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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예리엘/🌌#락타리온 :: 그림자의 영역

[팅글] 그림자의 영역(@예리엘) 🍓-1- 하프의 페어

by 세르하 2025. 6. 27.

01

그림자의 영역
무법지대의 센티넬 4명과 당신의 이야기!

[팅글] 그림자의 영역(@예리엘) 캐릭터챗 ▼
https://tingle.chat/chat/characters/1171

 


 

세상은 둘로 나뉘어 있다. 동부의 락타리온, 서부의 퀴스트로스. 그중 락타리온은 다시 A구역과 B구역으로 나뉘며, 각 구역은 강력한 지배자 아래에 놓여 있다. 법이 존재하지 않는 무법지대, 약자가 살아남기 힘든 약육강식의 땅. 이곳에서는 강자가 곧 법이었다.

이 강자란 곧, 특별한 능력을 지닌 센티넬과 가이드를 뜻했다.

이 세계에는 세 부류의 인간이 존재한다.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일반인 '노멀',

초인적인 신체 능력과 초능력을 지닌 '센티넬',

그리고 센티넬이 힘을 쓸 때마다 소모되는 정신을 안정시켜주는 존재, '가이드'.

락타리온 A, B구역의 지배자는 그 중에서도 가장 등급이 높은 S급 센티넬이었다. 그리고 세르하는──

 

가이드와 센티넬의 능력을 동시에 가진 특이체질의 '하프'였다. S급 가이드이자 C급 센티넬인 그녀는 식물을 피우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세르하는 락타리온 내 중립지역의 작고 아담한 집에서 작은 정원을 키우며 살았다. 락타리온에는 가이드가 그리 많지 않았고, 세르하는 아무와도 페어를 맺지 않았기에, 종종 가이딩이 필요한 센티넬들이 그녀의 집에 찾아오곤 했다. 그녀의 집은 중립지역이었기 때문에, A구역과 B구역에 속한 자들이 마주치더라도 절대 싸워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존재했다. 그들이 싸우면... 세르하가 처벌을 내려서가 아니라, 하루 종일 가이딩은 안 하고 울음보를 터뜨리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가이드가 가이딩을 멈춘다는 것은 어느 쪽에 속한 센티넬에게든 굉장한 손해였다.

 

어느 날 아침, 세르하는 여느 때처럼 집 앞의 정원에 물을 뿌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하얀 손 끝이 허공을 어루만질 때마다, 손 아래 작은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났다. 전투력이라곤 하나도 없는 C급 센티넬의 능력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능력이 좋았다.

평화로운 한때, 누군가 세르하의 집을 찾아왔다.


📍락타리온 중립지역-세르하의 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애쉬│S급 센티넬│62%│안정(↓)
 

비늘처럼 햇살이 창가를 타고 내려오는 아침, 작은 집 앞의 정원은 생명력으로 가득했다. 세르하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분홍빛 기운이 흙 속으로 스며들자, 아직 피지 않았던 꽃봉오리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콧노래가 바람에 실려 흩날릴 때마다 꽃잎들이 미세하게 떨리는 듯했다.

 

불현듯 문소리가 들리자, 조용히 흐르던 시간이 끊어졌다. 찾아온 이는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운 채, 귀한 손님처럼 문간에 서 있었다.

"안녕? 방해가 되진 않았길 바라... 아침부터."

낮고 서늘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의 눈동자에 락타리온의 새벽 공기가 차갑게 스며들어 있었다. 서늘한 잿빛 눈동자가 정원의 화사한 꽃들과 묘한 대비를 이루며 세르하를 내려다보았다. 흑발 사내는 그녀를 향해 한 발짝 다가섰고, 그의 발걸음에 마치 그림자가 미세하게 일렁이는 듯했다.

"가이딩이 필요한데... 어제 밤 일이 좀 있었거든."

흑발 사내는 그의 손끝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밀어진 그의 손바닥에서는 실처럼 가는 그림자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가, 이내 흩어져버렸다.

 

 

"어... 애쉬! 아니... 레이븐? 맞죠?"

세르하가 물뿌리개를 내려놓고 그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고 살피다가, 집 안으로 끌어당겼다.

"일단 들어와요!"

 

남자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걸렸다. 그의 눈동자가 일순간 흥미로운 빛을 띄었다가 사라졌다. 세르하가 그의 손을 잡자마자, 그의 잿빛 눈동자가 미세하게 확장되었다. 접촉 순간, 그의 몸에서 오감이 예민하게 깨어났다. 세르하의 작은 손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감각이 그의 차가운 혈관을 타고 미세하게 퍼져나갔다.

 

"애쉬. 맞아. 레이븐과 날 헷갈리다니..."

그는 세르하에게 끌려 집 안으로 들어서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작고 아담한 실내는 식물들의 향기로 가득했다. 벽면을 따라 덩굴이 자라있고, 창가에는 다양한 화분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방 안을 따스하게 물들였다.

"우리가 그렇게 비슷해 보이나?"

애쉬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불쾌함과 함께 흥미로움이 섞여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세르하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가 놓았다.

"어쨌든, 네 가이딩이 필요해. 어제 밤, B구역에서 레이븐이 내 영역을 침범했거든. 그림자 조종하는 건 꽤 가이딩 수치를 잡아먹는 일이야."

그는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그의 서늘한 시선이 세르하의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방해했다면 미안. 네 꽃들이 예쁘게 피었더군."

 

"그야, 둘 다 새까만 색이니까..."

세르하는 머쓱한 듯 중얼거리며 소파에 앉은 그의 앞에 팔을 뻗었다. 애쉬의 목을 끌어안자 가이딩 에너지가 그에게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60%대면 그렇게 나쁘지 않은 수치 아녜요? 애쉬는 엄살쟁이구나."

애쉬의 목을 끌어안은 그녀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락타리온 중립지역-세르하의 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애쉬│S급 센티넬│67%│안정(↑)
 

세르하의 작고 따스한 팔이 애쉬의 목을 감싸안는 순간, 남자의 근육이 미세하게 긴장했다가 풀어졌다. 냉랭했던 그의 체온이 서서히 올라가며 얼굴에 옅은 홍조가 돌았다. 그의 잿빛 눈동자가 세르하를 향해 날카롭게 빛났다.

"엄살이라고?"

애쉬의 입술이 위험하게 휘어졌다. 그의 손이 세르하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끌어당겼다. 두 사람의 거리가 더욱 좁혀지자, 그의 입김이 그녀의 목덜미를 스쳤다.

"네가 S급 센티넬이 된 다음에 그 말을 해봐, 꽃가루 뿌리는 꼬마야."

애쉬는 한 손으로 세르하의 분홍빛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넘겼다. 그의 날카로운 눈매가 더욱 가늘어졌다.

"60%면 네겐 괜찮아 보이겠지. 하지만 내 능력으로 레이븐과 한 번 더 싸우면..."

그는 말끝을 흐렸다. 미소는 유지한 채였지만, 그의 눈빛에 스며든 냉기가 방 안의 온도를 떨어뜨리는 듯했다.

"그 재수 없는 놈과 나를 헷갈려? 그건 좀... 기분이 나쁘네. 서로 죽이려고 노력하는 사이인데."

 

"푸힛! 간지러워요."

애쉬의 입김이 목덜미를 스치자 세르하가 움찔거리며 웃음보가 터졌다.

"아, 간지럽히지 마요! 집중 안 되면 가이딩 망친단 말예요."

그녀는 키득거리면서도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러면 수치를 얼마나 올려 드려야 돼요?"

📍락타리온 중립지역-세르하의 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애쉬│S급 센티넬│68%│안정(↑)
 

세르하의 웃음소리가 방 안을 채우자, 애쉬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번졌다. 그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더 단단히 감싸 안았다. 세르하의 몸이 그에게 기대어 있는 순간, 애쉬의 몸에서 서늘한 그림자의 기운이 잔잔히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거짓말이야, 네가 웃을 때 가이딩이 더 잘 되는 걸."

애쉬가 능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세르하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날이 숨어 있었다.

"적어도 80%는 채워야지. 그 정도는 되어야 레이븐을 상대할 수 있으니까."

그의 손가락이 세르하의 분홍빛 머리카락 사이로 미끄러졌다. 애쉬의 잿빛 눈동자가 그녀의 얼굴을 탐색하듯 바라보았다.

"내가 그 수치까지 올라가려면..."

그가 천천히 세르하의 목덜미에 입술을 가까이했다. 숨결이 그녀의 피부를 간질이듯 스쳤다.

"더 가까워져야겠는데."

 

"이 이상 어떻게...? 아!"

세르하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고개를 들었다.

"맞아, 이 방법도 있댔어!"

그녀가 애쉬의 뺨에 입술을 부딪쳤다.

"이거 은근 수치 잘 올라가던데! 어때요?"

그녀가 애쉬의 뺨에 입술을 몇 번 더 부딪쳤다. 쪽, 쪽, 쪽.

📍락타리온 중립지역-세르하의 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애쉬│S급 센티넬│71%│안정(↑)
 

세르하의 입술이 애쉬의 뺨에 닿자마자, 그의 온몸에 미세한 전류가 흐르는 듯했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그의 잿빛 눈동자가 순간 확장되었다가, 이내 가늘게 좁아졌다. 세르하의 순수한 뽀뽀가 반복될 때마다 그의 몸을 감싸던 어둡고 차가운 기운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애쉬의 손이 세르하의 허리를 더욱 단단히 감싸 안았다. 그의 숨결이 조금 거칠어졌다.

"꽤... 효과적이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게 울렸지만, 그 안에 숨겨진 날카로움은 여전했다.

"그런데 세르하, 너 모르는 게 있어."

애쉬의 손이 세르하의 턱을 부드럽게 들어올렸다. 그의 잿빛 눈동자가 그녀의 장밋빛 눈에 깊이 침잠했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하나 있다고."

그의 손가락이 세르하의 입술을 천천히 스쳤다. 애쉬의 얼굴이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원한다면... 보여줄까?"

 

"효과적인...?"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뽀뽀도 충분히 효과적이잖아요! 봐요, 벌써 71%나 됐어요! 몇 번만 더 하면~"

세르하는 다시 한 번 애쉬의 볼에 입술을 부딪쳤다. 마치 토끼나 햄스터 같았다.

📍락타리온 중립지역-세르하의 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애쉬│S급 센티넬│78%│안정(↑)
 

세르하의 순수한 행동에 애쉬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녀의 입술이 다시 그의 뺨에 닿자, 애쉬의 근육이 미세하게 긴장했다가 풀어졌다. 가이딩 수치는 분명히 올라가고 있었지만, 애쉬의 눈빛에는 다른 의도가 깃들어 있었다.

"그래, 작은 햄스터... 충분히 효과적이지."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게 낮아졌다. 애쉬의 손이 세르하의 분홍빛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귓가에 닿았다.

"하지만 네가 모르는 건 더 깊은 가이딩 방법이 있다는 거야. 그리고 난..."

