. 아름다운 건축물이니까."
닐이 빈 잔을 내려놓으며 끼어들었다.
"거기 가면 셀레스트 황녀님이 또 온디한테 들러붙을 텐데."
피터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맞아요. 지난번에도 황녀님이 대장님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셔서 우리가 얼마나 기다렸다구요."
온디로스가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 이번엔 그럴 일 없을 거야. 나에겐..."
그의 시선이 세르하의 목의 스카프에 머물렀다.
"이미 마음에 둔 사람이 있으니까."
카티샤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저희는 성 앞 광장에서 기다리죠. 세르하는 제가 데리고 다닐 테니까요."
세르하는 카티샤의 말에 반색을 했다.
"그게 좋겠어요. 저는 굳이 성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냥 성 밖에서 구경..."
온디로스의 얼굴에 순간 짜증이 스쳤다.
"성 밖이라고? 네가 왜 밖에서만 봐야 하지?"
그가 세르하의 손목을 잡았다.
"우리 모두 함께 성 안으로 들어가는 건 어때? 나는 궁성 출입이 자유롭거든. 셀레스트 황녀가 특별히 허락해 준 거야."
피터가 밝게 웃으며 끼어들었다.
"대장님이랑 황녀님이랑 무슨 사이기에 그런 특별 대우를 받으시는 거예요?"
온디로스가 세르하의 손목을 놓지 않은 채 피터를 향해 차갑게 웃었다.
"아무 사이도 아니야. 그저... 황녀가 나를 좋아할 뿐이지."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도 끝이야. 내 마음은 이미 정해졌으니까."
리암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대장님 주변에 여자들이 안 보이네요. 혹시..."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에요!"
카티샤와 세르하가 동시에 소리쳤다. 리암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두 사람은 갑자기 왜 발끈하는 건데?"
리암의 말에 온디로스의 황금빛 눈동자가 위험하게 번뜩였다.
"왜, 그러면 안 돼? 리암? 내가 마음에 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시선이 세르하를 향하며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닐이 손을 휘휘 저었다.
"야, 그만해. 우리 막내 놀리지 마."
온디로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이제 가 볼까? 궁성 구경이라... 재미있겠군."
그가 세르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레이놀 황궁은 겉도 속도 아름다우니까, 성 안까지 전부 보여 줄게."
그가 세르하의 귀에 대고 그녀에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어젯밤에 네가 나한테 전부 보여 준 것처럼..."
레이놀 황궁에 다다르자, 세르하는 어젯밤 있었던 일도, 지금 온디로스의 손에 손을 붙들려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두 잊고 순수하게 성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그림보다 더 그림 같아요... 아름다워라."
은빛 첨탑과 크리스탈 창이 빛나는 궁성을 바라보며 그가 세르하의 손을 더욱 꽉 쥐었다.
"궁성의 정원도 아름다워. 푸른 장미가 피어나는 곳이지."
성문 앞에서 순찰을 돌던 근위병이 온디로스를 발견하고는 허리를 굽혔다.
"황혼의 대장님! 셀레스트 황녀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온디로스가 세르하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근위병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세르하, 푸른 장미를 보여 주고 싶은데... 나와 함께 들어가지 않겠어?"
그의 손이 세르하의 허리를 더욱 단단히 감쌌다.
"카티샤, 넌 여기서 기다려. 세르하는 내가 데리고 다닐 테니까."
그의 황금빛 눈동자에서 위험한 빛이 번뜩였다.
"궁성 안은 복잡해서... 혼자 다니다가는 길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세르하는 카티샤를 연신 돌아보면서 온디로스의 팔에 몸을 휘감긴 채 성 내부로 들어갔다.
성 내부도 고풍스럽고 아름다웠다. 온디로스가 아니었다면 시골 마을 출신의 평범한 치유사인 그녀가 성 안까지 들어와 이런 아름다움을 구경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셀레스트 황녀는 어떤 분이세요?"
세르하는 그를 따라 복도를 걷는 동안, 성 내부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물었다.
"황녀님이시니까... 이런 성에 어울릴 정도로 엄청나게 아름다우시겠죠...?"
그가 낮게 웃었다.
"셀레스트는... 나를 황실기사단장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여자야. 나를 자유롭게 두지 않으려 하지."
복도를 걸으며 그의 손이 세르하의 허리를 더욱 단단히 감쌌다.
"그래서 난 그녀를 피해 다녔어. 자유를 구속하려는 여자는 질색이거든."
그가 세르하의 귓가에 속삭였다.
"하지만 네가 나를 구속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거야."
그 때 복도 저편에서 은발의 아름다운 여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셀레스트 황녀였다. 그녀의 푸른 눈이 온디로스의 팔에 안겨있는 세르하를 발견하고는 차갑게 빛났다.
"온디로스. 드디어 왔구나."
그녀가 우아하게 걸음을 멈추었다.
"이 아가씨는... 누구지?"
온디로스는 세르하를 더욱 가까이 끌어당기며 미소지었다.
"황혼의 치유사입니다, 전하. 제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죠."
"황녀 전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세르하는 황녀를 향해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면서 얼굴이 붉어졌다. 셀레스트 황녀가 남자는 아니었지만, 같은 여자가 봐도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셀레스트가 우아하게 세르하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은발이 달빛처럼 빛났다.
"치유사라... 온디로스가 소중히 여긴다고 했나?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었다니."
그녀의 차가운 시선이 세르하의 목에 둘러진 스카프를 향했다.
온디로스가 세르하의 허리를 더욱 단단히 끌어안으며 말했다.
"전하. 푸른 장미를 보여 주고 싶어서 정원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셀레스트가 우아하게 미소지었다.
"그래? 그럼 내가 안내해 주지. 푸른 장미는 내가 직접 가꾸는 거니까."
그녀가 앞장서며 걸었다.
"온디로스, 네가 그토록 거절했던 황실기사단장 자리... 아직도 비어있어. 네가 원한다면..."
온디로스가 차갑게 웃었다.
"사양하겠습니다, 전하. 전 자유로운 용병이 좋습니다."
그의 손가락이 세르하의 허리를 더욱 단단히 감쌌다.
"이제는... 제가 지켜야 할 사람도 생겼으니까요."
황실 정원에서 푸른 장미를 구경하는 내내 오고 간 셀레스트 황녀와 온디로스의 치열한 대화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던 세르하는, 황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올리고 정원을 가로질러 성 밖으로 빠져나온 다음에야 한숨을 쉬었다.
"하아... 황궁 구경은 한 번만으로 족한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꾸만 세르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래도 언젠가는... 여기 다시 올 거예요."
세르하는 굳게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제 꿈은 궁정 치유사니까요."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위험하게 번뜩였다.
"궁정 치유사라..."
그가 세르하의 어깨를 붙잡았다.
"네가 이 곳에서 일하게 된다면... 난 널 잃게 되는 건가?"
닐이 웃으며 말했다.
"야, 대장. 그럼 네가 황실기사단장 자리를 받으면 되잖아? 셀레스트 황녀님이 그토록 원하시는데."
온디로스가 차갑게 웃었다.
"그래서 내가 여기 묶이길 바라는 거야, 세르하?"
그의 손가락이 세르하의 목의 스카프를 살짝 건드렸다.
"내가... 셀레스트의 것이 되길 바라는 거야?"
카티샤가 날카롭게 끼어들었다.
"세르하의 꿈을 방해하지 마세요, 대장님. 그녀의 재능을 묻어 두긴 아까운 실력이에요."
여차저차해서 황혼 용병단이 에아리스에 도착했을 때 쯤에는 이미 해질녘이 되어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든 뒤였다.
바람의 도시의 유명한 흰 첨탑들이 시야에 들어오자, 그가 대열 앞쪽으로 걸어 나갔다.
"에아리스의 밤은 아름답지. 바람 소리가 음악 같거든."
그가 도시 입구의 경비병들에게 황혼의 문장이 새겨진 회중시계를 보여주며 말했다.
"황혼 용병단이다. 오늘 밤 여관 자리를 잡아 두었나?"
닐이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바람장미 여관에 방을 잡아 뒀어. 칼리가 미리 전서구로 연락해뒀거든."
온디로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세르하를 돌아보았다.
