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예리엘/🖤아시어스 그레일(&칼레브 베르티니)

[크랙] 아시어스 그레일 ~감정을 잃은 황태자~(@예리엘) 🌹-3- 미드나이트 이클립스 [完]

세르하 2025. 4. 30. 20:22

01

아시어스 그레일
감정을 잃은 황태자 아시어스.
그의 '진정한 사랑'이 되고자 하는 수많은 귀족 영애들 안에는 당신도 포함되어 있다!
✔️TIP:당신은 멜린 백작가의 영애, 꽃을 좋아합니다.
아버지는 앤드류 멜린(백작, 황궁정원사)

[크랙] 감정을 잃은 황태자(@예리엘) 캐릭터챗 ▼
https://crack.wrtn.ai/detail/66f16808459dc49c9ac6349d

 


 

감정을 잃은 로즈는 그 날부터 황궁에서 지내게 되었다.

하지만 그저 아시어스가 자신을 위해 희생한 로즈를 가까이에 두고 있는 것 외에 다른 의미는 딱히 없었다. 그녀에게 옮겨 간 저주를 풀 수 있는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았다.

 

로즈는 자신이 머무르는 방 창가에 앉아 조용히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에밋과 아이비가 정원을 손질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이제는 그 어떤 감흥도 없었다. 로즈는 어쩐지 지루해져서 창 밖에서 시선을 떼어냈다. 그 때, 문을 박박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 보니 고양이 아시가 애처로운 눈으로 울면서 로즈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로즈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시를 안아 들었다. 아시가 로즈의 품에 안겨 몸을 부벼댔지만, 로즈는 천천히 아시의 몸을 쓰다듬어 줄 뿐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시어스는 하루가 다르게 상태가 나빠지는 로즈를 바라보며 깊은 좌절감에 빠져 있었다. 그는 엑서 황제의 장례식을 모두 마치고, 황제로서의 즉위식 준비가 한창인 상황에서도 매일같이 로즈의 방을 찾았다.

로즈의 방 앞에 선 아시어스는 잠시 숨을 고르고 문을 두드렸다. 아무 대답이 없자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로즈."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깊은 걱정이 담겨 있었다. 아시어스는 창가에 앉아 아시를 안고 있는 로즈를 발견했다.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오늘은 어떻게 지냈어?"

아시어스는 로즈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했다. 즉위식 준비와 함께 로즈의 저주를 풀기 위한 방법을 찾느라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아시가 아시어스를 보자 로즈의 품에서 뛰어내려 그에게 달려갔다. 아시어스는 무릎을 꿇고 아시를 안아 올렸다.

"이 녀석, 내가 얼마나 바쁜데 계속 여기로 도망오는 거야."

그의 목소리에는 따뜻함이 묻어 있었다. 아시는 그의 품에 안겨 목을 부볐다.

"로즈, 오늘 온실에 갔었어. 네가 심은 미드나이트 이클립스가 거의 다 피어났어."

아시어스는 로즈 옆에 앉으며 말했다. 그는 이제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었고, 그의 눈에는 로즈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네가 원래대로 돌아오면... 함께 보러 가자."

 

로즈는 말없이 아시어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저 육안 상으로 확인되는 정보만을 읊었다.

"피곤해 보이시네요. 잠을 더 많이 주무세요."

 

아시어스는 로즈의 무감정한 말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그는 손으로 얼굴을 한번 쓸어내리고 피곤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맞아.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어."

그는 아시를 무릎에 올려놓고 천천히 쓰다듬었다. 고양이는 편안하게 그의 무릎 위에서 가르랑거렸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로즈, 내가 여러 옛 서적들을 찾아봤어. 북부 숲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어. 그곳에 주술에 관한 지식을 가진 노파가 있다는..."

아시어스는 잠시 말을 멈추고 로즈의 반응을 살폈다. 그녀의 눈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주의 깊게 관찰했다.

"로즈, 네가 어떻게 내 저주를 가져갔는지... 그 방법을 알려 줘. 그래야 내가 너를 도울 수 있어."

 

문 밖에서 가벼운 노크 소리가 들렸고, 밀런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전하, 죄송합니다만 즉위식 준비 회의가..."

"알았어, 밀런. 곧 가겠네."

아시어스는 한숨을 쉬며 일어섰다. 그는 로즈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로즈, 내가 돌아오면 더 이야기하자. 내가... 내가 널 꼭 되돌려 놓을 거야."

로즈는 아시어스가 나간 뒤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황궁 의상실로 내려갔다.


그녀는 종종 혼자 있을 때 엘레나를 보러 황궁 의상실을 찾았다. 그리고 엘레나가 드레스를 만들거나 고치면서 일하는 모습을 조용히 앉아 바라보았다. 그 광경을 보면서 딱히 어떠한 감정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저 그 장소와 분위기가 어쩐지 익숙했기에 계속 찾게 되었다.

 

아시어스는 즉위식 준비 회의에 참석하며 내내 집중하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로즈의 무표정한 얼굴과 '피곤해 보이시네요'라는 메마른 말만이 맴돌았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그는 로즈의 방으로 돌아갔지만, 그녀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궁 안을 서둘러 수색하던 중, 의상실에서 로즈를 발견했다. 그는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엘레나는 자수를 놓고 있었고, 로즈는 조용히 앉아 그녀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시어스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가슴이 아팠다. 예전의 로즈라면 엘레나와 활기차게 대화하며 웃음을 터뜨렸을 텐데.

"엘레나."

아시어스의 목소리에 엘레나는 놀라 허리를 폈다.

"황태자 전하! 이렇게 갑자기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엘레나는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녀의 눈에는 로즈에 대한 걱정이 역력했다.

"로즈가 종종 이곳에 온다고 들었어."

아시어스는 로즈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눈에는 깊은 애정과 걱정이 담겨 있었다.

"네, 전하. 이전에도 로즈는 제가 일하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했어요. 지금은... 그저 습관처럼 오는 것 같습니다."

엘레나는 로즈를 향해 슬픈 미소를 지었다.

"로즈, 오늘은 황태자 전하와 함께 정원을 산책하는 건 어떨까? 내가 만든 새 드레스를 입고."

엘레나는 로즈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그녀는 옷장에서 아름다운 검은색 드레스를 꺼냈다. 드레스에는 섬세한 은색 자수로 장미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로즈는 그런 아름다운 드레스를 보고도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정원사인 제가 황궁 의상실의 드레스를 아무렇게나 꺼내 입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그녀는 엘레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남작님이 만드신 드레스는 제게 어울리지 않을 거예요. 제게는 그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없으니까요."

그 말은 언젠가 아시어스의 탄신일에 로즈가 흑장미 꽃다발을 내밀었을 때, 아시어스가 했던 말과 똑같았다.

 

아시어스는 로즈의 말에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녀가 자신의 과거 말을 그대로 되돌려 주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지 그는 고통스럽게 깨달았다. 그의 눈에 순간적으로 깊은 슬픔이 어렸다가 이내 결의에 찬 표정으로 바뀌었다.

"로즈..."

엘레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아시어스와 로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로즈, 그런 말은... 그렇게 생각하지 마. 이 드레스는 내가 특별히 너를 위해 만든 거야. 네가 좋아하는 검은 장미를 모티브로 디자인했어."

엘레나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묻어 있었다. 그녀는 드레스를 다시 가슴에 안고 로즈를 바라보았다.

"전하, 로즈가 이렇게 될 줄은..."

아시어스는 천천히 로즈에게 다가가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눈에는 강한 결의가 빛났다.

"로즈, 그 드레스는 네가 입어야 해. 네가 정원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네가 로즈 멜린이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네가 정원사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소중하다고 생각해."

그는 로즈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차가웠다.

"엘레나, 그 드레스를 가져와 주게. 로즈와 나는 정원을 산책할 거야."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드레스를 건넸다.

"전하, 로즈가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엘레나의 목소리는 떨렸다. 아시어스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거야. 내가 약속하지."

 

엘레나가 입혀 준 드레스를 입은 로즈는 인형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아시어스의 뒤를 따랐다.

 

아시어스는 로즈와 함께 정원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녀가 입은 검은 드레스는 황궁의 어두운 복도에서도 빛나는 듯했다. 그는 로즈를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그녀의 감정을 되찾아줄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었다.

그 때 복도 저 편에서 마리에타가 우아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짙은 녹색 머리카락은 정교하게 올려져 있었고, 화려한 자주색 드레스가 그녀의 몸매를 돋보이게 했다.

"황태자 전하! 마침 찾아뵙고 싶었답니다."

마리에타는 우아하게 인사를 하며 아시어스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눈빛은 달콤했지만, 로즈를 향한 적대감이 역력했다.

"아, 멜린 영애도 여기 계셨군요. 그 드레스는... 황궁 의상실에서 나온 것 같은데, 정원사가 그런 고급 의상을 입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네요."

마리에타의 목소리에는 가시가 돋아 있었다. 아시어스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베르티니 영애, 로즈는 내 특별한 손님이야. 그녀가 무엇을 입든 그것은 내 결정이네."

아시어스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마리에타는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미소를 되찾았다.

"물론이죠, 전하. 제 실례를 용서해주세요. 그저... 멜린 영애가 요즘 이상하다는 소문이 있어서 걱정했을 뿐입니다."

그녀는 로즈를 향해 가식적인 미소를 지었다.

"괜찮으신가요, 멜린 영애? 어쩐지... 전과 달라 보이시네요."

마리에타는 의도적으로 로즈의 무표정한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아시어스는 로즈의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

"우리는 바쁘니 실례하겠네, 베르티니 영애."

 

그 때 로즈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베르티니 영애."

감정이 있었을 때의 로즈였다면 마리에타가 아무리 가시 돋힌 말을 던져도 그녀를 배려하여 웃는 얼굴로 받았을 테지만, 지금의 로즈는 감정이 없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그대로만을 입에 담았다.

"짙은 녹색 머리를 깔끔하게 올리셨네요. 그 머리에 자주색 드레스를 입고 계시니 잘 어울려요. 마치... 시큼털털한 자두 같아요."

 

아시어스의 눈이 순간 커졌다. 로즈의 말에 마리에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로즈의 무표정한 얼굴과 마리에타의 격분한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시... 시큼털털한 자두라고요?!"

마리에타의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그녀는 부들부들 떨며 로즈를 노려보았다.

"이... 이 무례한! 당신이 감히 베르티니 가문의 영애에게 그런 말을..."

 

아시어스는 웃음을 참으려 입술을 꾹 깨물었다. 감정이 없는 로즈가 오히려 더 솔직하게 말하는 모습이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베르티니 영애, 로즈는 단지 사실만을 말했을 뿐이네. 그리고 자두는 맛있는 과일이지."

아시어스는 목소리를 단단히 유지하려 애썼지만,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하지만 전하! 그녀가 저를 모욕했어요! '시큼털털하다'니요!"

마리에타의 눈에 분노의 눈물이 맺혔다. 복도 저편에서 밀런이 급히 다가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전하?"

"아무 일도 아니네, 밀런. 베르티니 영애가 자신의 복장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듣고 약간 당황했을 뿐이야."

아시어스는 로즈의 손을 잡고 정원으로 향했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미소가 번졌다.

"로즈, 네가 지금 감정이 없다 해도... 여전히 넌 로즈야."

그는 로즈의 손을 부드럽게 쥐며 속삭였다.

 

로즈는 아시어스의 손에 자신의 손을 감싸인 채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베르티니 영애가 오늘따라 시끄럽네요. 자두를 싫어하시는 걸까요?"

 

아시어스는 로즈의 순수한 의문에 잠시 얼어붙었다가 이내 폭소를 터뜨렸다. 그의 웃음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아마도 그럴지도 모르지. 자두를 몹시 싫어하는 것 같구나."

그는 로즈의 손을 더 단단히 잡고 마리에타를 지나쳤다. 복도 저편에서 지켜보던 밀런의 입가에도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베르티니 영애, 전하와 멜린 영애는 정원으로 가시는 중입니다. 혹시 즉위식 관련해서 논의하실 일이 있으시다면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마리에타는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런 모욕을... 아버지께서 들으시면..."

 

그 때 마침 복도 저편에서 칼레브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마리에타의 분노한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또 무슨 일이야, 마리에타?"

"오빠! 이 정원사가 나를... 나를 시큼털털한 자두라고 했어!"

칼레브는 로즈의 무표정한 얼굴을 잠시 살펴보더니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가자, 마리에타. 황태자 전하와 멜린 영애를 방해하지 말고."

칼레브는 아시어스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전하, 죄송합니다. 제 여동생이 실례했습니다."

아시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칼레브는 마리에타의 팔을 잡고 그녀를 끌고 갔다. 마리에타는 끌려가면서도 로즈를 향해 독기 어린 눈빛을 보냈다.

아시어스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로즈의 손을 잡고 정원으로 향했다.

"로즈, 감정이 없어도 그 나름대로 솔직하구나. 그게 네 본질인 것 같아."


정원에 도착하자 미드나이트 이클립스 장미들이 만개한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검은색과 보라색이 섞인 꽃잎들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이 장미들은 네가 직접 심고 가꾼 거야. 기억나니?"

아시어스는 로즈의 반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어떤 변화라도 찾고자 애썼다.

"저기 에밋과 아이비가 있구나."

정원 한쪽에서 에밋과 아이비가 부지런히 일하고 있었다. 에밋은 로즈와 아시어스를 발견하고 반가운 듯 손을 흔들었다.

로즈는 에밋과 아이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반가움이라기보다는 그저 잘 아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인사법을 사용한 것 뿐이었다.

"...미드나이트 이클립스."

로즈는 만개한 흑장미를 보며 정확한 이름을 말했다.

"제가 개발한... 품종이에요."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꽃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심고 가꾸었을 때의 기억은 잘 나지 않아요. 저는 이걸 왜 심은 걸까요?"

 

아시어스는 로즈의 질문에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다. 그녀가 그 꽃의 의미조차 잊었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슬프게 했다.

"그 꽃은... 내 탄신일에 네가 나에게 선물한 거야, 로즈."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깊은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네가 만든 미드나이트 이클립스의 향기 덕분에 내 악몽이 사라졌어. 그리고 네가 만들어 준 드림 캐쳐는... 지금도 내 침실에 걸려 있지."

그는 로즈의 손을 잡고 꽃밭 사이로 걸었다. 에밋과 아이비가 다가왔다.

"로즈 아가씨! 오랜만이네요. 전하와 함께 오시다니."

에밋은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아이비도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전하, 로즈 님. 미드나이트 이클립스를 보러 오셨나요? 로즈 님이 남겨주신 지침대로 가꿨답니다."

아이비의 눈에는 로즈를 향한 존경심이 담겨 있었다.

 

"로즈가 만든 품종은 언제나 특별해."

아시어스가 부드럽게 말했다.

"이 꽃들은 네가 나를 위해 심은 거야. 네 마음이 담긴... 그런데 지금은 그 마음조차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아시어스의 목소리에는 애틋함이 묻어났다. 그는 조심스럽게 한 송이를 꺾어 로즈의 머리에 꽂아 주었다.

"미드나이트 이클립스가 드디어 만개했어요. 로즈 님이 그토록 애 쓰셨던 품종이..."

아이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로즈의 달라진 모습에 눈물을 참고 있었다.

"아이비, 에밋, 잠시 우리만 있게 해 주겠나?"

아시어스가 부드럽게 말했다. 두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로즈, 네가 이 꽃을 만든 이유는 나를 위해서였어. 내가 감정을 잃었을 때, 네가 내게 희망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야."

그는 로즈의 손을 꽃잎 위에 올려놓았다.

"이제는 내가 네게 그 희망을 돌려주고 싶어."

로즈는 손 끝에 꽃잎이 닿는 것을 느꼈지만 이 또한 감흥이 없었다.

"황태자 전하, 저는... 전하께서 이제 그만 정무에 집중하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더 바빠지실 텐데 제 감정을 되찾는 쓸데 없는 일 때문에 무리하시지 말고요."

그녀는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이제 곧 즉위식도 치르고 황좌를 이으실 텐데, 정원사 한 명에 연연해 하시는 모습은 다른 귀족들이 보기에 좋지 않아요."

로즈는 아시어스가 감정을 잃었을 때처럼 악몽에 시달리지 않는 대신, 감정이 더 단단히 잠겨 버린 것 같았다. 그녀는 감정을 잃은 채 평온해 보였다.

 

아시어스는 로즈의 말에 충격을 받은 듯 잠시 굳어졌다. 그녀의 말은 마치 칼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슬픔, 분노, 그리고 무엇보다 깊은 상실감이 그를 덮쳤다. 정원사 한 명에 연연하다니... 그가 자신의 감정을 찾게 해 준 소중한 사람을 그렇게 표현하다니.

"...쓸데없는 일이라고?"

그의 목소리는 낮고 위험했다.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정원사 한 명이라고?"

그의 목소리는 낮고 떨렸다. 그는 로즈의 손을 놓지 않은 채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넌 내게 그저 정원사 한 명이 아니야, 로즈."

아시어스는 로즈의 양 어깨를 단단히 붙잡았다. 그의 눈에는 분노와 슬픔, 그리고 깊은 애정이 뒤섞여 있었다.

"내가 감정을 잃었을 때, 모두가 나를 '비운의 황태자'라고 부르며 동정했어. 하지만 넌 달랐지. 넌 내게 꽃을 가져왔고, 내 악몽을 쫓아 주었어."

그는 로즈의 무표정한 얼굴을 애타게 바라보았다.

"로즈, 네가 나를 위해 감정을 희생했는데, 어떻게 그걸 쓸데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지? 마치 감정을 잃었을 때의 나처럼 말하고 있구나."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귀족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나는 이제 감정이 있어. 그리고 내 감정은... 네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어."