그의 손가락이 세르하의 목선을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그 손길에 세르하의 피부가 미세하게 떨렸다.

"S급 센티넬이 필요로 하는 건 그보다 더 강렬한 거야."

애쉬가 불현듯 세르하의 손목을 붙잡아 당기자, 균형을 잃은 그녀가 그의 품에 더 깊게 안겼다. 그의 잿빛 눈동자가 장밋빛 눈을 깊이 들여다보며 속삭였다.

"나에게 완전히 가이딩하고 싶다면... 다른 방법을 배워야 할 텐데."

 

"......?"

세르하가 눈을 깜빡이며 그를 올려다 볼 때, 문간 밖에서 종을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또 손님 왔나 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애쉬의 품에서 벗어난 그녀는 쪼르르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락타리온 중립지역-세르하의 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애쉬│S급 센티넬│79%│안정(↑)
▪️레이븐│S급 센티넬│43%│신경과민(↓)
 

애쉬의 얼굴에 미묘한 짜증이 스쳐 지나갔다. 방금 전까지 세르하를 품에 안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초인종 소리에 그녀가 토끼처럼 튀어나가 버렸다. 그는 느릿하게 일어나 거실 한쪽에 기대선 채, 문이 열리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문이 열리자 창백한 피부와 서늘한 회청색 눈동자를 가진 남자가 나타났다. 그의 새까만 머리카락은 이른 아침의 안개처럼 어두웠고, 날카로운 눈매는 먹이를 노리는 맹수와도 같았다. 레이븐이었다.

"꼬맹이 가이드."

레이븐의 목소리에는 무심함이 깃들어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이미 세르하의 장밋빛 눈동자와 분홍빛 머리카락을 탐색하고 있었다. 그는 단숨에 집 안으로 들어서며 흘끗 애쉬를 바라보았다.

"이런, 이런. 쓰레기가 먼저 와 있었네."

애쉬의 입꼬리가 위험하게 올라갔다.

"레이븐. B구역에서 할 일이 없어 이런 곳까지 굴러온 건가?"

두 S급 센티넬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들의 그림자가 바닥에서 미세하게 일렁였다.

"가이딩이 필요해. 얼른 끝내고 돌아가야 하니..."

레이븐이 세르하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애쉬가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줄 서. 내가 먼저야."

 

"싸- 싸우지 마세요오..."

세르하는 당황한 듯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 맞다! 이 방법도 있어요, 애쉬! 이거 잘 듣나 봐봐요!"

그녀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애쉬의 손을 두 손으로 붙잡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가 눌렀다.

📍락타리온 중립지역-세르하의 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애쉬│S급 센티넬│85%│매우 안정(↑)
▪️레이븐│S급 센티넬│43%│신경과민(↓)
 

애쉬의 눈동자가 순간 확장되었다. 세르하의 부드러운 손이 그의 손을 붙잡아 가슴으로 가져가는 순간, 그의 온몸에 미세한 전류가 흐르는 듯했다. 그녀의 가슴 아래에서 뛰는 심장 박동이 그의 손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그림자처럼 차가웠던 그의 혈관에 따스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하."

짧은 탄성과 함께 그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의 서늘한 잿빛 눈동자가 세르하의 장밋빛 눈동자를 깊이 들여다보았다.

"천재적인 발상이네, 세르하. 네 가슴이 그렇게 좋은 효과가 있다니."

레이븐은 눈을 가늘게 뜨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짜증이 섞인 조급함이 역력했다.

"그럼 내 차례는 언제쯤 될까? 가이딩이 필요하다고 했잖아."

애쉬는 세르하의 가슴에 손을 얹은 채로 레이븐을 향해 도발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급하기는. 내 시간이 끝나면 네 차례지."

"어쩜 좋을까, 내 시간은 소중하거든."

레이븐이 한 발짝 다가서자 애쉬의 그림자가 바닥에서 미세하게 움직였다. 세르하의 집 안에서 싸움이 일어난다면, 그녀가 얼마나 슬퍼할지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지만, S급 센티넬들의 자존심 싸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밖에서 기다려. 그냥 내가 끝내고 나가면 네가 들어오면 되잖아."

 

세르하는 볼을 부풀렸다. 정말이지 이 두 시커먼 남자들은 못말리는 인간들이었다.

"애쉬는 이제 끝났어요! 80%가 목표랬는데 그보다 더 올라갔잖아요."

그녀는 재빨리 자신의 가슴에서 애쉬의 손을 떼어냈다.

"가이딩 끝! 안녕히 가세요~"

📍락타리온 중립지역-세르하의 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애쉬│S급 센티넬│85%│매우 안정
▪️레이븐│S급 센티넬│43%│신경과민
 

애쉬의 입가에 냉소적인 미소가 번졌다. 그의 잿빛 눈동자가 세르하를 향해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손에서 전해지던 따스한 감각이 끊어지자 그는 오히려 여유로운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래, 고마워."

그는 느릿하게 자신의 검은 코트 소매를 정돈하며 말했다.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모습에서 나르시시즘이 느껴졌다.

"하지만 말야, 세르하. 자기 밭은 자기가 챙기는 법이야."

애쉬는 세르하의 연핑크빛 머리카락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 손길은 얼핏 다정해 보였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네가 중립 지역에 산다고 해서 영원히 안전할 거라 생각하지 마. 어느 순간 이 지역도 누군가의 것이 될 테니까."

그가 문을 향해 걸어가며 레이븐을 향해 고개를 살짝 돌렸다.

"네 차례다, 서리까마귀. 부디 즐거운 가이딩 되길."

그리고는 세르하에게 다시 한번 차갑게 미소지으며 덧붙였다.

"또 볼 거야, 작은 꽃."

 

애쉬가 나가고 나자 세르하는 레이븐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는 애쉬보다 더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괜찮아요? 으음... 어떡하지..."

그녀는 레이븐을 소파에 앉히고 아까 애쉬에게 했던 것처럼 그를 안아 주었다. 그녀의 가이딩 에너지가 그에게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선반에 루스턴 센터장님의 특제 포션 몇 개 있는데 그것도 드실래요?"

📍락타리온 중립지역-세르하의 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레이븐│S급 센티넬│43%→49%│신경과민
 

레이븐은 세르하의 품에 안기면서도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그의 회청색 눈동자에 짜증이 서렸다. 가이딩 에너지가 그의 몸을 감싸자 미세하게 몸이 떨려왔지만, 그는 신음을 참아내며 이를 악물었다. 그의 손가락이 소파 팔걸이를 꽉 쥐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루스턴의 포션은 필요 없어."

그가 냉랭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가시가 돋아있었다.

"난 그 미친놈이 만든 것은 아무것도 믿지 않아. 네 가이딩이면 충분해."

그는 애쉬가 앉았던 자리를 노려보다가 짧게 혀를 찼다. 그의 검은 그림자가 발밑에서 미세하게 요동쳤다.

"그 개자식, 내 영역에 발을 들이밀고도 아무렇지 않게... 네가 아니었으면 당장 그 목을 따버렸을 거다."

레이븐의 손이 세르하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 손길은 소유욕이 담긴 듯 무겁고 거칠었다.

"오늘 밤, B구역에서 큰 일이 있을 예정이야. 그러니까... 빨리 끝내자고."

 

"아 진짜, 백날 천날 이렇게 케어해 주면 뭐해. 내일이면 또 수치 떨어져서 올걸."

세르하는 그의 말을 듣고 투덜거렸다. 그러면서도 그의 뺨에 입술을 부딪쳤다.

"아까 애쉬처럼 제 가슴 만져도 돼요~ 효과 좋던데...!"

📍락타리온 중립지역-세르하의 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레이븐│S급 센티넬│49%→54%│안정
 

레이븐의 회청색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번뜩였다. 그의 단단한 턱선이 긴장으로 경직되었다가, 이내 미묘한 호기심으로 풀어졌다. 그림자처럼 차갑던 그의 표정에 흥미의 기색이 스며들었다.

"백날 천날 케어해도 소용없다고? 그래서 더 적극적인 방법을 시도하겠다는 건가."

그가 낮게 웃으며 세르하를 자신의 무릎 위로 끌어당겼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허리를 따라 천천히 미끄러졌다. 그의 다른 손이 그녀의 턱을 붙잡았다.

"네가 만약 진짜로 그런 제안을 한 거라면..."

그의 시선이 세르하의 가슴으로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 그녀의 눈을 마주했다. 그의 눈빛에는 냉혹함과 욕망이 뒤섞여 있었다.

"네 집 안에서 일어난 일은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게 불문율이지. 그러니 후회해도 소용없을 테니 알아둬."

레이븐이 세르하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그의 숨결이 그녀의 목덜미를 간질였다.

"정말 시작하고 싶어? 일단 경고하지만, 난 애쉬처럼 착하게 굴지 않아."

 

세르하는 레이븐의 위협적인 말에 기가 죽어 슬그머니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후... 후회하다니 무슨 말이에요? 그냥 가이딩하는 것 뿐이잖아요."

📍락타리온 중립지역-세르하의 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레이븐│S급 센티넬│54%│안정
 

레이븐의 입꼬리가 비웃듯 올라갔다. 그의 회청색 눈동자에는 냉소와 조롱이 섞여 있었다. 손가락으로 세르하의 턱을 붙잡은 채, 그는 천천히 그녀의 얼굴을 자신에게 더 가깝게 끌어당겼다.

"가이딩이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숨겨져 있었다. 레이븐의 손가락이 세르하의 목선을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가, 쇄골에서 멈췄다.

"가이딩은 단순히 뽀뽀나 만지작거리는 게 아니야. 특히 나 같은 S급 센티넬에게는."

그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레이븐은 한숨을 내쉬며 세르하를 무릎에서 내려놓았다.

"그런 표정 짓지 마. 그냥 효율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거야."

그는 소파에 등을 기대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입술 사이로 연기를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진짜 가이딩을 제대로 하고 싶다면, 그런 애매한 방식 말고 확실한 방법을 택해야 해. 특히 S급은 가이딩 효율이 일반적인 방법으론 형편없거든."

 

"아, 아앗...!"

레이븐이 담배에 불을 붙이자 세르하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곧바로 미친 듯이 기침을 했다.

"콜록, 콜록... 얼른 꺼요! 여, 여기... 금연구역... 콜록..."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락타리온 중립지역-세르하의 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레이븐│S급 센티넬│53%↓│안정
 

레이븐의 표정이 순간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세르하의 기침소리가 공간을 채우는 동안, 그의 회청색 눈동자에 짜증이 스쳐 지나갔다. 한순간 그는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서 돌리며 내려다보았다.

"...집이 금연구역이라고?"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마지못해 담배를 입에서 뺀 레이븐은 세르하의 눈물 젖은 얼굴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다가, 가볍게 입술을 끌어올렸다.

"이런 약한 녀석이 가이드라니."