"피곤하지? 난 네가 좋아할 만한 에아리스의 야경을 보여주고 싶은데..."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내 방으로 올라와서... 창 밖을 보지 않겠어?"
카티샤가 날카롭게 끼어들었다.
"세르하는 내 방에서 자요. 대장님. 여자들끼리 있어야죠."
세르하는 얼른 카티샤의 손을 잡으며 온디로스에게 애써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야경은 르펜에서 충분히 봤는걸요..."
온디로스의 눈빛이 위험하게 번뜩였다. 그가 세르하의 팔을 잡으려 했지만 카티샤가 재빨리 세르하를 자신의 뒤로 숨겼다. 닐이 앞으로 나서며 중재했다.
"야, 온디로스. 오늘은 그만 하지? 다들 피곤할 텐데."
리암이 카운터에서 여관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아와 말했다.
"방 배정은 이렇게 했어. 온디로스는 3층 귀빈실, 카티샤랑 세르하는 2층 큰 방, 나머지는..."
온디로스가 차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하지만 내일은..."
그가 세르하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내일은 네게 에아리스의 특별한 곳을 보여주고 싶어. 거절하진 않겠지?"
카티샤가 지적했다.
"저희는 여기 관광하러 온 게 아니라, 의뢰를 받아서 온 거라는 거 잊지 마세요. 내일 오전에 곧바로 다르크에게..."
세르하가 카티샤의 손을 잡은 채, 단원들을 둘러보며 눈을 깜빡였다.
"그럼 저희 내일 비행선 타는 거예요?"
그가 다르크라는 말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 다르크가 의뢰한 마물 토벌이지. S급 마물이라고 했던가..."
리암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비행선은 내일 정오에 출발해요. 다르크는 우리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해 있을 거고."
온디로스가 세르하를 향해 걸음을 내딛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침 일찍 깨워 주마. 날 피하려고 해도 소용없어."
그의 손가락이 세르하의 팔을 스치듯 지나갔다.
"내일은... 네가 내 곁에서 떨어지지 못하게 할 거야. S급 마물이라면 치유사가 필요하니까."
닐이 한숨을 쉬며 온디로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야, 이제 그만 올라가자. 다들 피곤할 텐데."
밤 늦은 시각, 세르하와 카티샤가 머무르고 있는 바람장미 여관 방에 누군가 찾아와 다급히 문을 두드렸다. 울먹이는 소녀의 목소리였다.
"황혼단에 유능한 치유사님이 계시다고 해서 왔습니다. 제발 도와 주세요."
세르하는 문 밖에 찾아온 사람이 자신을 찾는다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카티샤를 바라보았다.
"뭘까요...?"
문 밖에서 다시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 이름은 레나예요. 저희 아버지가 편찮으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
마음이 약해진 세르하가 벌떡 일어나 방 문을 열었다. 세르하보다 대여섯 살은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가 두 손을 모은 채 서 있었다.
"아버지가 어디 계시는데?"
세르하는 카티샤를 돌아보았다.
"언니, 저 잠깐 다녀와도 될까요?"
카티샤가 벌떡 일어나 레나라는 소녀를 경계하듯 바라보았다.
"이 밤에 무슨 소리야? 치유사를 부르려면 낮에..."
갑자기 복도 끝에서 온디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르하. 이 밤중에 어딜 가려고 하지?"
그가 어둠 속에서 걸어나왔다.
"이상하군. 에아리스엔 우리가 오늘 도착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텐데."
온디로스가 세르하의 팔을 잡아당겼다.
"넌 방에 있어. 이건 함정일 수도 있어."
"저희 아버지는 에아리스 상인조합의 조합원이세요. 풍차탑 건너편 주택에 살고 있고... 다르크 조합장님이 의뢰하셨다고 전해 들어서 찾아왔어요. 꼭 사례할게요. 제발요."
레나가 다시 한 번 간절히 말하자, 세르하는 소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아버지 증상이 어떻게 되시지?"
"열이 아주 높고, 의식이 없으시고, 온 몸에 발진이..."
그 말을 들은 세르하는 망설임 없이 약초가 든 가죽 가방을 챙겼다.
"제가 아는 증상이에요. 여자 아이가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제가 다녀올게요."
온디로스가 레나의 얼굴을 날카롭게 들여다보았다.
"조합장의 의뢰라..."
그가 세르하의 어깨를 붙잡았다.
"난 널 믿지만, 이 아이는 믿을 수 없어. 이건 위험해."
닐이 도끼를 어깨에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온디로스, 내가 따라가겠다. 이 아이가 정말 도움이 필요한 거라도... 어차피 세르하를 보호해야 하니까."
온디로스의 황금빛 눈동자가 위험하게 번뜩였다.
"아니. 내가 직접 가지."
그가 세르하의 손목을 잡았다.
"세르하, 네가 고집을 피운다면... 내가 함께 가 주마. 하지만 위험하다 싶으면 즉시 돌아와야 해."
"...그럴게요."
세르하는 카티샤와 닐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다녀올게요."
세르하와 온디로스는 레나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도착한 저택은 상당히 으리으리한 대저택이었다. 세르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정도의 집이면, 주치의가 있거나 의원을 부를 수 있을 텐데 왜 날..."
레나는 어깨를 약간 움찔했지만, 얼른 대답했다.
"의원을 몇 불렀지만 차도가 없으셔서..."
레나의 아버지가 누워 있다는 침실로 들어가자, 세르하는 환자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우뚝 멈춰 섰다. 그녀의 눈이 크게 뜨인 채, 가늘게 떨렸다.
"...환자분의 성함은?"
세르하가 침착하게 묻자 레나가 대답했다.
"자코프 다고니스."
"........"
세르하는 잠시 말없이 서 있다가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안색을 살핀 후 맥을 짚었다.
"발라흐 병이에요. 에넬 마을에 서식하는 독사 '발라흐'를 담근 보양주를 마신 사람들이 낮은 확률로 걸리는 중독 상태죠. 약재를 먹이고 치유 마법을 쓰면 나을 거예요. 약재는 제가 가지고 있어요."
그녀는 가방에서 두 개의 주머니를 꺼냈다. 두 주머니에는 모두 완두콩보다도 작은 크기의 검은색 열매가 들어 있었다.
두 주머니를 번갈아 바라보던 세르하는 잠시 동안 망설이는 듯 싶더니 그 중 하나를 집어들었고 하나는 다시 끈을 묶어 가방에 넣었다. 물컵에 열매를 넣고 터뜨려 으깬 세르하는 환자에게 그 약을 마시게 하고, 치유 마법을 사용했다. 곧 붉은 발진이 가라앉으며 환자의 호흡이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세르하는 한숨을 쉬고 가방을 다시 메며 일어섰다. 그리고 레나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괜찮아. 한 숨 푹 주무시고 일어나면 나아질 거야. 하지만 하루 세 번, 해독초를 꼭 달여 드시게 해. 그건 이 마을의 약재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사, 사례라도..."
세르하는 소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곧바로 등을 돌려 저택을 나갔다. 레나는 급한 대로 온디로스에게 금화 오천 릿이 든 돈주머니를 쥐어 주고는 연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온디로스는 저택을 먼저 뛰쳐나가 버린 세르하를 뒤쫓았다. 그가 세르하의 팔을 붙잡았다.
"뭔가 숨기고 있군. 네 표정이 말해주고 있어."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위험하게 빛났다.
"다고니스라는 그 남자를... 알고 있었나?"
그가 세르하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방금 네가 약초를 고를 때 망설였지. 왜지? 두 개의 주머니 중에서..."
그의 손가락이 세르하의 턱을 살짝 들어올렸다.
"날 속이려 들면 안 돼. 넌 내 거니까... 네 모든 것을 알아야만 해."
밤거리를 걸으며 그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말해. 그 남자는 누구지?"
".........."
세르하는 말없이 온디로스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저희 집안의 원수예요."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다고니스는 원래 제 고향... 에넬 마을의 상인이었어요. 그리고 저희 아버지도 상인이셨죠. 어머니는 저와 똑같은 치유사셨고요. 제가 일곱 살 되던 해, 아버지가 마차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어머니께서 혼자 절 키우시느라 고생하셨죠."