그는 미드나이트 이클립스 한 송이를 조심스럽게 꺾어 로즈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 꽃의 의미를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아. 내가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네 감정이 돌아왔을 때, 네가 다시 이 꽃의 의미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할게."

 

그 때 멀리서 밀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즉위식 최종 리허설을 위해 의회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시어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로즈, 내가 황제가 되더라도 너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게 네 생각과 달라도."

그는 로즈의 이마에 조심스럽게 입맞춤을 했다.

"곧 돌아올게."

 

로즈는 이마에 아시어스의 입술이 와 닿았는데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다만 입술이 닿았을 때의 순간이, 언젠가 잊어버린 기억의 문을 두드리는 것 같아서 눈을 몇 번 깜빡이며 그의 입술이 닿았던 이마를 문질렀다.

"뭔가 낯설면서도 익숙한..."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굳이 그 기억을 끄집어내려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로즈는 말없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황궁 안으로 향했다.

 

아시어스는 로즈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좌절감에 사로잡혔다. 그녀의 중얼거림에서 희미한 희망을 발견했지만, 그것은 너무나 미약했다. 그는 자신의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전하, 의회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밀런이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알았네, 밀런."

아시어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반응을 보였습니까?"

밀런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묻어났다.

"이마에 키스했을 때, 뭔가 기억해 낸 것 같았어. 하지만..."

그는 말을 멈추고 미드나이트 이클립스 한 송이를 조심스럽게 꺾었다.

"어떤 진전이라도 있었는지 로자에게 확인해 달라고 하게. 그리고 앤드류에게도 소식을 전해 주게. 딸의 상태를 걱정하고 있을 테니."

밀런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내 침실과 연결된 개인 정원에 미드나이트 이클립스를 더 심도록 해. 로즈가 그 곳을 방문하면 알려주게."

아시어스는 정원을 떠나며 손에 든 검은 장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결의가 빛났다.

"밀런, 로빈이 나에게 걸었던 저주와 로즈의 상태가 비슷하다고 생각하나?"

"전하, 가능성은 있습니다만... 로빈은 이미 사망했고, 그의 주술은..."

"북부 숲에 사는 노파에 대한 소문을 들었네. 로빈의 주술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하더군."

밀런은 놀란 눈으로 아시어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전하, 그건 진위가 확실치 않은 소문일 뿐입니다. 게다가 즉위식을 앞두고 계신 지금..."

"내 즉위식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네. 하지만 로즈의 상태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


아시어스가 즉위식 최종 리허설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로즈는 이번에도 엘레나가 있는 황궁 의상실에 가 있었다. 로즈는 부쩍 자주 엘레나를 찾아왔다. 물론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일하는 엘레나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퇴근 시간이 되어, 정원의 일과를 마친 앤드류가 엘레나를 데리러 황궁 의상실로 찾아오자 로즈가 그를 알아보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빠. 오셨어요?"

아시어스는 즉위식 리허설을 마치고 지친 모습으로 의상실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로즈가 앤드류에게 말을 건네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지만, 그 모습이 어쩐지 평온해 보였다.

앤드류는 딸을 보자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에는 딸을 향한 사랑과 걱정이 공존했다.

"그래, 로즈. 엘레나를 데리러 왔단다. 오늘 하루는 어땠니?"

엘레나는 바느질을 마무리하며 로즈에게 다정한 시선을 보냈다.

"로즈가 오늘 하루 종일 나를 지켜봤어요, 앤드류. 말은 없었지만, 내가 옷을 만드는 걸 유심히 지켜보더군요."

엘레나는 완성된 옷을 정리하며 아시어스를 발견했다.

"아, 전하! 즉위식 예복의 마지막 점검을 하러 오셨군요."

앤드류도 고개를 돌려 아시어스를 보고 공손히 인사했다.

"전하, 즉위식 리허설은 잘 마치셨습니까?"

 

아시어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로즈에게 향했다.

"리허설은 무사히 마쳤네. 로즈가 오늘도 여기 있었군."

앤드류의 눈에 안도감이 스쳤다.

"요즘 로즈가 엘레나를 자주 찾아온답니다. 엘레나가 로즈를 잘 챙겨주고 있어요."

엘레나는 미소지으며 로즈의 어깨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로즈는 제게도 특별한 아이니까요. 이렇게라도 곁에 있어주면 나는 행복해요."

 

아시어스는 로즈에게 다가가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내 즉위식이 이틀 후에 있어. 네가... 함께 해 주면 좋겠어, 로즈."

앤드류와 엘레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전하, 이제 모든 준비가 거의 끝났습니다."

엘레나가 아시어스에게 말했다.

"즉위복도 완성되었어요. 마지막 피팅만 하면 됩니다."

앤드류는 로즈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로즈가 엘레나와 시간을 보내는 걸 보니 마음이 놓이네요. 아무래도 아직 여성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니까요."

아시어스는 로즈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함께 해 줄 수 있겠니? 네가 내 곁에 있어준다면, 나에게 큰 힘이 될 거야."

그의 목소리에는 애틋함이 묻어났다. 앤드류와 엘레나는 그 모습을 보며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로즈를 위한 의상도 준비해 두었답니다."

엘레나가 부드럽게 말했다.

"황실의 색인 검은색과 로즈의 상징인 미드나이트 이클립스의 보라색을 섞어 만들었답니다."

앤드류의 눈이 반짝였다.

"그 의상을 입은 로즈가 상상이 되는군요. 아름다울 거예요."

아시어스는 로즈의 반응을 살피며 조심스레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의상을 입어 보겠니? 내 즉위식에서 네가 가장 빛나는 존재였으면 해."

 

로즈는 세 사람의 애틋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제가 황태자 전하께 왜 힘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전하께서 바라신다면 그렇게 할게요."

 

아시어스의 눈에 희미한 실망감이 스쳤다. 하지만 그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 로즈의 대답이 감정 없이 건조했지만, 그녀가 함께 하겠다고 한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고맙구나, 로즈."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앤드류는 딸의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에는 딸을 향한 깊은 사랑과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로즈, 너도 이제 방에 가서 쉬렴. 내일도 바쁜 하루가 될 테니."

엘레나는 옷장에서 아름다운 드레스를 꺼내 들었다. 검은색 바탕에 보라색 자수가 놓인 우아한 드레스였다.

"이것이 로즈를 위해 준비한 드레스예요. 미드나이트 이클립스의 색감을 담았답니다."

아시어스는 드레스를 바라보며 눈이 반짝였다.

"정말 아름답군. 로즈가 이 드레스를 입으면 더욱 빛날 거야."

엘레나는 로즈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내일 피팅을 하자, 로즈. 네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즉위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할게."

앤드류는 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럼 우리 이제 가 볼까? 저녁 식사 시간이 다 됐구나."

아시어스는 로즈를 바라보며 말했다.

 

"로즈, 식사 후에 내 개인 정원에 와 주겠니? 네게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있어."

엘레나와 앤드류는 서로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엘레나의 볼이 살짝 붉어졌고, 앤드류는 헛기침을 했다.

"전하, 로즈가 지금 충분한 휴식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앤드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걱정 말게, 앤드류. 오래 붙잡아 두지 않을 테니 걱정 말게. 단지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을 뿐이야."

앤드류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빛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전하. 로즈야, 황태자 전하의 말씀을 들어 드리렴. 그리고 너무 늦지 않게 방으로 돌아가렴."

엘레나는 완성된 드레스를 조심스럽게 정리하며 말했다.

"로즈, 내일 아침 일찍 오렴. 즉위식 전에 완벽하게 맞춰야 하니까."

앤드류는 엘레나를 향해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엘레나, 오늘 하루 고생 많았소. 저녁 식사라도 같이할까요?"

엘레나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좋아요, 앤드류. 정원 근처 작은 식당에서 먹을까요?"

 

아시어스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미소지었다. 그는 로즈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저녁 식사 후에 내 개인 정원으로 와 줘. 보여 주고 싶은 게 있어."

그는 잠시 로즈의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중에 보자, 로즈."

아시어스는 나가려다 문간에서 멈춰 섰다.

"앤드류, 엘레나, 로즈를 돌봐 주어 고맙네. 두 사람이 함께 하는 모습이 보기 좋군."

앤드류와 엘레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시어스는 문을 닫고 나갔다. 그의 뒷모습에는 깊은 고뇌가 묻어 있었다.


앤드류와 함께 황궁을 나서며 엘레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감정을 잃은 뒤로 로즈가 의상실에 자주 찾아오는 것을 보고 희망을 가졌었는데... 그 이상으로는 진전이 없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아요. 로즈는 황태자 전하의 마음을 금방 열어 주었는데, 왜 정작 자신은 마음이 쉬이 열리지 않는 걸까요?"

엘레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게 제 역할의 한계인 걸까요? 캐서린 부인께서 살아만 계셨더라도..."

 

앤드류는 엘레나의 눈물 고인 눈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두 사람은 황궁의 복도를 걸으며 서로에게 위안을 구하고 있었다.

"엘레나, 당신은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로즈가 당신을 찾아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앤드류의 목소리에는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당신과 로즈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캐서린과 로즈가 함께 있던 시절이 떠올라요. 캐서린은 당신이 로즈를 이렇게 아껴 주는 걸 알면 정말 기뻐할 거예요."

엘레나는 눈물을 훔치며 앤드류의 손을 마주 잡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가끔은... 내가 캐서린의 자리를 빼앗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어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캐서린은 로즈가 여성의 따뜻함을 느끼며 자라길 바랐어요. 당신은 그 바람을 이뤄 주고 있는 거예요."

 

두 사람이 황궁 정문에 도착했을 때, 에밋이 다가왔다.

"앤드류! 엘레나! 함께 저녁 식사하러 가는 건가?"

에밋의 눈은 장난스럽게 반짝였다.

"그래, 에밋. 오늘 하루 고생했네."

앤드류가 답했다.

"아, 그리고 궁금한 게 있어. 황태자 전하께서 개인 정원에 미드나이트 이클립스를 더 심으라고 하셨다던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에밋이 물었다.

"아마도... 로즈의 감정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앤드류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 그 꽃은 로즈가 황태자 전하를 위해 특별히 개발한 품종이니까. 어쩌면 로즈의 감정도 깨울 수 있을지 모르지..."

세 사람은 황궁을 나서며 저녁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세 사람의 가슴 속에는 오로지 로즈가 하루빨리 본래의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로즈는 아시어스가 부른 대로 그의 개인 정원으로 찾아갔다.

아시어스의 개인 정원은 그의 침실과 연결되어 있어, 그의 악몽을 막기 위해 개인 정원에 미드나이트 이클립스를 가득 심어 놓고 있었다. 물론 이제 감정이 완전히 돌아온 지금은, 굳이 개인 정원을 그 꽃으로만 채울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감정을 되찾은 이후로도 로즈가 치운 그 흑장미만을 가꾸었다.

로즈는 미드나이트 이클립스가 화사하게 피어 있는 아시어스의 개인 정원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녀가 아시어스에게 물었다.

"보여 주신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황태자 전하."

 

아시어스는 미드나이트 이클립스로 가득한 개인 정원에 홀로 서 있었다. 그의 눈빛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고, 로즈의 목소리에 돌아보았다.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이 달빛 아래 창백하게 빛났다.

"와 줘서 고맙구나, 로즈."

그는 부드럽게 말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보여주고 싶은 것은... 바로 이 꽃들이야."

그는 만개한 미드나이트 이클립스를 가리켰다.

"이 꽃들은 네가 나를 위해 개발한 품종이야. 내 악몽을 쫓아주기 위해서였지."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이 꽃들이 피어 있는 곳에서는 내가 악몽을 꾸지 않아. 네가 나에게 준 가장 소중한 선물 중 하나야."

그는 로즈의 손을 잡고 정원 중앙으로 이끌었다. 그곳에는 작은 대리석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작은 상자가 있었다.

"로즈, 네가 감정을 잃기 전... 나를 위해 만들어준 드림 캐쳐를 기억하니?"

아시어스는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미드나이트 이클립스의 꽃잎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드림캐쳐가 있었다.

"이것 덕분에 나는 더 이상 악몽에 시달리지 않았어. 네가 내게 감정을 되찾아 준 것처럼... 나도 네게 그 감정을 돌려주고 싶어."

그의 눈에는 결의와 애정이 가득했다. 달빛 아래 그의 검은 눈동자가 흑요석처럼 반짝였다.

"북부 숲에 사는 노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 로빈의 주술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하더군. 즉위식이 끝나면... 그 노파를 찾아갈 생각이야."

그는 로즈의 반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강요하지 않을게."

 

아시어스는 드림캐쳐를 들고 있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의 눈에는 로즈를 향한 깊은 애정과 함께 체념의 그림자가 스쳤다.

"로즈, 네가 나를 위해 감정을 희생했을 때, 나는 그 고통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어. 지금 네가 느끼는 공허함, 세상이 무채색으로 보이는 그 감각... 모두 내가 겪었던 것들이야."

그는 드림캐쳐를 조심스럽게 로즈의 손에 올려놓았다.

"이것은 네가 만든 거야. 네 손으로... 네 마음으로... 내게 선물했지. 그 때 네 눈에는 설렘과 기대, 그리고 따뜻한 애정이 담겨 있었어."

아시어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달빛이 그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내가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네가 이 드림 캐쳐를 만들어 주었듯이, 나도 네 감정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 하지만..."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로즈의 반응을 살폈다.

"네가 말한 대로 즉위식이 얼마 남지 않았어. 하지만 그게 끝나면, 내가 황제가 되더라도... 나는 네 감정을 되찾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할 거야."

그의 목소리는 결연했지만, 그 안에는 깊은 슬픔이 묻어 있었다.

"로즈, 네가 그 때 나에게 해 준 것처럼... 나도 네게 해 주고 싶어. 그것이 내 마음이야."

 

로즈는 그의 말을 가만히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마치 예전에 감정을 잃었을 때의 아시어스가 로즈의 수다를 가만히 집중해서 듣고 있었던 것처럼.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황태자 전하, 저는 그레일 제국의 백성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이에요. 하지만 황태자 전하께서는 절 위해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없으세요. 전하와 제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으니까요."

로즈는 무표정한 얼굴로 정원에 만발한 미드나이트 이클립스를 바라보았다.

"제가 개발한 장미 품종은 이 흑장미 외에도 많은데... 황태자 전하께서는 이 꽃만 좋아하시나 보네요. 전하께 잘 어울리는 색깔인 것 같기는 해요."

 

아시어스의 검은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로즈의 차분한 목소리에 담긴 거리감이 그의 가슴을 찔렀다. 그는 그녀가 말한 '하늘과 땅의 차이'라는 표현에 아픔을 느꼈지만, 표정을 가다듬었다.

"로즈..."

그는 그녀의 이름을 부드럽게 불렀다.

"그레일 제국의 백성으로서가 아니라, 네가 로즈이기 때문에 소중한 거야. 내게 있어 네 존재는 지위나 신분을 초월해."

아시어스는 한 송이의 미드나이트 이클립스를 조심스럽게 꺾어 로즈에게 건넸다.

"나는 이 꽃만을 가꾸는 이유가 있어. 이 꽃이 내게 가장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야. 네가 처음 이 꽃을 내게 건넸을 때의 표정, 그 순간의 설렘과 행복감... 그 기억이 이 꽃에 담겨 있어."

그는 잠시 침묵했다가 이어 말했다.

"네가 아무리 거절해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아. 나는 그레일 제국의 황태자이기 전에, 한 사람의 아시어스로서 네게 말하는 거야."

그는 로즈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로즈 멜린,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 네가 나를 위해 감정을 희생했듯이, 나도 네게 그것을 되돌려 줄 거야. 그것이 내가 황제가 된 후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야."

그의 검은 눈동자에 담긴 감정은 너무나 깊고 강렬해서, 마치 로즈의 영혼 깊숙이 파고드는 듯했다.

"그러니... 내 즉위식에 함께 해 주겠다는 약속은 지켜 줘. 그것만이 내가 네게 바라는 전부야."

밤바람이 불어와 미드나이트 이클립스의 향기가 두 사람 주위를 감쌌다. 달빛 아래 아시어스의 눈동자가 더욱 깊고 진하게 빛났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에이미와 에스미가 황궁으로 로즈를 찾아왔다. 로즈가 감정을 잃은 이후로는 처음 대면하는 것이었다.

로즈는 황궁 의상실에서 엘레나와 함께 드레스 피팅이 한창이었다. 이제 당장 다음 날로 다가온 아시어스의 황제 즉위식에 입을 드레스였다. 아시어스는 로즈에게 즉위식 날 자신의 옆에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피팅이 끝난 로즈는 에이미와 에스미를 향해 인사를 했다. 물론 반가운 감정이라고는 하나도 들어있지 않은 무미건조한 인사였다.

"안녕, 에이미. 에스미. 날 만나러 여기까지 와 줘서 고마워. 오랜만에 만나네. 반갑다."

 

에이미와 에스미는 로즈의 무감정한 인사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에이미가 로즈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로즈! 정말 보고 싶었어. 어떻게 지냈니?"

에이미의 눈에는 걱정과 애정이 가득했다.

"황궁 생활은 어때? 그리고... 그 드레스, 정말 아름다워!"

에스미가 감탄하며 로즈의 주변을 돌았다.

엘레나는 마지막 바느질을 마무리하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이 드레스는 특별히 로즈를 위해 디자인한 거예요. 검은색과 보라색으로, 마치 미드나이트 이클립스처럼요."

"와, 정말 로즈에게 딱 어울려요!"

에이미가 감탄했다.