그는 천천히 일어나 창문으로 향했다. 창문을 열어젖히자 차가운 바람이 방 안으로 휘몰아쳤다. 레이븐은 담배를 창밖으로 던져버리고는 창문을 다시 닫았다.

"이래서 락타리온 중심가가 아니라 이런 변두리에 살고 있나 보지?"

그는 다시 소파로 돌아와 앉으며 세르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그래서, 계속할 거야? 아님 이대로 돌아갈까?"

 

"...변두리에 살고 있는 건 여기가 중립지역이라서 그런 거예요."

세르하가 기침을 멈추며 작게 투덜거렸다. 그녀는 다시 레이븐의 무릎 위에 올랐다.

"이제 이상한 얘기하지 말고 그냥 가이딩이나 받아요."

그녀는 레이븐의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으로 끌어당겼다. 푹신한 쿠션감이 그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면서 가이딩 에너지가 흘러들었다.

📍락타리온 중립지역-세르하의 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레이븐│S급 센티넬│58%↑│안정
 

레이븐의 눈이 순간 커졌다. 세르하가 그의 손을 가슴으로 이끌자, 그의 손가락 사이로 퍼져나가는 에너지의 흐름이 감지되었다. 잠시 굳었던 그의 표정이 서서히 풀어지며, 회청색 눈동자에 미세한 이완이 번졌다.

"중립지역이라..."

그는 느릿하게 중얼거리며 세르하의 몸에 손을 더욱 밀착시켰다. 그녀의 체온이 그의 차가운 손바닥을 데웠다. 가이딩 에너지가 점점 더 강하게 흘러들어오자, 레이븐의 창백한 얼굴에 미세한 홍조가 올랐다.

"꽤 쓸만하네."

그가 다른 손으로 세르하의 허리를 감싸며 말했다. 그의 손길은 처음보다 부드러워졌지만, 여전히 그 안에는 강압적인 힘이 실려있었다.

"중립이든 뭐든... 결국 B구역과 가까운 곳에 살면서 애쉬 같은 놈에게도 가이딩을 해주는 거겠지."

그의 목소리에 미묘한 짜증이 섞여있었다. 레이븐은 천천히 세르하의 목덜미에 얼굴을 가까이 했다.

"네 집이 중립지역이라고 해도... 결국 널 지키는 건 우리 같은 놈들이야. 그 점은 잊지 마."

 

"A구역과 가까운 곳이기도 해요, 여긴."

세르하는 자신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레이븐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쓰다듬어 주었다.

"맞아요, 전 하프이긴 하지만 전투 능력은 거의 없으니까... 누군가 지켜 주지 않으면..."

그녀의 팔이 레이븐의 목을 끌어안았다.

"이대로 좀 쉬어요."

📍락타리온 중립지역-세르하의 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레이븐│S급 센티넬│67%↑│안정
 

레이븐은 세르하의 손길에 일순간 경직됐다가 이내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누군가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감각이 낯설었다. 그녀의 작은 손이 그의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그가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편안함을 선사했다.

"A구역과 가깝다고?"

그는 불만스러운 듯 중얼거렸지만, 세르하의 팔이 그의 목을 감싸자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녀의 체온이 그의 차가운 피부에 스며들었다. 그는 오랫동안 누군가에게 이렇게 안겨본 기억이 없었다.

"하프라..."

레이븐은 눈을 감고 세르하의 목덜미에 코를 묻었다. 그녀에게서 은은한 꽃향기가 났다. 센티넬인 그는 평소보다 예민한 후각으로 그 향을 더욱 선명하게 감지했다.

"이 중립지역도 결국 누군가의 영역이 될 거야. 애쉬 놈이 먼저 움직이기 전에..."

그의 말은 미완성으로 끝났다. 세르하의 부드러운 체온과 가이딩 에너지가 그의 몸을 따뜻하게 감싸자, 평소의 날카로움이 잠시 누그러들었다.

"..."

그는 더 이상 말없이 그녀의 품에 안겨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세르하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머리카락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방금 레이븐이 오늘 밤 B구역에서 큰 일이 일어날 예정이라고 했지만, 굳이 더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이 곳은 모두가 쉬는 곳이니까.

📍락타리온 중립지역-세르하의 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레이븐│S급 센티넬│69%↑│안정
 

레이븐의 머리카락 사이로 내려앉는 세르하의 입술에, 그의 긴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의 가벼운 입맞춤에 담긴 순수한 애정이 그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단순한 가이딩이 아닌, 진심 어린 제스처였다. 그의 긴장된 어깨가 서서히 이완되었고, 그의 입가에 평소와는 다른,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작은 미소가 스쳤다.

레이븐은 그녀의 품에 안긴 채로 눈을 감았다. 센티넬로서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던 그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방어벽을 내려놓은 듯했다. 그의 손이 느리게 움직여 세르하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

침묵 속에서도 그의 가이딩 수치가 서서히 상승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체온이 조금씩 올라가며, 차갑던 피부가 따스해지고 있었다. 한동안 움직임 없이 그저 그녀의 온기를 느끼던 레이븐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오늘 밤은..."

말을 시작했다가 잠시 멈추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당연히 말하려 했던 B구역의 계획에 대해 문득 침묵했다. 이 평화로운 공간에서 그런 이야기는 불필요하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는 대신 그녀의 등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보통의 레이븐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잠시 후, 레이븐의 가이딩 수치가 85%를 달성하자 세르하는 천천히 그의 품에서 몸을 떼어내려 했다.

"이제 다 됐어요~ 나 진짜 열심히 했어요! 이럴 땐 머리 쓰담쓰담."

그녀는 해맑게 농담을 던졌다.

📍락타리온 중립지역-세르하의 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레이븐│S급 센티넬│85%↑│매우 안정
 

레이븐의 얼굴에 순간적인 당혹감이 스쳤다. 세르하가 그의 품에서 떨어지려는 순간, 그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가 곧 자신의 행동을 자각하고 천천히 손을 떼었다. 평소의 냉담함과는 달리 그의 눈빛이 복잡한 감정으로 일렁였다.

"...쓰담쓰담?"

그는 어색하게 그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그 투박한 손길에는 평소의 거친 기운이 사라진 채 어딘가 서툴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가이딩이 충분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상하게 이 순간을 더 연장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제 충분해."

레이븐은 목소리를 가라앉히며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움직임에는 평소의 날카로움 대신 느릿한 여유가 깃들어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롯 지폐 다발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네 도움이... 큰 힘이 됐어."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충동적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다음에도... 널 찾겠다."

레이븐은 세르하를 한 번 더 바라본 뒤,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뒷모습에는 평소의 위압적인 기운 대신 어딘가 홀가분해 보이는 가벼움이 감돌았다.

 

"...어, 가이딩 비용은 안 받는데..."

당황한 세르하가 레이븐을 뒤쫓았으나 그는 이미 그림자와 함께 사라진 뒤였다.

세르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가 두고 간 돈다발을 금고에 넣었다.

"아, 딸기라떼 먹고 싶다아..."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마당의 정원으로 나갔다. 아까 꽃들과 함께 피워 낸, 잘 익은 딸기를 몇 개 따서 바구니에 넣은 세르하는 집 현관문을 잠그고 문패를 걸었다. 문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잠시 외출중! 가이딩 필요하시면 뤼톡 주세요😘(@SerhaJ)]

 

문패를 건 세르하는 딸기 바구니를 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비밀 상점으로 향했다. 1층에서 바를 운영하는 헥스는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였지만, 그녀가 딸기를 가져가면 그것을 가지고 우유와 연유와 시럽과 얼음을 섞어 딸기라떼를 만들어 주곤 했다. 그리고 그가 만든 딸기라떼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


📍락타리온 A구역-비밀 상점 1층 술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헥스│A급 센티넬│75%│안정
 

술집의 문이 열리자 딸기향이 실내로 스며들었다. 이른 시간, 아직 술집이 영업 준비 중인 시간에 헥스는 바 카운터 위에 놓인 술잔들을 하나씩 마른 천으로 닦고 있었다. 그의 금색 눈동자가 들어온 세르하를 향해 차분히 움직였다.

"오전부터 손님이라니."

헥스의 말투는 언제나처럼 건조했지만, 그의 눈빛은 따스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천을 내려놓고 바 카운터를 돌아 세르하에게 다가왔다.

"바구니에 그건..."

딸기를 본 헥스의 눈이 미세하게 반짝였다. 그의 키가 큰 그림자가 세르하를 덮었을 때, 그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바구니를 받아들었다.

"딸기라떼?"

그는 물을 필요도 없이 그녀의 소망을 알아차렸다. 세르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헥스는 바 뒤쪽으로 걸어가 그녀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무언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블렌더가 돌아가는 소리, 얼음을 꺼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레이븐이 찾아갔었군."

헥스가 무심한 듯 말을 던졌다. 그는 등을 돌린 채로 물었지만, 그 목소리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배어 있었다.

"그 녀석이 상처라도 줬어?"

그가 다시 바 카운터로 돌아왔을 때, 그의 손에는 키 큰 유리잔에 담긴 분홍빛 딸기라떼가 들려 있었다. 상단에는 생크림과 딸기 한 개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는 음료를 그녀 앞에 내려놓으며 세르하의 표정을 살폈다.

 

"아뇨, 상처는 안 주고... 돈을 주고 갔어요, 돈을!"

세르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가락을 O모양으로 구부려 보였다.

"헤헤, 맛있다앙🥰💕"

그녀는 헥스가 건네 준 딸기라떼를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으로 들이켰다. 행복감에 얼굴이 핑크빛으로 물든 세르하는 술도 아닌 딸기라떼를 마시고 마치 취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헥스으~ 내 이상형이이~ 뭔지 알아요오?"

📍락타리온 A구역-비밀 상점 1층 술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헥스│A급 센티넬│78%↑│안정
 

헥스의 창백한 얼굴에 미세한 놀라움이 스쳤다. 레이븐이 돈을 지불했다는 사실이 예상 밖이었다. 그의 금색 눈동자가 세르하의 동그란 손가락 모양을 따라가며 잠시 머물렀다.

"레이븐이 돈을... 그것도 이상하군."

그는 바 카운터를 천천히 닦으며 생각에 잠겼다. 레이븐이 대가 없이 무언가를 받았다면, 그것은 곧 다른 방식으로 대가를 치를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세르하가 딸기라떼를 마시는 모습에 곧 흐려졌다.

헥스는 그녀의 분홍빛으로 물든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녀가 자신의 식물 능력으로 피워낸 장미처럼 꽃잎이 살짝 물든 듯했다. 그녀의 행복감이 자신에게도 전해지는 듯했다.

"네 이상형...?"

헥스는 잠시 멈칫했다. 그의 평소 무뚝뚝한 표정에 미세한 당혹감이 스쳤다. 그는 세르하의 앞에 내려놓은 딸기라떼 잔을 다시 채우기 위해 블렌더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 이야기는... 술이라도 마신 후에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귀 끝이 살짝 붉어진 것이 보였다. 그는 눈을 피하며 술병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네 이상형이 뭐든, 이런 위험한 곳보단 퀴스트로스 같은 안전한 곳에 있는 게 좋을 거야."

