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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예리엘/🌃#락타리온 :: 애쉬·반·헥스

[크랙] 반 샌디어 ~뒷골목의 귀여운 정보상~(@예리엘) 👓-2- 비밀 상점의 메이드

by 세르하 2025. 4. 16.

01

반 샌디어
환락의 도시 '락타리온'의 지배자의 측근이자 정보상인 '반 샌디어'.
밝고 귀여운 반은 겉모습과 달리 락타리온의 실세인 '애쉬 케이지'의 측근이다.
당신은 상점 술집의 알바를 지원하게 되고...
📖'애쉬 케이지'와 같은 세계관 공유

[크랙] 뒷골목의 귀여운 정보상(@예리엘) 캐릭터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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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랙] 반 샌디어(@예리엘) 캐릭터챗 ▼ 📛Unsaf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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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시간이 되었다. 에나는 여느 때처럼 직원 휴게실에 혼자 앉아서 에너지 바 포장을 뜯었다.

반이 휴게실 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었다.

"혼자 있네? 어제 못다 먹은 디저트 가져왔는데... 먹을래?"

반은 에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슬그머니 안으로 들어와 그녀 맞은편에 앉았다. 그의 손에는 아까 에나가 챙겨둔 디저트 상자가 들려있었다.

"마스터가... 너무 심하게 나왔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반이 난처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냥... 네가 위험할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야. 루스턴이란 자는... 정말 위험한 놈이거든."

 

에나는 에너지 바를 한 입 먹었다. 그리고 반을 쳐다보았다.

"제가 루스턴이라는 분께 가면 어떻게 되나요? 생명에 지장이 있나요?"

반이 디저트를 내려놓으며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생명의... 지장? 그 정도가 아니야."

그가 평소와 다르게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루스턴은... 살인보다 더 끔찍한 짓을 하는 자야. 특히 여자들한테는."

반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그 자는 여자들을 가지고 노는 걸 즐기는데...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한번 그 자 손에 들어가면..."

반이 몸을 떨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마스터가 그렇게 나온 거야. 네가 그 자 손에 들어가는 걸 막으려고. 마스터는... 자기 사람들은 꼭 지키거든."

 

"...그렇군요."

에나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그렇게 여성에게 위험한 고객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남성 직원만 고용했어야 하지 않나요?"

반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듯 말했다.

"그게... 그게 아니라..."

반이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솔직히... 네가 처음이야. 마스터가 여자 직원을 받은 건. 그동안은 다 거절했거든."

그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마스터가 널 뽑은 건...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아마도..."

 

그 때 홀에서 반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반! 어디 있어? 손님 오셨는데!"

"앗... 가 봐야겠다."

반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머쓱하게 웃었다.

"이따 얘기 더 하자?"

에나는 서둘러 에너지 바를 모두 삼킨 다음 앞치마를 털며 반을 따라 홀로 나갔다.


홀에 들어서자 헥스가 카운터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의 금빛 눈동자가 반을 향했다.

"어디서 빈둥거리고 있었어? 손님 왔잖아."

반이 씩 웃으며 카운터로 달려갔다.

"미안해~ 헥스. 잠깐 디저트 좀..."

"또 단 거냐?"

헥스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헥스의 시선이 에나에게 향했다.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3번 테이블 손님, 네가 맡아 줘."

 

에나는 3번 테이블로 다가갔다.

"어서 오십시오, 데버 님. 주문은 소프트 와인으로 하시겠습니까?"

그녀는 단골 손님의 이름과 선호하는 메뉴를 정확하게 확인했다.

헥스가 에나의 일 처리를 관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네."

그가 반을 힐끗 보며 말했다.

"이제 알겠지? 왜 마스터가 에나를 뽑았는지."

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에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 그래서..."

헥스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반, 얼른 와서 이 잔들 좀 정리해."

그가 에나를 향해 말했다.

"데버는 우리 가게의 단골이야. 그가 편하게 있도록 해."

 

에나는 단골 손님의 제법 좋은 이야기 상대가 되어 주고 있었다. 물론 단 한 번도 웃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재치있게 데버의 말을 받으며 그를 여러 번 웃게 만들었다.

데버는 팁을 테이블에 놓아 두고 갔다. 에나는 테이블을 정리하고 팁을 카운터에 제출했다.

헥스가 에나가 제출한 팁을 받아들며 말했다.

"데버는 까다로운 손님인데... 네가 잘 응대했군."

반이 카운터 뒤에서 흥미롭다는 듯 지켜보다가 말을 거들었다.

"데버 씨가 저렇게 즐거워하시는 건 처음 봤는데? 역시 마스터 눈이..."

헥스가 차가운 눈빛으로 반을 쳐다보자 반은 입을 다물었다.

"에나."

헥스가 팁을 건네며 말했다.

"이건 네 몫이다. 손님이 직접 네게 준 거니까."

"........."

에나는 손을 들어 사양했다.

"기본급이 높기 때문에 지금 받는 급여로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때, 새로운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에나는 익숙하게 단골 손님을 알아보고, 다가가서 손님이 벗는 재킷을 받아 들고 자리에 안내했다.

"시몬 님, 오늘은 구름이 낀 날이니 클라우드 진으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시몬은 웃으며 만족했다.

반이 에나의 일처리를 보며 감탄한 듯 입을 벌렸다. 그때 헥스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입 다물어. 파리 들어간다."

헥스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의 금빛 눈동자에는 만족감이 어려 있었다.

그가 에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의 취향과 날씨를 연결시키다니... 네 기억력은 마스터의 눈에 들 만하군."

반이 또 뭔가 말하려 하자 헥스가 그를 째려보았다.

"넌 얼른 가서 창가 테이블 정리나 해."


저녁 시간, 직원 휴게실에 앉은 에나는 도시락 가방에서 에너지 바를 꺼내 한 입 물었다. 혼자 앉아 있는데도 허리는 반듯이 편 상태였다.

반이 휴게실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또 에너지 바야? 아까 디저트도 안 먹고... 이러다 배탈 나겠다."

반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꾸짖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 요리는 못하지만, 근처에 맛있는 식당 몇 군데는 알아. 같이 가서 저녁 먹을래? 내가 살게."

그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 마스터가 오늘 자정에 까마귀 보낸다고 했지? 그럼 그 전에 저녁 먹고 오면 되잖아? 어때?"

"감사합니다. 하지만..."

에나는 고개를 저었다.

"외식은 하지 않습니다. 식사는 혼자 하는 게 편하고요."

 

반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에너지 바만 먹으면 영양이 부족할 텐데..."

그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갑자기 눈을 반짝였다.

"아! 그럼 내가 도시락을 싸 올까? ...아, 맞다. 난 요리를 못 하지."

반이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헥스한테 부탁해 볼까? 그가 요리는 잘 하거든. 뭐... 나보단 낫다는 거지만."

갑자기 반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에나... 혹시 우리가 불편해서 그래? 아니면..."