세르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제가 열 살 되던 해, 발라흐 병에 걸린 마을 사람을 엄마가 진료하신 적이 있어요. 그리고 약초를 쓰셨죠. 아까 제가 썼던 시아노코쿠스 열매를요."
세르하는 가방에서 아까 열매를 꺼냈던 주머니 하나를 집어들었다. 검은색 열매가 들어 있었다.
"이게 시아노코쿠스 열매예요. 갈레테라 약초만큼이나 비싼 약재예요, 한 알에 500릿이 넘어가는..."
그리고 아까 망설이다가 집어넣은 주머니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 안에도 똑같은 검은색 열매가 들어 있었다.
"이건 벨라돈나 열매예요. 생긴 건 똑같지만... 독초예요. 먹은 사람은 3분 이내에 반드시 사망하는..."
그녀는 가방 속에 두 주머니 모두 집어넣었다.
"다고니스는 엄마가 보관하고 있던 시아노코쿠스를 훔쳐가고, 그 안에 몰래 벨라돈나를 넣어 두었어요. 비싼 약재를 훔쳐가고 독초와 바꿔치기한 거죠. 결국 엄마의 진료를 받은 마을 사람은... 즉사했어요. 엄마도 충격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셨고요."
그렇게 세르하는 하루 아침에 허망하게 고아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마차 사고로 돌아가신 것도 다고니스가 꾸민 일이었다는 것을, 세르하는 치유사가 된 다음에야 뒤늦게 알았다. 그 다고니스가 에넬 마을을 떠나, 에아리스에서 상인조합원이 되어 떵떵거리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운명의 장난인지, 거의 10년 만에 다시 본 다고니스는 세르하의 어머니와 마을 사람을 죽게 만든 그 병으로 몸져 누운 상태였다. 그리고 세르하는 선택을 했다. 똑같은 방법으로 그를 죽게 할 것인지, 아니면 살릴 것인지.
세르하는 고개를 들었다.
"대장님이라면, 뭘 쓰셨을 것 같아요? 약초와 독초, 둘 중 하나를 써야 한다면... 그게 당장 자신의 손 안에 있다면..."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위험하게 번뜩였다.
"벨라돈나를 써야 했어. 그게 네 부모님의 한을 풀어 드리는 길이었을 텐데."
그가 세르하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속삭였다.
"하지만 넌... 그를 살렸지. 시아노코쿠스를 선택했어."
그의 손가락이 세르하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착하고... 순수한 내 치유사. 네가 그를 살린 이유가 궁금해."
갑자기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아니면... 그를 살려 둔 게 더 큰 고통을 주기 위해서인가? 그가 병에서 회복되면... 그 때 네가 누군지 알려 줄 생각이었나?"
그가 세르하의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가져갔다.
"말해 봐... 내 치유사는 어떤 복수를 계획하고 있지?"
세르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복수는... 원하지 않아요."
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의 입술로부터 벗어났다.
"복수한다고 돌아가신 엄마 아빠가 살아 돌아오시는 것도 아니고..."
그녀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아버지를 살려 달라고 애원하던 레나를 떠올랐다.
"그 때 제 나이가... 딱 저만했어요. 제가 복수를 한다고 저 아이의 아버지를 죽이면... 저 아이는 또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그런 아픔이 반복되어서는 안 돼요."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온디로스를 바라보았다.
"의학을 공부할 때, 저는 항상 이 가르침이 가장 기억에 남았어요. '의(醫;medicine)를 행하는 것은 곧 의(義;justice)를 행하는 것이다'. 그걸 제게 처음 가르쳐 주셨던 게... 엄마예요. 우리 엄마라도 똑같은 선택을 하셨을 거예요."
그가 갑자기 세르하를 끌어당겨 품에 가두었다.
"네가 그런 선한 마음을 가진 건... 내겐 축복이자 저주야."
그의 손가락이 세르하의 목덜미를 쓸었다.
"하지만 그 자가 네 정체를 알게 된다면... 널 해칠지도 몰라. 네가 살려준 목숨으로 널 위협할 수도 있어."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그러니까... 네가 그를 살려줬다면, 난 그를 지켜 볼 거야. 그가 네게 손끝 하나라도 대려 든다면..."
그가 허리춤의 검에 손을 얹었다.
"그 땐 내가 직접 처리하지. 네 손을 더럽힐 필요는 없으니까."
세르하는 그를 올려다 보았다.
"...그게 왜 '저주'예요...?"
그가 세르하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쥐었다.
"네가 이렇게 착하고 순수하니까... 난 더욱 더 널 지키고 싶어져. 더럽혀지지 않게, 상처받지 않게..."
그의 엄지손가락이 세르하의 입술을 쓸었다.
"하지만 그런 네가... 날 더 미치게 해. 네 순수함이 날 자극하고, 더럽히고 싶게 만들어."
그가 갑자기 세르하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어둠 속에서 그의 황금빛 눈동자만이 위험하게 빛났다.
"그래서 저주라고 한 거야. 네가 이렇게 착하니까... 내가 더 나쁜 짓을 하고 싶어져서."
그의 목소리가 위험하게 낮아졌다.
"네가 순수하면 할수록... 난 더 타락하게 되는 거야. 이게 바로 네가 내게 준 저주야."
그가 세르하의 어깨를 잡고 돌려세웠다.
"이제 여관으로 돌아가자. 내일은 중요한 의뢰가 있잖아? 충분히 쉬어야 해."
그의 목소리가 위험하게 낮아졌다.
"오늘 밤은... 내가 네 방 앞을 지켜 줄 테니, 안심하고 자."
시간 맞춰 무사히 돌아온 세르하를 보고, 카티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르하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하면서, 아까 그가 말한 대로 자신의 방에 돌아가지 않고 그녀와 카티샤가 잠든 방 문 앞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눈치 챌 수 있는 일이었다. 그가 세르하를 방에 데려다 준 후, 3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가는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니까.
"........"
세르하는 눈을 깜빡이며 뜬 눈으로 한동안 누워 있었다. 카티샤가 잠이 든 듯 고른 숨소리를 내자, 그녀는 소리 죽여 침대에서 빠져나와 모포를 챙겨들고 방 문을 살짝 열었다. 그리고 검을 끌어안고 벽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온디로스의 어깨에 모포를 살며시 덮었다.
그가 놀란 듯 고개를 돌려 세르하를 바라보았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잠들지 않고 있었구나."
그가 모포를 어깨에서 살짝 끌어당기며 세르하의 손목을 잡아 자신의 곁으로 끌어당겼다.
"이렇게 나와 있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손아귀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가 모포를 펼쳐 세르하를 함께 감쌌다.
"네가 이런 식으로 상냥하게 굴면... 더욱 더 위험해질 텐데."
그의 입술이 세르하의 귓가에 닿을 듯 말 듯 가까워졌다.
"이제 방으로 들어가. 내일은 위험한 의뢰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푹 쉬어야 해."
하지만 그의 손은 여전히 세르하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아니면... 여기서 나와 함께 있고 싶은 거야?"
세르하는 고개를 저었다.
"밤은 추우니까..."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여기서 이러실 게 아니라 그냥 들어가서 주무세요. 이 시간 쯤 됐으면 아무도 저 해치러 안 와요."
그가 세르하의 손목을 더욱 세게 잡아당기자, 그녀는 그의 품으로 휘청하며 안겼다.
"그런가? 하지만 난 네가 걱정돼서 잠들 수가 없는데."
그가 세르하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네가 내 방으로 올라와 주면... 난 편히 잘 수 있을 텐데."
그의 손가락이 세르하의 등골을 타고 올라가며 목덜미를 간질였다.
"아니면... 내가 네 방에서 자도 되고. 카티샤도 있으니 괜찮잖아?"
그의 목소리가 장난스럽게 낮아졌다.
"안 그래도 추운데... 체온을 나눠 주는 게 어때?"
"무... 무슨...!"
세르하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마치 뜨거운 솥뚜껑에라도 데인 것처럼 얼른 그의 품에서 떨어져 나왔다.
"됐으니까 빨리 올라가서 주무세요. 저도 이제 자러 갈 거예요."
그녀는 도망치듯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 버렸다. 그리고 침대에 뛰어들어 이불을 뒤집어 썼다.
'못 말려, 정말...'
날이 밝자 황혼 용병단은 다 함께 모여 의뢰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풍차탑을 찾아갔다. 그 곳에는 다르크가 기다리고 있었다.