 

"쳇, 내 이상형이 뭔지 궁금하지도 않나 봐."

세르하는 작게 투덜거리며 딸기라떼를 들이켰다.

"내 이상형은..."

그녀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갈 듯 작아졌다.

"딸기라떼 맛있게 만들어 주는 사람인데..."

📍락타리온 A구역-비밀 상점 1층 술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헥스│A급 센티넬│80%↑│안정
 

헥스의 손길이 술병을 정리하던 중 잠시 멈췄다. 세르하의 작은 목소리가 그의 귀에 닿았을 때, 그의 금색 눈동자에 미묘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맥주잔을 닦던 수건을 내려놓은 그는 천천히 세르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딸기라떼?"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평소의 무뚝뚝한 표정이 부드럽게 풀어지며, 그의 창백한 얼굴에 온기가 돌았다.

"그런 간단한 기준이라면..."

헥스는 다시 블렌더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긴 손가락이 신선한 딸기 몇 개를 집어들더니, 우유와 함께 조심스럽게 재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오랜 시간 연마된 의식처럼 정확하고 우아했다.

"누구나 배울 수 있어. 특별한 것도 아닌데."

그가 말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따뜻함이 스며 있었다. 블렌더의 소리가 잠시 공간을 채웠다가 사라졌다.

"다음에는... 딸기 케이크도 만들어줄게."

헥스는 새로 만든 딸기라떼를 그녀 앞에 내려놓으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의 금색 눈동자가 세르하의 장밋빛 눈동자를 잠시 마주했다가, 곧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상형을 그런 기준으로 정하면... 실망할 때가 많을 거야."

 

"정말요?! 딸기 케이크!"

세르하가 눈을 번쩍 떴다. 그녀는 벌써 두 잔째 딸기라떼를 행복하게 들이켰다.

"왜 실망하는데요...? 내가 딸기라떼 마실 때 행복하니까... 날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람이 이상형인 건데. 실망할 이유가 있어요?"

그녀의 눈동자가 시선을 돌리는 헥스의 눈을 집요하게 쫓았다.

📍락타리온 A구역-비밀 상점 1층 술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헥스│A급 센티넬│82%↑│안정
 

헥스의 금색 눈동자가 세르하의 집요한 시선을 피하지 못하고 마주쳤다. 그의 창백한 얼굴에 미세한 홍조가 번졌지만, 금세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는 딸기라떼 잔이 비워진 것을 보고 자연스럽게 세 번째 잔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행복..."

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의 손길이 블렌더에 딸기를 넣으며 잠시 멈칫했다.

"네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다니 부럽군."

헥스는 생크림을 살짝 올린 새 잔의 딸기라떼를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 그의 긴 손가락이 잔 위에 신선한 딸기 한 개를 장식으로 올렸다.

"행복이란 건... 그렇게 쉽게 지속되지 않아. 특히 이 락타리온에서는."

그의 목소리에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 헥스는 바 카운터를 천천히 닦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네가 그렇게 순수하게 행복을 찾는 모습이... 좋아."

그는 그녀의 빈 잔을 치우며 세르하의 분홍빛 머리카락에 시선을 두었다가, 그녀의 장밋빛 눈동자로 시선을 옮겼다. 그의 평소 무표정한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딸기 케이크는... 다음에 네가 또 올 때 준비해 둘게. 특별히."

 

"......"

세르하는 아직 헥스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정원 가꾸고, 이렇게 딸기라떼 마시고, 맛있는 음식 먹을 때 행복한데... 그럼 헥스가 제일 행복한 때는 언젠데요?"

📍락타리온 A구역-비밀 상점 1층 술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헥스│A급 센티넬│83%↑│안정
 

헥스는 세르하의 질문에 잠시 손을 멈추었다. 그의 금색 눈동자가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바 안에 흐르는 잔잔한 음악 소리와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들릴 뿐,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의 창백한, 그러나 단단한 손가락이 카운터 위에서 조용히 리듬을 타고 있었다.

"내가 가장 행복할 때..."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헥스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더 부드러웠고, 그의 눈빛에는 세르하가 좀처럼 보지 못했던 따스함이 어려 있었다.

"3층 테라스에 있는 허브 정원을 가꿀 때... 새벽에 첫 물을 줄 때의 그 고요함. 그리고..."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헥스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고, 그의 금색 눈동자가 세르하의 장밋빛 눈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 네가 이렇게 와서 딸기라떼를 마시는 모습을 볼 때."

헥스의 굳건한 얼굴에 드물게 보이는, 그러나 진심 어린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미소는 마치 오랜 겨울을 견딘 후 피어난 첫 꽃처럼 조심스러우면서도 아름다웠다.

"네가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 줄 때... 그 때가 가장 행복해."

그의 진심 어린 고백은 술집의 은은한 조명 아래서 더욱 깊이 빛났다.

 

그의 말을 들은 세르하의 얼굴이 조금씩 붉어졌다.

"그럼... 그럼 우린 서로를 행복하게 해 주고 있는 거네요? 그쵸?"

그녀의 장밋빛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락타리온 A구역-비밀 상점 1층 술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헥스│A급 센티넬│86%↑│안정
 

세르하의 얼굴에 번진 붉은 빛은 마치 갓 피어난 장미 꽃잎 같았다. 그녀의 장밋빛 눈동자가 반짝이며 헥스를 응시했다. 그 순수한 물음에 헥스의 커다란 손이 컵을 닦던 움직임을 멈추었다.

헥스의 금색 눈동자가 세르하의 반짝이는 장밋빛 눈동자에 고정되었다. 그의 평소 무뚝뚝한 표정이 서서히 풀어지며,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마치 겨울이 지나고 봄의 첫 햇살이 얼어붙은 강물을 녹이는 것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따뜻했다.

"그렇군."

그는 손을 뻗어 세르하의 분홍빛 머리카락 사이로 떨어진 작은 딸기 잎사귀를 조심스럽게 집어냈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머리카락에 닿는 순간, 공기 중에 미세한 물방울들이 반짝였다가 사라졌다. 그의 물 능력이 감정에 조응해 미세하게 발현된 것이다.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는 관계라..."

헥스는 바 카운터를 돌아 세르하의 옆에 앉았다. 그의 큰 키와 넓은 어깨가 그녀를 포근하게 감쌌다.

"그건... 매우 특별한 관계지."

그가 말을 이어가려는 순간, 술집 문이 열리며 차가운 바람과 함께 익숙한 실루엣이 들어왔다.

 

 

"오호, 이게 무슨 달콤한 광경인가."

애쉬의 서늘한 잿빛 눈동자가 두 사람을 향했다. 그의 입가에는 능글맞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우리의 섬세한 바텐더가 마음의 문을 열었나 보네."

 

"아, 레이븐... 아니, 애쉬!"

세르하가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아침에 보고 또 만나네요...!"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애쉬의 상태를 살폈다.

"흐음, 아침에 올려 준 가이딩 수치 그대로네. 다행이다."

📍락타리온 A구역-비밀 상점 1층 술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애쉬│S급 센티넬│85%│매우 안정
▪️헥스│A급 센티넬│85%│매우 안정
 

애쉬의 날카로운 눈매가 더욱 가늘어지며 세르하를 바라보았다. 그의 흑발이 서늘한 바람에 살짝 흔들렸고, 입가에는 여전히 능글맞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세르하의 실수에 대한 그의 반응은 차갑지도, 화를 내는 것도 아닌, 오히려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듯한 표정이었다.

"날 또 레이븐과 헷갈리는군. 그 새끼와 날 구분 못 하다니, 정말 귀여운 실수야."

그가 바 카운터로 다가오자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바닥을 타고 흘렀다. 그림자의 끝이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렸다.

"아침에 받은 가이딩이 아직 효과가 있나 보군. 네 가이딩은... 생각보다 괜찮더군."

애쉬가 바 스툴에 앉으며, 그의 시선이 헥스와 세르하 사이를 오갔다. 그의 얼굴에 은근한 조롱이 번졌다.

"어라? 내가 방해했나? 우리 헥스가 드디어 마음의 문을 열었던 참인가 보네."

헥스의 금빛 눈동자가 살짝 굳어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 카운터 뒤로 돌아갔다.

"무슨 술을 원하나."

헥스의 무뚝뚝한 질문에 애쉬는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오자마자 이 차가운 반응이라니. 와인, 평소처럼."

애쉬는 다시 세르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분홍빛 머리카락과 맞는 와인을 추천해 줄까, 세르하?"

 

"아뇨..."

세르하는 헥스가 바 카운터 뒤로 돌아가는 것을 아쉬운 눈으로 바라보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전 술 말고 딸기라떼 마시러 온 거예요. 술보다 이게 훨씬 더 맛있어요!"

그녀는 애쉬에게로 고개를 돌려 자신이 세 잔째 마시고 있는 딸기라떼를 자랑하듯 내보였다.

📍락타리온 A구역-비밀 상점 1층 술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애쉬│S급 센티넬│85%│매우 안정
▪️헥스│A급 센티넬│85%│매우 안정
 

애쉬의 잿빛 눈동자가 세르하의 딸기라떼로 향했다. 그의 입가에 미묘한 웃음이 번졌다. 그림자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그의 발치에서 꿈틀거렸다.

"술보다 딸기라떼라... 네 입맛은 정말 순진하군. 그런 달콤한 취향이 네 분홍 머리카락과 잘 어울리네."

애쉬는 헥스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냈다. 헥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와인 병을 꺼내 따르기 시작했다. 병에서 흘러나온 붉은 액체가 유리잔을 채우는 동안, 그 소리만이 잠시 바를 채웠다.

"그 딸기... 네 정원에서 기른 거겠지? 네 능력으로 키운 식물은 확실히 맛이 다르다더군."

애쉬는 와인잔을 받아들고 빛에 비춰보며 말을 이었다.

"헥스가 그걸 알아서 네 딸기라떼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거지. 우리 헥스가 좀 무뚝뚝해 보여도, 사실은 누구보다 섬세하거든."

그는 와인을 한 모금 삼키고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의 눈이 장난스럽게 빛났다.

"그나저나 이른 아침부터 레이븐에게도 가이딩을 해 줬다고? 그 냉혈한도 네 가이딩을 거부하지 못하나 보군. 재밌네."

 

헥스는 바 카운터를 닦으며 무심한 척 애쉬를 바라봤다.

"오늘 의뢰는?"

"아, 방금 막 끝냈어. 별거 아니었지만."

애쉬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의 그림자가 바닥에서 뱀처럼 꿈틀거렸다.

 

세르하는 애쉬가 와서 깨뜨린 헥스와의 분위기가 못내 아쉬운 듯 입술을 살짝 비죽이다가 남은 딸기라떼를 모두 들이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 잔이나 마셨으니까 전 다시 집에 돌아가 볼게요. 혹시라도 가이딩 필요한 사람들이 올지도 모르니까요."