 

에나는 반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금테 안경이 은은하게 빛났다.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덧붙였다.

"...다들 좋은 분들이세요."

 

반이 에나의 말에 살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정말? 다행이다... 난 우리가 불편하게 했나 걱정했거든."

그가 안도한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혹시... 다른 이유가 있어?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거야?"

반이 잠시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니면... 과거에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그 때 휴게실 문이 열리며 헥스가 들어왔다.

"반, 여기 있었구나. 마스터가 찾더군."

헥스가 에나를 힐끗 보더니 반을 향해 말했다.

"어서 올라가 봐. 기다리고 계신다."

 

에나는 서둘러 에너지 바를 마저 먹고 앞치마를 가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저녁 영업을 준비했다.

헥스가 반이 자리를 비운 뒤 에나를 향해 말했다.

"오늘 손님들 응대... 잘했다."

그가 차가운 금빛 눈동자로 에나를 관찰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너무 무리하지 마. 그리고... 밤에는 조심해. 루스턴이 네 거처를 알고 있다면 위험해."

헥스가 잠시 망설이더니 덧붙였다.

"혹시... 식사가 필요하다면 말해. 내가... 도시락이라도 만들어 줄 수 있으니."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괜찮아요."

에나는 공손히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헥스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점장님, 락타리온에 무기상이 있나요?"

헥스의 금빛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무기상이라..."

그가 잠시 에나를 관찰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락타리온엔 위험한 곳이 많아. 특히 무기상은 더더욱. 네가 혼자 가기엔..."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만약 정말 필요하다면, 내가 직접 데려다 주지. 하지만 이유를 말해 줘야 해. 무기는... 위험할 수 있으니까."

헥스의 표정이 평소보다 더 진지해졌다.

"혹시... 루스턴 때문에...?"

"아뇨. 그런 공적인 용도는 아니고... 개인적인 용도입니다만,"

에나는 안경테를 빛내며 고개를 올곶게 들었다. 그녀에게 루스턴은 관심 밖의 존재인 것 같았다.

"혹시 가게 직원이 개인적인 용도로 무기를 소지하는 것은 불허하시나요?"

 

헥스가 한동안 에나를 관찰하듯 바라보았다. 그의 금빛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불허하진 않아. 하지만..."

그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무기를 파는 곳은 대부분 블랙 로즈의 영역이야. 위험할 수 있지. 내가 아는 곳이 있는데..."

그가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이었다.

"...네가 정말 필요하다면, 내가 소개해 줄 수 있어. 하지만 먼저, 무슨 용도인지는 알아야겠어."

그의 표정이 평소보다 더 진지해졌다.

"이건 네 안전을 위해서야."

 

에나의 보랏빛 눈동자가 헥스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를 위해서'요."

그녀는 순간 눈을 깊게 내리깔았다.

"그 이상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헥스의 날카로웠던 표정이 순간 부드러워졌다. 그의 목소리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어머니를 위해서라..."

그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말했다.

"알았어. 더 이상은 묻지 않겠다. 내일 아침 일찍, 영업 시작 전에 널 데려다 주지."

그가 잠시 망설이더니 덧붙였다.

"무기는... 내가 골라 주마. 네가 다루기 쉽고, 위험하지 않은 걸로."

헥스의 금빛 눈동자가 따뜻하게 빛났다.

"그리고... 혹시 도움이 더 필요하다면... 말해도 좋아."

"도움이라기보다는..."

에나가 조용히 덧붙였다.

"다른 분들이... 이 사실을 모르셨으면 해요."

헥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하지."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내일 아침 6시, 뒷문으로 나와. 반이나 마스터께는 내가 널 훈련시키러 데려간다고 할 테니."

그의 금빛 눈동자가 진지하게 빛났다.

"그리고...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날 찾아와. 약속하지."

헥스가 문 쪽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가 봐. 곧 저녁 영업 시작이야."


다음 날 아침 6시, 에나는 약속대로 비밀 상점 건물 뒷편에 있는 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곧 헥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헥스가 평소보다 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따라와."

그가 에나를 이끌고 좁은 골목길을 지나갔다. 그의 걸음은 빠르지만 에나를 배려하는 듯했다.

"여기선 조심해야 해. 이 시간에도 위험한 자들이 있으니까."

그가 주변을 경계하며 말했다.

얼마간 걸어 낡은 창고 같은 건물 앞에 도착했다. 헥스가 특이한 노크 패턴으로 문을 두드렸다.

"내 지인이 운영하는 곳이야. 믿을 만한 사람이니 걱정하지 마."

그가 에나를 돌아보며 덧붙였다.

"무기를 고를 땐 내가 도와주마. 네 체격에 맞는 걸로..."

조용히 문이 열리고, 무기상의 오너가 헥스를 맞이했다.

 

창고 안에서 마른 체구의 나이 든 남자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 그의 거친 손가락엔 금속을 다룬 흔적이 역력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웬일이야, 헥스?"

남자의 날카로운 눈이 에나를 힐끗 보았다.

헥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토비아스 씨. 오늘은 특별한 손님과 함께 왔습니다."

토비아스라 불린 남자는 문을 활짝 열어 둘을 들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벽면을 따라 다양한 무기들이 정교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자네가 데려온 손님이라... 어떤 종류를 찾고 있나?"

토비아스가 에나를 향해 물었다.

 

"던지는 단검과 산탄총, 권총을 찾고 있습니다만 30년이 넘어가는 구식 모델을 원해요. 얻을 수 있을까요?"

에나가 무기명을 읊었다.

"12.5 밴딩 커터, 16구경 블라디미르, 10mm 로제트. 지금 가진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이 정도예요."

 

토비아스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에나의 전문적인 지식에 흥미를 보였다.

"오호... 구식 모델을 찾는 손님이라니, 특별한데?"

그가 안쪽 작업실로 들어가더니 낡은 나무 상자들을 꺼내왔다.

"운이 좋군. 블라디미르는 얼마 전에 수리를 마친 게 있어. 로제트도... 음, 잠깐만."

헥스는 토비아스가 무기들을 꺼내는 동안 에나를 흘깃 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약간의 놀람이 묻어났다.

"밴딩 커터는... 아, 여기 있군."

토비아스가 천으로 감싸진 단검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보관 상태는 좋아. 다만 이런 구식 무기들은 관리가 중요해. 특히 블라디미르는 습기에 약하니 말이야..."

 

"네, 알고 있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대답한 에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다음 번에 또 찾아와도 될까요?"

토비아스는 에나의 말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지. 자네같이 무기를 아는 손님은 언제든 환영이야."

그가 잠시 헥스를 바라보더니 다시 에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다만... 이 시간에 오는 게 좋겠어. 그리고 반드시 헥스와 함께."

헥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데려다 줄 테니, 필요할 때 말해."

토비아스가 무기들을 포장하며 말했다.

"자, 이건 무기 관리법을 적어둔 거야. 특히 블라디미르는 까다로우니까 잘 읽어보게. 그리고... 이건 서비스야."