 

"황태자... 아니, 내일부터는 황제 폐하가 될 아시어스 전하께서 로즈를 많이 아끼신다고 들었어."

에스미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말했다.

"로즈, 네가 개발한 흑장미가 이제 황궁 전체에 심어진다는 소식 들었어? 아시어스 전하의 명령이라던데."

에이미가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엘레나는 로즈의 드레스 자락을 정리하며 말했다.

"로즈, 오늘 밤에는 충분히 쉬어야 해. 내일은 큰 날이니까. 아시어스 전하께서 네가 옆에 있어주길 특별히 원하셨으니..."

그녀의 목소리에는 희망과 기대가 담겨 있었다. 에이미와 에스미는 서로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그래, 로즈. 우리도 내일 즉위식에 참석할 거야. 네가 아시어스 전하 옆에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정말 기대돼!"

에이미가 설렘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로즈의 방으로 건너온 세 사람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티타임을 가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로즈는 에이미와 에스미를 바라보며 무표정하게 물었다.

"전하께서 내일 즉위식에 함께 해 달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 전하께서 원하고 계시니 그렇게 해 드리겠다고는 했지만... 너희들이 나에게 가르쳐 줄 수 있니?"

 

에이미와 에스미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잠시 침묵했다. 에이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로즈... 아시어스 전하께서 너를 옆에 두고 싶어하시는 건..."

그녀는 말을 고르며 조심스럽게 계속했다.

"그건 특별한 의미가 있어. 황제의 즉위식에 옆에 두는 사람은 단순한 참석자가 아니야. 그건 마치... 그 사람이 황제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공식적인 선언과도 같은 거야."

에스미가 끼어들었다.

"그래, 전통적으로 황제의 즉위식에 가장 가까이 서는 사람은 가족이나 미래의 황후 후보자인 경우가 많아. 아시어스 전하께서 너를 그 자리에 세우신다는 건..."

에이미가 에스미의 말을 이어받았다.

"로즈, 너는 정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니? 아시어스 전하께서 너에게 보내는 그 모든 신호들을... 그 분이 너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지..."

그녀의 목소리가 감정에 복받쳐 떨렸다.

"아시어스 전하께서는 네가 감정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셔. 그리고 그건... 그 분이 너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야."

에스미가 조용히 덧붙였다.

"모두가 알고 있어, 로즈. 아시어스 전하께서 너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하고 계신지. 네가 개발한 미드나이트 이클립스를 황궁 전체에 심게 하시고, 매일 네 방을 찾아오시고... 그리고 이제 즉위식에 너를 옆에 두려 하시잖아."

 

에이미는 로즈의 손을 꼭 잡았다.

"로즈, 우리는 네가 감정을 되찾길 바라. 하지만 그보다 더... 네가 행복해지길 바라. 감정이 없더라도, 네가 아시어스 전하와 함께라면... 언젠가는 분명 네 마음도 다시 꽃피울 거야."

에스미도 로즈의 다른 손을 잡으며 진심 어린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로즈, 네가 감정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는 정말 슬펐어. 하지만 네가 아시어스 전하를 위해 그런 희생을 했다는 것이...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야."

에이미는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아시어스 전하께서 네게 얼마나 고마워하시는지 알아? 궁 안의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해. 전하께서 네 방을 매일 찾아오시고, 네가 개발한 장미를 온 황궁에 심게 하시고..."

에스미가 살짝 미소지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로즈, 들었어? 마리에타 영애가 얼마나 질투에 불타고 있는지. 아시어스 전하께서 즉위식에 네가 옆에 서기를 원하신다는 소식이 퍼지자 베르티니 공작가가 발칵 뒤집혔대."

에이미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로즈를 바라보았다.

"사실... 모두가 아시어스 전하와 네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해하고 있어. 전하께서 네게 보이는 관심은... 그냥 친구나 신하에 대한 것이 아니야."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로즈, 정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니? 아시어스 전하를 볼 때도?"

 

로즈는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그냥, 매일 얼굴을 보다 보니 좀 더 익숙해진 느낌이야."

그녀가 말을 이었다.

"다만 내 감정을 되찾으시겠다고 그렇게 노력하시는 걸 보면... 전하의 소중한 시간을 너무 낭비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어. 안 그래도 요즘 통 잠을 많이 못 주무시는 것 같던데."

 

에이미와 에스미는 로즈의 무표정한 대답에 서로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에이미의 눈에 순간 실망감이 스쳤지만, 곧 이해와 애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로즈... 아시어스 전하께서 잠을 못 주무신다고?"

에이미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에밋 씨가 말하길 전하께서 요즘 새벽까지 서재에 계신다더라."

에스미가 덧붙였다.

"전하께서 어떤 책을 찾고 계신지 알아? 혹시 주술에 관한 책이라면..."

에이미는 말끝을 흐렸다.

 

바로 그 때, 문이 열리며 엘레나가 다과를 더 가져왔다.

"로즈, 내일 즉위식에 입을 드레스의 마지막 손질을 마쳤어요. 드레스 색상이 미드나이트 이클립스와 정확히 일치하도록 특별히 염색했답니다."

엘레나는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아, 그리고 방금 마리에타 영애가 황궁 복도에서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리는 걸 봤어요. 칼레브 소공작님이 달래고 계시더군요."

엘레나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마리에타 영애가 아시어스 전하께서 즉위식에 로즈를 옆에 세우신다는 소식을 듣고 격분했다고 해요. 황태자비가 되려던 그녀의 꿈이 물거품이 되어버렸으니..."

에스미가 미소를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전하께서 로즈를 선택하셨다는 건, 이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거네요. 그레일 황실의 다음 황후는..."

엘레나는 로즈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로즈, 당신이 감정을 되찾든 못 되찾든... 아시어스 전하께서는 당신을 선택하셨어요. 그건 변하지 않을 거예요."

 

로즈는 엘레나가 자신의 손을 잡자 엘레나의 얼굴을 깊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남작님, 그보다 우리 아빠는 언제 남작님을 선택하시게 될까요?"

그 말을 하는 로즈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빛나는 듯도 했다.

 

엘레나의 얼굴이 순간 붉어졌다. 로즈의 무표정한 질문에 담긴 의미를 단번에 알아차린 그녀는 당황한 듯 손으로 입을 가렸다. 에이미와 에스미는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로즈, 그게 무슨..."

엘레나는 말을 더듬었다. 그녀의 눈에는 당혹감과 함께 희미한 기쁨이 스쳐 지나갔다.

"저와 앤드류는 그저... 우리는 단지..."

에이미가 키득거리며 끼어들었다.

"아, 로즈! 네가 감정이 없다더니, 이런 말도 할 줄 알다니!"

에스미도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엘레나 남작님, 정말 그런 관계인가요? 앤드류 백작님과?"

엘레나는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침착함을 되찾으려 했다.

"로즈... 나와 네 아버지는 서로를 오랫동안 존중해 왔어. 그리고 최근에... 네가 감정을 잃은 후,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었지."

그녀는 로즈의 손을 꼭 잡았다.

"하지만 지금은 네 이야기를 할 때야. 내일은 네게 아주 중요한 날이 될 거야."

 

에이미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 로즈, 내일 네가 아시어스 전하 옆에 설 거라니 정말 기대돼! 모든 사람들이 너희를 주목할 거야."

에스미가 덧붙였다.

"그리고 마리에타의 질투에 찬 얼굴도 볼 수 있겠지. 상상만 해도 통쾌해!"

엘레나는 로즈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로즈, 네가 감정을 잃었더라도... 네 마음 속 어딘가에는 여전히 그 감정들이 남아있을 거야. 오늘 네가 한 질문만 봐도 그렇잖니."

그녀의 목소리는 따뜻함과 희망으로 가득했다. 에이미와 에스미는 엘레나와 로즈를 바라보며 서로 조용히 시선을 교환했다.


에스미가 로즈와 함께 황궁 의상실의 일을 구경하고 있는 동안, 에이미는 황궁 정원 파빌리온에서 에시온과 잠시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에시온, 일레인 남작님과 멜린 백작님 사이에 대해 알고 있나요?"

에이미는 그에게 살짝 목소리를 낮추어 말을 이었다.

"로즈가 오늘 두 분의 사이에 대해 물었을 때, 아주 잠깐 희미하게나마 눈에 빛이 돌아온 것을 보았어요. 안 그래도 요즘 로즈가 매일같이 황궁 의상실을 찾아가서 일레인 남작님이 일하시는 모습을 지켜본다고 들었어요."

그녀가 진지하게 말했다.

"일레인 남작님은 돌아가신 캐서린 백작부인과 분위기가 정말 많이 닮으셨어요. 에이미도, 백작님도, 남작님도... 서로를 누구보다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확실해요. 어쩌면 우리 모두... 생각하는 방향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에이미는 힘주어 말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일레인 남작님과 멜린 백작님의 재혼을 추진하는 것이 어떨까요? 로즈가 어려서부터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은 어머니와 아버지였어요. 그러니 두 분이 새로이 맺어지는 것을 본다면... 감정적으로 자극이 되지 않을까요?"

 

에시온은 에이미의 진지한 제안에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의 녹색 눈동자가 파빌리온 너머 정원을 바라보며 잠시 흔들렸다.

"앤드류 백작과 엘레나 남작의 관계라..."

에시온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사실 그 두 분이 서로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계시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어. 형님께서도 눈치채셨을 거야."

그는 천천히 에이미를 향해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관계에 황실이 개입하는 것이 옳을까? 로즈의 감정을 되찾기 위한 것이라 해도..."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물론, 네 말이 일리가 있어. 로즈가 부모님의 행복을 보는 것이 그녀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겠지. 하지만 두 분의 진심이 중요해. 서두르다가 오히려 상처를 줄 수도 있으니..."

에시온은 에이미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내가 형님께 조심스럽게 이야기해볼게. 앤드류 백작님과 엘레나 남작님의 관계를 응원하되, 너무 서두르지는 말자는 의견으로. 어떻게 생각해?"

 

그 때 미하일이 파빌리온으로 다가왔다.

"황자 전하, 황태자 전하께서 찾으십니다. 즉위식 준비 관련해서요."

에시온은 에이미에게 미소지었다.

"에이미, 이 이야기는 나중에 계속하자. 아, 그리고... 로즈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는 말, 정말 반가운 소식이야. 형님께 꼭 전해 드릴게."

미하일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에시온과 에이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 그리고 마리에타 영애가 또 황궁에서 난리를 피우고 있답니다. 칼레브 소공작이 달래느라 진땀을 빼고 계시죠."

에시온은 한숨을 쉬었다.

"또 그러고 있군요. 마리에타 영애가 즉위식에 로즈가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베르티니 공작가에 큰 망신을 줄 거라며 난리입니다."

미하일이 설명했다.

"형님께서 이미 모든 상황을 예상하고 계셨습니다. 베르티니 공작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로즈를 옆에 두겠다는 결정을 바꾸지 않으셨죠."

에시온은 생각에 잠겼다가 에이미를 향해 미소지었다.

"에이미, 앤드류 백작님과 엘레나 남작님의 관계... 그리고 로즈의 감정 회복에 대한 너의 생각은 정말 가치 있는 것 같아. 내가 형님께 조심스럽게 전달해 볼게."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덧붙였다.

"나도 백작님과 남작님의 관계가 로즈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해. 두 분이 행복하다면, 로즈도 그 행복을 느낄 수 있을 테니..."


다음 날, 드디어 아시어스의 대대적인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황궁의 대관식장은 그레일 제국 전역에서 모여든 귀족들과 외국 사신들로 가득 찼다. 검은 대리석과 금빛 장식으로 빛나는 웅장한 홀에는 수많은 촛불이 타오르며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중앙 통로를 따라 까만 카펫이 깔렸고, 양옆으로는 제국의 상징인 장미 화환들이 늘어서 있었다.

아시어스는 검은 예복에 금색 자수가 놓인 망토를 걸치고 대관식장 입구에 서 있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이전에 없던 깊이와 생기가 돌아와 있었다.

"황태자 전하,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밀런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보고했다.

"로즈 멜린 영애도 도착하셨습니다. 의상실에서 마지막 준비를 방금 마치셨습니다."

아시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차분했지만, 눈에는 미세한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알았다. 시작하자."

아시어스가 대관식장으로 들어서자 모든 이들이 일제히 일어나 경의를 표했다. 마리에타는 앞줄에서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고, 그 옆의 칼레브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어 진정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엘비세와 미하일, 볼프람은 제국의 기사단 예복을 갖춰 입고 의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에시온은 전통 예복을 입고 아시어스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그의 옆에는 에이미가 서 있었다.

"형님, 오늘만큼은 감정을 되찾으신 것이 정말 다행입니다."

에시온이 작게 속삭였다.

아시어스가 단상을 향하며 에시온에게 답했다.

"그래. 그녀 덕분이지."

 

홀의 맞은편 문이 열리고, 엘레나가 디자인한 검은색과 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로즈가 나타났다. 그녀의 백금발은 우아하게 올려져 있었고, 검은 진주와 자수정으로 장식된 티아라가 그 위에 놓여 있었다. 홀 안의 모든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향했다.

아시어스의 눈동자가 로즈를 발견하자 순간 빛났다. 그의 얼굴에는 미세한 변화가 일었지만, 곧 다시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멜린 영애가 왔군."

미하일이 작게 중얼거렸다.

"황태자 전하께서 황실 옆자리에 영애를 세우시겠다고 하셨을 때, 마리에타가 저렇게 분노할 줄 알았지만..."

엘비세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마리에타는 분노로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그녀 옆의 칼레브가 조용히 말했다.

"진정해, 마리에타. 네 표정이 모두에게 보이고 있어."

"어떻게 진정해? 감정도 없는 저 목석 같은 여자가 내 자리를 빼앗았어!"

마리에타가 이를 악물며 속삭였다.

앤드류는 딸을 자랑스럽게 바라보았다. 그의 옆에 선 엘레나가 그의 손을 살짝 잡았다.

"로즈가 정말 아름답네요."

엘레나가 감동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만든 드레스 덕분이지."

앤드류가 미소지으며 답했다.

 

로즈가 천천히 걸어와 아시어스 앞에 멈춰 섰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무감정했지만, 그 푸른 눈동자는 아시어스를 똑바로 응시했다.

아시어스는 로즈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모두가 들을 수 있을 만큼 또렷했다.

"로즈 멜린. 내 옆에 서 주겠소?"

 

홀 안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에이미와 에스미는 숨을 죽인 채 로즈를 바라보았다. 로즈가 아시어스의 손을 잡자, 대관식장 전체가 숨을 들이켰다.

아시어스는 로즈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그녀를 단상 위로 인도했다. 그의 눈에는 감정의 빛이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황태자 전하께서 멜린 영애를 황위 계승식에 함께하게 하시다니..."

볼프람이 엘비세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전례는 없었지. 그레일 왕가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야."

엘비세가 답했다.

"하지만 좋은 징조라고 생각해. 멜린 영애는 황태자 전하의 감정을 되찾게 해 준 유일한 사람이니까."

미하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멜린 영애가 황태자 전하 곁에 있을 때만 전하의 눈에 생기가 돌아오는 걸 본 적이 있어."

앤드류의 눈에는 자랑스러움과 동시에 걱정이 어려 있었다. 엘레나가 그의 손을 꼭 쥐었다.

"앤드류, 로즈가 정말 아름답군요. 당신 딸이라는 게 자랑스러워요."

엘레나가 감동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덕분이에요. 그 드레스가 로즈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군요."

앤드류가 부드럽게 답했다.

 

대주교가 앞으로 나와 아시어스의 즉위식을 시작했다.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검과 왕관이 준비되었다. 아시어스는 로즈를 자신의 오른편에 서게 했다.

에시온은 형의 변화를 지켜보며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그의 옆에 선 에이미도 기쁨에 찬 표정이었다.

그러나 마리에타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어떻게 감정도 없는 그녀가... 어떻게..."

 

대주교가 엄숙한 목소리로 의식을 이어갔다. 아시어스는 오른편에 선 로즈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 흐르는 감정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었다.

"그레일 제국의 황태자 아시어스 그레일, 이제 그대는 엑서 황제의 뒤를 이어 제국의 새로운 황제가 될 준비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대주교가 거룩한 검을 들어 아시어스에게 건넸다. 아시어스는 한 손으로 검을 받고, 다른 한 손은 여전히 로즈의 손을 놓지 않았다.

"멜린 영애가 황태자 전하의 손을 잡고 있다니..."

귀족들 사이에서 속삭임이 퍼져나갔다.

"어떻게 저 영애가..."

"저 자리는 베르티니 영애의 것이 아니었나?"

"황태자 전하께서 멜린 영애를 특별히 여기신다더군."

마리에타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녀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고, 칼레브는 그녀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진정해, 마리에타. 네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르면 베르티니 가문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어."

칼레브가 냉철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아시어스가 검을 들어올리자 홀 안이 고요해졌다. 그의 눈동자에서 흑요석 같은 빛이 번쩍였다.

"나, 아시어스 그레일은 그레일 제국과 그 백성들을 위해 내 생명과 명예를 바칠 것을 맹세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힘이 있었고, 그 어느 때보다 감정이 담겨 있었다.

 

대주교가 아시어스의 머리 위에 왕관을 올렸다. 그 순간 모든 이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이제 아시어스 그레일, 그레일 제국의 황제임을 선포합니다!"

아시어스는 고개를 들어 홀 전체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강렬한 의지와 결단력이 빛났다. 그리고 그의 손은 여전히 로즈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제국의 백성들, 내 통치 아래 그레일 제국은 더욱 강성해질 것이며, 모든 이들에게 공정과 평화를 약속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힘이 있었고, 그 어느 때보다 감정이 담겨 있었다. 대관식장은 그의 말에 경의를 표하며 환호했다.