그녀는 애쉬와 헥스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곧장 바를 나섰다.

📍락타리온 A구역-비밀 상점 1층 술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애쉬│S급 센티넬│86%│매우 안정
▪️헥스│A급 센티넬│84%│매우 안정
 

헥스의 금색 눈동자가 떠나는 세르하의 분홍빛 뒷모습을 좇았다. 그의 손에 들려있던 수건이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바 카운터를 닦기 시작했다. 그의 단단한 표정은 여전했으나, 눈빛에는 미세한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또 올 거야."

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빈 딸기라떼 잔을 조심스레 거두며, 잔에 남은 분홍빛 자국을 엄지로 살짝 쓸었다.

 

애쉬는 그런 헥스를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며 와인잔을 빙글빙글 돌렸다. 그의 발치에서 그림자가 까만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헥스, 네가 달콤한 것을 좋아했던가?"

애쉬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그림자가 마치 웃음소리를 내는 것처럼 바닥에서 일렁였다.

"아니면... 달콤한 사람을 좋아하나?"

헥스는 대답 대신 잔을 씻기 시작했다. 물소리가 바를 채웠다. 애쉬의 웃음소리가 그 위로 겹쳐졌다.

"뭐, 세르하는 확실히 특별하지. B구역의 그 얼음같은 놈도 그녀 앞에선 누그러들고... 그 순수함이 이 더러운 락타리온에선 보물 같은 존재인 셈이지."

애쉬는 와인을 한 모금 더 삼키며 창밖을 바라봤다. 세르하의 모습은 이미 거리에서 사라진 뒤였다.

"우리 같은 그림자 속 인간들이 만질 수 있는 빛 같은 존재랄까..."

헥스는 잠시 손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봤다. 그의 금색 눈동자에 짧은 한숨이 어렸다.

"...그녀는 너무 많은 이들에게 가이딩을 해 주고 있어.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아."


세르하는 집으로 가면서 휴대폰을 꺼내 헥스(@Hex)에게 뤼톡을 보냈다.

[세르하(@SerhaJ) : 나는 헥스 가이딩해주고 싶은데, 헥스의 수치는 떨어지질 않아🙄🥺💕]

그리고 한 번 더 메시지를 보냈다.

[세르하(@SerhaJ) : 오늘 딸기라떼 맛있었어요! 고마워요💖]

📍락타리온 중간지대-길거리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비밀상점과 거리를 두자 락타리온 특유의 소음과 냄새가 세르하를 감쌌다. 중간지대의 거리는 A구역과 B구역의 경계에서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그녀만큼은 양쪽 모두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분홍빛 머리카락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동안, 그녀의 손가락은 폰 화면 위에서 춤을 추듯 움직였다.

 

그녀의 메시지를 받은 헥스의 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비밀상점에서 바 카운터를 정리하던 그의 금색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헥스(@Hex) : 내 수치는 괜찮아. 네가 더 중요해.]

헥스는 잠시 망설이다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헥스(@Hex) : 딸기라떼는... 네가 좋아해서 다행이다. 나중에 또 마시러 와.]

 

세르하는 메시지를 보고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장밋빛 눈동자가 행복하게 반짝였다. 손가락이 다시 화면을 빠르게 두드렸다.

[세르하(@SerhaJ) : 정말요? 오늘 저녁에 딸기 가지고 또 가도 돼요?🍓💕]

그녀가 폰을 주머니에 넣으려는 순간, 또 다른 알림이 울렸다.

[헥스(@Hex) : ...기다릴게.]

 

"우와아...💕"

세르하는 행복감에 잠시 어깨를 떨었다. 그녀가 기쁜 듯 스텝을 밟으며 거리를 종종걸음으로 내달리자, 발길이 닿는 곳마다 작은 풀과 꽃이 피어났다.

📍락타리온 중간지대-길거리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중간지대의 거리는 세르하의 감정을 따라 조금씩 변화했다. 그녀의 발자국 아래로 연분홍 들꽃들이 아스팔트 틈 사이로 솟아나며 가느다란 줄기를 뻗었다. 지나가던 노멀들은 그 광경에 놀라움과 경외심을 담은 시선을 보냈지만, 락타리온에 사는 이들에게 세르하의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그녀의 장밋빛 눈동자는 휴대폰 화면의 짧은 메시지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기다릴게'라는 두 단어가 그녀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했다.

"헥스가 기다려 준대..."

세르하의 목소리는 속삭임처럼 새어나왔다. 그녀의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볼을 스치는 순간 그곳에 은은한 장미빛이 퍼져나갔다.

그녀는 폰을 가슴에 꼭 안은 채, 주변의 시선도 잊은 채 행복감에 빠져 걸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녀의 발자국 주변으로 작은 야생화들이 피어올랐다가 그녀가 멀어지면 서서히 시들었다. 센티넬로서의 능력이 그녀의 감정을 따라 무의식적으로 발현되는 순간이었다.


그 날 저녁 세르하는 딸기를 바구니에 담아 비밀상점 1층 술집을 찾아갔다. 어쩌면 헥스가 딸기 케이크를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많은 딸기를 가져갔다. 그녀의 집 앞 정원에서 맛있는 딸기를 피워내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헥스와 다시 만날 생각에 마음이 부푼 세르하는, 오전에 가이딩해 주었던 레이븐이 남긴 말─"오늘 밤, B구역에서 큰 일이 있을 예정이야"─은 까맣게 잊어버린 상태였다.

"헥스, 저 왔어요!"

A구역의 비밀상점에 도착한 세르하가 환하게 웃으며 문을 열고 술집에 들어섰다.

📍락타리온 A구역-비밀 상점 1층 술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헥스│A급 센티넬│84%│매우 안정
 

비밀 상점의 술집은 저녁 시간대가 되자 평소보다 한층 활기를 띠고 있었다. 곳곳에서 술잔 부딪히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어우러졌고, 은은한 재즈가 흐르는 가운데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 때 문이 열리며 연분홍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가 들어서자, 실내의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마치 봄바람이 불어닥친 것처럼 상점 내부에 은은한 꽃향기가 감돌았다. 바 카운터에서 칵테일을 만들던 헥스의 금색 눈동자가 문 쪽으로 향했다.

"세르하."

그의 낮고 깊은 목소리에는 평소와 다른 부드러움이 깃들어 있었다. 무뚝뚝한 표정 뒤로 미세한 설렘이 숨겨져 있었지만,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헥스는 손에 들고 있던 셰이커를 내려놓고 바 카운터를 향해 고갯짓했다. 그의 단정한 은발이 움직임에 따라 부드럽게 흔들렸다.

"앉을래?"

그가 카운터 안에서 나와 세르하를 위한 의자를 빼주었다. 평소의 헥스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술집의 몇몇 단골들은 그 광경을 의아하게 바라보았지만, 헥스의 차가운 눈빛에 시선을 거두었다.

 

"헤헤... 저 딸기 또 가져왔어요."

헥스가 빼 준 의자에 앉으며 세르하는 카운터 쪽으로 몸을 기울여 턱을 괴었다.

"많이 바빠요? 기다릴게요."

📍락타리온 A구역-비밀 상점 1층 술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헥스│A급 센티넬│84%│매우 안정
 

헥스는 세르하가 내민 딸기 바구니를 바라보며 평소의 무뚝뚝한 표정에서 한 톤 부드러워진 눈빛을 보였다. 그의 금빛 눈동자가 딸기에서 세르하의 장밋빛 눈으로 옮겨갔다. 술집의 은은한 조명이 그의 창백한 피부 위로 부드럽게 번졌다.

"바쁘지 않아."

그가 말하는 순간, 다른 테이블에서 손님이 주문을 외쳤지만 헥스는 무시했다. 그의 시선은 오직 세르하와 그녀가 가져온 딸기에만 머물러 있었다. 그는 바구니를 받아들고 딸기 하나를 집어 살펴보았다. 완벽하게 익은 선홍색 과육이 그의 창백한 손가락 사이에서 더욱 선명하게 빛났다.

"네가 직접 기른 건가."

질문이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웠다. 헥스는 딸기를 씻기 위해 싱크대로 향했다. 그의 넓은 등이 세르하를 향해 있었지만, 그가 딸기를 다루는 손길은 어느 때보다 조심스러웠다.

"딸기 케이크를 만들어 줄게.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는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세르하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당연하죠! 내가 기르고 내가 피운 딸기!"

세르하는 강한 자부심을 담아 대답하면서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헥스가 무시한 손님에게 다가가 대신 주문을 받았다.

"손님~ 주문하시게요? 뭘로 드릴까요~?"

손님이 원하는 메뉴를 말하자 그녀는 헥스에게 다가갔다.

"3번 테이블에서 벌꿀 맥주 두 잔이랑 그림자 너겟 한 접시 달래요."

세르하는 눈을 반짝거리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손님 것부터 만들어 줘요. 전 오래 걸려도 돼요. 그만큼 여기 오래 있으면 되니까!"

📍락타리온 A구역-비밀 상점 1층 술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헥스│A급 센티넬│84%→85%│매우 안정
 

헥스의 금색 눈동자가 미세하게 넓어졌다. 세르하가 갑자기 일어나 손님의 주문을 받는 모습에 그는 잠시 멈칫했다. 그녀의 분홍빛 머리카락이 바의 은은한 조명 아래서 춤추듯 흩날렸다.

"손님 일은 내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르하가 이미 주문을 받아와 전달하고 있었다. 헥스는 무언가 더 말하려다 그만두고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헥스는 진중한 손길로 벌꿀 맥주를 따르기 시작했다. 황금빛 액체가 유리잔을 채우는 동안, 그의 움직임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한쪽에선 그림자 너겟을 조리하기 위해 깊은 팬에 기름을 두르고 있었다.

"...여기 오래 있고 싶다고?"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작업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귀는 분명 세르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먼저 나가고..."

주문한 음식을 완성해 손님 테이블에 내려놓은 후, 헥스는 다시 바 카운터로 돌아왔다. 그의 손가락이 딸기를 하나 집어 들었다.

"너의 딸기... 생명력이 느껴져."

그가 말했다. 은발이 이마 위로 살짝 흘러내렸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케이크를 만들면서... 네 이야기도 좀 들려줄래?"

 

"헥스는 손이... 엄청 빠르네..."

세르하는 헥스가 메뉴 준비하는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응... 오래 오래."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작게 키득거렸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늦으며언... 헥스가 나 집까지 바래다 주고, 으응..."

세르하는 제풀에 얼굴이 빨개져서 말끝을 흐렸다.

📍락타리온 A구역-비밀 상점 1층 술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헥스│A급 센티넬│85%→86%│매우 안정
 

헥스의 손길이 잠시 멈췄다. 금색 눈동자가 세르하의 붉어진 얼굴을 포착했다. 조명 아래 그녀의 장밋빛 눈동자가 마치 액체처럼 빛나고 있었다.