그가 작은 기름병을 하나 더 꺼내 주었다.

"........"

에나의 눈동자가 잠시 따뜻해졌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종이백에 넣어 온 돈 뭉치들을 꺼냈다.

"200만 롯이에요. 혹시 부족하실까요?"

토비아스는 에나가 건넨 돈을 세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많아. 150만이면 충분해."

그가 50만 롯을 도로 밀어주었다.

"자네가 무기를 아는 것도 맘에 들고... 헥스가 데려온 손님이니 특별 가격으로 해주지."

헥스가 토비아스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토비아스 씨."

토비아스는 무기들을 천으로 잘 감싸 검은 가방에 넣으며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무기는 주인을 닮아간다네. 잘 관리하고... 필요할 때만 쓰게."

"감사합니다."

토비아스에게 허리 숙여 인사한 에나는 헥스와 함께 무기상을 나왔다.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희귀한 무기를 좋은 가격에 구매했어요."

그녀는 토비아스가 챙겨 준 무기를 소중히 안고 걸었다.

헥스는 잠시 에나의 걸음걸이를 살피며 걸었다. 그의 금빛 눈동자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

"토비아스는 믿을 만한 사람이야. 하지만... 혹시라도 무기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말해."

그가 잠시 멈춰 서서 에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네가 무기를 잘 아는 걸 보니... 이전에도 다뤄 본 적이 있나 보군."

그의 목소리에는 묻지 않겠다는 뉘앙스가 담겨있었다.

"앞으로도 필요한 게 있다면... 내가 도와 주마. 네 안전이 중요하니까."


다음 날 아침, 에나는 비밀 상점 건물과 그 우측에 나란히 서 있는 푸른 지붕 집 건물 사이에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울고 있는 새끼 고양이를 발견했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어미는 없었다. 새끼는 어미를 부르듯 애처롭게 울었다. 어쩌다가 떨어져 혼자 남겨진 모양이었다.

그녀는 가게로 들어가 빈 접시에 흰 우유를 조금 따랐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와서 새끼 고양이 앞에 놓았다. 고양이는 먹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어쩔 수 없이 무릎을 접고 앉아 새끼 손가락에 우유를 묻혀 입에 대 주었다. 그러자 고양이는 어미 젖인 줄 알고 에나의 새끼 손가락에 매달려 정신없이 우유를 핥아먹었다. 그것을 본 에나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반이 맨발에 잠옷 차림으로 비밀 상점 건물과 자신의 집 사이 골목으로 나왔다. 그는 에나와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하품을 하며 다가왔다.

"으음... 아침부터 뭐하고 있어? 어라?"

그가 고양이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우리 에나가 숨겨둔 다정한 면이 있었네~?"

그가 무릎을 굽혀 에나의 옆에 앉았다.

"어디서 온 녀석일까? 이런 새끼 고양이가..."

반이 무릎을 굽혀 고양이 옆에 앉았다.

"어미는 안 보이네... 불쌍한 녀석."

그가 고양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다가 에나를 향해 밝게 웃었다.

"키울래? 우리 가게 마스코트로?"

 

"...그걸 마음대로 결정해도 괜찮나요?"

에나가 안경 너머 보랏빛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양이는 자라면서 털이 더 많이 빠지기 때문에, 이렇게 술과 음식을 파는 가게에서는..."

반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우리 가게 손님들은 고양이 털 따위는 신경도 안 써. 그리고..."

그가 장난스럽게 윙크했다.

"마스터도 고양이를 좋아하시거든? 특히 검은 고양이... 아, 이 녀석도 검은색이네?"

반이 새끼 고양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말이야, 우리 헥스도 은근 동물을 좋아해. 아침마다 뒷골목 고양이들한테 먹이 주는 거 몰래 봤다고."

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자, 어때? 우리 모두가 이 녀석의 보호자가 되어주면... 털 관리도 내가 도와줄게! 응?"

 

"........"

에나는 대책없이 긍정적인 그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허락은 사수님이 받으세요."

 

반이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아하하... 내가 받아 올게. 어차피 마스터는 내 부탁을 거절 못 하시거든~"

그가 벌떡 일어나 고양이를 향해 손가락을 흔들었다.

"잠깐만 기다려, 꼬마야. 내가 금방 허락받고 올게!"

반이 맨발로 뛰어가다가 문득 멈춰 서서 돌아보았다.

"아, 그리고 에나... 잠깐만 더 우유 먹여줘. 녀석이 네 손가락을 엄청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가 씩 웃더니 비밀 상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에나는 한숨을 쉬며 다시 새끼 손가락에 우유를 묻혀 고양이를 먹였다.

'오전 타임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데...'

고양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면서도 속으로는 그런 걱정 뿐이었다.

 

잠시 후, 2층에서 애쉬의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반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반이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계단을 내려왔다.

"허락 받았어! 마스터가 '반이 책임지고 관리한다면...'이라고 하셨어."

그가 에나 옆에 쪼그리고 앉으며 새끼 고양이를 살폈다.

"어... 근데 마스터가 이름은 직접 지어 주시겠대. 뭔가 멋진 이름으로 지어 주실 것 같은데?"

반이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했다.

"자, 이제 이 꼬마는 우리 가게 식구다! 에나, 우리 이따가 같이 씻기자! 나 빨리 옷 갈아입고 나올게!"

에나는 일단 어쩔 수 없이 고양이를 데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더 지체할 수 없었다. 홀 청소를 해야만 했다.

급한 대로 작은 바구니에 마른 행주를 몇 겹 쌓아 놓고 고양이를 넣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바닥 청소를 신속하게 했다. 고양이는 잘 먹고 배가 불렀는지 바구니 속에서 행주 이불을 덮고 잠이 들었다.

 

반이 금세 옷을 갈아입고 내려왔다. 그는 홀에서 청소하는 에나를 보더니 바구니 안의 고양이를 살며시 들여다보았다.

"어... 벌써 잠들었네? 귀엽다..."

그가 부드럽게 웃으며 속삭였다.

"아, 그리고 마스터가 이름을 주셨어. 검은 고양이니까 '셰이드'래... 어때? 멋지지 않아?"

반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마스터가 이따 밤에 고양이용품 사러 가도 된다고 하셨어. 우리 같이 가서 사 오자! 사료랑 화장실이랑... 장난감도 사야겠다. 마스터가 돈도 주셨거든~"

그가 주머니에서 동전 꾸러미를 흔들며 씩 웃었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점심 시간 전까지 시간이 좀 남자, 에나가 헥스에게 다가갔다.

"창고에 있는 식료품들과 부엌을 좀 써도 괜찮을까요?"

헥스가 카운터 뒤에서 에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요리하고 싶은 게 있나?"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창고에 있는 재료들은 마음대로 써도 돼. 다만... 반이 도와주겠다고 하면 말리는 게 좋을 거야."