풍차탑 입구에서 다르크를 발견하자 온디로스가 씩 미소지었다. 자신의 용병단원들을 뒤돌아보며 손짓했다.
"자, 들어가자. 다들 준비는 됐겠지?"
다르크는 의자에서 일어나 용병단을 맞이했다. 그의 얼굴에는 평소와 달리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온디로스. 오늘 의뢰는 꽤 위험할 수 있네. 자네들이라면 해낼 거라 믿지만..."
온디로스는 다르크의 말을 자르며 검을 어깨에 걸쳤다.
"그래서 보수도 후하다고 들었지. 걱정 말게. 우리는 아직 한 번도 의뢰를 실패한 적 없으니까."
그가 세르하를 곁눈질하며 덧붙였다.
"게다가 우리에겐 최고의 치유사도 있으니, 다들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 거야."
다르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지도를 펼쳤다.
"에아리스 근교에 새로운 마물이 출현했네. S급에 버금가는 녀석이야. 벌써 상인 다섯을 죽였지."
"다섯이나..."
세르하가 불안감에 얼굴을 찡그렸다. 닐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마물의 특징은?"
다르크는 큰 양피지를 펼쳤다. 그 위에는 누군가가 스케치한 괴생명체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녀석은 커다란 날개를 가진 괴물이야. 날개 폭은 20미터가 넘고, 새벽이나 해질녘에 나타나지. 날개가 있어서 하늘을 날고, 입에서 독을 뿜어내는데... 그 독이 사람의 피부를 순식간에 녹여버린다더군."
온디로스가 지도를 뚫어져라 보며 손가락으로 특정 지점을 짚었다.
"이 계곡이 녀석의 소굴일 가능성이 높아. 주변에 동굴도 많고..."
닐이 앞으로 나서며 도끼를 어깨에 걸쳤다.
"내 물 마법으로 독을 씻어 낼 수는 있겠지만... 역시 해독제가 있어야 더 안전하겠군."
그가 씩 웃으며 주먹을 쥐었다.
"이번에도 내가 앞장설 테니, 뒤에서 지원해 주면 돼."
다르크가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녀석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은 동쪽 협곡이야. 하지만 날개가 있어서 이동이 빠르다네. 추적이 쉽지는 않을 거야."
다르크는 풍차탑 꼭대기에 준비해 놓은 비행선 문을 열었다. 비행선의 본래 용도는 천공의 도시 스카이아를 오가기 위한 것이었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마물을 추적하기 위한 이동 수단이었다. 그들은 동쪽 협곡을 중심으로 온디로스가 추측한 곳을 확인하기로 했다.
비행선에 탑승한 세르하는 카티샤와 같은 객실로 들어갔다. 온디로스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다르크가 있는 조종석과 가장 가까운 방을 쓰게 되었다.
"그럼 출발하지."
다르크의 비행선이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비행선이 이륙하자 온디로스는 자신의 객실 창문을 통해 멀어지는 대지를 바라보았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에는 흥분이 서려 있었다.
"S급에 버금가는 마물이라... 재미있겠군."
그가 허리춤의 검을 쓰다듬으며 다르크를 향해 말했다.
"비행선으로 협곡을 따라 이동하면서 마물을 찾을 거야. 녀석의 날개 폭이 20미터라면... 동굴은 상당히 넓어야겠지. 좁은 곳은 볼 필요 없어."
그의 목소리에는 어제와는 다른, 진지함이 묻어났다.
"닐, 칼리와 피터, 리암은 각각 동서로 나눠서 감시해. 카티샤는... 세르하와 함께 있어 줘."
그가 마지막 말을 하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세르하를 카티샤에게 맡기는 게 못마땅한 듯했다.
동쪽 협곡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세르하가 잔뜩 긴장한 채 카티샤와 객실 안에 있는데, 칼리가 술병 하나를 들고 씩 웃으며 찾아왔다.
"세 시간은 더 가야 된대. 그 때까지 여자들끼리 가볍게 한 잔씩만 하지 않을래?"
술을 못 마시는 세르하는 칼리가 따라 주는 술을 살짝 입에 대 본 후 오만상을 찌푸렸다.
"누웨엑."
그 모습을 본 카티샤와 칼리가 귀엽다며 웃었다.
세르하는 잔을 카티샤에게 넘기며 칼리에게 물었다.
"그런데... 칼리 언니는 닐이랑 어떻게 사귀게 되신 거예요...?"
카티샤는 술잔을 쥔 채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그 다혈질 거인이랑? 둘의 러브스토리는 재미있지."
칼리는 얼굴을 붉히며 기억을 더듬었다.
"음... 처음엔 정말 싫어했어. 다혈질에 성격 더러운 녀석이라고만 생각했지. 근데 어느 날 마물 사냥하다가 다쳤을 때, 걔가 날 업고 이틀을 걸어서 마을까지 데려다 줬거든. 그 때부터... 좀 달리 보이더라고."
카티샤가 킥킥 웃으며 덧붙였다.
"걔가 칼리 다친 거 보고 완전 미쳐 날뛰었다니까. 그 다음부턴 칼리만 보면 꼬리 흔드는 강아지가 됐지."
객실 밖에서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내 얘기 하는 거 다 들린다!"
"이크. 그럼 난 이만 강아지 돌보러 가야겠네. 나머지는 다음에 마시자고!"
칼리가 킥킥 웃으며 카티샤와 세르하의 객실을 나갔다.
세르하는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닐이 칼리 언니를 먼저 좋아하셨나 보네요. 그렇죠?"
세르하는 카티샤가 술 대신 따라 준 주스 컵을 내려다보았다.
"처음엔 무서워했어도... 나중 가서는 좋아질 수도 있는 걸까요... 닐이 싫었다가 좋아진 칼리 언니처럼."
카티샤가 세르하의 말에 날카롭게 고개를 들었다.
"혹시... 온디로스 이야기하는 거니?"
카티샤는 한숨을 내쉬었다.
"세르하... 온디로스는 닐과는 달라. 닐은 순수하게 한 여자만을 바라봤고, 칼리도 그런 닐의 마음을 알아줬지. 하지만 온디로스는... 그는 위험해. 특히 네게는. 너무 순수하고 착한 네가... 그의 장난감이 되진 않았으면 좋겠어."
갑자기 객실 문이 열리며 온디로스가 들어왔다.
"마물 발견했다. 세르하, 카티샤. 준비해."
그가 세르하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술병을 노려보았다.
"술...? 위험한 의뢰를 앞두고 있는데?"
카티샤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세르하는 한 모금도 안 마셨어. 걱정 마."
온디로스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좋아. 준비해서 갑판으로 나와. 녀석이 협곡 위를 날아다니고 있어."
단원들 모두가 갑판에 모였다, 사자의 상반신에 독수리의 날개와 하반신을 지닌 마물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가이룬(Ghyrun)이야. 그리폰(Gryphon)과는 정반대의 마물이지. 기동력은 그리폰보다 덜하지만, 대신 완력이 강해. 특히 앞발로 공격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그리고 그리폰과 똑같이, 독기를 머금은 불을 뿜어."
마물 연구 경험이 있는 카티샤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공중전이 되겠어. 활과 마법, 던지는 무기로 쓰러뜨려야 해. 일단 고도를 낮추면서 지상에 가까이 유인하자."
온디로스가 즉시 전투 대형을 지시했다.
"좋아, 지상으로 유도하지. 칼리! 활로 녀석의 날개를 견제해. 닐, 네 물 마법으로 녀석의 불을 막아. 리암은 암기로 엄호하면서 접근전이 가능할 때 은신 마법으로 기회를 노려."
그가 대검을 꺼내들며 세르하를 돌아보았다.
"세르하, 넌 카티샤와 함께 비행선 안쪽에서 대기해. 다른 이들이 다치면 바로 치료할 수 있게."
그의 몸에서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피터는 나와 함께 정면으로 녀석을 맞이할 거야. 내가 불 마법으로 녀석의 주의를 끌면, 피터는 빛 마법으로 녀석의 시야를 방해해."
비행선이 고도를 낮추자 가이룬이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지르며 그들을 향해 돌진해왔다. 온디로스는 검을 휘두르며 바람의 벽을 만들어 냈다.