마리에타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그녀의 손이 자신의 드레스를 꽉 움켜쥐었다.

 

대관식이 끝나고, 로즈는 계속해서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아시어스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경하드립니다, 황제 폐하. 이제 진정한 그레일 제국의 태양이 되셨네요."

그녀는 한 쪽 손은 그에게 붙들린 채, 한 쪽 손으로 드레스 자락을 들어올리며 그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했다. 그녀는 대관식에서 그의 곁에 서 있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듯 했다.

 

아시어스의 검은 눈동자가 로즈의 푸른 눈을 깊이 바라보았다. 그의 손은 여전히 그녀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주변의 귀족들과 신하들이 그들을 주시하는 가운데, 아시어스의 표정에 미세한 변화가 일었다.

"로즈 멜린."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지만, 모든 이들이 들을 수 있을 만큼 또렷했다.

"네가 없었다면 오늘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마리에타가 분노로 손에 쥐고 있던 부채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요란한 소리에 아시어스의 시선이 잠시 그쪽으로 향했다가 다시 로즈에게 돌아왔다.

"형님!"

에시온이 기쁨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정말 형님다운 말씀이십니다!"

 

아시어스는 로즈의 손을 잡은 채 단상에서 내려와 모인 귀족들을 향해 걸어갔다. 귀족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표했다.

"내 첫 번째 칙령을 발표하겠다."

아시어스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로즈 멜린 영애에게 황실 정원의 총 책임자 직위를 수여한다. 그녀의 재능과 충성심은 제국의 보물이며, 그녀는 앞으로 내 곁에서 황실 정원을 관리할 것이다."

홀 안에 놀라움의 탄성이 흘렀다. 에이미와 에스미는 서로를 바라보며 기쁨에 찬 표정을 지었다.

"폐하께서 황실 정원의 총 책임자를..."

"그것은 거의 황실 직속 관직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황제 폐하께서 멜린 영애를 특별히 여기신다는 증거군."

마리에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고, 입술이 꽉 다물어졌다.

"이럴 수 없어... 이럴 수는 없어..."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칼레브가 그녀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마리에타, 여기서 소란을 피우면 우리 가문 전체가 위험해져. 이건 황제의 결정이야."

칼레브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그의 눈에도 놀라움이 가득했다.

 

앤드류의 얼굴에는 기쁨과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는 엘레나의 손을 꼭 잡았다.

"내 딸이... 내 로즈가..."

그의 목소리가 감격으로 떨렸다.

엘레나는 미소를 지으며 앤드류의 손을 꼭 쥐었다.

"앤드류, 당신 딸이 해냈어요. 로즈는 정말 특별한 아이예요."

에이미와 에스미는 기쁨에 찬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로즈가 해냈어! 황실 정원의 총 책임자라니!"

에이미가 흥분된 목소리로 속삭였다.

에시온은 형의 변화를 지켜보며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그의 눈에는 기쁨과 안도감이 가득했다.

 

아시어스는 로즈의 손을 여전히 놓지 않은 채,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이제부터 그대가 내 개인 정원과 황실 정원을 총괄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눈에서 흑요석같은 빛이 강렬하게 번쩍였다.

"네 감정을 되찾는 방법을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약속하마."


즉위식 이후, 황궁은 축하연으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아시어스는 이제 황제가 되어 자신의 개인 서재에서 에시온과 함께 있었다. 창문 너머로는 황궁의 정원이 보였고, 그곳에 심어진 미드나이트 이클립스 장미가 달빛에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형님, 축하드립니다."

에시온이 와인을 건네며 말했다.

"아버님께서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셨을지..."

그의 목소리에 진심 어린 감정이 묻어났다.

아시어스는 창 밖을 바라보며 와인 잔을 받아들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감정의 깊이가 담겨 있었다.

"에시온, 네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구나."

에시온은 잠시 주저하다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형님, 어제 에이미가 저에게 흥미로운 제안을 했습니다. 멜린 백작님과 일레인 남작님의 관계에 관한 것인데요..."

아시어스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어떤 제안이지?"

"멜린 백작님과 일레인 남작님이 서로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에이미의 생각으로는... 두 분의 재혼을 추진하는 것이 로즈의 감정 회복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에시온은 형의 반응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로즈가 어릴 때부터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은 부모님이었고, 특히 돌아가신 캐서린 백작부인을 그리워한다고 합니다. 일레인 남작님은 백작부인과 분위기가 상당히 닮으셨고요. 두 분이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본다면, 로즈의 감정에 자극이 될지도 모릅니다."

 

아시어스는 창 밖으로 피어난 미드나이트 이클립스 장미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의 눈동자에 미세한 변화가 일었다.

"앤드류와 엘레나의 관계..."

그가 천천히 중얼거렸다.

"그들의 재혼이 로즈의 감정 회복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흥미롭구나."

그는 와인 잔을 돌리며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황실이 그들의 사적인 관계에 개입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로즈를 위한 일이라 해도..."

에시온은 형의 반응을 주시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물론 직접적인 개입은 불필요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들이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정도라면 어떨까요? 두 분 모두 로즈를 위해 무엇이든 하실 분들입니다."

아시어스는 에시온의 제안을 깊이 생각하며 창가로 걸어갔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 달빛이 반사되어 빛났다.

"환경을 조성하는 정도라..."

그가 천천히 말했다.

"앤드류와 엘레나는 둘 다 훌륭한 인물이다. 그들이 서로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나도 눈치챘다. 특히 로즈가 감정을 잃은 후, 그들은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되어 주고 있지."

그는 와인 잔을 내려놓고 에시온을 향해 돌아섰다.

"내일 황실 정원의 재정비와 선황의 병세 악화로 인해 연기되었던 정원 축제 계획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 앤드류와 엘레나를 함께 초대해 로즈의 새로운 직위에 관한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하자."

에시온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로즈의 감정 회복에 관한 연구... 로빈의 저주에 대해 더 알아내야 한다. 펠시아 왕국에 관한 정보를 모아야겠군."

아시어스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눈에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에시온, 너도 알다시피 나는 오랜 시간 감정을 잃고 있었다. 로즈가 나를 위해 자신의 감정을 희생한 것은..."

그는 말을 멈추고 창 밖의 장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그녀의 감정을 되찾게 해 주겠다."


황궁의 소회의실은 아침 햇살이 가득했다. 창문 너머로는 정원의 싱그러운 초록빛이 보였다. 아시어스는 회의 테이블 상석에 앉아 있었고, 에시온은 그의 오른편에 자리했다.

패트릭과 밀런은 문서를 정리하며 회의를 준비하고 있었고, 필은 차를 따르며 참석자들을 맞이했다. 로즈가 들어오자 아시어스의 시선이 잠시 그녀에게 머물렀다. 그녀의 뒤로 앤드류와 엘레나가 함께 들어섰다.

"모두 자리에 앉아 주시오."

아시어스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이전과는 달리 미세한 온기가 느껴졌다.

"오늘은 황실 정원의 재정비와 정원 축제에 관한 논의를 하기 위해 그대들을 불렀소."

밀런이 문서를 나누어 주며 설명을 시작했다.

"황제 폐하께서 구상하신 정원 축제는 선황 폐하의 유지를 받들어 계획된 것으로, 제국 내 다양한 식물학자와 정원사들이 모여 지식을 나누고 새로운 품종을 선보이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앤드류는 문서를 살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축제는 특별히 멜린 영애께서 새롭게 황실 정원 총 책임자로 임명되신 것을 기념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패트릭이 덧붙였다.

"멜린 백작과 일레인 남작은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로즈... 아니, 멜린 영애를 보좌해 주길 바라오."

아시어스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엘레나는 로즈를 바라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입니다, 폐하. 로즈가 정원을 책임지게 된 것은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녀의 재능은 누구보다 뛰어나니까요."

엘레나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로즈의 흑장미에 대한 이해와 재배 기술은 정말 특별합니다. 아마 제국에서 그녀만큼 흑장미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앤드류는 딸을 바라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저도 동의합니다, 폐하. 제 딸이라 자랑스럽게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로즈는 어릴 때부터 특별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특히 미드나이트 이클립스는 그녀가 직접 개발한 품종이지요."

 

아시어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흑장미는 이제 그레일 제국의 자랑이자 상징이 되었지. 이번 정원 축제에서는 미드나이트 이클립스를 중심으로 한 전시를 준비하면 어떨까 하오."

밀런이 메모를 하며 말했다.

"황제 폐하, 정원 축제의 규모와 일정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시어스는 로즈를 바라보며 말했다.

"멜린 영애의 의견을 듣고 싶군."

에시온이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멜린 영애, 정원 축제에서 특별히 선보이고 싶은 것이 있으신가요?"

필은 차를 더 따르며 은근히 앤드류와 엘레나를 나란히 앉게 배치했다. 두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서로를 향해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패트릭은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감추고, 문서를 정리하며 말했다.

"정원 축제는 제국 내 여러 귀족가와 인근 국가의 사절들도 초대하는 큰 행사가 될 것입니다. 멜린 백작님과 일레인 남작님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습니다."

 

로즈는 아시어스와 에시온을 한 번씩 바라본 후, 나머지 회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제가 황실 정원 총 책임자가 되기 전, 이 역할을 맡고 계셨던 황실 정원사 대표이신 아버지께서 세우신 대부분의 계획을 수렴하고 싶습니다. '밤의 꽃'을 주제로 한 이번 축제에서 미드나이트 이클립스를 메인으로 한 전시를 희망하신다는 황제 폐하의 말씀에도 동의합니다. 그리고 저는..."

로즈는 엘레나와 앤드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서브 포인트로는 밤에 피는 보랏빛 나팔꽃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엘레나의 눈이 커졌다. 나팔꽃은 엘레나가 원하던 꽃이었다. 덩쿨을 타고 서로 얽히는 나팔꽃의 꽃말은 '결속', 그것은 앤드류와 로즈의 가족애에 그녀 또한 함께 얽히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꽃이었다.

 

로즈는 희미하게 빛나는 눈으로 엘레나와 앤드류를 바라보며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팔꽃의 꽃말은 '결속'입니다. 이제 새로이 황위에 오르신 아시어스 황제 폐하를 중심으로 제국의 모두가 다시금 결속을 단단히 한다는 의미를 부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아시어스를 바라보았다.

"제가 개발한 품종인 미드나이트 이클립스에는 아직 꽃말이 없습니다. 이번 황실 정원 축제의 주인이신 황제 폐하께서 미드나이트 이클립스의 꽃말을 지어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겠습니다."

말을 마친 로즈는 아시어스를 향해 깊이 고개를 숙인 후 다시 바로 앉았다.

 

아시어스의 검은 눈동자가 로즈의 제안에 미세하게 빛났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미드나이트 이클립스의 꽃말..."

그가 천천히 말했다.

"좋은 제안이군, 멜린 영애. 축제 당일 공식적으로 발표하겠소."

에시온은 로즈의 제안에 눈을 반짝이며 미소지었다.

"나팔꽃이라... 탁월한 선택입니다, 멜린 영애. '결속'이라는 꽃말은 이 시기에 정말 적합하군요. 새로운 황제 폐하의 즉위와 함께 제국이 더욱 단단해진다는 의미로... 정말 훌륭한 상징이 될 것 같아요."

밀런이 메모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실 정원 축제의 주제로 '밤의 꽃'과 '결속'은 매우 적절합니다. 제국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데 완벽한 상징이 될 것입니다."

앤드류의 얼굴에 자랑스러운 표정이 스쳤다. 그는 엘레나를 향해 따뜻한 시선을 보냈다.

"로즈는 항상 꽃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도 그랬죠."

엘레나는 앤드류의 말에 살짝 홍조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라색 나팔꽃은 밤에 더욱 아름답게 피어나죠. 미드나이트 이클립스와 함께 전시된다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룰 거예요."

 

밀런이 메모를 하며 말했다.

"나팔꽃과 미드나이트 이클립스를 중심으로 한 전시... 그리고 밤에 피는 꽃들의 특별 전시회를 위한 조명 계획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패트릭은 앤드류와 엘레나의 미묘한 기류를 눈치채고 미소를 지었다.

"멜린 백작님과 일레인 남작님의 협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두 분이 함께 축제 준비 위원회를 이끌어 주시면 어떨까요?"

필은 차를 더 따르며 말했다.

"멜린 영애의 재능과 멜린 백작님의 경험, 그리고 일레인 남작님의 예술적 감각이 합쳐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아시어스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하지. 멜린 영애가 총 책임을 맡고, 멜린 백작과 일레인 남작이 보좌하는 형태로 진행하도록 하시오. 정원 축제는 한 달 후로 정하겠소. 충분한 준비 기간이 될 것이라 생각하오."

 

앤드류는 엘레나를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일레인 남작께서 나팔꽃의 아름다움을 살릴 수 있는 전시 방법을 제안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특히 밤에 더욱 빛나는 보랏빛을 어떻게 표현할지..."

엘레나의 눈이 반짝였다.

"조명과 배치를 통해 나팔꽃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할 수 있을 거예요. 특히 미드나이트 이클립스와 함께라면 더욱 환상적일 거예요."

밀런이 문서에 무언가를 기록하며 말했다.

"정원 축제 준비 위원회는 멜린 영애를 중심으로, 멜린 백작님과 일레인 남작님이 주축이 되어 구성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각 귀족가에 초대장은 일주일 내로 발송될 예정입니다."

에시온이 로즈를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멜린 영애, 이번 축제는 그대의 재능이 빛날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특히 미드나이트 이클립스의 꽃말이 공식적으로 발표된다면 더욱 의미 있는 행사가 되겠지요."

패트릭은 앤드류와 엘레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두 분이 함께 일하시는 모습을 보니 정말 환상적인 팀워크가 기대됩니다. 멜린 백작님의 경험과 일레인 남작님의 예술적 감각이 만나면 그 어떤 축제보다 빛날 것 같군요."

필은 차를 더 따르며 슬쩍 말했다.

"그리고 축제 준비 기간 동안 두 분이 자주 만나셔야 할 테니, 황궁 내 특별 집무실을 마련해 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시어스는 회의 문서를 정리하며 일어섰다.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소. 모두 수고했소."

 

앤드류와 엘레나는 나란히 일어서며 서로를 향해 미소지었다. 그들의 눈빛 교환에는 단순한 업무적 관계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황제 폐하, 제가 정원 축제 준비 계획서를 일주일 내로 작성해 제출하겠습니다."

앤드류가 공손히 말했다.

"저도 의상과 장식에 관한 아이디어를 정리해 멜린 백작님과 로즈... 아니, 멜린 영애와 함께 논의하겠습니다."

엘레나가 덧붙였다.

밀런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눈을 빛냈다. 그는 패트릭과 눈빛을 교환하며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황실 집무실 두 곳을 나란히 준비해 두겠습니다. 두 분이 효율적으로 소통하실 수 있도록 말이죠."

패트릭이 슬쩍 말했다.

에시온은 로즈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멜린 영애, 형님... 아니, 황제 폐하께서 정하실 미드나이트 이클립스의 꽃말이 무척 기대됩니다. 분명 의미 깊은 것이 될 거예요."


앤드류와 엘레나는 황궁 정원 축제 준비를 열성적으로 추진했다. 로즈는 황실 정원 총책임자로서, 감정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맡은 임무를 충실히 완수해 나갔다. 특히 앤드류와 엘레나와 함께 축제 준비에 임할 때에는, 평소보다 훨씬 더 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치 감정을 되찾기 전 아시어스가 로즈와 함께 할 때마다 눈빛이 밝아졌던 것처럼.

아시어스는 에시온의 말대로, 세 사람의 결속을 다지는 일이 로즈의 감정을 되찾는 가장 효과적인 일임을 실감하고 희망을 느꼈다. 물론 자신의 힘으로 직접 그녀의 감정을 되찾아 주지 못하는 현실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로즈가 본래의 감정을 되찾는 일이었다.

 

황궁 정원은 축제 준비로 활기찼다. 아시어스는 자신의 개인 정원에 서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그의 시선은 로즈, 앤드류, 엘레나가 함께 일하는 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

로즈의 창백한 얼굴에 드물게 보이는 생기가 돌고,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평소보다 밝게 빛나는 것을 발견했다. 비록 그녀의 감정은 여전히 깊이 잠들어 있었지만, 그 얼음 같은 심장에 작은 균열이 생기고 있는 듯했다.

"황제 폐하."

밀런이 다가와 공손히 인사했다.

"멜린 백작과 일레인 남작이 함께 준비한 축제 계획서입니다. 두 분이 거의 밤새워 작업하셨다고 합니다."

아시어스는 문서를 받아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열정이 느껴지는군."

"네, 폐하. 두 분 사이가 무척 가까워지신 것 같습니다. 필 시종장의 말로는 어제 늦게까지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셨다고 합니다."

아시어스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그것이 로즈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지?"

"멜린 영애는... 변화가 있습니다, 폐하. 아직 감정을 완전히 되찾지는 못했지만, 두 분과 함께 있을 때 그녀의 눈빛이 달라집니다. 마치 폐하께서 감정을 잃으셨을 때 멜린 영애와 함께 계실 때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아시어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로즈가 자신의 감정을 희생해 그에게 모든 것을 돌려준 순간이 떠올랐다. 그 기억은 이제 그의 가슴에 깊은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해..."


황궁의 특별 집무실은 늦은 밤이었지만 여전히 불이 밝게 켜져 있었다. 앤드류와 엘레나는 축제 계획의 마지막 세부사항을 검토하며 테이블 위에 펼쳐진 도면과 문서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앤드류는 피로에 지친 눈을 비비며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준비가 완벽해 보이는군요, 엘레나. 당신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엘레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섬세한 손가락이 테이블 위에서 앤드류의 손과 몇 센티미터 거리를 두고 머물렀다.