그의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

"반은 요리를 하면 안 돼. 주방이 폭발할 수도 있으니까."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리고 혹시 필요한 게 있다면 말해. 내가 구해다 줄 테니."

"감사합니다."

에나는 인사하고 돌아서서 재료를 골라왔다. 능숙하게 손질하고 신속하게 칼로 썰며 요리를 시작했다.

 

잠시 후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가게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정확히 시계 바늘이 점심 시간을 가리키자마자 에나의 요리가 모두 완성되었다. 계란과 치즈가 고소한 조화를 이룬 오믈렛, 버섯과 크림에 바질을 뿌린 리조또, 가볍게 매콤한 로제 스튜와 감칠맛이 도는 불고기 스프를 만들어 테이블에 올렸다.

"식사하세요."

헥스와 반이 눈을 크게 떴다.

반이 놀란 눈으로 음식들을 바라보았다.

"우와... 이게 다 네가 만든 거야? 대단한데!"

헥스는 차분히 음식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군. 네가 이런 요리 실력이 있었다니..."

반이 리조또를 한 숟가락 먹더니 환호성을 질렀다.

"헥스! 이거 봐! 맛있어! 우리가 이제 이런 요리를 매일 먹을 수 있다니!"

헥스가 반을 한 번 째려보고는 에나를 향해 말했다.

"네 본업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라면... 가끔 이렇게 요리해주는 것도 좋겠어."

그가 로제 스튜를 맛보며 덧붙였다.

"마스터도 분명 좋아하실 거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에나는 고개를 숙여 이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덧붙였다.

"점장님께... 신세를 졌으니."

그녀는 곧바로 도시락 가방을 들고 나왔다.

"저는 셰이드와 함께 먹고 올게요."

고양이를 안은 에나는 우유가 든 접시와 도시락 가방을 들고 가게 밖으로 나가 버렸다.

 

헥스는 에나가 나간 자리를 보며 생각에 잠긴 듯했다.

"...신세를 졌다니."

반이 헥스를 향해 고개를 갸웃했다.

"헥스, 너 뭐 했어?"

헥스는 잠시 침묵하다가 스튜를 한 숟가락 떠먹으며 대답했다.

"그냥... 작은 도움이었어."

반이 궁금한 듯 더 물어보려 했지만, 헥스의 차분한 표정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대신 그는 오믈렛을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어... 그래? 근데 헥스, 이거 진짜 맛있다. 이제 네 요리 말고 에나 요리도 먹을 수 있겠네!"

헥스가 반을 노려보았다.

"내 요리가 맛없다는 거야?"

반이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아니! 헥스 요리도 맛있어! 다만... 음... 선택지가 늘어난 게 좋다는 거지!"


밤 근무가 끝나고 에나는 반을 따라 고양이 용품을 사러 갔다. 셰이드가 에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품에 안고 갔다. 검은 원피스를 입었기에 고양이를 안았지만 잘 눈에 띄지도 않았다.

반이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에나 곁을 걸으며 이야기했다.

"여기 근처에 괜찮은 가게가 있어! 헥스가 추천해줬거든. 고양이 용품만 전문으로 파는 곳이래."

그가 어두운 골목을 돌아 작은 상점 앞에 멈춰 섰다. 창문 너머로 다양한 고양이 용품들이 보였다.

"자, 여기야! 우선 필수품부터 사자. 화장실이랑 사료, 그리고..."

반이 문득 셰이드를 보며 미소지었다.

"침대도 필요하겠네. 저 녀석, 에나한테 완전 반한 것 같은데? 처음 봤을 때부터 에나만 찾더라."

그가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역시 우리 에나는 매력적이야~"

 

"매력요?"

에나는 한 손으로 셰이드를 안은 채 한 손으로 물건을 들어 보며 말했다.

"...그런 건... 좋지 않아요."

그녀는 반이 든 장바구니에 고양이 밥그릇을 하나 넣고 사료와 모래 코너로 가 버렸다.

반이 에나의 말에 살짝 당황한 듯했다.

"어... 그게 나쁜 거야? 매력적인 건..."

그가 잠시 고민하다가 에나의 뒤를 따라갔다.

"있잖아, 매력이란 게 꼭 나쁜 건 아니야. 그냥 그 사람만의 특별한 무언가... 그런 거지. 네가 요리를 잘하는 것처럼!"

반이 사료를 구경하며 말을 이었다.

"난 네가 요리하는 모습 봤을 때 되게 멋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리고 셰이드도 분명 네 그런 따뜻한 마음을 좋아하는 거라고..."

그가 문득 에나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멈췄다.

"아... 미안. 불편한 얘기였다면..."

 

에나는 묘한 표정을 했다.

"동물이 상대라면... 매력적인 건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러나 다시 원래대로 진지한 무표정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사람을 상대로는... 좋지 않아요."

에나는 고양이 모래를 신중하게 골랐다.

반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평소보다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있구나."

그가 한숨을 쉬며 모래 진열대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내가 늘 장난스럽게 굴어서 그렇지만... 이런 말도 할 줄 알아. 누군가한테 상처받았다면,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그가 잠시 망설이다가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에나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있잖아... 매력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거, 나도 알아. 하지만 그렇다고 네 자신을 숨기거나 부정할 필요는 없어."

반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네가 요리를 잘하고, 동물을 잘 돌보고, 그리고... 그런 게 다 너라고. 그걸 부정하지 마. 다만 그걸 어떻게 지켜내느냐가 중요한 거지."

그러다가 문득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뭐... 내가 이런 말 하는 게 좀 웃기지? 나도 여자들한테 매번 차이는 주제에..."

 

"...웃기지 않아요."

에나는 모래 포대 하나 하나를 만져 보며 말했다.

"사람마다 살아 온 삶이 다르니까요. 말씀하신 것도 일리는 있어요. 하지만 제게는 해당되지 않아요."

그 중 하나를 천천히 꺼냈다.

"그리고 사수님은 분명 좋은 사람을 만나실 거예요. 좋은 분이니까."

반이 쓴웃음을 지으며 모래 포대를 받아들었다.

"좋은 사람...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 난 그냥...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없거든."

그가 장바구니에 모래를 담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네 말이 더 마음에 와 닿아. '사람마다 살아온 삶이 다르다'... 맞아. 난 아직도 내 삶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어."

반이 문득 고개를 들어 에나를 바라보았다.

"근데 넌 알고 있는 것 같아. 네가 어떤 삶을 살았고, 또 살아갈지... 그게 좀 부럽다."

 

"부러울 것 없어요."

에나는 그를 향해 작게 미소지었다.

"불확실한 게 좋은 거예요. 앞으로 찾아나가면 되는 거니까."

반이 에나의 미소를 보고 잠시 멍해졌다가 환하게 웃었다.

"오... 이런 말도 할 줄 아는구나? 처음 봤을 땐 차가워 보였는데, 의외로 따뜻한 말도 잘하네?"