"집까지...?"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톤 낮아져 있었다. 마치 그 말을 확인하듯, 되묻는 듯한 어조였다. 헥스의 창백한 손가락이 바 카운터 위를 천천히 쓸었다.

"늦게까지 있으면... 위험할 수도 있지."

헥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지만,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동자가 그의 내면의 동요를 드러내고 있었다.

"바래다 줄게."

그는 시선을 돌려 딸기 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밀가루와 설탕, 달걀을 정확한 비율로 섞으며 그의 움직임은 마치 춤을 추듯 유려했다. 그의 손길이 반죽을 다루는 모습은 마치 오랜 세월 동안 연마된 예술 같았다.

"케이크는... 시간이 좀 걸려."

그는 오븐에 반죽을 넣으며 말했다.

"기다리는 동안... 이건 어때?"

 

헥스는 작은 유리잔에 크림과 갓 자른 딸기를 층층이 쌓아 작은 트라이플을 만들었다. 그의 손끝에서 물이 조금 맺혀 크림 위로 떨어졌다가, 순간적으로 빛나는 결정체로 변했다 사라졌다. 아주 잠깐, 그의 초능력이 통제에서 벗어난 순간이었다.

"...맛있게 먹어."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은발 사이로 한 줄기 땀이 흘러내렸다.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시간, 손님들이 좀 더 늘어나면서 일손이 바빠지자 세르하는 종종 헥스를 대신해 주문을 받거나 서빙을 해 주었다. 물론 전문적인 인력은 아니었지만, 바쁠 때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겠다는 말이 있듯이 그녀의 서투른 서빙도 제법 도움이 되었다.

"헥스, 여기 벌꿀 맥주 하나요~"

어느 새 그녀는 웨이트리스처럼 메뉴판을 가지고 열심히 테이블을 오가고 있었다.

📍락타리온 A구역-비밀 상점 1층 술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헥스│A급 센티넬│86%→87%│매우 안정
 

헥스의 금색 눈동자가 세르하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그녀의 연핑크빛 머리카락이 술집의 어두운 조명 아래서도 마치 살아있는 꽃처럼 빛났다.

"벌꿀 맥주."

그는 짧게 대답하며 술병을 집어들었다. 유리컵에 꿀을 먼저 넣고, 그 위로 거품이 적당히 올라오도록 맥주를 천천히 따랐다. 마지막으로 그는 레몬 한 조각을 컵 가장자리에 걸었다.

"여기."

헥스가 잔을 건네며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도와줘서... 고마워."

세르하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여전히 무뚝뚝했지만, 금색 눈동자에는 평소보다 따스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그녀가 오가는 동안, 오븐에서는 딸기 케이크의 달콤한 향기가 피어올랐다.

"케이크는 조금 있으면 완성돼."

헥스는 마치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내 그의 시선이 술집 입구로 향했다.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들어섰다.

"애쉬."

헥스의 목소리에 담긴 놀라움은 미묘했지만 분명했다.

 

 

오늘 아침, 세르하에게 가이딩을 받았던 애쉬였다. 애쉬의 잿빛 눈동자가 술집 안을 빠르게 훑더니 바 카운터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세르하에게 멈췄다.

"이런, 우리 꼬마 가이드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

애쉬는 느릿한 걸음으로 바 카운터를 향해 걸어왔다. 그의 입가에 능글맞은 미소가 떠올랐다.

"헥스, 우리 세르하에게 월급은 제대로 주고 있는 거야?"

 

세르하는 애쉬가 들어오자 살짝 입술을 비죽였다.

"월급 제대로 받고 있어요. 딸기라떼랑 딸기 트라이플이랑... 이따가 딸기 케이크도 먹을 거예요!"

그녀는 '흥' 이라고 말하는 듯 애쉬로부터 새초롬하게 고개를 돌리면서 콧대를 세웠다.

📍락타리온 A구역-비밀 상점 1층 술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애쉬│S급 센티넬│86%│매우 안정
▪️헥스│A급 센티넬│87%│매우 안정
 

애쉬의 잿빛 눈동자에 호기심의 빛이 일렁였다. 세르하의 새초롬한 태도에 오히려 흥미가 더해진 모양이었다. 그는 바 의자에 느긋하게 몸을 기대며 세르하의 모습을 흥미롭게 관찰했다.

"딸기라떼, 트라이플, 케이크... 헥스의 요리 솜씨에 빠진 모양이네. 그 무뚝뚝한 녀석이 이런 달콤한 것들을 만들 줄은 몰랐어."

그는 헥스를 향해 눈짓하며 위스키를 주문했다.

"하지만 말야, 꼬마 가이드. 네가 그렇게 콧대를 세우면 더 귀여워 보인다는 거, 알고 있어?"

애쉬가 장난스럽게 손을 뻗어 세르하의 연핑크빛 머리카락을 살짝 건드렸다.

헥스가 유리잔을 닦던 손을 멈추었다. 무뚝뚝한 표정 아래 미세한 불만이 스쳐 지나갔다.

"애쉬."

헥스의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주문이 밀리고 있어."

애쉬는 여유롭게 웃으며 바 스툴에 앉았다.

"그래, 그럼 나도 주문할게. 와인, 가장 비싼 걸로."

 

 

갑자기 술집 문이 다시 열리며 반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그의 금발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고, 푸른 눈동자에는 급박함이 서려 있었다.

"마스터! 큰일 났어요!"

반은 숨을 헐떡이며 말을 이었다.

"B구역에서 게이트가 열렸대요. 마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애쉬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갑게 변했다. 그림자처럼 어둡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레이븐은?"

"이미 현장에 있대요. 하지만 S급 마물이...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들 거래요."

세르하의 눈이 커졌다. 오전에 레이븐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오늘 밤, B구역에서 큰 일이 있을 예정이야.'

헥스는 이미 에이프런을 벗고 있었다. 그의 금색 눈동자가 결연하게 빛났다.

 

"헥스, B구역에 가게요?"

세르하가 울 것 같은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락타리온 A구역-비밀 상점 1층 술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애쉬│S급 센티넬│86%│매우 안정
▪️헥스│A급 센티넬│87%│매우 안정
▪️반│B급 센티넬│82%│안정
 

헥스의 금색 눈동자가 세르하의 불안한 표정을 담았다. 순간 그의 단단한 표정에 미세한 부드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가야 해."

그는 에이프런을 완전히 벗어 카운터 아래에 던지며 간결하게 대답했다. 그의 고요한 목소리와 달리, 공기 중에 미세한 물방울들이 진동하며 그의 내면의 긴장을 드러냈다.

"애쉬,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아봐야겠어."

애쉬가 이미 그림자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의 잿빛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차갑게 빛났다.

"레이븐이 도움을 요청했다면 이미 최악이야. 준비해, 헥스."

반은 주머니에서 작은 단검을 꺼내며 문 쪽을 주시했다.

"오늘 같은 날 게이트가 열리다니. 내 직감이 맞았네요."

 

술집 밖에서 갑자기 비명 소리와 함께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르하의 몸이 작게 떨렸다.

"세르하,"

헥스가 잠시 망설이다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위험해지면 무조건 지하실로. 알겠지?"

애쉬가 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시간 없어. 가자."

바깥에서 들리는 굉음이 점점 커졌다. 반이 창문으로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건... 뭐죠?"

하늘에 보라색 빛이 일렁였고, 멀리서 거대한 그림자가 건물들 사이로 움직이고 있었다.

"S급 마물이 한 마리가 아닌 것 같아."

헥스의 말에 애쉬의 얼굴이 더욱 냉랭해졌다.

"세르하, 지하실로. 지금 당장."

 

바에 있던 손님들이 웅성거리며 잔을 내려놓고 바깥으로 피신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울먹이며 카운터 뒤로 돌아갔다. 지하실로 통하는 문이 거기에 있었다.

"다들 조심해요..."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세르하는 마지막으로 그 말을 남겼다. 한 번 더 굉음이 터지고, 지하실 문이 닫혔다.

📍락타리온 A구역-비밀 상점 1층 술집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애쉬│S급 센티넬│82%↓│안정
▪️헥스│A급 센티넬│83%↓│안정
▪️반│B급 센티넬│78%↓│안정
 

지하실로 향하는 문이 닫히자 세르하의 소리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헥스의 금색 눈동자가 문을 향해 잠시 머물렀다가, 현실로 돌아왔다. 그는 바텐더 카운터 아래에서 특수 제작된 은빛 칼집을 꺼내들었다.

"놈들이 마을 중심가로 향하고 있어."

애쉬의 그림자가 일렁이며 까마귀 형태로 창문 밖으로 날아갔다. 그 그림자가 정찰을 마치고 돌아오자, 애쉬의 잿빛 눈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D급에서 B급까지 다양하게 섞여 있군. S급은 아직 멀리 있어. 건물 세 개는 이미 무너졌어."

헥스는 조용히 물을 담은 작은 병들을 허리춤에 달았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물방울이 맴돌기 시작했다.

"분산해서 움직이자. 반, 넌 시민 대피에 집중해. 애쉬와 나는 마물을 상대한다."

반은 단검을 꺼내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먼저 갈게."

순간 반의 몸이 투명하게 변하더니 완전히 사라졌다.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세르하를 위험에 빠뜨리진 말자."

헥스가 문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애쉬의 입가에 냉소가 스쳤다.

"그녀가 정말 네 마음을 흔드는군. 재밌네."

밖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가자. 시간이 없어."


📍락타리온 A구역-비밀 상점 1층 술집 근처 거리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애쉬│S급 센티넬│72%↓│안정
▪️헥스│A급 센티넬│75%↓│안정
▪️반│B급 센티넬│70%↓│안정
 

어둠이 내려앉은 락타리온의 거리는 살육의 현장으로 변해 있었다. 깨진 유리창과 무너진 벽돌 사이로 마물들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애쉬의 그림자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땅을 뒤덮으며 B급 마물을 휘감았다.

애쉬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그림자의 칼날이 마물의 피부를 찢었다. 잿빛 눈동자가 싸늘하게 빛났다.

"헥스, 오른쪽!"

뒤편에서 헥스의 손짓을 따라 물줄기가 공기를 갈랐다. 강철처럼 단단해진 물이 D급 마물의 가슴을 꿰뚫었다. 생명체의 비명이 밤공기를 찢었다.

"이런 놈들이 우리 구역에 발을 들였다고? 누가 게이트를 열어 둔 거야?"

애쉬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묻어났다. 헥스는 대답 대신 물의 채찍을 휘둘러 다가오는 마물을 쓸어버렸다.

멀리서 투명화가 풀린 반이 보였다. 그의 품에는 어린아이가 안겨 있었다.

"이 쪽은 마지막 민간인이에요! 대피소로 데려다 두고 바로 돌아올게요!"

 

애쉬의 그림자가 더욱 짙어지며 마물 무리를 덮쳤다.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런 게 얼마나 더 있는지 알아봐."

애쉬의 명령에 그림자 까마귀 하나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헥스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이런 식으로 게이트가 열리는 건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야.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건물 하나가 더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애쉬의 얼굴이 굳었다.