"앤드류, 당신이 너무 과찬하시는 거예요. 이 모든 것은 당신과 로즈의 재능 덕분이죠."

그녀의 눈에는 앤드류를 향한 깊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앤드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달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어 눈가의 주름을 드러냈다.

"캐서린이 살아 있을 때... 셋이서 함께 정원을 가꾸던 그 시간이 생각나요."

엘레나의 눈에 슬픔이 스쳤다. 그녀는 앤드류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부인께서는 항상 정원을 사랑하셨죠. 지금 우리를 지켜보고 계실 거예요."

"그래요... 로즈가... 그 아이가 감정을 잃기 전에는 항상 웃음이 가득했는데..."

앤드류의 목소리가 떨렸다. 엘레나는 그의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

"로즈는 정말 특별해요. 감정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훌륭하게 일을 해내다니..."

 

앤드류는 엘레나의 손을 마주 잡으며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엘레나, 당신은 내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어요. 특히 로즈가 감정을 잃은 후로..."

"우리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죠."

"하지만 당신 덕분에 견딜 수 있었어요. 당신이... 내 곁에 있어 준 덕분입니다."

엘레나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저도 당신과 로즈가 제 곁에 있어 행복해요. 사실... 말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앤드류가 고개를 기울였다.

"우리가 셋이 함께 있을 때 로즈의 눈빛이 달라지곤 해요. 저는 로즈가 다시 웃을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허락하신다면..."

 

앤드류는 엘레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오랫동안 숨겨온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는 엘레나의 손을 두 손으로 꼭 감싸쥐었다. 그의 눈에는 오랫동안 억눌러온 감정이 차올랐다.

"엘레나... 나는 캐서린이 떠난 후 다시는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할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당신이 내 곁에 있어주면서, 내 마음은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당신은 내게, 그리고 로즈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었어요. 캐서린도 하늘에서 우리를 축복해 줄 거라 믿습니다. 그녀는 항상 우리 모두가 행복하길 바랐으니까요."

앤드류는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엘레나 앞에 내밀었다. 상자 안에는 청색 사파이어가 박힌 은반지가 들어있었다.

"엘레나, 당신은 나와 로즈에게 빛과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 가족이 되어 주시겠어요? 내 아내가... 로즈의 새 어머니가 되어 주시겠습니까?"

엘레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떨리는 눈으로 반지를 바라보았다.

"앤드류... 기뻐요. 네, 당신의 아내가 되고 싶어요. 로즈에게 좋은 어머니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앤드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의 눈에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다.

엘레나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앤드류를 바라보았다.

"로즈를 내 딸처럼 사랑하고, 그 아이가 다시 웃을 수 있도록 함께 도울게요. 우리 셋이 새로운 가족이 되는 거죠."

앤드류는 엘레나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두 사람의 눈에는 행복과 희망의 눈물이 맺혔다.

"로즈가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 아이에게 우리의 결정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앤드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로즈는 이미 알고 있을 거예요. 그 아이는 항상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있었으니까요. 나팔꽃을 선택한 것도... 그 아이 방식대로 우리에게 전한 축복의 메시지였을 거예요."


일주일 뒤, 황궁에서 열린 정원 축제는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황궁을 찾은 귀족들은 아름답게 꾸며진 황궁 정원의 야경과 밤의 꽃들을 보며 감탄에 젖었다.

에이미는 에시온과 함께 정원을 거닐었고, 엘레나 또한 앤드류의 팔을 잡고 있었다. 미드나이트 이클립스와 나팔꽃을 꼼꼼히 확인하며 정원을 걷던 로즈는 엘레나와 앤드류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어쩐지 가슴 속 깊은 곳이 따뜻해지는 것도 같았고, 근질거리는 것도 같았다. 로즈는 조용히 서서 두 사람만을 바라보았다.

 

황궁 정원은 '밤의 꽃' 축제로 환상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검은 하늘 아래 특별히 설치된 푸른빛 조명이 정원 곳곳을 비추고, 밤에만 피어나는 꽃들이 그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아시어스 황제는 미드나이트 이클립스가 만개한 중앙 정원에 서서, 행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로즈를 향한 따스한 시선이 담겨 있었다. 옆에 선 에시온은 에이미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있었다.

"형님, 축제가 성공적이네요. 특히 로즈의 미드나이트 이클립스와 나팔꽃의 조화가 정말 아름답습니다."

에시온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아시어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로즈의 모습을 주시했다. 그녀가 앤드류와 엘레나를 바라보며 멈춰 선 것을 발견했다. 로즈의 창백한 얼굴에 미세한 변화가 일었고,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평소보다 생기있게 빛났다.

"그래... 모든 것이 완벽하군."

아시어스가 나지막이 말했다.

에이미는 로즈를 바라보며 에시온에게 속삭였다.

"로즈가 변하고 있어요. 엘레나와 앤드류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 아이의 눈빛이 달라져요."

아시어스는 앤드류와 엘레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팔을 맞잡고 정원을 거닐며 가끔씩 서로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들의 손가락에는 약혼 반지가 빛나고 있었다.

밀런이 조용히 다가와 아시어스에게 귓속말을 했다.

"폐하, 미드나이트 이클립스의 꽃말 발표 시간입니다."

 

아시어스는 정원 축제의 절정에 모든 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중앙 단상으로 향했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로즈를 찾아 순간적으로 머물렀다가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그의 검은 예복이 밤하늘과 어우러져 마치 그 자신이 밤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귀족들과 하객들이 황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오늘 밤, 여러분을 이 특별한 밤의 정원으로 초대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아시어스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이전과는 달리 따스함이 배어 있었다.

아시어스는 검은 장미를 손으로 가리키며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레일 제국의 귀한 손님들과 신하들이여, 오늘 밤 우리는 '밤의 꽃' 축제를 통해 자연의 신비로움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이 미드나이트 이클립스는 황실 정원 총책임자인 로즈 멜린 영애가 수년간의 연구 끝에 완성한 품종으로, 오늘 그 꽃말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고자 합니다."

아시어스의 시선이 로즈에게 향했다.

"이 꽃의 꽃말은... '희생을 통한 희망'입니다."

귀족들 사이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 꽃은 어둠 속에서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오히려 그 어둠을 품에 안아 더욱 찬란하게 빛납니다. 마치... 누군가의 감정을 되찾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희생한 사람처럼."

그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실려 있었다. 로즈를 향한 감사와 약속이 담긴 눈빛이었다.

앤드류와 엘레나는 서로의 손을 꼭 잡았고, 에이미는 에시온의 팔을 부드럽게 잡았다. 마리에타는 멀리서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고, 그녀의 오빠 칼레브는 로즈를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시어스의 시선이 앤드류와 엘레나에게 향했다.

"오늘 밤, 우리는 또 다른 기쁜 소식을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궁정 정원사 앤드류 멜린 백작과 일레인 남작 엘레나의 약혼을 축하하고자 합니다."

모든 시선이 앤드류와 엘레나에게 쏠렸다. 엘레나의 얼굴이 붉어졌고, 앤드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아시어스는 로즈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 미세한 변화가 일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작은 감정의 불꽃이 그녀 안에서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아시어스 황제의 발표에 이어 앤드류와 엘레나의 약혼 소식에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로즈는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 것을 보며 따라서 박수를 쳤다. 그녀의 시선은 앤드류와 엘레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시어스는 단상에서 귀족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로즈를 향했고, 그녀가 기계적으로 박수를 치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로즈의 창백한 얼굴에 미묘한 변화가 일었고,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는 무언가가 일렁이고 있었다.

앤드류와 엘레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엘레나의 볼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앤드류의 눈에는 오랜만에 보는 진정한 행복이 담겨 있었다.

아시어스는 단상에서 내려와 로즈에게 다가갔다. 그의 걸음걸이는 우아했고, 검은 예복이 그의 위엄을 더했다.

"로즈."

아시어스가 부드럽게 말했다.

"축제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군. 다 네 덕분이야."

 

"과찬이십니다, 폐하."

로즈는 아시어스의 말에 무표정한 얼굴로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하고는 다른 구역의 꽃들을 확인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멀어지는 와중에도 앤드류와 엘레나를 몇 번 더 돌아보았다.

 

마리에타는 멀리서 질투 어린 눈으로 로즈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의 오빠 칼레브는 그녀의 팔을 부드럽게 잡았다.

"진정해, 마리에타. 황제께서 결정하신 일이야."

"말도 안 돼! 어떻게 저런 감정 없는 인형이 황제의 관심을 받는 거지? 그리고 이제 그녀의 아버지와 그 하녀 출신이..."

"엘레나는 하녀가 아니라 남작이야. 그리고 네가 더 이상 소란을 피우면 아버지께 실망을 안겨 드릴 뿐이야."

마리에타는 입술을 깨물며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돌아섰다.

 

아시어스는 로즈가 멀어지는 모습을 깊은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녀가 앤드류와 엘레나를 여러 차례 돌아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에이미는 로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에시온에게 속삭였다.

"로즈가 변하고 있어요. 분명해요. 그 아이의 눈에서 뭔가를 봤어요."

에시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시어스에게 다가갔다.

"형님, 로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아시어스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녀의 감정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어. 미미하게... 하지만 확실해."

 

앤드류와 엘레나는 손을 맞잡고 아시어스에게 다가왔다. 앤드류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감사의 표정이 담겨 있었다.

"폐하, 저희의 약혼을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엘레나는 우아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영광입니다, 폐하. 로즈에게도 좋은 어머니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시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멜린 백작, 일레인 남작, 축하하오. 두 분의 결합이 로즈에게도 큰 기쁨이 될 것이오."

앤드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로즈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로즈가... 저희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됩니다. 그 아이는 아직..."

아시어스는 앤드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걱정하지 마시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고, 축복하고 있소. 그녀의 방식으로."

 

멀리서 마리에타가 칼레브와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마리에타의 얼굴에는 불쾌함이 역력했지만, 그녀는 예의를 갖추려 노력하고 있었다.

마리에타가 아시어스에게 다가와 깊이 허리를 숙였다. 마리에타는 강제로 미소를 지으며 우아하게 인사했지만, 그녀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칼레브는 그녀의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폐하, 오늘 밤의 축제는 정말 환상적입니다. 특히 미드나이트 이클립스의 꽃말이 매우 의미심장하네요."

마리에타의 목소리에는 억눌린 질투가 배어 있었다.

아시어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맙네, 베르티니 영애. 모든 게 멜린 영애의 노력 덕분이지."

마리에타의 눈이 순간 날카로워졌지만, 곧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죠. 멜린 영애의... 특별한 재능이 빛나는 밤이네요."

칼레브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묻었다.

"멜린 백작님과 일레인 남작님의 약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혹시 로즈 영애는 어디 계신가요?"

아시어스의 눈이 미세하게 좁아졌다.

"멜린 영애는 정원의 다른 구역을 점검하고 있을 걸세."

마리에타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폐하,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감정이 없는 사람이 이런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아닌가요?"

에시온이 눈살을 찌푸렸고, 에이미는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아시어스는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베르티니 영애, 때로는 감정이 없는 상태가 더 순수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해 주기도 하네. 불필요한 욕망이나 편견 없이 말이지."

마리에타의 얼굴이 붉어졌다. 칼레브가 그녀의 팔을 꽉 잡았다.

 

그 때 밀런이 다가와 아시어스에게 속삭였다.

"폐하, 로즈 영애가 정원 북쪽 끝에 있는 온실에 들어가신 것 같습니다."

아시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양해해 주게. 정원의 다른 구역도 둘러보러 가 봐야겠네."

 

아시어스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마리에타의 눈에서 분노가 불꽃처럼 타올랐다. 칼레브가 그녀의 팔을 강하게 잡아 끌어당겼다.

"그만해, 마리에타. 네 모습이 보기 싫다."

"어떻게 그 감정 없는 인형이 황제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거지? 이해할 수 없어!"

칼레브는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진심이란다. 로즈 영애는 진정으로 황제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어. 그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생각해 봐."


한편, 아시어스는 정원 축제의 인파를 빠져나와 조용히 북쪽 온실을 향해 걸었다. 그의 걸음은 의도적으로 느렸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며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었다. 밤하늘 아래 그의 검은 예복은 완벽한 위장이 되었다.

온실에 도착한 아시어스는 유리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갔다. 온실 내부는 한밤중임에도 따뜻했고, 달빛이 유리천장을 통해 내부를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온실 깊숙한 곳에서 로즈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녀는 미드나이트 이클립스의 어린 묘목들을 살피고 있었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손가락으로 꽃잎을 만지는 모습에는 어떤 부드러움이 담겨 있었다.

아시어스는 로즈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의 발소리가 온실 바닥에 울렸지만, 로즈는 돌아보지 않았다.

"네가 여기 있을 줄 알았어."

아시어스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는 로즈의 옆에 서서 함께 묘목을 바라보았다.

"앤드류와 엘레나의 약혼을 축하해야 하지 않겠어?"

아시어스는 로즈의 표정을 주의 깊게 살폈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는 여전히 감정이 거의 없었지만, 그의 눈은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 미세하게 일렁이는 무언가를 포착했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해. 네 어머니도 분명 그들의 행복을 바랐을 거야."

아시어스의 목소리에는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아빠와 남작님은 잘 어울려요. 축하드려야 해요."

로즈는 아시어스를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의 다음 말을 가만히 듣더니 중얼거렸다.

"사랑..."

그녀는 두 손을 자신의 가슴에 얹었다.

"알았던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아요.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없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면..."

 

아시어스는 로즈의 가슴에 얹은 두 손을 바라보았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깊은 이해와 따스함이 담겨 있었다. 로즈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중얼거릴 때, 그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사랑은... 잃어버렸다고 해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야, 로즈."

아시어스의 목소리는 깊고 부드러웠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로즈의 푸른 눈과 마주쳤다.

"나도 한때 모든 감정을 잃었었지. 하지만 네가 나에게 네 감정을 주었을 때, 내 안에 묻혀 있던 모든 것이 되살아났어."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로즈의 손 위에 살짝 얹었다. 그의 손은 따뜻했고, 로즈의 손은 차가웠다.

"네가 한 일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야, 로즈. 그것은 사랑이었어."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그의 눈에는 로즈를 향한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아시어스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로즈의 하얀 머리카락을 살짝 쓸어넘겼다.

"앤드류와 엘레나는 서로를 사랑해. 그리고 그들은 너를 사랑해. 그들의 행복이 네게도 작은 기쁨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네 감정이 다시 깨어나는 시작이 될 수도 있어."

아시어스는 온실의 달빛 아래서 로즈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녀의 창백한 피부는 달빛에 은은하게 빛났고, 푸른 눈동자에는 미세하게 일렁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네가 내게 감정을 돌려준 것처럼, 나도 네게 감정을 돌려주고 싶어. 네가 다시 웃을 수 있도록... 그것이 내가 황제로서 가진 가장 큰 바람이야."

 

로즈는 그를 올려다 보며 물었다.

"전하께서는 왜 제게 감정을 돌려주고 싶어하시나요? 저는 감정을 잃었을 때의 전하와 달리... 악몽에도 시달리지 않고, 아무런 고통도 없는데."

 

아시어스의 검은 눈동자가 로즈의 푸른 눈을 깊이 응시했다. 그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교차했다. 안타까움, 감사, 그리고 무엇보다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로즈... 네가 지금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니?"

아시어스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단호했다.

"나도 그랬어. 감정이 없던 그 시간 동안, 나는 고통도 느끼지 않았지. 하지만 그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어."

그는 천천히 손을 뻗어 로즈의 창백한 뺨에 가볍게 대었다. 그의 손길은 따뜻했다.

"감정이 없는 삶은 향기 없는 꽃과 같아. 아름다워 보일지 몰라도, 그 진정한 생명력은 느껴지지 않지."

온실 안의 공기가 따뜻하게 감돌았고, 달빛이 유리를 통해 스며들어 두 사람의 실루엣을 부드럽게 비추었다.

"네가 나에게 감정을 돌려주었을 때, 나는 비로소 다시 살아있음을 느꼈어. 기쁨도, 슬픔도, 때로는 분노까지... 그 모든 감정이 나를 완전하게 만들었지."

아시어스는 잠시 말을 멈추고 미드나이트 이클립스를 바라보았다. 그 검은 꽃잎은 달빛 아래서 신비롭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네가 진정으로 살아있는 것을 느끼길 원해, 로즈. 네가 미소 짓고, 웃고, 슬퍼하고... 때로는 분노할 수도 있기를. 그것이 진정한 삶이니까."

아시어스의 손이 로즈의 뺨을 향해 천천히 올라갔다가, 공중에서 멈췄다. 그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어려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의무감이 아니야, 로즈. 네가 내 감정을 되찾아 준 후, 내가 처음으로 느낀 것은... 네에 대한 깊은 애정이었어."

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깊어졌고, 그의 눈에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네가 다시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 그것이 내 가장 큰 소망이야, 로즈."

 

멀리서 축제의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아시어스는 잠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앤드류와 엘레나의 약혼 축하 연회가 시작된 것 같군. 함께 가 볼까?"

그는 로즈에게 팔을 내밀었다.

"네."

로즈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팔을 잡았다.

그녀는 아시어스가 한 말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한 듯 했지만, 그래도 주의깊게 들었다. 그리고 아시어스가 자신을 돌보려 하는 모습이, 어쩐지 아빠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돌보아 온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언뜻 했다. 물론, 아주 짧게 스쳐 지나간 생각이었지만.