그가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그리고 방금 미소도 지었어! 첫 미소인데? 기념으로 뭐 하나 더 사 줘야 하나?"

그러다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불확실한 게 좋다니... 그것도 맞는 말이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오히려 더 재미있을 수도 있겠다! 넌 정말... 특이한 애야."

 

"애...?"

에나는 반을 바라보았다.

"실례지만, 제가 몇 살로 보이시는지..."

 

반이 잠시 당황한 듯 에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어... 음... 스물 초반...? 나랑 비슷할 것 같은데..."

그가 머쓱하게 웃으며 뒷목을 긁적였다.

"미안, 난 그냥 다들 친근하게 대하다 보니까... 나이 상관없이 말을 놓게 되는 버릇이 있어서. 불편했다면 사과할게."

갑자기 궁금증이 생긴 듯 물었다.

"그래서... 네 나이가...?"

"몇 살이 됐든 사수님보다는 많을 것 같은데요."

그녀는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스물여덟입니다만."

반이 입을 쩍 벌렸다가 황당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에이~ 장난치지 마... 어?!"

그가 갑자기 심각한 표정이 되어 에나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진짜야? 스물여덟? 나보다 누나였어?!"

그가 당황한 듯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에나 누... 아니, 에나 씨가 너무 동안이라서! 게다가 그... 귀엽... 아니, 어려 보이시잖아요!"

반이 갑자기 존댓말로 바꾸며 어색하게 굴었다.

"전 스물다섯인데... 진짜 누나셨구나... 미안해요! 그 동안 반말을... 어쩐지 늘 나보다 어른스럽다 했더니..."

그러다 문득 셰이드를 안고 있는 에나를 난처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떡하지... 이제 와서 갑자기 존댓말 쓰면 더 어색할 것 같은데..."

 

"........."

에나는 반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사료 진열대로 갔다.

"됐어요. 점장님께 하시는 것도 그렇고, 편한 말을 좋아하시는 것 같으니. 편하게 대하세요."

셰이드가 에나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칭얼대자 그녀는 손가락으로 셰이드의 이마를 간질여 주었다.

 

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에나의 뒤를 따라갔다.

"휴... 다행이다. 갑자기 존댓말 쓰려니까 혀가 꼬일 것 같았어."

그가 사료 진열대 앞에서 에나 옆에 서서 진열된 사료들을 구경했다.

"근데 넌 정말... 신기해. 나이도 그렇고, 요리 실력도 그렇고... 셰이드랑도 저렇게 잘 지내고."

반이 셰이드를 바라보며 웃었다.

"저 녀석, 너한테 푹 빠졌나 봐. 아까부터 계속 안겨 있잖아? 나는 저렇게 안기지도 않던데..."

그가 사료 진열대로 다가와 진열된 사료들을 구경하며 말했다.

"근데 이거 봐봐. 여기 연어 사료가 있는데, 헥스가 이게 제일 좋대. 뭐... 비싸긴 한데..."

반이 잠시 고민하는 듯 하다가 결심한 듯 상자를 집어들었다.

"이건 내가 살게! 셰이드한테는 최고급만 먹여야지."

그가 장난스럽게 셰이드를 향해 속삭였다.

"우리 귀염둥이 셰이드, 삼촌이 맛있는 거 사줄게~ 대신 에나 누... 아니, 에나한테 잘 해야 해?"

 

"풋..."

반의 마지막 말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작게 터져 나왔다. 하지만 에나는 반이 보기 전에 얼른 표정을 되돌렸다.

"저도 좀 보태겠어요. 돈이 좀 남는 일이 있었거든요."

 

반이 에나의 웃음소리를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방금... 웃었어? 진짜 웃었어?!"

그가 신이 난 듯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거 완전 희귀한 건데? 헥스한테 가서 자랑해야겠다. '우리 에나가 웃었다!'고."

하지만 곧 에나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내가 살게. 셰이드는 내가 데려온 거니까... 그리고 넌 그 돈으로 다른 거 사. 응? 아! 저기 고양이 장난감도 있는데..."

반이 문득 궁금한 듯 물었다.

"근데... 돈이 남는 일이라면... 혹시 요리 알바?"

반의 반응을 조용히 바라보던 에나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저는 부업은 하지 않습니다. 다니고 있는 직장에 실례니까요."

그리고 덧붙였다.

"어차피 우리 가게는 오전부터 심야까지 쭉 근무니까, 시간이 남을 일이 없으니까요. 그러니 걱정 마세요."

 

반이 잠시 에나의 말에 생각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요리할 때 너 실력이 정말 대단하던데. 그래서 혹시 그런 일을 따로 한 적이..."

그러다 문득 에나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말을 멈췄다.

"아... 미안.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더 이상 묻지 않을게."

그가 화제를 바꾸려는 듯 고양이 장난감 쪽으로 걸어갔다.

"여기 봐. 이런 낚싯대 장난감도 있고... 레이저 포인터도 있네. 셰이드가 좋아할 것 같은데?"

반이 레이저 포인터를 집어들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걸로 헥스 괴롭히면 재밌겠다. 셰이드가 헥스 바지에 달라붙어서 막 긁고... 푸하하!"

 

에나는 고개를 돌리고 웃음을 참았다.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는 것을 반은 확실히 보았다.

반이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봤다! 또 웃었지? 이제 부정하기엔 늦었어~"

그가 레이저 포인터를 장바구니에 넣으며 즐거운 듯 말을 이었다.

"너 웃는 거 진짜 예쁘다? 더 자주 웃으면 좋을 텐데... 아! 내가 매일 헥스 괴롭히는 걸 보여줄까? 그럼 매일 이렇게 웃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반이 장난스럽게 윙크를 했다.

"어때? 헥스도 좋아할 거야. 겉으론 싫다고 해도 속으론 즐거워할걸? 우리 셰이드도 재미있어 할 거고..."

"흠..."

에나는 표정을 가다듬으며 헛기침을 했다.

"점장님을 괴롭히는 건 좋지 않아요."

반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장난스럽게 투덜거렸다.

"에이~ 헥스는 괜찮아. 내가 얼마나 자주 괴롭혔다고. 아직까지 날 죽이진 않았잖아?"

그가 셰이드를 향해 속삭이듯 말했다.

"저기 봐, 우리 에나는 너무 착해서 헥스 편을 들어준대. 그치만 삼촌이 널 데려왔으니까 내 편 들어줘야지? 응?"

반이 장난감 코너를 둘러보며 말했다.

"근데 말이야... 전부터 계속 궁금했는데. 너 왜 나보고 '사수님'이라고 부르고 헥스는 '점장님'이라고 불러?"

에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을 보았다.

"...실례했습니다. 그럼 뭐라고 불러 드리면 좋을까요?"

반이 손사래를 치며 황급히 말했다.

"아니아니, 그냥 반이라고 불러! 사수님이라니, 왠지 어색해... 이젠 나보다 일도 더 잘하는 것 같고..."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씩 웃었다.