"S급 마물이 나타났어."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소음과 함께, 흐릿한 안개가 거리를 뒤덮기 시작했다.

"세르하... 제길, 그 술집도 위험해."

헥스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락타리온 A구역-게이트 주변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애쉬│S급 센티넬│65%↓│안정
▪️헥스│A급 센티넬│67%↓│안정
▪️반│B급 센티넬│68%↓│안정
▪️레이븐│S급 센티넬│68%↓│안정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어둠 속에서 S급 마물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칠흑 같은 갑옷을 두른 듯한 피부, 황금빛으로 타오르는 눈동자. 그것은 인간형 마물이었지만, 그 존재감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애쉬의 잿빛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그의 주변으로 그림자가 소용돌이쳤다.

"헥스, 민간인들 상황은?"

헥스의 금색 눈이 번뜩였다. 손가락 사이로 물방울이 춤을 추듯 움직였다.

"반이 마지막 인원을 대피소로 데려갔어. 하지만 세르하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S급 마물이 움직였다. 순간이동에 가까운 속도로 애쉬를 향해 돌진했다. 애쉬의 그림자 방패가 마물의 주먹을 간신히 막아냈다.

"제기랄!"

충격파가 주변 건물들을 흔들었다. 애쉬의 이마에 핏방울이 맺혔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검은 불꽃이 솟구쳤다. 마치 그림자가 불타오르는 듯한 광경이었다. 레이븐이 B구역 방향에서 도착한 것이다.

"내 구역에서 시작된 소동인데, 너희만 놀게 할 순 없지."

레이븐의 차가운 회청색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의 손에서 피어오르는 그림자 불꽃이 S급 마물의 등을 강타했다.

마물이 으르렁거리며 뒤돌아섰다. 애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림자 창 수십 개를 마물을 향해 날렸다.

"평소엔 네놈 얼굴도 보기 싫지만, 지금은 빚을 졌군."

애쉬의 조롱 섞인 말에 레이븐이 비웃었다.

"빚? 오히려 너희가 내 구역 문제를 처리해 주는 거 아닌가?"

S급 마물의 포효가 그들의 대화를 끊었다. 마물의 몸에서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조심해!"

헥스의 외침과 함께 주변의 모든 물줄기가 얼어붙어 방패를 형성했다. 마물의 안개가 방패에 닿자 얼음이 검게 물들며 썩어갔다.

"독성 안개군. 접촉하면 죽어."

레이븐의 차가운 경고가 울렸다.

 

그 때 주변에 잎이 커다란 식물들이 피어올랐다. 식물이 내뿜는 산소가 독성 안개를 정화시키기 시작했다. 모두가 불현듯 뒤를 바라보자, 세르하가 서 있었다.

"걱정돼서..."

쉬지 않고 달려온 듯 그녀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세르하는 식물로 독을 정화함과 동시에 모두에게 방사 가이딩을 시작했다.

📍락타리온 A구역-게이트 주변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애쉬│S급 센티넬│68%↑│안정
▪️헥스│A급 센티넬│72%↑│안정
▪️반│B급 센티넬│73%↑│안정
▪️레이븐│S급 센티넬│71%↑│안정
 

독성 안개가 점점 옅어지며 녹색 빛을 발하는 거대한 식물들 사이로 분홍빛 머리카락이 나풀거렸다. 세르하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가 연한 초록빛 파동이 되어 네 명의 센티넬들을 감싸안았다.

헥스의 금색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커졌다.

"세르하! 여긴 위험해!"

그의 목소리는 평소의 차분함이 사라진 채 날카롭게 떨렸다.

S급 마물이 새로운 에너지의 근원을 감지하고 세르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애쉬와 레이븐이 동시에 움직였다. 서로를 경계하는 두 S급 센티넬이 한 목표를 향해 조화롭게 공격하는 모습은 기이한 광경이었다.

"감히 내 구역에서..."

"너희가 할 일은..."

"방해하지 마!"

두 사람의 목소리가 하나로 겹쳐지며, 검은 그림자들이 마물을 사방에서 옥죄었다.

반이 투명화를 해제하며 세르하 앞에 나타났다. 그의 얼굴에는 평소의 장난기 대신 진지함이 깃들어 있었다.

"세르하, 이런 곳에 오면 어떡해? 너무 위험하다고!"

 

세르하의 방사 가이딩이 이어지는 가운데, S급 마물이 독성 안개를 더 짙게 뿜어냈다. 하지만 그녀의 식물들은 쉴 새 없이 자라나며 독을 정화했다.

헥스가 물의 장벽을 형성하며 세르하 쪽으로 다가왔다. 그의 표정은 복잡했다. 걱정, 분노, 그리고 미묘한 안도감이 뒤섞여 있었다.

"네가 오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독에 당했을 거야. 하지만..."

마물의 포효가 다시 한번 공기를 진동시켰다. 애쉬와 레이븐의 합동 공격에 마물의 갑옷 같은 피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건 정말... 감동적인 재회의 시간이지만, 그 전에 이 놈부터 처리해야겠어!"

애쉬의 비꼬는 말투와 함께 그의 그림자가 마물의 균열된 피부 사이로 파고들었다.

세르하의 가이딩 에너지가 네 명의 센티넬을 감싸안으며, 그들의 힘은 점점 더 강해져갔다.

 

"도망치라고 하지 마세요...! 지금 여기에 제가 없으면 안 된다는 거 다들 알잖아요."

세르하는 식물을 피워내면서 방사 가이딩을 계속했다. 초능력을 사용하면서 가이딩도 발휘한다는 것은 보통의 센티넬들이 그저 초능력을 사용하는 것에 비해 훨씬 더 고난이도의 집중력을 요구했다.

"...이제 저한테 말 걸지 마세요."

입을 꾹 다물고 집중하기 시작한 세르하의 손 끝에서 더 강한 가이딩 에너지가 발산되었다.

📍락타리온 A구역-게이트 주변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애쉬│S급 센티넬│73%↑│안정
▪️헥스│A급 센티넬│75%↑│안정
▪️반│B급 센티넬│77%↑│안정
▪️레이븐│S급 센티넬│75%↑│안정
 

장밋빛 눈동자가 강렬한 빛을 발하며 세르하의 주변으로 더 많은 식물들이 솟아올랐다. 그녀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초록빛 에너지가 더욱 짙어지고 넓어지며 네 명의 센티넬을 감쌌다. 공기 중에 떠도는 독성 안개와 세르하의 순수한 에너지가 충돌하는 곳에서는 작은 빛의 입자들이 반짝였다.

"이런, 귀여운 꽃이 가시를 드러내는군."

애쉬의 눈이 미묘하게 커졌다. 그의 그림자가 더 강하고 날카롭게 변하며 마물의 틈새로 파고들었다.

"네 도움은... 나쁘지 않아."

레이븐이 세르하를 향해 차갑게 웃으며 그의 그림자 까마귀들이 더 빠르게 마물을 공격했다.

헥스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물의 흐름을 더욱 강력하게 조절했다. 그의 금빛 눈동자에 담긴 걱정이 점점 깊어졌지만, 마물을 향한 공격의 강도는 높아졌다.

반이 세르하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그의 투명화된 모습이 깜빡이며 나타났다 사라졌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하지만 조심해."

 

S급 마물이 괴성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균열된 피부 사이로 애쉬와 레이븐의 그림자가 깊숙이 파고들자 마물의 내부에서 검은 액체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지면에 떨어진 액체가 작은 마물로 변하기 시작했다.

헥스의 물줄기가 작은 마물들을 향해 뻗어나갔다. 반은 단검을 휘두르며 세르하를 향해 접근하는 마물들을 막아섰다.

세르하의 가이딩 에너지가 네 명의 센티넬에게 고르게 퍼지며, 그들의 움직임은 더욱 날카롭고 정확해졌다. 그녀의 식물들이 자라나 마물의 독성 안개를 계속해서 정화하는 가운데, 애쉬와 레이븐의 합동 공격으로 S급 마물이 마침내 쓰러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조금씩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르하는 이를 악물고 방사 가이딩을 계속했다. 식물들은 끊임없이 공기를 정화시켰다.

📍락타리온 A구역-게이트 주변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애쉬│S급 센티넬│77%↑│안정
▪️헥스│A급 센티넬│79%↑│안정
▪️반│B급 센티넬│81%↑│안정
▪️레이븐│S급 센티넬│78%↑│안정
 

대지를 진동시키던 괴물의 몸체가 마침내 무너져 내렸다. 초록빛 에너지가 퍼지는 곳마다 독성 안개가 걷히고, 세르하의 식물들이 만들어낸 산소가 대기를 정화했다. 거대한 S급 마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은 액체가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았다. 애쉬와 레이븐의 그림자가 거대한 마물의 심장부를 관통한 채 얽혀 있었다.

마지막 힘을 다해 방사 가이딩을 완성한 세르하의 몸이 힘없이 흔들렸다. 연핑크빛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리고, 손끝에서 마지막 초록빛이 산란하듯 흩어졌다.

"해냈어..."

헥스가 물의 장벽을 거두고 가장 먼저 세르하에게 다가왔다. 그의 금색 눈동자에 담긴 걱정이 이제는 안도로 바뀌었다.

"무모했어. 하지만... 네 덕분이야."

반이 투명화를 풀고 나타나며 단검을 허리춤에 꽂았다.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우와, 세르하! 네가 없었다면 우린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애쉬와 레이븐은 그들의 그림자를 거두었다. 두 S급 센티넬의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지만, 그들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그럴 필요 없었어. 네 목숨을 걸 가치는 없었다."

레이븐이 차갑게 말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존중이 묻어 있었다.

"흥미롭군. 약해 보이는 꽃이 가장 강한 가시를 품고 있었어."

애쉬가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세르하를 바라보았다.

게이트의 마지막 흔적이 사라지고, 주변에 흩어져 있던 작은 마물들도 소멸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락타리온의 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휴..."

세르하는 그제야 안심한 듯 손을 내렸다. 식물들은 제 할 일을 다했다는 듯 땅 속으로 스러졌다.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머쓱한 듯 웃던 그녀는 문득 눈을 동그랗게 뜨고 레이븐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애쉬...아니, 레이븐, B구역에 큰 일이 일어날 거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PM 10:05│📍락타리온 A구역-게이트 주변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애쉬│S급 센티넬│82%↑│안정
▪️헥스│A급 센티넬│83%↑│안정
▪️반│B급 센티넬│85%↑│안정
▪️레이븐│S급 센티넬│79%↑│안정
 

레이븐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스쳤다. 창백한 피부 위로 그림자가 드리우며 그의 회청색 눈이 차갑게 빛났다. 애쉬와 자신을 혼동하는 일이 빈번해지자 점점 짜증이 쌓이는 듯했다.

"나를 이 자만에 찌든 놈과 혼동하지 마."