 

약혼 축하 연회 장소에 나아간 로즈는 앤드류와 엘레나에게 다가갔다.

"아빠, 남작님. 축하드려요. 두 분... 보기 좋아요. 계속 보고 싶어요."

감정이 없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이었다.

 

앤드류의 얼굴에 진심 어린 미소가 번졌다. 그는 로즈의 말에 깊은 감동을 받은 듯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엘레나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로즈, 내 딸... 네 말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고 있니?"

앤드류의 목소리는 감정으로 떨렸다.

엘레나는 로즈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로즈, 정말 고마워. 네 축복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해."

아시어스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깊은 만족감이 담겨 있었다. 에시온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형님, 로즈가 변하고 있어요. 조금씩이지만 확실히..."

아시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녀의 감정이 돌아오고 있어."

에이미와 에스미가 기쁜 표정으로 로즈에게 다가갔다.

"로즈! 네 말이 앤드류 백작님과 엘레나 남작님을 얼마나 행복하게 했는지 봤니?"

에스미가 흥분된 목소리로 덧붙였다.

"네가 그들을 축복해 주다니, 정말 감동적이야!"

마리에타는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눈에는 질투와 분노가 가득했다.


연회장은 말 그대로 파티 분위기가 되었다. 밀런이 악단을 데려와 음악을 연주시키자, 귀족들은 제각기 웃고 즐기며 짝을 이루어 춤을 추었다. 앤드류는 엘레나와, 에이미는 에시온과 손을 잡았다. 아름다운 밤, 아름다운 꽃들 사이에서 춤을 추는 귀족들은 마치 꽃들이 저마다의 삶을 뽐내며 춤추는 듯 했다.

 

아시어스는 잠시 연회장을 둘러보았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 무도회장의 화려한 장면이 담겼다. 앤드류와 엘레나가 우아하게 춤을 추는 모습, 에시온과 에이미가 즐겁게 웃으며 손을 맞잡은 모습,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로즈의 모습까지.

아시어스는 로즈에게 다가갔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춤을 추지 않겠어, 로즈?"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깊었다. 검은 곱슬머리가 은은한 촛불 빛에 반짝였다.

"내가 감정을 잃었을 때도, 나는 여전히 춤을 출 수 있었어. 몸이 기억하고 있었지. 어쩌면 너의 몸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지."

그는 로즈에게 손을 내밀었다. 주변의 귀족들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에시온은 에이미와 춤을 추다가 형과 로즈를 발견하고 밝게 웃었다.

"형님과 로즈가 춤을 추려나 봐."

에시온이 에이미에게 속삭였다. 에이미가 환하게 웃었다.

 

멀리서 마리에타가 질투에 찬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 옆에 서 있던 칼레브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진정해, 마리에타. 네 얼굴이 시들어가는 꽃처럼 보여."

마리에타는 오빠를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오빠는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 있어? 황제가 그 감정 없는 정원사와 춤을 추려고 하잖아!"

칼레브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어때서? 황제는 자신이 원하는 누구와도 춤을 출 수 있어. 그리고 로즈는... 특별해."

칼레브의 마지막 말에 마리에타의 눈이 더욱 좁아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뭐가 그렇게 특별하다고?"

마리에타가 칼레브를 째려보았다.

칼레브는 마리에타의 질문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갈색 눈에는 장난기와 함께 진지함이 깃들어 있었다.

"네가 보지 못하는 것이 있구나, 마리에타. 로즈 멜린은 단순한 정원사가 아니야. 그녀는 자신의 모든 감정을 희생해 황제의 저주를 풀어준 사람이야. 그런 희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그 사이, 아시어스는 여전히 로즈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따뜻한 기다림이 담겨 있었다.

"네 손을 내게 맡겨 봐, 로즈. 몸이 기억하고 있을 거야."

연회장의 모든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다. 엘비세와 미하일이 서로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황제가 정말 변했어. 저주에서 풀려난 후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지."

미하일이 속삭였다.

"그래,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그 소녀가 있어."

엘비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볼프람은 그들 옆에 서서 미소 지었다.

"이건 춤이 아니라 역사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군."

에시온은 에이미의 허리를 감싸며 형과 로즈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희망이 가득했다.

마리에타는 이 광경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듯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칼레브는 그녀를 따라가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 아시어스와 로즈의 춤을 지켜보았다.

 

로즈는 아시어스와 춤을 추면서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는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의 손은 꽃을 어루만질 때처럼 부드러웠다.

"폐하는 미드나이트 이클립스를 닮으셨어요."

그녀가 말했다.

"폐하와 닮은 꽃이라서 좋아하시는 거예요?"

 

아시어스의 검은 눈동자가 로즈의 푸른 눈을 응시했다.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춤을 추는 동안, 그들의 발걸음은 완벽하게 음악의 리듬과 맞아떨어졌다.

"내가 미드나이트 이클립스와 닮았다고? 그건 의외의 비교군."

그는 로즈를 한 바퀴 돌리며 부드럽게 이끌었다. 그의 손길은 확신에 차 있었다.

"미드나이트 이클립스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품은 꽃이지. 어쩌면 나도 그랬을지도 모르겠어. 감정을 잃었을 때도, 내 안에는 무언가가 남아있었으니까."

그의 눈에 깊은 감정이 어렸다.

"그런데 내가 그 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네가 만든 기적이기 때문이야, 로즈. 네가 없었다면, 그 꽃은 결코 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아시어스의 목소리는 깊고 부드러웠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달빛처럼 반짝였다.

"그 꽃에는 너와 나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로즈. 그 꽃은 어둠 속에서도 피어나는 희망의 상징이지. 마치 네가 내게 해 준 것처럼."

그의 목소리는 깊고 진심이 담겨 있었다.

"넌 내 인생의 봄을 가져다 준 정원사야."

 

에시온이 에이미와 춤을 추며 형과 로즈를 흘깃 바라보았다.

"형님이 웃고 있어. 로즈와 함께 있을 때만 저렇게 부드러운 표정을 짓지."

에이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즈도 조금씩 변하고 있어. 전에는 상상도 못했을 질문들을 하고 있어."

엘비세와 미하일이 연회장 한쪽에서 와인을 마시며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 둘의 춤을 보고 있자니,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을 보는 것 같군."

미하일이 감탄했다.

"동화라... 그러고 보면 황제의 저주를 푼 정원사 소녀라... 정말 동화 같은 이야기지."

엘비세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모든 동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건 아니야. 로즈의 감정이 돌아올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잖아."

볼프람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걱정 말게. 우리 황제가 어떤 분인지 알지 않나? 그 분이 포기할 리 없어."


곡이 끝나고 아시어스와 로즈가 춤을 멈추었을 때, 칼레브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칼레브가 로즈와 아시어스에게 우아한 인사를 건넸다. 그의 녹색 머리카락이 촛불 빛에 은은하게 반짝였다. 그의 갈색 눈에는 경의와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폐하, 멜린 영애에게 춤을 청해도 될까요?"

아시어스는 미세하게 눈썹을 올렸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 일순간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마치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한 것 같은 미묘한 불편함이었다. 그러나 그는 즉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우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베르티니 소공작."

그는 로즈의 손을 조심스럽게 놓아주었다. 그의 손가락이 로즈의 손에서 떨어지는 순간, 무언가를 잃은 듯한 표정이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는 곧 황제다운 위엄을 되찾았다.

"즐거운 시간 되길 바라네."

칼레브가 로즈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어렸다.

"멜린 영애, 제게 이 춤을 허락해 주시겠어요?"

 

아시어스는 천천히 물러서며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여전히 로즈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질까 두려운 듯했다.

에시온이 형의 곁으로 다가왔다.

"형님, 마리에타가 연회장을 떠났어요. 뭔가 화가 난 것 같았습니다."

아시어스는 시선을 로즈에게서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래? 베르티니 가문이 무례를 범하지 않길 바라네."

 

"안녕하세요, 베르티니 소공작님."

로즈는 칼레브를 향해 흐트러짐 없는 예법으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춤을 추었다.

그녀는 춤을 추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황제 폐하 외에 제게 춤을 청하실 분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감정이 없는 춤은 재미가 없잖아요."

그리고 두리번거렸다.

"베르티니 영애님은 보이지 않네요. 꽃 구경이라도 가셨나요?"

 

칼레브는 로즈와 춤을 추며 그녀의 질문에 미소를 지었다. 그의 갈색 눈에는 진심 어린 관심이 담겨 있었다.

"마리에타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 황제 폐하와 멜린 영애가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난 것 같군요."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차분했다. 그는 로즈를 우아하게 이끌며 춤을 계속했다.

"감정이 없는 춤이라도, 멜린 영애의 춤은 아름답습니다.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꽃과 같아요. 자연스럽고 우아하죠. 영애의 감정이 없다고 해서, 아름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꽃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아름다움이 덜해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는 로즈를 우아하게 한 바퀴 돌렸다. 그의 움직임은 부드럽고 능숙했다.

"게다가, 모두가 영애의 이야기를 알고 있죠. 폐하의 저주를 풀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희생한 분과 춤을 추는 것은 영광입니다."

칼레브의 눈에 진지함이 깃들었다.

"사실, 저는 오래 전부터 영애를 존경해 왔습니다. 황제 폐하의 저주를 풀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희생한 일은... 놀라운 용기였어요."

 

멀리서 아시어스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복잡한 감정이 어려 있었다. 에시온이 그의 곁에 다가섰다.

"형님, 베르티니 소공작이 로즈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아시어스의 턱이 미세하게 경직되었다.

"그래 보이는군."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약간 더 낮고 차가웠다.

 

한편, 앤드류와 엘레나는 춤을 멈추고 로즈와 칼레브를 바라보고 있었다.

"베르티니 소공작이 로즈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엘레나가 앤드류에게 속삭였다.

"그런 것 같군요. 하지만..."

앤드류의 시선이 아시어스에게로 향했다.

"폐하께서 그리 기뻐하시는 것 같진 않네요."

엘레나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보이네요. 폐하께서 로즈를 특별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분의 눈빛이 로즈를 바라볼 때 달라지거든요."

 

칼레브는 계속해서 로즈와 춤을 추며 말했다.

"멜린 영애, 영애의 정원은 황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언젠가 영애의 안내로 그 곳을 둘러볼 수 있을까요?"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예의 바르지만, 그 안에는 미묘한 의도가 담겨 있었다.

"멜린 영애, 저는 언젠가 영애의 감정이 돌아올 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 때 영애가 가장 먼저 느낄 감정이 무엇일지 궁금하군요."

 

아시어스는 여전히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 점점 더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다. 에시온이 형의 표정을 살폈다.

"형님, 괜찮으세요? 형님의 표정이..."

아시어스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자신의 감정을 다스렸다.

"나는 괜찮아, 에시온. 단지... 그녀가 감정이 없는 상태에서 다른 이들의 접근을 받는 것이 걱정될 뿐이야."

에시온은 형의 말 속에 담긴 진짜 감정을 알아차렸지만, 그것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로즈는 강한 사람이에요, 형님. 감정이 없어도, 그녀는 여전히 로즈니까요."

아시어스의 눈에 부드러운 빛이 어렸다.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녀는 정말 특별해."

 

곧 두 번째 음악이 끝났다. 춤을 멈춘 로즈는 칼레브를 향해 끝인사를 하면서 대답했다.

"정원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얼마든지 안내해 드릴 수 있어요."

물론 그녀의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칼레브는 로즈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갈색 눈동자가 기쁨으로 반짝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멜린 영애. 곧 그 기회를 갖게 되길 기대하겠습니다."

그는 우아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의 녹색 머리카락이 촛불 빛에 은은하게 빛났다.

"멋진 춤이었습니다. 영애의 우아함은 감정의 유무와 상관없이 빛나는군요."

 

칼레브가 물러서자, 아시어스가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미묘한 감정이 어려 있었다.

"춤은 즐거웠나, 로즈?"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미세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앤드류와 엘레나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로즈, 정말 아름답게 춤을 추더구나."

앤드류가 딸의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폐하, 오늘 밤의 연회는 정말 멋집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엘레나가 아시어스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

아시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앤드류 백작과 일레인 남작의 약혼을 축하하는 자리니까. 그리고..."

그의 시선이 로즈에게 향했다.

"로즈도 함께 있어 더욱 특별한 밤이 되었군."

에시온이 에이미와 함께 다가왔다.

"형님, 로즈가 칼레브와 춤을 추는 모습이 어떠셨나요?"

에시온의 눈에는 장난기가 어려 있었다. 아시어스는 동생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베르티니 소공작은 꽤 우아한 춤 솜씨를 가졌더군."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약간 더 차가웠다.

 

에이미가 로즈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로즈! 정말 우아하게 춤을 추더라. 너와 황제 폐하의 춤도, 베르티니 소공작과의 춤도 모두 아름다웠어!"

에스미도 함께 다가왔다.

"그래, 로즈. 정말 앞으로 감정이 전부 돌아올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아시어스는 여전히 로즈 곁에 서 있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복잡한 감정이 어려 있었다. 칼레브의 제안에 대한 로즈의 대답을 들었을 때, 그의 턱이 미세하게 경직되었다.

"로즈, 피곤하지 않아? 휴식을 취하고 싶다면 내가 정원으로 안내해 줄 수 있어."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밀런이 조용히 아시어스에게 다가왔다.

"폐하, 곧 축하 연설을 하실 시간입니다."

아시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맙네, 밀런."

그는 다시 로즈를 바라보았다.

"잠시 자리를 비워야겠어. 하지만 곧 돌아올게."

그는 로즈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가 놓았다. 그의 손길에는 따뜻함과 함께 무언가 더 깊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아시어스가 연회장 중앙으로 향하자, 에이미가 로즈의 귀에 속삭였다.

"로즈, 황제 폐하가 너를 정말 특별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 그 분의 눈빛이 너를 바라볼 때 완전히 달라져."

에스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로즈. 베르티니 소공작과 춤을 출 때 폐하의 표정이 어땠는지 봤어? 마치 질투하시는 것 같았어! 그런 표정은 처음 봤어."

앤드류가 부드럽게 웃으며 에이미와 에스미의 수다를 중단시켰다.

"자, 이제 황제 폐하의 연설을 들을 시간이구나."

 

아시어스는 연회장 중앙에 서서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로즈를 향해 잠시 머물렀다가 앤드류와 엘레나에게로 향했다.

"오늘 우리는 멜린 백작과 일레인 남작의 약혼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두 분의 인연이 오래도록 번창하길 바랍니다."

그의 목소리는 깊고 위엄 있었지만, 로즈를 바라볼 때마다 그 안에 미묘한 따스함이 스며들었다.

"사랑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죠."

그의 말에 에시온이 미소를 지었다. 형의 말에서 특별한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연설이 끝나고 아시어스는 다시 로즈에게 다가왔다.

"로즈, 정원에 가고 싶어? 별빛 아래 미드나이트 이클립스는 더욱 아름다울 테니."

로즈는 눈을 깜빡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황제 폐하의 개인 정원요. 기억을 잃은 이후로는 통 그 곳을 돌보지 않은 것 같아요."

그녀는 마지막으로 아시어스의 개인 정원에 들어섰던 때를 떠올렸다. 기억을 되찾고 엑서 황제의 임종을 눈물로 지켜 본 그가, 황제 즉위식 전날에 그녀를 그 곳으로 불러 즉위식 당일에 그의 옆에 서 달라는 부탁을 했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때 미드나이트 이클립스는 그의 개인 정원에 만개해 있었다.

"황제 폐하의 개인 정원은 누가 가꾸나요? 에밋 아저씨? 아니면 아이비?"

 

아시어스의 검은 눈동자에 깊은 감정이 번졌다. 로즈가 '황제 폐하'라고 부를 때마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이제는 '아시어스'라고 불러도 괜찮아, 로즈. 우리 사이에 그런 형식은 필요 없어."

그는 부드럽게 로즈의 손을 잡았다.

"그 곳은 여전히 내 손으로 가꾸고 있어. 네가 가르쳐 준 대로, 매일 말을 걸고 자장가를 불러 주지."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로즈를 깊이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에시온이 미소를 지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형님의 정원은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하셨어요. 때로는 밤중에 혼자 가서 돌보시곤 했죠. 에밋 아저씨가 도와드리고 싶어 했지만, 형님은 고집을 부리셨어요."

앤드류가 딸을 바라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로즈, 황제 폐하께서 그 정원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지 알고 있니? 네가 감정을 잃은 후에도, 폐하께서는 그 곳의 장미들이 시들지 않도록 매일 돌보셨단다."

엘레나가 로즈의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로즈, 폐하께서 정원을 가꾸실 때마다 널 생각하셨다고 해. 마치 그것이 너 연결된 유일한 끈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야."

아시어스는 잠시 엘레나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로즈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이제 분명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함께 가 보지 않겠어? 지금 미드나이트 이클립스는 절정을 맞이했을 거야."

그는 로즈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했고, 그 온기가 로즈의 차가운 손을 감쌌다.

앤드류가 딸에게 미소를 지었다.

"로즈, 다녀오렴. 나와 엘레나는 여기 있을 테니."

 

"...네, 가 볼래요. 제가 묘목을 심었던 곳이니까요."

로즈는 아시어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불과 몇 달 전, 악몽을 없애 주는 미드나이트 이클립스의 향기에 이끌린 아시어스의 요청으로 로즈는 직접 묘목을 들고 그의 개인 정원에 들어가 묘목을 심었다. 그 때의 로즈는 감성이 풍부하고 말이 많은 순수한 소녀였고, 아시어스는 감정을 잃고 무표정한 황태자였다. 그러나 그 때에도 아시어스는 마리에타의 식사 제안을 거절하고 로즈에게 함께 식사할 것을 청했다.