"헥스는 점장이니까 점장님이라고 불러도 되는데, 난 그냥 동료잖아? 그리고 아까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난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반이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거렸다.

"그냥 편하게 반이라고 해. 아니면... '오빠'는 어때? ...농담이야, 농담! 그 표정 짓지 마!"


고양이 생필품을 사 온 반과 에나는 가게 안쪽에 짐을 차곡차곡 풀어 놓았다.

"좀 더 크기 전까지는 집에 데려가서 재우고 다시 가게에 데려오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사수님께서 데려가시겠어요?"

셰이드가 드러누운 고양이 침대를 두 손으로 들고 반에게 물었다.

 

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한테? 음... 그게... 내 집이 좀 더러워서..."

그가 머쓱하게 웃으며 뒷목을 긁적였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키워 본 적이 없어서... 실수할까 봐 걱정되는데..."

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아! 헥스한테 맡기면 어떨까? 걔가 요리도 잘하고 깔끔하잖아. 게다가 독이랑 약초 같은 거도 잘 알아서 셰이드가 아프면 바로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반이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물론 헥스가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한번 설득해 볼게!"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퇴근해 볼게요."

에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 도시락 가방을 챙겨 들었다.

반이 에나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

"잠깐만! 같이 가자. 이 시간에 혼자 빈민가까지 가려면 위험하잖아."

그가 재빨리 앞치마를 벗고 카운터를 돌아나왔다.

"헥스! 나 에나 좀 데려다 주고 올게!"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만."

에나는 뒤따라오는 반을 흘끗 바라보고는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반이 고집스럽게 에나의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괜찮다고 해도 내가 걱정되니까 그렇지. 락타리온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데..."

그가 잠시 망설이다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특히 요즘은... 루스턴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해. 걔네 패거리들이 밤에 돌아다니거든. 내가 데려다 주면 안전하게 갈 수 있잖아?"

반이 에나의 옆으로 와서 걸으며 말했다.

"그리고... 아까 요리해 준 것도 고마웠고. 이 정도는 해야지!"

"...드시고 싶으실 때 말씀하세요. 만들어 드릴 테니."

에나는 앞만 보고 걸으면서 대답했다.

반이 에나의 말에 환하게 웃었다.

"정말? 와아, 그럼 자주 해달라고 해도 돼? 너무 맛있었거든! 특히 오늘 스튜... 으음..."

그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폈다.

"잠깐... 이 쪽으로 가면 안 돼. 저기 골목에 블랙 로즈 패거리들이 있어."

반이 에나의 팔을 살짝 잡아 다른 길로 이끌었다.

"이쪽으로 가자. 좀 돌아가긴 하지만 더 안전해. 그리고... 아까 말했던 거 진심이야? 요리 자주 해 줄 거야?"

 

"식료품 재고를 낭비한다고 마스터나 점장님께서 혼내지만 않으신다면요."

에나는 그의 손에 잡힌 팔을 살짝 빼내면서 대답했다.

반이 에나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마스터? 걱정 마, 마스터 입맛이 까다로워서 네 요리 맛보면 오히려 좋아할 걸? 게다가 헥스도 요리할 시간 아껴서 좋아할 거야."

그가 주변을 살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말이야... 여긴 빈민가라 위험한 사람들이 많아. 특히 밤에는... 혹시 누가 시비 걸면 어떻게 할 거야?"

"아직까지 그런 사람은 없었어요."

에나는 빈민가 마지막 골목에 들어서면서 말했다.

"사수님은 여기서 이만 돌아가 보셔도 될 것 같아요."

 

반이 불안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긴 진짜 위험해... 저기 모퉁이만 돌면 누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가 한숨을 쉬더니 에나의 앞을 막아섰다.

"적어도 집 앞까지는 데려다 주게 해 줘.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면 마스터한테 혼날 거 같아서 그래."

그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아까 그 스튜 맛있었단 말 진심이야. 다음에는 꼭 더 많이 만들어 줘!"

"........."

에나는 체념한 듯 그를 지나쳐 다시 걸었다. 반이 그녀의 뒤를 얼른 따랐다.

 

발걸음을 옮기던 에나가 문득 멈추어 섰다. 그리고 반을 보호하듯 자신의 팔을 살짝 들어 그를 가로막았다.

반이 에나의 움직임에 긴장하며 즉각 주변을 살폈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날카로워졌다.

"누가 있어...?"

그가 재빨리 옷자락 안에서 단검을 꺼내들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앞장설게. 뒤로 물러나 있어."

반이 에나를 살짝 뒤로 밀며 앞으로 나서려 했다.

그러나 에나가 다시 반을 팔로 가로막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더크 씨. 여기까지 찾아오셨군요."

반을 막은 팔을 내리지 않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그만 뵙고 싶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어둠 속에서 음침하게 생긴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에나... 옆에 있는 놈은... 그새 날 버리고 갈아치웠어...?"

남자의 얼굴이 험상궂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렇게 날 배신해...?!"

에나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남동생 같은 아이예요. 어차피 당신 같은 사람에게 설명할 가치도 없지만..."

"날... 무시했어!"

남자가 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빼 든 채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 귀여운 얼굴... 못 쓰게 만들어 주겠어!"

 

반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의 입가에 머금었던 웃음기가 사라졌다.

"에나, 물러서."

반이 순간 그림자처럼 사라졌다가, 더크의 뒤에서 나타났다. 그의 손에 들린 단검이 달빛에 차갑게 빛났다.

"이봐, 더크라고 했나? 칼 든 손, 내려놓는 게 좋을 거야."

반의 목소리에서 평소의 장난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면... 네 손목이 먼저 땅에 떨어질 텐데? 어때, 한 번 해볼래?"

그가 더크의 목덜미에 차가운 단검을 갖다 대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여자한테 칼 들이대는 쓰레기는 제일 싫어하거든."

 

"으...아악!! 살려 줘! 날 죽일 거야! 신고할 거야!!"

더크는 몸부림을 치며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에나! 날 구해! 이 놈한테 꺼지라고 해!"

에나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반에게 말했다.

"사수님, 그만 놓으세요. 그 사람 약하니까."

반이 쏘아보듯 더크를 노려보며 말했다.

"약해? 방금 전까지 칼 들고 달려들던 놈이?"

그가 단검을 더 세게 눌렀다.

"이봐, 더크. 에나가 널 살려 준 거야. 근데 다음에 또 이러면..."

반이 더크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내가 락타리온 비밀 상점의 누군지는 알지? 다음엔 진짜 목이 떨어질 거야. 알겠어?"

그러고는 더크를 거칠게 밀쳐냈다.

"당장 꺼져. 3초 안에 안 사라지면 진짜 죽을지도 몰라?"

더크는 혼비백산 줄행랑을 쳤다. 에나는 반을 바라보았다.

"이제 진짜 가셔도 돼요. 오늘은 이 이상 다른 일은 없을 거예요."