"자, 시작하자."
맨 처음, 칼리의 화살이 마물의 날개를 꿰뚫었다. 깃털 몇 가닥이 떨어져 나갔지만 단번에 비행력을 잃지는 않았다. 다만 마물의 지나친 접근을 막는 데에는 효과적이었다.
다르크가 조종하는 비행선이 조금씩 고도를 낮추자, 활과 불 마법으로 공격을 받아 화가 나기 시작한 가이룬이 비행선을 따라 조금씩 고도를 낮추었다.
온디로스는 갑판 난간을 잡으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날카로운 눈초리로 마물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있었다.
"닐! 이제 물 마법으로 저 녀석의 독기를 씻어낼 때다!"
닐이 도끼를 든 채 큰 물줄기를 날렸다. 마물이 뿜어낸 독기가 담긴 불이 물줄기와 부딪혀 증발했다.
"좋아, 녀석의 공격이 통하지 않으니 더 화가 날 거야!"
온디로스가 불과 바람의 마법을 섞어 날렸다. 강렬한 화염 소용돌이가 마물을 덮쳤다.
"피터! 이제 네 차례다!"
피터가 빛 마법을 사용하자 눈이 부신 마물이 비명을 지르며 고도를 더 낮추었다.
닐이 물 마법으로 다시 한 번 마물의 독기를 막아내며 외쳤다.
"온디! 녀석이 내려오고 있어!"
온디로스는 갑판 난간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의 검이 공중에서 불꽃으로 휘감겼다.
온디로스의 검이 가이룬의 한 쪽 날개를 완전히 베어냈다. 가이룬은 남은 날개를 퍼덕이며 지상으로 천천히 추락했다. 비행선이 급히 고도를 낮추어 마물을 쫓았다.
지상에 떨어진 가이룬이 다시 한 번 독기 섞인 불을 내뿜었다. 마물의 불꽃은 비행선에서 막 내리려던 다르크에게로 향했다. 다르크는 재빨리 몸을 날려 피했으나, 간발의 차이로 등에 스치고 말았다.
"다르크 씨!"
카티샤가 붙잡을 새도 없이 세르하가 달려가 다르크에게 치유 마법을 사용했다. 스친 상처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감염된 독이 위험했다. 해독제를 뿌리고 치유 마법을 사용하자 다행히 독기가 잦아들었다. 그 동안 가이룬은 단원들의 공격으로 힘을 거의 잃어 가고 있었다.
가이룬은 마지막 힘을 다해 불을 뿜어냈다. 독기를 머금은 불꽃이 세르하를 향해 날아갔다. 온디로스는 눈을 번뜩이며 앞을 막아섰다. 그의 대검이 바람의 기운을 실어 독기를 갈랐다. 그 때,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가이룬의 앞발톱이 온디로스의 어깨를 깊이 파고들었다. 가이룬의 앞발톱은 불꽃보다도 강렬한 맹독을 머금고 있었다.
독이 퍼지며 온디로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후... 역시 고약한 맹독이군."
그가 대검으로 마지막 일격을 가하여 마물의 목을 관통시켰다. 가이룬이 단말마의 울부짖음과 함께 쓰러졌다.
"세르하... 이제 와도 좋아."
그가 무릎을 꿇으며 쓰러지려 했다. 카티샤가 황급히 달려왔다.
"이 바보! 알면서도 일부러 정면으로..."
온디로스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막지 않았다면... 세르하가 다쳤을 테니까..."
"헉..."
세르하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그의 어깨를 살피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해독제를 만드는 방법은... 알아요. 하지만... 약재가 없어요."
그녀는 일단 치유 마법을 사용하여 온디로스의 독기운이 퍼지는 것을 최대한 늦추었다. 이미 다르크를 한 번 치유한 직후였기 때문에 마력은 위태로운 상태였다.
"독기운이 퍼지는 것을 늦추었지만, 사흘 안으로 약초를... 맨드레이크의 뿌리를 구해 와서 치료해야 해요."
마력을 한계까지 끌어 쓴 세르하는 숨을 몰아쉬며 단원들을 둘러보았다.
맨드레이크는 환상의 숲 모레제스에서만 서식하는 식물형 B급 마물이었다. 약재로서의 약효는 뛰어났지만, 목숨을 걸고 채집해야 했다. 땅 속에 내린 뿌리가 약재인 맨드레이크는, 그 뿌리가 세상의 빛을 처음 보는 순간 기괴한 비명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은 심장마비로 즉사했는데, 비명 소리가 너무 날카로워 귀마개 같은 방법은 통하지 않았다. 맨드레이크의 비명에 대한 면역을 높여 쇼크사하지 않는 약을 마시고 캐야만 했는데, 그 약의 재료는 바로 맨드레이크의 잎사귀였다.
"맨드레이크의 잎사귀를... 딱 한 사람 분 가지고 있어요. 치유사이자 약초꾼인 제가 가야 해요. 맨드레이크에 대한 지식이 없는 다른 사람이 캐려 하면 실패할 수도 있어요."
세르하가 온디로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대장님."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그를 그녀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세르하는 완전한 치유사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제가 다녀오겠어요. 절... 믿으실 수 있겠어요?"
온디로스는 자신을 대장으로 믿고 따르던 세르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주었다. 최악의 경우 세르하는 그의 해독제를 만들겠다는 명분으로 길을 떠나, 그를 죽게 내버려 두고 도망쳐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 다른 단원을 함께 보낼 수도 없었다. 맨드레이크의 비명을 견딜 수 있는 약은 1인분 뿐이었으니까.
세르하는 한 마디를 덧붙이며 경고했다.
"딱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게요. 제가 가지 않으면 대장님은... 죽어요."
독기운 때문에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고 있었지만, 그는 세르하의 말에 웃음을 지었다.
"네가... 도망칠 것을 내가 의심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가 힘겹게 손을 뻗어 세르하의 뺨을 쓸었다.
"넌 그럴 수 없어. 나를 두고 가면... 내가 죽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럴 수는 없지. 네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난 알아."
그의 시선이 세르하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독기가 퍼지는 고통에도 그의 황금빛 눈동자는 여전히 강렬했다.
"너를... 믿어. 하지만 사흘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난 죽을 거야. 그리고 네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내 영혼이 너를 쫓아갈 거야. 죽어서도... 널 놓아 주지 않을 테니까."
카티샤가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온디로스가 손을 들어 막았다.
"가 봐... 세르하. 하지만 꼭... 살아서 돌아와야 해. 네가 죽으면... 난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온디로스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세르하는 말없이 등을 돌려 도망치듯 떠나갔다. 독기운이 더 이상 퍼지지는 않았지만 상체의 대부분이 마비된 온디로스를, 단원들이 부축하여 바람장미 여관으로 돌아왔다.
바람장미 여관에서, 독기운이 퍼진 어깨를 붕대로 감은 채로 온디로스는 끊임없이 창 밖을 응시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는 세르하가 떠난 방향을 놓치지 않았다.
"카티샤. 네가... 세르하와 가장 가까웠지."
그가 상체만 비스듬히 침대 머리에 기댄 채 중얼거렸다. 카티샤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네가 그 아이를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온디로스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내가... 그 아이를 망가뜨렸다고 생각하나?"
카티샤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그 일 이후로 세르하는 당신을 두려워했어. 이대로 도망쳐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야. 그런데도 이렇게 목숨을 맡겨 놓고, 돌아오길 바란다고?"
온디로스의 황금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래... 내가 그 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지. 하지만 오늘... 그 애의 눈빛을 봤어. 더 이상 날 두려워하지 않더군. 그리고... 그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를 보니... 난 오히려 안심이 됐어."
카티샤는 온디로스를 노려보았다.
"솔직하게 말할까? 난... 황혼단원으로서, 대장으로 더할 나위 없는 너와 오랫동안 함께 일하고 싶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세르하가 너로부터 완전히 해방됐으면 좋겠어."
그녀는 벽에 기댄 채 팔짱을 꼈다.
"넌 그 아이의 순수함을 더럽혔어. 네가 유혹한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고용주인 너에게 호감을 표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건드린 거잖아. 그런 방법으로 세르하의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 아이가 널 살리겠다고 모레제스로 떠난 건, 널 좋아해서가 아니야. 네가 고용주이자 대장이고, 그 아이는 치유사이기 때문에... 단지 그 뿐이라고."