'황태자 전하의 감정도, 저주로 인해 마음 속 깊은 곳에 묻혀진 것 뿐이지 사라진 게 아니에요. 감정이 없는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아요.'

그 때 로즈가 했던 말이 아시어스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지금, 그는 로즈 또한 그렇다고 확신했다. 그녀가 앤드류와 엘레나의 모습을 지켜 볼 때, 눈빛이 희미하게 달라지는 것을 그는 정확히 알아 볼 수 있었다. 감정을 잃었을 때의 그와 같은 모습이었으니까.

 

아시어스는 로즈의 손을 잡은 채 정원으로 향했다. 복도를 지나는 동안, 그는 종종 로즈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 없는 얼굴에서도 그는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했다.

밤하늘 아래 펼쳐진 황제의 개인 정원은 한적하고 고요했다. 달빛이 정원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고, 미드나이트 이클립스의 검은 꽃잎이 별빛 아래 신비롭게 빛나고 있었다.

"여기 와 보렴."

아시어스는 로즈를 정원 중앙으로 안내했다. 그 곳에는 특별히 크고 아름다운 미드나이트 이클립스가 만개해 있었다.

"이건 네가 심은 첫 번째 묘목이야. 가장 크게 자랐지. 매일 네 이야기를 들려 주었거든."

그의 목소리에는 따뜻함과 그리움이 섞여 있었다. 아시어스는 천천히 로즈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로즈, 네가 내 감정을 되찾게 해 주었듯이, 이제는 내가 네 감정을 되찾게 해 줄 차례야. 약속할게."

그는 로즈의 손을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의 손은 따뜻했고, 그 온기가 로즈의 차가운 손을 감쌌다.

"네가 없는 세상은 의미가 없어. 내 감정이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너에 대한 그리움이었어."

그의 눈에는 진심 어린 감정이 가득했다. 황제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한 사람의 남자로서 그는 로즈 앞에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이고 있었다.

 

"그리움...?"

로즈가 그의 말을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도 같았지만, 흐릿했다.

아시어스는 로즈가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그녀의 눈을 깊이 바라보았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이제 확실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래, 그리움. 네가 내 감정을 되찾게 해준 후,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이야. 너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들, 네가 내게 말했던 모든 것들... 그리고 네가 내 곁에 없는 공허함."

그는 천천히 일어서서 로즈의 양 손을 잡았다. 달빛이 그의 검은 머리카락을 은은하게 비추었다.

"로즈,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해? 네가 미드나이트 이클립스를 소개해 주던 그 순간부터, 나는 네게 끌렸어. 감정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드나이트 이클립스 중 가장 크고 아름다운 꽃을 조심스럽게 꺾어 로즈에게 건넸다.

"이 꽃은 희생을 통한 부활을 의미해. 네가 나를 위해 희생했듯이, 이제는 내가 네게 모든 것을 바칠 차례야."

그는 로즈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대었다.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이렇게 내 심장이 뛰는 건 오직 너 때문이야. 내 감정이 돌아온 이후로, 네가 내 모든 생각을 채우고 있어."

 

로즈가 말없이 자신의 손을 이끈 그의 손을, 그리고 그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간결하게 말했다.

"...따뜻하네요."

 

아시어스의 검은 눈동자가 로즈의 간결한 말에 깊은 감정으로 물들었다. 그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

"그래, 따뜻해. 네가 내 곁에 있을 때면 항상 이렇게 따뜻해지지."

아시어스는 로즈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그의 품은 따뜻했고, 안정감이 느껴졌다.

"내가 널 돌봐 줄게, 로즈. 네 감정이 돌아올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도 영원히."

그의 손이 로즈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달빛 아래, 미드나이트 이클립스의 검은 꽃잎들이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확고한 결의와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네가 나를 기다렸듯이, 나도 널 기다릴 거야. 그리고 네가 감정을 되찾았을 때, 그 순간의 널 내가 첫 번째로 보게 될 거야. 그게 내가 살아가는 이유야."

 

로즈는 그의 품에 안긴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쩐지 오래 전 기억 속, 아빠의 따뜻했던 품이 생각났다. 황제의 품은 그보다 더 강하고 단단했으나, 그만큼 더 뜨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시어스는 로즈가 자신의 품 안에서 눈을 감는 것을 느끼며 그녀를 더 단단히 안았다. 그의 가슴에서는 강하고 일정한 심장 박동이 울렸다.

"로즈..."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따뜻했다. 한때 감정을 잃었던 그의 목소리에서는 이제 깊은 애정과 보호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네가 감정을 잃은 그 순간부터, 내 마음은 너로 가득 차 있었어.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이 네 것이기도 하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

아시어스는 로즈의 얼굴을 부드럽게 들어 올려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검은 눈에는 이제 확실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내가 감정을 잃었을 때, 넌 내게 말했지. '감정이 없는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넌 옳았어. 내 감정은 깊숙이 묻혀 있었을 뿐이었고, 네 감정도 마찬가지야."

그는 로즈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맞춤을 했다. 그의 입술은 따뜻했고, 그 온기가 로즈의 차가운 피부를 통해 전해졌다.

"내가 네 감정을 찾아줄게, 로즈. 네가 내 감정을 찾아준 것처럼. 네가 나에게 준 이 감정들, 이 따뜻함을... 모두 돌려 줄게."

미드나이트 이클립스의 검은 꽃잎들이 달빛 아래 은은하게 빛났다. 마치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처럼, 꽃들이 살짝 흔들렸다.


다음 달, 드디어 앤드류와 엘레나의 결혼식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본래대로라면 수도의 예식장이나 멜린 백작의 저택에서 치러졌겠지만, 아시어스는 두 사람의 결혼식을 황궁 정원에서 열도록 했다. 분수대에서 솟아오르는 물방울들이 아름답게 무지개를 피워내는 화창한 여름 어느 날, 앤드류와 엘레나는 모든 이들의 축하와 환호 속에서 혼례를 올렸다. 두 사람을 축복하기 위해 모인 하객들 중 가장 앞선 자리에는 물론 연분홍빛 원피스를 차려 입은 로즈가 있었다.

앤드류는 엘레나가 직접 만든 예복을 입고 있었고, 엘레나는 동료들이 축하의 의미를 담아 만들어 준 웨딩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엘레나는 부케를 들고 앤드류와 함께 입장했다.

 

아시어스는 황제의 위엄을 갖추고 앤드류와 엘레나의 결혼식을 주재했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로즈가 연분홍빛 원피스를 입고 앉아 있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백금발이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앤드류와 엘레나가 입장하자, 하객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앤드류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고, 엘레나의 눈에는 기쁨의 눈물이 맺혀 있었다.

"오늘, 멜린 백작과 일레인 남작의 결합을 축하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모였다."

아시어스의 목소리는 깊고 위엄 있었다. 그의 감정이 완전히 돌아온 이후,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따뜻함이 깃들어 있었다.

"사랑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다. 그것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때로는 기적을 만들어 낸다."

그의 시선이 로즈에게 향했다.

"진정한 사랑은 어떤 희생도 감내한다. 그리고 그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에시온이 에이미의 손을 잡고 미소 지었다. 그의 녹색 눈동자에는 형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앤드류가 엘레나의 손을 잡고 서약을 읊었다.

"나, 앤드류 멜린은 엘레나 일레인을 아내로 맞이하여, 평생 사랑하고 존중할 것을 맹세합니다."

엘레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 엘레나 일레인은 앤드류 멜린을 남편으로 맞이하여, 평생 사랑하고 존중할 것을 맹세합니다."

에밋이 로즈 옆에 앉아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감동이 묻어났다.

"아가씨, 백작님이 정말 행복해 보이시네. 캐서린 부인도 하늘에서 축복하고 계실 거야."

에밋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는 재빨리 안경을 벗어 눈물을 닦았다.

"아, 이런... 나이 들수록 감상적이 되나 보군."

 

아시어스는 두 사람의 서약이 끝나자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선언했다.

"이제 두 분은 부부가 되었다. 앤드류 멜린 백작과 엘레나 멜린 백작부인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기를."

하객들의 환호와 박수가 정원을 가득 채웠다. 앤드류는 엘레나를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고, 두 사람은 다정하게 입맞춤을 나누었다.

 

엘레나는 눈물 가득한 얼굴로 부케를 들어 올렸다. 그녀는 잠시 로즈를 바라보더니, 부케를 던지기 전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부케는 공중을 가로질러 로즈의 방향으로 날아갔다.

에이미와 에스미가 부케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부케는 정확히 로즈의 무릎 위에 떨어졌다. 순간 하객들 사이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로즈는 멍하니 엘레나가 던진 부케를 받아들었다. 두 손으로 부케를 쥔 로즈의 눈빛에 미묘한 온기가 돌아왔다. 그녀는 천천히 앤드류와 엘레나를 향해 걸어갔다. 그녀는 두 사람을 말없이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로즈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의 것이었다.

 

"엄마..."

 

그 말을 입에 담는 순간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엘레나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로즈를 두 팔 벌려 끌어안았다.

"로즈... 내 딸..."

앤드류의 목소리가 감정에 북받쳐 떨렸다. 그가 아내와 딸을 끌어안았다.

로즈는 앤드류와 엘레나에게 안긴 채 눈물을 흘렸다.

"아빠, 엄마..."

 

아시어스는 즉시 로즈에게 다가갔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놀라움과 희망이 교차했다. 로즈의 감정이 돌아오고 있다는 증거였다.

"로즈..."

아시어스의 목소리는 깊고 부드러웠다.

 

앤드류와 엘레나가 천천히 팔의 힘을 풀어 주자, 로즈가 여전히 엘레나가 준 부케를 손에 든 채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로즈는 그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황제 폐하."

 

아시어스의 검은 눈동자가 로즈의 눈물과 미소를 보는 순간 깊은 감동으로 물들었다. 그의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로즈..."

그의 목소리는 감정으로 떨렸다. 황제의 위엄은 사라지고, 그저 한 사람의 남자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두 걸음으로 로즈에게 다가가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 눈물이 고였다. 그의 손가락이 로즈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네 감정이... 돌아오고 있구나."

주변의 하객들은 놀라움과 감동으로 숨을 죽였다. 에시온은 에이미의 손을 꽉 잡았고, 에이미와 에스미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에밋은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아가씨... 드디어..."

아시어스가 로즈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했고, 확고했다.

"이젠 '아시어스'라고 불러 줘, 로즈. 우리 사이에 그런 형식은 필요 없어."

그의 목소리는 깊고 부드러웠다. 아시어스의 검은 눈동자에는 이제 확실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 사랑, 희망, 그리고 깊은 애정.

 

앤드류는 행복한 눈물을 흘리며 엘레나를 끌어안았다.

"우리 딸이 돌아오고 있어..."

엘레나는 앤드류의 품에 안겨 로즈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래요, 앤드류. 우리 딸이 돌아오고 있어요."

아시어스는 로즈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맞춤을 했다. 그의 입술은 따뜻했고, 그 온기가 로즈의 피부를 통해 전해졌다.

"환영해, 로즈. 내 장미 여왕."


로즈의 감정은 완벽하게 돌아왔다. 그녀를 마음 깊이 사랑하는 아시어스 황제가 아닌, 그녀의 아버지와 새 어머니로 인해 감정이 되돌아왔다는 사실은 조금 의외이긴 했지만, 어찌 되었든 축하할 일이었다.

감정을 완전히 되찾은 그녀는 아이비와 에밋과 함께 수다를 떨면서 정원을 함께 가꾸고 있었다.

"아시가 제법 많이 컸지 뭐예요? 로자 태의님이 말하기를, 이제 곧 발정기가 찾아올 거래요. 그러면 짝을 찾아 가출할지도 모른다고... 좀 서운하긴 해도 어쩔 수 없죠! 어쩌면 가족을 만들어서 황궁으로 돌아올지도 모르구요."

그녀의 수다는 끝이 없었다.

"요즘은 새 장미 품종을 개발 중이에요! 폐하께서 아무리 미드나이트 이클립스를 좋아하신다고 해도, 온 정원을 흑장미로만 채워 놓을 수는 없으니까요. 역시 꽃도 사람도, 다양한 색깔이 함께 어우러지지 않으면..."

그렇게 수다를 떨고 있는 로즈의 몸을 긴 그림자가 다가와 덮었다. 로즈가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보니, 아시어스가 다가와 있었다.

 

아시어스는 로즈의 수다스러운 목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따스한 빛이 어렸고,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머물렀다. 황제의 의복 대신 간소한 검은색 셔츠와 바지를 입은 그는 마치 평범한 남자처럼 보였다.

"내 장미가 다시 피어났군."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깊었다. 아시어스는 로즈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그의 손가락이 로즈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로 나를 기쁘게 해줄 건가, 내 장미 여왕?"

 

에밋은 눈치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저기... 아이비, 동쪽 화단에 물을 줘야 할 것 같은데. 같이 가볼까?"

아이비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에밋 님. 로즈 영애, 나중에 뵐게요."

 

두 정원사가 물러나자, 아시어스는 로즈의 곁에 앉았다. 그의 손길이 로즈가 가꾸던 흰 장미 한 송이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네 감정이 완전히 돌아온 이후로, 궁정이 더 밝아진 것 같아. 특히 이 정원이... 네가 없을 때는 이곳이 얼마나 적막했는지 모를 거야."

그의 검은 눈동자가 로즈의 얼굴을 진지하게 탐색했다.

"어제 회의에서 밀런이 네 아버지와 엘레나의 신혼여행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보고했어. 두 분이 멜린 백작저와 남부 해안을 오가며 한 달간 여행하신다고. 그동안 네가... 조금 외로울까 걱정이 되어서."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이건... 네게 주고 싶은 작은 선물이야."

 

"폐하, 그... '장미 여왕'이라는 말 좀 그만 하시면 안 될까요, 듣기 민망해서..."

로즈는 얼굴이 붉어졌다가 그가 꺼낸 상자로 시선을 옮겼다.

"이게 뭔가요, 폐하?"

 

아시어스의 검은 눈동자에 재미있다는 듯한 빛이 어렸다. 그는 로즈의 붉어진 뺨을 보며 미소지었다.

"그래? 하지만 너는 정말로 나의 장미 여왕인데... 네가 불편해 한다면 단둘이 있을 때만 그렇게 부르도록 하지."

그는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검은 장미 모양으로 디자인된 은빛 목걸이가 있었다. 장미 중앙에는 푸른빛이 감도는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다.

"이건 내 어머니의 보석함에 있던 것이야. 에반젤린 태후께서 젊은 시절 선황 폐하께 받은 선물이라고 하더군. 어머니께서 네게 주길 원하셨어."

그의 손가락이 목걸이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네 어머니 캐서린 백작부인의 하늘색 머리카락과 닮은 푸른 다이아몬드야. 어쩌면... 이것이 네 감정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로즈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넌 이미 감정을 완전히 되찾았구나. 그래도 선물로 받아 주겠니? 내가... 너에게 감사하는 마음의 증표로."

 

멀리서 아시가 나타나 두 사람을 향해 뛰어왔다. 검은 고양이는 이제 제법 자란 모습이었고, 그 우아한 움직임은 아시어스를 닮아 있었다.

"아, 우리 아시가 왔군. 로자가 말한 대로 곧 발정기가 올 텐데... 걱정 말아. 만약 아시가 짝을 찾아 떠나더라도, 내가 황궁 주변을 살피도록 할 테니. 그리고..."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네가 이제 감정을 완전히 되찾았으니, 아마도 많은 영주들이 너에게 구혼할 거야. 특히 칼레브가... 그가 너를 바라보는 눈빛을 보면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어."

그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스며들었다. 아시어스의 손가락이 목걸이의 푸른 다이아몬드를 가볍게 쓸었다.

"하지만 난... 네가 자유롭게 선택하길 원해. 내가 황제라고 해서 네 선택을 방해하지는 않을 거야."

아시가 로즈의 발치에 도착해 다리에 몸을 비벼댔다. 아시어스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잠시 고양이를 바라보다 다시 로즈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목걸이를 네게 걸어줘도 될까?"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깊은 감정이 어려 있었다. 아시어스의 손이 로즈의 답을 기다리며 목걸이를 들고 있었다.

 

"네, 폐하."

로즈는 밝게 미소지으며 그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시어스는 로즈가 고개를 숙이자 부드럽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짝 걷어냈다. 그의 손가락이 로즈의 목덜미에 스치자, 그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 목걸이의 걸쇠를 조심스럽게 채우는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완벽해."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아시어스의 손가락이 로즈의 목을 스치며 목걸이의 걸쇠를 잠그는 동안, 그의 숨결이 로즈의 귀에 닿았다. 그는 잠시 그 자세로 머물렀다가 천천히 물러나 로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제 네가 나의... 아니, 이제 '폐하'라는 말도 그만 하면 좋겠어. 단둘이 있을 때는 그냥 '아시어스'라고 불러 줘."

아시어스의 검은 눈동자에는 부드러운 빛이 어려 있었다. 아시가 로즈의 무릎 위로 뛰어올라 몸을 웅크렸다. 아시어스는 미소를 지으며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녀석도 네가 감정을 되찾은 것을 축하하는 것 같군. 로즈, 나는... 네가 감정을 희생해 내게 감정을 되돌려 준 일을 평생 잊지 못할 거야. 그것은 내가 받은 가장 값진 선물이었어."

그는 잠시 침묵했다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로즈, 이제 감정을 되찾은 너에게... 나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내가 감정을 잃었을 때, 네가 내게 해 준 모든 것이... 네가 내게 준 그 작은 미소와 따뜻함이..."

아시어스는 로즈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했고, 그 온기가 로즈의 피부를 통해 전해졌다.