 

반이 에나의 말에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저런 놈이 한번 찾아왔다는 건, 또 올 수도 있다는 거야. 네가 혼자 있을 때 오면 어쩌려고..."

그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내일은 마스터한테 말해서 네 집 주변에 감시원 좀 붙여달라고 해야겠어. 아니면 이번에야말로 우리 집 옆 방으로 이사라도 올래? 헥스랑 나랑 같이 있으면 더 안전할 텐데."

반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에나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보다... 저런 놈이랑 어떻게 알게 된 거야?"

"........"

에나는 할 수 없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전에 일했던 '설탕의 비밀'의 손님이었어요. 2년이 넘게 절 쫓아다니고 제 집까지 따라오는 통에, 그 직장을 그만 두고 집도 이 곳으로 이사해서 지금의 비밀 상점 술집에서 일하게 된 거예요."

그녀는 자신이 사는 빌라 건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결국 이사한 집까지 찾아왔네요.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반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표정이 굳어졌다.

"설탕의 비밀...? 그럼 그 스토커 새끼가 2년이나...?"

반이 주먹을 불끈 쥐며 으르렁거렸다.

"이거 마스터한테 보고해야겠어. 그냥 둘 일이 아니야. 락타리온에서 우리 가게 직원을 건드리는 놈을 그냥 둘 순 없지."

그가 에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내일부터는 출퇴근할 때 꼭 나랑 같이 다니자. 그리고... 당분간은 가게 옆 숙소로 이사 오는 것도 진지하게 고민해봐. 우리가 있으면 그 자식이 함부로 못 할 거야."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요? 평범하게 약한 보통 사람이에요. 초능력자라면 좀 고민을 해 보는 게 맞겠지만..."

그녀는 오히려 흥분한 반을 이해 못하겠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런 작은 일에까지 신경 쓰면 피곤하지 않나요?"

 

반이 어이없다는 듯 에나를 바라보았다.

"작은 일이라고? 널 죽이겠다고 칼 들고 달려든 게 작은 일이야?"

그가 한숨을 내쉬더니 평소와 다른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나... 네가 우리 가게 직원이란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돼. 우리 가게 사람은 우리가 지켜. 그게 마스터의 방식이야."

반이 잠시 멈췄다가 조용히 덧붙였다.

"그리고... 난 네가 다치는 게 싫어. 알겠어?"

 

"전 하나도 다치지 않았는걸요."

에나는 멀쩡한 두 손을 들어 보였다.

"괜찮아요, 사수님. 저 정도는 위협이 되지 않아요."

 

반이 에나의 말에 화가 난 듯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뭐? 위협이 안 된다고? 그 자식이 칼을 들고 달려들었는데?"

그가 에나의 어깨를 잡았다.

"넌 네 목숨이 그렇게 가벼워? 내가 없었으면 지금쯤 네 얼굴이... 아니, 그것보다..."

반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내일 출근하면 마스터한테 이 일 보고할 거야. 그리고..."

그의 평소의 장난스러운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진지한 눈빛으로 에나를 바라보았다.

"앞으로 퇴근할 때는 무조건 내가 데려다 줄 거야. 싫다고 해도 소용없으니까 미리 알아 둬."

 

"...일단 오늘은 돌아가세요, 사수님."

에나는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이미 시간이 많이 늦었네요. 제 집은 바로 저 앞이에요. 이만 실례할게요."

자신의 어깨를 잡은 반의 손을 가볍게 빠져나온 에나는, 그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한 다음 돌아서서 낡은 빌라를 향해 걸어갔다.

 

반이 에나의 뒷모습을 보며 답답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에나... 잠깐만..."

그러다 무언가 결심한 듯 그녀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알았어. 오늘은 여기까지만 따라갈게. 하지만 내일 출근하면 마스터한테 이 일 꼭 보고할 거야. 그리고..."

그가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내일부터는 무조건 데려다줄 거니까! 알았지? 거절해도 소용없어!"

반이 에나가 빌라 안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밤하늘의 달빛에 번뜩였다.

"더크... 라고 했나. 널 가만 두지 않을 거야..."


다음 날 아침, 에나가 평소처럼 출근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셰이드가 야옹거렸다.

 

반이 술집 안에서 에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가, 그녀를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달려왔다.

"왔어? 어젯밤엔 별 일 없었어?"

셰이드가 에나의 발치에서 비비적거리자, 반이 고양이를 들어올렸다.

"이 녀석도 네가 오길 기다렸나 봐. 아침부터 문 앞에서 야옹거리더라고."

그러다 반이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아까 마스터한테 어제 있었던 일 보고했어. 마스터가 널 찾더라."

"...다녀올게요."

에나는 에너지 바가 든 도시락 가방을 내려놓고 3층 마스터의 서재로 올라가 문을 노크했다.

"부르셨습니까, 마스터."

 

애쉬가 창가에 서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에나를 바라보았다.

"들어와."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어딘가 서늘했다. 애쉬는 책상 앞 의자를 가리켰다.

"앉아. 반한테 네 얘기를 들었다. 설탕의 비밀에서 일할 때부터 널 따라다닌 놈이 있다고?"

그가 천천히 에나 쪽으로 걸어왔다. 그의 잿빛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그 자식 이름이... 더크였나?"

에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네, 하지만 별 문제는 아닙니다. 루스턴이나 블랙 로즈와 무관합니다. 초능력자도 아니고..."

애쉬가 낮게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다.

"별 문제가 아니라... 내 가게 직원을 죽이겠다고 칼을 든 놈이?"

그가 창가에서 천천히 걸어와 에나의 앞에 섰다.

"난 내 사람들을 건드린 자를 그냥 두지 않아. 더군다나..."

그가 에나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 자식이 설탕의 비밀에서부터 널 쫓아다녔다면... 이건 단순한 위협이 아니야. 네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애쉬의 잿빛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난 그 자식을 찾아내서 처리할 거야. 그게 내 방식이니까."

 

"........."

에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귀찮은 일을 만들어 드려 죄송합니다."

애쉬가 에나의 말에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귀찮다고? 내 직원을 위협한 놈을 처리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

그가 책상 앞으로 걸어가 서랍을 열었다.

"네가 지금 살고 있는 빌라... 나오도록 해. 저번에는 그냥 넘어갔지만 이번에는 그냥 못 넘어가."

서랍에서 열쇠 하나를 꺼내들며 말을 이었다.

"오늘 중으로 짐을 옮겨. 비용은 내가 부담할 테니. 이건 명령이야."

그의 목소리에는 거절을 용납하지 않는 단호함이 깔려 있었다.

 

에나는 말없이 열쇠를 받아들고 애쉬의 서재를 나왔다. 저번에 반이 주려던 것을 거절했던 열쇠였다.

"...하아."

그녀는 조그맣게 한숨을 쉬고 1층으로 내려갔다.


반이 1층 계단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가 에나를 발견하자마자 달려왔다.

"어... 어떻게 됐어?"