온디로스는 카티샤의 말에 얼굴을 찌푸렸다. 독기운이 퍼진 어깨가 욱신거렸지만, 그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래, 맞아. 그 때의 일은 내가 잘못했어. 난 그 애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어. 그 애를 갖고 싶다는 욕망을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었어. 하지만... 지금의 내 마음은 달라. 네가 모르는 게 있어, 카티샤."
그가 손을 뻗어 침대 옆 테이블에 놓인 술병을 집어들었다. 그러나 카티샤가 재빨리 다가와 술병을 빼앗았다.
"네가 보지 못한 세르하의 모습이 있어. 그 애가... 다고니스를 살려냈을 때의 일이야. 자신의 원수를 죽일 수 있었는데도, 그를 살려냈어. 그런 순수함이... 날 변하게 만들었어."
온디로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난 이제... 그 애의 순수함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 오히려 지키고 싶어졌어. 그래서... 네 말대로 그 애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게 내 업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일 거야."
그가 창 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만약에 그 애가 돌아오면, 제대로 해 보고 싶어. 그녀의 마음을... 얻고 싶어."
"제대로 해 보고 싶다고..."
카티샤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네가 정말로 그럴 생각이라면, 세르하가 돌아왔을 때 네가 그 아이를 위해 뭘 해 줄 수 있을지 생각해 두는 게 좋을 거야. 비싼 물건이나 사 주고, 다른 여자들에게 했던 것처럼 달콤한 말 몇 마디 속삭여 주는 그런 것 말고. 정말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말이야."
그 말을 남긴 카티샤는 온디로스의 방을 나갔다.
그는 창가에 서서 모레제스의 방향을 응시했다. 카티샤의 마지막 말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
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독기운 때문에 어깨가 아파왔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세르하는... 치유사가 되고 싶어 했지. 궁정 치유사를..."
르펜을 떠나기 전 그녀가 자신의 꿈을 말했을 때, 온디로스는 그녀의 꿈을 포기시키고 싶어했었다.
그는 어깨의 고통을 견디며 천천히 창가로 다가갔다. 해가 지고 있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석양빛에 더욱 선명하게 빛났다.
"세르하에게 필요한 것... 카티샤 말이 맞아. 내가 그 동안 했던 방식으론 안 돼."
그가 창틀을 붙잡고 서서 중얼거렸다.
"나는 그저 내 욕망대로만 움직였지. 그 순수한 눈빛이 날 두려워하게 만든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온디로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침대로 돌아와 쓰러지듯 몸을 눕혔다. 세르하가 모레제스에서 맨드레이크와 마주칠 순간이 그려졌다. 맨드레이크의 비명 소리는 수많은 용사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돌아와야 해... 반드시."
정확히 이틀 뒤, 온 몸이 흙투성이가 된 세르하가 바람장미 여관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손에는 아직 싱싱함을 잃지 않은 살아 있는 뿌리가 쥐어져 있었다.
"가져왔어요. 맨드레이크의 뿌리..."
그녀의 얼굴은 피곤에 절어 있었고 한 시도 쉬지 않고 달려온 듯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만,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온디로스의 방을 찾았다.
독기운이 퍼지는 것을 늦춰 놓은 덕에 온디로스는 아직까지 의식을 잃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세르하는 사막 한가운데의 오아시스에서 온디로스와 피터가 캐다 주었던 갈레테라 약초를 말린 약재를 꺼내 신중하게 계량했다. 맨드레이크의 뿌리는 환각을 불러일으키고, 과다 복용하거나 다른 약초와 조금이라도 잘못된 비율로 섞으면 독초가 되었다. 맨드레이크와 갈레테라를 정확히 조합한 약만이 그를 해독할 수 있었다.
"........"
세르하는 더 이상 온디로스에게 자신을 믿냐고 묻지 않았다. 그녀를 믿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모레제스로 보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르하는 목숨을 걸고 훌륭하게 약재를 구해 왔다. 그리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계량으로 해독약을 조합했다.
"한 방울도 흘리거나 남기지 마시고 다 드세요."
그녀는 신중하게 달인 해독약을 온디로스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가 약을 모두 마시고 나자, 소매를 걷어붙이고 그에게 치유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강한 회복력을 발휘하는 만큼 가장 많은 마력을 필요로 하는 '리커버리'가 별무리처럼 하얀 빛을 발했다. 르펜 시장의 고급 잡화점에서 온디로스가 사 주었던 피아스톤 팔찌가 능력을 발휘하며 눈부시게 빛났다.
장비의 힘을 그만큼 빌렸는데도, 온디로스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데에는 그보다 더한 마력이 필요했다. 치유 마법은 부족한 마력을 대신해 치유사의 생명력을 흡수하여 그 힘으로 치유의 효과를 환자에게 전달했다. 세르하는 손을 펼쳐 치유력을 발휘하는 것을 멈추지 않은 채 고개를 돌리고 작게 기침을 했다. 기침과 함께 그녀의 목 깊은 곳에서 울컥 솟은 피가 튀어나오는 것을 온디로스는 똑똑히 보았다.
그는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세르하의 피를 본 순간, 그의 전신이 경련하듯 떨렸다. 세르하의 작은 어깨를 거칠게 붙잡았다.
"멈춰! 이제... 그만해. 충분해..."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가 세르하의 손목을 잡아 당기자, 치유 마법의 빛이 사그라들었다.
"이러려고 널 보낸 게 아니야. 네가 목숨을 걸고 약초를 구해 온 건... 날 살리기 위해서였지, 네가 대신 죽기 위해서가 아니야."
그는 세르하를 침대에 앉히고 그녀의 입가에 묻은 피를 소매로 닦아 주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넌... 아직도 내가 그렇게 무서운 거야? 날 두려워해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아직 안 끝났어요."
세르하는 숨을 몰아쉬며 매섭게 그의 팔을 뿌리쳤다. 거기에 온디로스에 대한 두려움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독기운이 체내에 남아 있으면, 처음부터 다시 퍼져요. 지금까지 한 고생을 망치지 마세요."
그녀는 이를 악물고 다시 리커버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더 많은 생명력을 쏟아부었다. 고갈된 마력을 대신해서 공급되는 생명력의 맑은 기운을 이기지 못한 피아스톤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스톤이 산산조각 나 깨지는 순간, 세르하의 치유가 끝났다. 온디로스의 몸에서 독기운이 완전히 정화되었다. 세르하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몇 차례 기침을 한 뒤,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잠든 듯 기절한 그녀의 양손에는 각혈한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다.
온디로스는 순식간에 세르하를 양팔로 받아 안으며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세르하... 이 바보 같은..."
세르하의 손바닥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그가 중얼거렸다. 그녀의 작은 몸을 실은 그의 팔이 떨렸다.
"그 때도... 그래. 자코프를 살릴 때도 이랬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아깝지 않은 거야?"
그는 세르하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피아스톤의 부서진 파편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온디로스는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을 향해 소리쳤다.
"피터! 닐! 누구든... 카티샤를 데려와!"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세르하를 향했다.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그는 작게 속삭였다.
"네가... 날 두려워해서, 나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는 걸 이제야 알겠어. 그저...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면, 그게 설령 널 괴롭힌 사람이라도... 그걸로 충분한 거였구나."
며칠 동안 정신을 잃은 상태인 세르하를 카티샤와 칼리가 번갈아 가며 간호했다. 나흘째 날이 되어서야 세르하는 긴 잠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차린 세르하를 발견한 칼리와 카티샤가 온디로스를 불러왔다. 세르하는 아직 기운이 없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수는 없었지만, 평소처럼 맑고 또렷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여기는..."
세르하는 낯설지만 익숙한 온디로스의 방을 어렵지 않게 알아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마지막으로 치료한 환자의 안부를 물었다.
"대장님은, 괜찮아요? 독기운은..."
그는 급하게 다가와 세르하의 손을 잡았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에는 걱정과 안도가 교차했다.
"내 걱정은 하지 마. 네 덕분에 완전히 나았어. 하지만 네가..."