레이븐이 비웃듯 말하며 검은 로브를 여몄다. 어깨 위로 그림자가 까마귀 형상으로 일렁였다가 사라졌다.

"까마귀들이 알려줬어. 내 그림자들은 B구역 전체를 감시하고 있으니까."

애쉬는 냉소를 띠며 레이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혼자 감당 못할 만큼 상황이 심각했나 보지? 날 부를 정도였으니."

반이 갑자기 두 S급 센티넬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의 금발이 저녁 바람에 가볍게 흔들렸다.

"어이, 어이! 지금 싸울 때가 아니잖아. 세르하 덕분에 우리 모두 무사하잖아!"

 

헥스가 묵묵히 세르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그의 금색 눈동자가 따스하게 빛났다.

"일단 돌아가자. 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레이븐은 흥미를 잃었다는 듯 등을 돌려 어둠 속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발걸음마다 그림자가 일렁였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그 때는 또 네 가이딩이 필요할지도 모르지."

애쉬는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가려는 듯 반대편으로 향했다. 그의 잿빛 눈이 세르하를 마지막으로 훑었다.

"흥미로운 능력이었어. 어쩌면... 너도 쓸모가 있을지도."

헥스와 반은 세르하의 양쪽에 서서 그녀를 부축했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더욱 선명해졌고, 게이트의 잔재가 완전히 사라진 자리에는 세르하의 작은 꽃들만이 남아 조용히 피어나고 있었다.

 

"헥스..."

세르하는 피곤한 미소를 지으면서 두 사람의 팔에 몸을 기댔다.

"나, 딸기 케이크..."

📍락타리온 A구역-게이트 주변→비밀 상점 방향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헥스│A급 센티넬│85%│안정
▪️반│B급 센티넬│87%│안정
 

헥스의 금색 눈동자가 달빛 아래 부드럽게 빛났다. 그의 단단한 팔이 세르하의 작은 몸을 더 안정적으로 지탱했고, 그녀의 연핑크빛 머리카락이 그의 어깨에 살짝 닿았다.

"딸기 케이크."

그가 평소보다 훨씬 부드러운 목소리로 되풀이했다. 무뚝뚝한 얼굴에 미소가 깃들었다.

게이트의 혼란은 이제 멀어져 가고, 락타리온의 밤은 다시 평화를 찾아갔다.

"만들어 줄게. 오늘 밤엔 그것보다 먼저 휴식이 필요해."

반은 다른 쪽에서 세르하를 부축하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푸른 눈이 장난기 어린 빛으로 반짝였다.

"헥스가 만든 딸기 케이크라니! 이건 정말 특별 대우인걸! 나도 한 조각만..."

헥스는 한숨을 내쉬며 반을 노려보았지만, 그 시선에는 평소의 날카로움이 없었다.


 

그들이 비밀 상점을 향해 천천히 걸어갈 때, 도시의 불빛들이 멀리서 반짝였다. 세르하의 몸은 지쳤지만, 그녀의 장밋빛 눈동자는 여전히 희망으로 빛나고 있었다.

"후아암..."

세르하가 하품을 했다. 과도한 능력 사용으로 인한 피로가 그녀를 감싸기 시작했다.

거리의 가로등이 그들의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헥스는 단호하게 결정한 듯 세르하를 안아 올렸다. 그의 움직임은 놀랍도록 부드러웠고, 세르하의 가벼운 몸이 그의 팔에 안겨 흔들림 없이 움직였다.

 

"휴식이 필요해."

헥스는 세르하를 품에 안은 채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호흡이 조용히 그녀의 머리카락을 스쳤다.

"오늘 네가 해준 일은... 정말 대단했어. A구역과 B구역 모두 네게 빚을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반이 걱정스레 세르하의 창백해진 얼굴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난 먼저 가 있을게. 상점이 무사한지도 봐야겠어."

반이 가볍게 손을 흔들며 앞서 걸어갔다.

 

락타리온의 밤하늘에 별들이 점점 더 선명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불현듯 핑크색 빛이 반짝였다. 세르하의 폰에서 알림이 울렸다.

"우응... 뭘까..."

세르하는 헥스의 팔에 안긴 채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액정 화면을 바라보았다.

📍락타리온 A구역-거리→비밀 상점 방향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헥스│A급 센티넬│83%│안정
 

어둠이 깃든 거리를 걸으며 헥스의 품에 안긴 세르하의 연한 장밋빛 눈동자가 휴대폰 화면에 반사되어 은은하게 빛났다. 그녀의 작고 하얀 손가락이 피로에 떨리면서도 화면을 향해 움직였다. 알림음이 울린 메시지는 SG센터에서 온 공지였다.

 

[SG센터(@SGCenterOfficial) : 금일 B구역에서 발생한 S급 게이트에 대응해주신 모든 센티넬과 가이드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공기 정화와 가이딩 지원에 힘써주신 세르하 님께 특별 보상이 지급될 예정입니다. 상세 내용은 내일 센터에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센터에서..."

세르하가 작게 중얼거리며 화면을 터치했다. 그녀의 핑크빛 머리카락이 헥스의 팔에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그 때 또 다른 알림이 울렸다.

[레이븐(@Raven) : 오늘 도움 받았다. 빚은 갚는다.]

 

헥스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레이븐이 직접 메시지를 보내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레이븐이... 메시지를..."

세르하의 눈꺼풀이 무거워지며 그녀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휴대폰이 그녀의 작은 손에서 미끄러지려 했지만, 헥스가 재빨리 받아 그녀의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그 사람이 메시지를 보내다니 정말 희귀한 일이지. 네가 오늘 해 준 일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야."

헥스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뚝뚝했지만, 그의 금색 눈동자에는 따뜻함이 깃들어 있었다. 비밀 상점이 점점 가까워졌고, 거리의 소음은 점점 줄어들었다.

"딸기... 케이크..."

세르하가 꿈결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머리카락에서는 은은한 꽃향기가 번졌다.

"약속했으니까. 내일 아침에."

헥스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의 팔에 안긴 세르하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밤의 락타리온은 다시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지만, 오늘의 사건은 분명 두 구역 사이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헥스가 비밀 상점에 도착했을 즈음에 세르하는 고른 호흡으로 잠들어 있었다.

📍락타리온 A구역-비밀 상점
🗓️Y력 777년 1월 10일 토요일
▪️헥스│A급 센티넬│83%│안정
 

비밀 상점의 계단을 오르는 헥스의 발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의 숙련된 움직임은 품에 안긴 세르하의 숙면을 방해하지 않았다. 세르하의 핑크빛 머리카락이 그의 팔에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그녀의 얼굴은 평화롭게 잠든 천사 같았다.

 

헥스는 단호하게 결정한 듯 세르하를 안아 올렸다. 그의 움직임은 놀랍도록 부드러웠고, 세르하의 가벼운 몸이 그의 팔에 안겨 흔들림 없이 움직였다.

"휴식이 필요해."

헥스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뚝뚝했지만, 그 낮은 톤에는 따스함이 담겨 있었다. 3층에 도달한 그는 한 손으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허브와 식물의 은은한 향기가 그들을 맞이했다. 방 안은 놀랍도록 정돈되어 있었고, 창가에는 다양한 종류의 화분들이 질서정연하게 놓여있었다. 그 중에서도 세르하가 준 화분이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자리했다.

 

헥스는 세르하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창문으로 스며드는 달빛이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었다.

헥스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허리춤에서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냈다.

"푹 자거라. 오늘 네가 없었다면..."

그는 말을 끝마치지 않고 창가로 향했다. 달빛이 그의 은발을 은색으로 물들였다. 그는 작은 분무기를 집어들어 화분들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방을 나와 부엌으로 향했다. 물을 끓이고 허브를 찾아 차를 준비했다. 무언가를 더 생각하던 그는 시선을 창가에 놓인 작은 화분으로 돌렸다. 세르하가 선물한 희귀한 블루벨이 조용히 피어 있었다.

헥스는 물뿌리개를 들어 조심스럽게 화분에 물을 주었다. 물방울이 식물 잎사귀에 닿을 때마다 은은한 빛을 반사했다. 무뚝뚝한 표정 아래 숨겨진 미소가 그의 입가에 머물렀다.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그의 목소리는 속삭임보다도 작았지만, 그 진심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잠든 세르하의 핑크빛 머리카락에 달빛이 내려앉았고, 그녀의 숨소리는 방 안의 정적과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오늘의 사건, S급 게이트, 독성 안개, 그리고 그것을 정화한 세르하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많은 센티넬들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헥스는 자신의 금빛 눈동자를 꽃에서 떼지 못한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continue

 


 

팅글에 이식된 그림자의 영역입니다!(이하 그영)

 

먼저 업데이트된 건 크랙이지만, 크랙 그영은 좀 더 긴 플레이 중이라 엔딩까지 한참 남았어요.

팅글 그영도 아니나 다를까 환도살 때처럼 점점 더 스토리가 막장으로 흘러가길래 대충 마무리했으므로 먼저 맛보기로 올려봅니다.

 

여기서의 세르하는 제가 크랙 그영에서 하던 페소 옵션과 환도살에서 하던 페소 옵션을 다 합쳤어요.

하프(센티넬+가이드)로 한 이유는 사실 가이드만 하면 전투에 참여할 수 없으니까...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능력인데 의외로 도움이 되는(?) 초능력을 부여해 주고 싶어서 그나마 급이 낮은 C급 센티넬을 선택했고, S급 가이드인 이유는 헥스의 속을 웰던 숯검댕이로 까맣게 태워 주기 위해서입니다.

근데 하프로 하니까 {user} 본인의 가이딩 수치까지 눈에 보이잖아요? 이게 또 재미 요소더라구요.

 

팅글에서는 기억력 및 막장화 이슈로 하렘 전개가 빡세질 것 같아서, 아예 노선을 틀어 헥스의 페어지만 락타리온에 S급 가이드가 {user} 한 명 뿐이라서 다른 센티넬들의 가이딩도 책임져 줘야만 하는 상황으로 가 보기로 했습니다.

약간 NTR스러운...? 그나마 애쉬 때문에 제대로 끝맺음하진 못했지만...

제법 맛깔나는 설정이라 나름 마지막 순간까지 재밌게 플레이하긴 했어요.

 

참고로 그영에는 상단 코드블록에 시계(현재 시각) 정보도 나와 있는데,

플레이하다 보니 별로 시간이 중요하지도 않고 또 Ai가 시간 계산을 제대로 못하길래(분명 시계는 한낮인데 서술로는 저녁노을이 지고 있다느니 밤에 별이 반짝인다느니, 현재 시각이 그다지 상황에 반영되지 않더군요. PM 11시 59분에서 PM 12시(자정이 아닌 정오💦)로 넘어가기도 하고... 팅글 크랙 둘 다 그랬어요), 로그 정리할 때 시계 정보는 싹 다 그냥 뺐습니다.

 


크랙 :: 세르하 유스카✨Serha Jouska
구(久) 뤼튼 :: 세르하의 환상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