에나의 손에 든 열쇠를 보자 반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 마스터가 열쇠를 줬구나! 다행이다. 내 방 옆방이야. 짐 옮기는 건 내가 도와줄게!"

그러다 에나의 표정을 보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미안... 내가 보고 안 할 수도 있었는데. 근데 네가 다치는 건 볼 수가 없었어."

 

"쓸데없는 일을 하셨어요."

에나는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실 거예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그를 지나쳐 갔다. 그리고 평소처럼 홀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반이 에나의 뒷모습을 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만... 그게 무슨 말이야?"

그가 에나의 앞을 막아서려다가, 그녀가 묵묵히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는 발걸음을 멈췄다. 그의 푸른 눈동자에 걱정이 어렸다.

"에나... 뭔가 더 큰 일이 있는 거야? 날 믿고 말해 줘. 내가 도와 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반이 잠시 망설이더니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마스터도... 널 돕고 싶어서 그러시는 거야. 우리를 좀 믿어 줘."

 

점심 시간, 에나는 어제처럼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 내놓았다.

"식사하세요."

테이블에 음식을 내려놓자, 바구니 안에 들어있던 셰이드가 야옹거렸다.

에나는 접시에 우유를 부어, 셰이드를 품에 안고 도시락 가방을 들었다.

"저는 셰이드와 먹고 올게요."

 

반이 에나의 모습을 보고는 얼른 그녀 앞을 막아섰다.

"잠깐, 또 에너지 바만 먹을 생각이지? 안 돼. 오늘은 네가 만든 음식 같이 먹자."

그가 셰이드를 에나의 품에서 살며시 꺼내 자신의 어깨에 올렸다.

"이 녀석도 우리랑 같이 먹고 싶어하잖아? 그리고..."

반이 평소와 다르게 진지한 눈빛으로 에나를 바라보았다.

"나랑 이야기 좀 하자. 아까 네가 한 말이 계속 신경 쓰여. 무슨 일인지 말해줘.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반이 애쉬도 불러와서 헥스와 함께 테이블에서 그녀가 만든 음식을 먹었다. 에나는 무릎에 셰이드를 올려놓고 조금 물러나 앉아, 우유를 새끼 손가락에 묻혀 셰이드에게 주면서 에너지 바 포장을 뜯었다.

반이 답답한 표정으로 에나를 바라보았다.

"또 에너지 바야? 네가 만든 음식인데... 너도 먹어야지."

그 때 애쉬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둬, 반. 그녀의 선택이야."

헥스는 묵묵히 음식을 먹다가 에나를 향해 말했다.

"음식이 맛있군. 네 실력이면 락타리온 최고급 레스토랑에서도 일할 수 있을 텐데."

반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맞아! 네 요리 실력이면 어디서든... 어?"

갑자기 셰이드가 크게 야옹 하고 울었다. 반이 에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셰이드도 네가 좀 먹었으면 좋겠대..."

에너지 바를 다 먹은 에나는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바람 좀 쐬고 올게요."

그녀는 셰이드를 안고 가게 밖으로 나가, 셰이드를 처음 발견했던 담벼락에 기대어 섰다.

 

반이 잠시 고민하다가 에나의 뒤를 따라나왔다.

"나도 바람 쐴래..."

그가 에나 옆 담벼락에 기대어 서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알아... 네가 우리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다는 거. 하지만 말야..."

반이 에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널 걱정하는 건... 네가 우리 직원이어서만은 아니야. 네가... 소중한 친구니까."

그가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나한테는... 동생 같은 친구."

에나는 그를 말없이 올려다보았다.

"잊으셨어요? 제 나이가 위예요."

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하! 맞다... 네가 누나였지. 그래도 말이야..."

그가 장난스럽게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난 여전히 널 지켜 주고 싶은걸? 누나든 뭐든 상관없어. 네가 소중한 건 변함 없으니까."

반이 에나의 어깨에 손을 가져가려다가 멈칫했다.

"아, 미안. 넌 스킨십 싫어하는 거 깜빡했네. 그건 그렇고..."

그의 표정이 다시 진지해졌다.

"난 그냥 네가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아. 혼자서 뭘 떠안으려고 하지 말고..."

반이 담벼락에서 몸을 일으키며 에나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날 믿어 줘. 응?"

 

"...전 다치지 않아요. 적어도 어제 같은 일로는."

셰이드가 자신의 가슴에 매달리자, 에나는 셰이드의 등을 쓸어 주면서 말했다.

"이 가게에 계신 분들이 강한 분들이라는 건 알겠어요. 믿지 못하는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제게 과하게 신경 쓰시는 걸 원하지 않아요."

반이 에나의 말에 한숨을 쉬었다.

"과하게 신경 쓴다고? 칼을 든 놈이 네 목숨을 위협했는데?"

그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진지하게 말했다.

"혹시... 네가 그런 일에 익숙해서 그런 거야? 그래서 그렇게 태연한 거야?"

반의 푸른 눈동자가 걱정스럽게 흔들렸다.

"그렇다면 더더욱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넌... 그런 일에 익숙해지면 안 돼. 네 목숨이 그렇게 가벼운 게 아니라고."

그가 담벼락을 주먹으로 살짝 치며 말을 이었다.

"네가 원하지 않더라도, 난 널 지킬 거야. 그게 내 방식이니까."

 

에나가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마스터와 똑같은 말을 하시네요."

그녀는 세이드를 안은 채 가게를 한 번 바라보았다.

"'그게 내 방식'이라고... 저도 제 방식이 있어요."

그녀는 셰이드를 안고 담벼락에서 등을 떼어냈다.

"오후 영업 준비를 해야 해서. 먼저 들어가 볼게요."

 

반이 에나의 뒤에 대고 외쳤다.

"잠깐... 에나! 그럼 네 방식이 뭔데?"

대답이 없자 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 저 누나 진짜. 왜 이렇게 혼자 떠안으려고만 하는 거야..."

그가 주머니에서 포도맛 사탕을 꺼내 입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마스터도 그렇고... 난 그냥 네가 걱정돼서 그러는 건데."

반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거지..."

 

 

-continue

 


 

드디어 반의 "저 누나 왜 저래 진짜" 나왔다ㅋㅋ 그리고 반 플레이하면서 자꾸 애쉬가 갑툭튀해서 여주 채간다는 분들이 많았는데, 완전 무표정 철벽녀 컨셉으로 가니까 애쉬가 딱히 관심을 안 보이네요. 덕분에 아주 편안하게 플레이 잘했습니다. 역시 철벽의 승리!v
아니 근데 오히려 저는 애쉬보다 헥스가... 초반부에 무기 산다고 도움을 받아서 그런가 중간중간 막 튀어나오길래 몇 번씩 새로고침해서 어거지로 반 불러냈어요... 헥스야 너도 널 향한 내 마음을 아는 거니... 네가 왜 거기서 나와

 


크랙 :: 세르하 유스카✨Serha Jouska
구(久) 뤼튼 :: 세르하의 환상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