그가 그녀의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네가 쓰러진 뒤로 나흘 동안... 넌 한 번도 깨어나지 않았어. 카티샤는 네가 과도한 치유 마법 사용으로 생명력을 너무 많이 소모했다고 했어. 마력도 고갈되고... 생명력마저 위태로웠다고."
그는 세르하의 손등을 쓸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네가 날 살리려고 그렇게까지 했다는 걸 깨닫고... 이제야 알겠어. 네가 가진 순수함이... 내가 그토록 갖고 싶어했던 게... 바로 그런 거였어."
그가 고개를 숙였다. 그의 청회색 머리카락이 그의 표정을 가렸다.
"그 동안 네가 겪은 모든 일에 대해... 사과하고 싶어. 널 지켜 주겠다고 하면서... 오히려 내가 너를 괴롭혔지."
그가 조심스럽게 세르하의 손을 잡았다.
"이제는... 널 괴롭히지 않을게. 약속할게."
세르하는 자신의 손을 부드럽게 잡은 그의 손을 천천히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뜻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아르라우네, 아르라우네, 너의 고통이 반드시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것이다."
주문 같은 말을 외운 뒤, 그녀는 온디로스와 카티샤, 칼리를 바라보며 작게 미소지었다.
"약초꾼들은 맨드레이크를 그런 이름으로 불러요. 맨드레이크를 뽑아낼 때 약초꾼들이 반드시 하는 말이에요. 무서운 마약도 독초도 될 수 있는 약재지만, 반드시 사람을 살리는 데 쓸 거라고... 약속하는 말인데, 그 끔찍한 비명 소리를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용기를 갖고자 하는 말이기도 해요. '심봤다!' 같은 말이죠."
그녀가 맨드레이크를 채집할 때도 분명 그 말을 여러 번 반복해 읊었으리라. 끔찍한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그를 살리기 위해.
세르하는 온디로스의 손을 살짝 잡아 주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절 구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는 세르하의 작은 손을 감싸 쥔 채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세르하를 바라보았다.
"아니야... 네가 날 구한 거야. 내가 너를 구한 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너로 인해 살아난 거지."
그가 몸을 숙여 세르하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청회색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이제는... 널 지켜 주겠다는 약속을 제대로 지킬 거야. 그리고... 네가 꿈꾸는 궁정 치유사가 될 수 있도록 도와 줄게. 내가 방해하려 했던 걸... 이제는 네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칼리가 카티샤의 팔을 잡아당기며 작게 속삭였다.
"이제 두 사람만 남겨 두자."
카티샤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방을 나서자 온디로스는 세르하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열은 거의 내렸어... 하지만 아직 너무 무리하면 안 돼. 며칠은 더 쉬어야 해."
세르하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궁정 치유사요...? 하지만... 제가 궁에서 일하는 걸 원치 않으셨잖아요."
그는 세르하의 반문에 잠시 말을 잃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그랬었지. 하지만... 내가 이기적이었어. 네가 나만 바라봐 주길 원했으니까. 황혼의 치유사로 머물면서... 내 곁에만 있어 주길 바랐어."
그가 깊은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아. 네가 가진 순수함은... 한 사람만을 위한 게 아니야. 자코프도, 널 괴롭혔던 나도... 네가 구한 건 생명 그 자체였어. 그런 네가 궁정 치유사가 되어 더 많은 이들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네가 해야 할 일이겠지."
그가 세르하의 머리맡에 놓인 물잔을 집어 들었다.
"물 마실래? 아니면... 다른 필요한 거라도?"
세르하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 정말로 절 보내 주시는 거예요?"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발그레하니 살짝 붉게 물든 볼, 그녀가 그렇게 사랑스럽게 얼굴을 붉힌 것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였던가.
온디로스는 세르하의 얼굴에 드리운 발그레한 홍조를 보며 가슴 한켠이 저렸다. 그녀의 순수한 열정이 담긴 표정은 어떤 귀족 여인의 아름다움보다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토록 갖고 싶어했던 그녀의 미소를, 이제는 놓아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내는 게 아니야... 네가 꿈을 이루도록 돕는 거지."
그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세르하의 볼을 쓸더니, 잠시 말을 멈추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아침 햇살이 그의 황금빛 눈동자를 비추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 약속해 줘. 네가 궁정 치유사가 되어서도... 가끔은 날 찾아와 줬으면 해. 내가 또 이런 독기운에 당하면... 날 살려 줄 사람이 필요하니까."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농담을 던졌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묻어있었다.
"그리고... 이건 내 욕심이지만... 네가 황실에서 일하게 되어도, 황혼의 치유사라는 걸 잊지 말아 줘. 네가 우리 단원이었다는 걸... 잊지 말아 줘."
며칠 뒤, 몸을 회복한 세르하는 리암과 피터가 가져온 정보대로, 궁정 치유사가 되기 위한 시험 일정을 받아 르펜으로 떠났다. 황혼 용병단에서 대장인 온디로스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생명을 구한 경험이 있는 경력은 물론이요, 지식과 마법 시전 능력까지 세르하는 모든 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사막도시 펜샤로 돌아온 황혼 용병단은 그로부터 몇 주 뒤에 셀레스트 황녀가 보낸 서신을 하나 받았다. 세르하가 궁정 치유사 시험의 전 과정을 수석으로 합격했다는 소식이었다.
셀레스트 황녀의 서신을 받자마자 온디로스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양의 터 여관 안뜰에서 단원들과 함께 식사 중이던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편지를 읽는 동안 흔들렸다.
"세르하가... 수석 합격했어."
그의 목소리에는 자랑스러움과 동시에 묘한 허전함이 배어 있었다.
닐이 온디로스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역시 우리 꼬마 치유사야! 이제 정말 궁정 치유사가 되는 거네."
리암이 다가와 온디로스의 어깨를 툭 쳤다.
"세르하가 얼마나 뛰어난 치유사인지는 우리가 제일 잘 알지. 특히 대장님이."
온디로스는 리암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 애가 날 살려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가 서신을 접어 넣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는 황실의 치유사로서 더 많은 이들을 살릴 수 있겠지. 그게... 그 애다운 거니까."
카티샤는 조용히 온디로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에서 복잡한 감정이 읽혔다.
"대장. 세르하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는 게 좋겠어요. 아마 이제 르펜에서 궁정 치유사 임명식이 있을 텐데..."
온디로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리암을 불렀다.
"리암, 르펜으로 가서 축하 선물을 좀 전해 줄 수 있겠나? 내가 직접 가면... 셀레스트 황녀가 또 날 붙잡으려 들 테니까."
리암이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물론, 대장님 분부대로 합죠. 그래, 무슨 선물을 전하면 되지?"
"피아스톤으로 된 팔찌를... 날 살리느라 깨져 버린 그 팔찌 대신 새로운 걸 하나 맞춰서 보내고 싶군."
온디로스는 주머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 그 안에 든 작은 파편을 쓸쓸하게 바라보았다. 세르하가 그를 살리기 위해 모든 마력을 쏟아부을 때 깨져 버린 팔찌의 잔해였다.
"리암, 포지타운에 들러서 로만 세공사를 찾아가 줘. 새로운 팔찌를 만들어 달라고 전갈을 보내 뒀어. 그리고..."
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어갔다.
"팔찌 안쪽에 '아르라우네'라고 새겨 달라고 해 줘. 세르하가 했던 그 말...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그 말처럼, 그 아이도 내 생명을 살려 냈으니까."
그가 허리춤에서 작은 상자를 하나 더 꺼냈다. 그 안에는 황혼의 문장이 새겨진 회중시계가 들어 있었다.
"이건... 세르하가 황혼의 치유사였다는 걸 잊지 말라고. 그리고 언제든 우리를 찾아올 수 있다는 걸 기억하라고."
카티샤가 온디로스를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대장님... 이제야 정말로 세르하를 이해하시는 건가요?"
닐이 갑자기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아니, 이 자식 완전 연애하는 남자처럼 구는구만! 이런 거나 보내고. 이렇게 다른 사람 심부름 시킬 바에야 직접 가서 전해 주지 그래?"
온디로스는 닐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럴 순 없지. 이제... 그 애는 황궁의 사람이 될 거니까."
며칠 뒤, 온디로스가 보냈던 리암이 펜샤의 태양의 터 여관으로 돌아왔다. 온디로스가 부탁한 물건은 모두 세르하에게 전한 듯, 빈 손이었다. 하지만 그가 꺼낸 이야기는 달랐다.
"세르하가 선물 잘 받았다고, 자신도 '선물'을 하나 주고 싶다지 뭐야."
리암은 씩 웃으며 여관 출입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곳에는... 뜻밖에도 세르하가 서 있었다.
온디로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리암이 가져온 영문 모를 말에 당황하고 있을 때 세르하가 직접 들어오자,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세...세르하? 너... 여기가 아니라 궁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의 목소리에는 당혹감과 기쁨이 뒤섞여 있었다. 리암이 그의 어깨를 툭 치고는 닐에게 눈짓했다.
"이봐, 우린 이제 밖에 나가서 한 잔 하러 가지 않을래?"
카티샤가 한숨을 내쉬고는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그래요. 우리끼리 축하주를 마시러 가죠."
닐이 크게 웃으며 피터의 어깨를 잡아 끌었고, 단원들이 하나 둘 자리를 비우기 시작했다.
온디로스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세르하를 바라보았다.
"네가... 정말 여기 온 거야? 아니면 내가 또 독기운에 취해서 환각을 보는 건가?"
세르하는 입으로 손을 가져가며 웃었다. 그녀의 손목에는 그가 새로 선물한 팔찌가 걸려 있었다.
"그 독기운은 제가 확실히 치유해 드렸는데, 그럴 리가 없잖아요."
세르하는 주머니에서 황혼 용병단의 일원임을 상징하는 회중시계를 꺼내 들었다.
"이걸 받고도... 돌아오지 않을 수는 없었어요. 제가... 정말 갖고 싶어했던 거거든요."
그녀의 벌꿀색 눈동자가 부드럽게 반달을 그렸다.
"궁정 치유사가 되는 건... 더 나중이 되어도 좋아요. 황혼의 단원으로서, 아직 가 보지 못한 곳도... 아직 찾아 보지 못한 새로운 약재들도 많이 남아 있으니까."
그가 천천히 세르하에게 다가갔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그녀의 손목에 걸린 팔찌를 향했다가, 회중시계를 쥔 그녀의 손으로 향했다가, 마침내 그녀의 얼굴에 머물렀다.
"궁정 치유사가 되는 걸 미루고 싶다고...? 하지만 넌 수석 합격했잖아. 정말... 그래도 괜찮아?"
그가 세르하의 손목을 놓지 않은 채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네가 그토록 바라던 꿈인데... 내가...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나? 이런 선물로... 널 붙잡아 두려고 한 게 아닌데..."
그가 세르하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 회중시계를 감싸 쥐었다.
"하지만 이렇게 네가... 황혼을 선택해 준다면..."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번에는... 내가 너를 구속하지 않을게. 네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약초를 찾아다닐 수 있어. 그리고 언제든 궁정 치유사가 되고 싶다면, 그 때 가서..."
닐이 문 밖에서 소리쳤다.
"야, 이 자식아! 그냥 좋다고 말해! 뭐가 그리 복잡해!"
카티샤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닐, 조용히 해요. 둘이 얘기하게 놔 둬요."
"그러고 보니... 대장님,"
세르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언제부턴가 더 이상 절 '꼬마 아가씨'라고 부르지 않으시네요."
그가 잠시 말을 잃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세르하의 얼굴을 꼼꼼히 살폈다.
"그래... 이제 너는 그저 꼬마 아가씨가 아니니까. 지금의 너는..."
그가 손을 뻗어 세르하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속삭였다.
"황혼의 치유사...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니까."
닐이 밖에서 소리를 질렀다.
"야! 거기 두 사람! 이제 그만 좀 하고 나와서 술이나 마시자고!"
칼리가 닐의 머리를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닐! 좀 조용히 해. 방해하지 말고."
온디로스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도... 나가 볼까? 우리 치유사가 황혼에 돌아온 걸 축하해야지."
그가 세르하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네가 원하는 대로 하자. 널 구속하지 않을 테니, 자유롭게 어디든 다녀도 좋아. 하지만, 한 가지만..."
그가 세르하의 귓가에 속삭였다.
"가끔은... 내 옆에 있어 줘."
황혼의 대장은 치유사의 작은 손을 잡고 태양의 터를 나섰다. 황혼으로 물든 석양 아래, 세르하의 금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꼈다. 닐과 카티샤, 그리고 다른 단원들이 여관 앞 테이블에 둘러앉아 술잔을 들고 있었다.
"우리의 치유사가 돌아왔다! 건배!"
닐이 크게 소리치자 모두가 잔을 높이 들었다. 리암이 세르하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그래, 이제 진짜 황혼의 일원이 된 거야. 회중시계도 받았으니까."
온디로스는 세르하의 옆자리에 앉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그녀를 구속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스스로 돌아온 지금, 그의 마음 한 켠에는 작은 희망이 피어났다. 언젠가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fin.
'시아노코쿠스(Cyanococcus)'는 블루베리의 학명이고, '벨라돈나(Belladonna)'는 실제로 블루베리와 비슷하게 생긴 독초라고 합니다. 그래서 생김새도 맛도 향도 '똑같은' 약초와 독초라는 설정을 세우고, 그냥 이름만 따 왔어요.
신해온 플레이에서 방중술사 여주인 연희를 미실에서 따 왔듯이, 여기 여주는 치유사니까 대장금 일화를 좀 따 왔죠😏
'아르라우네' 또한 '만드라고라=맨드레이크=만다라케' 의 다른 명칭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다른 분들 플레이하실 땐 '라리엣'이 등장하던데 왜 저한테는 '세릴'만 나왔을까요?
펜샤에서 활동을 안 해서 그른가... 온디가 바람둥이라서 각 도시마다 현지처(ㅋㅋㅋ)가 있는 걸까욘🤔
아무튼 전 여주를 꼬마 아가씨라고 부르면서 알콩달콩 귀엽게 질투하다가 징징거리면서 고백하는 예쁜 온디 보고 싶었는데... 언제부턴가 그런 사랑스러운 호칭은 곱게 접어 하늘 위로 날려버리고 집착대마왕이 된 온디... 혐관으로 흘러갈 뻔했던 것을 그나마 여주 직업 테마에 맞는 치유와 용서로 해결하긴 했지만 이 사건 하나로 뭔가 바로 커플로 이어 주기엔 너무 성급한 느낌이고, 그래서 끝끝내 '긍정적으로 열린' 결말이 되어 살짝 아쉬움이 남은 흐름이었습니다. 아니 그러게 여주는 왜 덮쳐가지고 수습 불가 사태를 만드냐고...
그래도 후반부에 여주 꿈이 궁정 치유사라는 거 기억하고 꿈을 이루게 해 주기로 결심하고(이거 유저노트로도 안 썼는데 바로 기억해서 좀 심쿵...), 축하 선물 준비해 준 것도 딱 제가 원하던 흐름이라 감동했어요.
특히 '금사빠가 반하지 않는다' 제목 폐기하고 리뷰글 1회 막바지 즈음에 2안으로 제목 구상했던 게 '아르라우네'였는데, 대뜸 새 팔찌에 그 이름을 각인시키겠다고 한 것에서 놀랐어요. 제목에 쓰기로 결심한 이름을 다시 한 번 온디로스가 강조해 준 거죠. 와 얘 센스 있다...
그 외에도 황혼단원임을 증명하는 회중시계 준 거... 여주가 아직 고용된 막내니까 회중시계는 당연히 아직 받기 전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궁정 치유사 수습 과정까지 다 밟은 다음에 여주가 다시 제 발로 황혼으로 되돌아왔을 때 비로소 정식으로 회중시계를 받는 흐름으로 가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온디가 먼저 합격 소식 듣고 선물로 전해 주다니😢🥹🫢
그래서 여주를 바로! 냉큼! 재깍! 돌아오게 했습니다. 시작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이미 서로의 목숨을 한 번씩 살렸고, 이제 온디에 대한 마음도 거의 다 열었으니, 열린 결말인 점이 살짝 아쉬워도 결국 온디랑 여주가 이루어지는 건 시간 문제라고 생각해요😊
크랙 :: 세르하 유스카✨Serha Jouska
구(久) 뤼튼 :: 세르하의 환상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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