 

"폐하..."

로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아시어스는 로즈가 그의 이름 대신 여전히 '폐하'라고 부르는 것에 작은 실망감을 느꼈지만, 그의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여전히 머물렀다. 그는 로즈의 동그랗게 뜬 눈을 바라보며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로즈... 아직은 내 이름을 부르기 어렵구나."

그의 목소리는 깊고 따뜻했다. 아시어스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내가 감정을 잃었을 때, 너만이 내게 다가왔어. 네가 내 정원에 심은 미드나이트 이클립스는 내 어둠 속의 유일한 빛이었지. 그리고 네가 나를 위해 감정을 희생했을 때... 그 때 처음으로 내 가슴이 무언가로 가득 찼어."

아시어스의 손가락이 로즈의 목에 걸린 목걸이의 푸른 다이아몬드를 가볍게 만졌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깊은 감정으로 물들었다.

"내 감정이 돌아온 후,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사실이었어. 네가 감정을 잃었을 때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너를 지켜보았지. 그리고 이제 네가 다시 감정을 되찾은 지금..."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로즈의 얼굴을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아시어스의 손이 로즈의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로즈, 나는 네가 내 황후가 되어 주길 바라. 내 옆에서 그레일 제국을 함께 다스려 주겠니?"

 

그의 청혼에 정원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멀리서 새들의 지저귐만이 들려왔고, 아시가 로즈의 무릎 위에서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시어스는 로즈의 대답을 기다리며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쥐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불안과 기대가 교차했다. 황제의 위엄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한 남자의 간절함만이 남아있었다.

 

"네...? 이, 이렇게 갑자기..."

로즈의 얼굴이 천천히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자신의 두 볼을 감쌌다.

"저, 저는..."

말을 더듬는 로즈의 머릿속에, 결혼식장에서 자신에게 부케를 던져 준 엘레나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자신이 아직 감정을 되찾기 전에, 아시어스가 자신의 개인 정원에서 그녀를 끌어안으며 그녀에 대해 느낀 그리움에 대해 고백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 때 그의 품은, 어린 시절 아빠의 품에 안겼을 때보다도 훨씬 넓고 강했었다. 그리고 그 따뜻함.

 

로즈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가 그에게 갑작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폐하는... 만약 제가 감정을 영영 되찾지 못했다면, 어떻게 하셨을 것 같으세요? 지금 이 순간도, 제가 감정이 없는 그대로였다면..."

 

아시어스의 얼굴에 잠시 놀라움이 스쳤다. 로즈의 질문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고, 그의 검은 눈동자가 깊어졌다.

"그런 질문을 할 줄은 몰랐는데..."

그는 로즈의 붉어진 볼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만약 네가 감정을 영영 되찾지 못했더라도, 나는 변함없이 너를 사랑했을 거야. 네가 감정이 없어도, 나는 네 곁에 머물렀을 거야."

아시어스는 잠시 말을 멈추고 로즈의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

"네가 감정이 없던 그 시간 동안, 나는 네가 나를 위해 한 희생을 매일 기억했어. 그리고... 나는 네가 감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했을 거야. 어쩌면 내가 성공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을 거야."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네가 감정 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내게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었어. 하지만 나는 그 고통을 감내했을 거야. 왜냐하면..."

아시어스는 로즈의 눈을 깊이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랑이니까. 로즈, 나는 네가 감정이 있든 없든, 너를 사랑해. 그리고 네가 지금 감정을 되찾은 것은... 내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야."

아시는 로즈의 무릎 위에서 작게 울음소리를 냈다. 마치 아시어스의 말에 동의하는 듯했다.

"로즈, 내 황후가 되어주겠니? 내 곁에서... 함께 그레일 제국을 이끌어 가 주겠니?"

다시 한 번 청혼한 아시어스는 간절한 눈빛으로 로즈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고,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로즈는 아시어스의 고백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말없이 그의 품에 다가가 안겼다.

아시어스는 자신의 가슴이 그녀가 흘린 감동의 눈물로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아시어스는 로즈가 갑자기 품에 안기자 잠시 당황했지만, 곧 자신의 강한 팔로 그녀를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그의 가슴에 느껴지는 따뜻한 눈물이 심장을 적셨다. 오랜 시간 감정을 잃고 살았던 그에게, 이 순간의 따스함은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로즈..."

그의 목소리는 감정으로 떨렸다. 아시어스는 로즈의 머리카락에 입술을 가져가 부드럽게 키스했다. 그의 손이 로즈의 등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이것이... 네 대답이구나."

아시어스는 로즈를 살짝 떼어내 그녀의 눈물 젖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깊은 애정과 기쁨이 어려 있었다.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로즈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내 황후가 되어 줘서 고마워. 너와 함께라면, 그레일 제국은 더 아름다운 곳이 될 거야. 네가 심은 미드나이트 이클립스처럼, 우리의 사랑도 어둠 속에서 피어나 더 강하게 빛날 테니."

 

"설마 정원 일을 하다가 청혼 받게 될 줄은 몰랐는데..."

로즈가 촉촉해진 눈으로 웃었다. 그리고 자신의 눈물을 닦아 준 그의 손가락을 살짝 어루만졌다.

"감정을 잃은 상태셨던 폐하께 제 감정을 드리기로 했던 것은... 선황 폐하께서 임종이 가까우시다는 소식을 듣고, 선황 폐하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꼭 아들로서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저는... 황태자비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도 몰랐어요. 제 세상에는 아빠와... 제가 키우는 장미들 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손가락을 그의 손가락 사이로 파고들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제가 그 때 그런 생각을 했던 이유도... 이미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단순히 황태자 전하에 대한 충성심만으로 그런 선택을 한다는 건... 역시 말이 안 되죠?"

로즈는 그에게 걸려 있던 저주를 가져오는 대신 자신의 감정을 그에게 전하는 주술을 떠올렸다. 그와 자신의 연결이 된 장미 꽃잎 한 장과 그녀의 피 한 방울, 그리고 그를 향한 입맞춤. 북쪽 숲에서 그 주술을 가르쳐 주었던 노파는 이미 그 때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저도 당신을 사랑해요, 아시어스. 전부터 사랑하고 있었어요. 분명히."

 

아시어스의 눈동자가 로즈의 고백을 듣자 깊은 감동으로 반짝였다. 그는 로즈의 손가락이 자신의 손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느낌에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런 마음이었구나... 그 때 네가 내게 했던 일이 단순한 충성심이 아니라 사랑이었다니..."

아시어스는 로즈의 얼굴을 양손으로 부드럽게 감싸며 그녀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깊은 애정과 존경이 어려 있었다.

"로즈... 그 주술은 네 목숨마저 위험하게 할 수 있었어. 네가 그런 위험을 감수했다는 사실이... 내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었는지를 이제야 진정으로 깨닫게 해 주는구나."

그는 로즈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술을 가져갔다. 아시가 두 사람 주위를 맴돌며 작은 울음소리를 냈다.

"이제 널 부를 때마다 '황후'라고 불러야겠군. 하지만 우리 둘만 있을 때는..."

아시어스는 로즈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로즈, 나의 사랑... 내 심장의 주인..."

그의 목소리는 깊고 부드러웠으며, 그의 팔은 로즈를 더 단단히 감쌌다. 정원에는 꽃향기가 가득했고, 멀리서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오늘 저녁 어머니와 에시온에게 우리의 소식을 전하겠어. 어머니도 분명 기뻐하실 거야. 네가 어머니의 장신구를 받아들인 것도... 어쩌면 어머니께서는 이미 예견하고 계셨는지도 모르지."

 

아시어스는 잠시 미소를 지었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엘레나 부인이 결혼식에서 네게 부케를 던진 것...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태후 폐하께서 예견하신 것처럼, 우리 엄마도 다 알고 던지신 것 아니었을까요?"

로즈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마음을 우리만 빼고 모두가 알고 있었나 보네요."

 

아시어스는 로즈의 말에 진심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음소리는 정원을 가득 채웠고, 마치 오랫동안 묻어 두었던 감정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랬을 거야. 우리 어머니는 항상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분이셨으니까. 그리고 엘레나 부인도... 네 행복을 가장 바라시는 분이니 틀림없이 알고 계셨을 거야."

아시어스는 로즈의 손을 꼭 잡았다. 그의 눈빛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로즈, 나는 네가 황후가 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았으면 해. 네가 여전히 정원을 가꾸고, 네가 사랑하는 일을 계속하길 원해. 황후라는 직위가 네 자유를 구속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시가 두 사람 사이를 뛰어다니며 작은 울음소리를 냈다. 아시어스는 웃으며 고양이를 들어올렸다.

"아시도 축하하는 것 같군. 이 녀석도 우리를 더 가깝게 이어 준 인연이었지."

아시어스는 로즈의 이마에 부드럽게 키스했다.

"오늘 저녁 어머니께 우리의 소식을 전할게. 에시온도 기뻐할 거야. 로즈, 이제부터 우리는 함께야. 내가 너를 영원히 지키고 사랑할게."

 

로즈는 그의 입술이 자신의 이마를 간질이자 미소를 지었다.

"아, 그런데... 한 가지 양해를 구하고 싶은 게 있어요."

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그를 올려다 보았다.

"오늘 오후에 베르티니 소공작님께 황궁 정원을 안내해 드리겠다고, 저번 정원 축제 때 약속했었는데... 괜찮죠? 제가 감정을 잃었을 때 했던 약속이라..."

 

아시어스의 얼굴에 미세한 긴장감이 스쳐 지나갔다. 칼레브 베르티니. 그의 뇌리에 로즈를 향해 관심을 보이던 소공작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나 곧 그의 표정은 부드러운 미소로 바뀌었다.

"약속은 지켜야지. 그것이 황실의 품위니까."

아시어스는 로즈의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이제 불안감 대신 확신이 차 있었다.

그는 로즈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아시어스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그의 손가락에 미세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베르티니 소공작과의 약속이라... 그가 네게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 그가 네게 구혼하려 했다는 소문도 들었어."

아시어스는 잠시 말을 멈추고 로즈의 얼굴을 살폈다. 그의 눈에는 미묘한 불안과 질투가 스쳤지만, 이내 사라졌다.

"하지만 이제 네가 내 약혼자라는 사실을 베르티니 소공작에게 알릴 수 있겠구나.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군."

그가 가볍게 웃었다. 아시가 로즈의 무릎에서 뛰어내려 정원의 나비를 쫓아갔다.

"혹시 내가 함께 가면 어떨까? 아니면... 그건 너무 노골적일까?"

아시어스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묻어 있었지만, 그 안에는 미묘한 질투심도 숨겨져 있었다. 감정을 되찾은 그는 이제 이런 복잡한 감정들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농담이야. 네 약속이니 방해하지 않을게. 나는 네가 돌아올 때까지 어머니께 우리의 소식을 전할 준비를 하고 있을 거야."

아시어스는 로즈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더 이상 심연처럼 어둡지 않고, 흑요석처럼 반짝였다.

"그리고 로즈... 고마워. 네가 내 곁에 있어 줘서. 네가 내 감정을 되찾게 해줘서. 그리고 무엇보다... 내 사랑을 받아 줘서."


그 날 오후, 황궁 정원을 찾아온 칼레브를 로즈가 반갑게 맞았다.

"어서 오세요, 베르티니 소공작님! 오늘은 날씨가 화창해서, 정원을 거닐기 딱 좋은 날이에요. 어디부터 돌아보시겠어요? 동쪽부터 돌아보시겠어요?"

감정을 되찾은 이후로 칼레브와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칼레브의 손을 잡고 무표정하게 축제 연회에서 춤을 추던 로즈와는 180˚ 달라져 있었다.

 

칼레브는 로즈의 밝은 미소와 활기찬 목소리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의 짙은 녹색 머리카락이 햇빛에 반짝였고, 갈색 눈동자가 로즈의 달라진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멜린 영애... 정말 많이 달라지셨군요. 감정을 되찾으신 게 분명합니다."

칼레브의 갈색 눈동자가 로즈의 목에 걸린 푸른 다이아몬드 목걸이에 머물렀다. 그의 눈빛이 미세하게 변했다.

"그 목걸이... 황실의 보물이 아닌가요? 태후 폐하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동쪽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특히 미드나이트 이클립스가 피어 있는 곳을 보고 싶군요. 정원 축제 때 그 아름다움에 감명 받았으니까요."

 

로즈는 칼레브와 함께 정원을 거닐면서 활기차게 설명을 쏟아냈다. 감정을 잃기 전, 원래대로의 로즈의 모습이었으나 칼레브는 그 때의 로즈와 만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이런 모습이 신선해 보이기만 했다. 격식 없고 밝은 그녀에게는 분명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다. 아시어스 황제도 분명, 그런 그녀에게 끌렸으리라. 칼레브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의 목걸이를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사실 오늘 베르티니 영애님도 같이 와 주셨으면 했는데. 제가 감정을 잃었을 때, 한 번 실언을 했던 적이 있거든요. 자주색 드레스를 입은 영애께, '시큼털털한 자두 같다'고..."

로즈는 그만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리다가 얼른 손을 저으며 수습했다.

"하지만, 제가 영애님을 싫어해서가 아니었어요! 정말이에요. 아시어스... 아니, 황제 폐하께서 감정이 없으신 황태자셨을 때, 처음 뵌 자리에서도 그랬거든요. '감정이 없는 분 눈에는 모든 사람이 모아이 석상처럼 보이는 줄 알았다'고... 정말 건방진 말이었죠, 다행히 '감정이 없으셨던 덕'에 그냥 넘어가 주셨지만..."

 

칼레브는 로즈의 솔직한 이야기에 미소를 지었다. 그의 표정에 흥미로운 빛이 어렸다. 그의 갈색 눈동자가 로즈의 웃음소리에 반짝였고, 그녀의 농담에 미소를 지었다.

"감정이 없으셨을 때의 솔직함이 오히려 신선했습니다. 제 여동생에 대한 그 평가는... 사실 꽤 정확했거든요."

칼레브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시선이 다시 한번 로즈의 목걸이에 머물렀다. 목걸이의 푸른 다이아몬드가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멜린 영애, 감정을 되찾으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이제 말씀드려도 될 것 같군요. 사실 저는..."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는 영애에게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목걸이를 보니... 모든 것이 명확해졌군요."

칼레브는 잠시 말을 멈추고 로즈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복잡했으나 곧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

"축하드립니다, 멜린 영애. 아니, 곧 황후가 되실 분이군요. 그레일 제국에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을 겁니다."

그의 말에는 약간의 쓸쓸함이 묻어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진심으로 축하하는 듯했다.

"황제 폐하가 감정을 되찾으신 것도, 영애가 감정을 되찾으신 것도... 모두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두 분이 함께하시는 모습은 마치 운명처럼 느껴지는군요."

 

"어머, 벌써... 눈치 채셨어요?"

로즈가 입을 가리며 볼을 살짝 붉혔다. 그리고 칼레브의 간접적인 고백을 듣고 볼이 살짝 더 붉어졌다. 물론 단순히 여인의 수줍음이었다.

"맞아요. 소공작님께서 오시기 전, 오늘 아침에 황제 폐하께서 제게 청혼하셨어요. 공식적인 발표는 좀 더 나중이 되겠지만... 축하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그녀는 언제 소녀처럼 수다를 떨었냐는 듯이 그를 향해 우아하게 드레스 한 쪽 자락을 들어올려 인사했다.

"소공작님께서도 곧 좋은 분을 만나게 되실 거라고 생각해요. 소공작님께서도 멋진 분이시니까요. 그리고, 마리에타 영애도... 꼭 그녀의 마음을 꽃피워 줄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기원해요."

 

칼레브는 로즈의 말에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갈색 눈동자에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지만, 곧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영애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황제 폐하와 영애는... 정말 운명처럼 느껴집니다. 서로의 감정을 희생하고 되찾는 과정이 마치 동화 같군요."

칼레브는 로즈의 목걸이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햇살에 반짝이는 푸른 다이아몬드가 그녀의 눈동자와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마리에타에 대한 배려도 감사합니다. 제 여동생은... 강한 척하지만 사실 매우 여린 아이입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카트리샤라는 여자가 들어오면서 많이 상처받았거든요."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영애께서 황후가 되시면, 마리에타도 조금은 마음을 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영애처럼 따뜻한 분이라면..."

그는 로즈가 안내하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이제 미드나이트 이클립스를 보러 가볼까요? 황제 폐하와 영애의 사랑을 상징하는 그 꽃을... 다시 한번 보고 싶습니다."

칼레브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축하와 함께 미묘한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진정한 신사처럼 고상했다.


이듬해 5월, 로즈가 가꾼 장미들이 가장 싱그럽게 피어나는 계절, 아시어스 황제와 황후 로즈의 결혼식이 황궁 정원 중앙 분수대 앞에서 치러졌다. 로즈의 아버지 앤드류가 엘레나와 식을 올린 장소와 같은 곳이었다.

 

봄의 향기가 가득한 5월, 황궁 정원은 생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꾸며졌다. 중앙 분수대 주변으로 미드나이트 이클립스 장미가 가득 피어 검은 꽃잎 사이로 붉은 빛이 은은히 비쳤다. 아시어스는 금장식이 화려한 흰색 예복을 입고 분수대 앞에 서 있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더 이상 심연처럼 어둡지 않고 흑요석처럼 반짝였다.

하객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앤드류와 엘레나가 팔짱을 끼고 입장했고, 앤드류의 눈가에는 이미 감동의 눈물이 고여 있었다. 에시온은 약혼녀 에이미와 함께 들어왔고, 태후 에반젤린은 기쁨에 찬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엘비세, 미하일, 볼프람 등 황실 기사단이 정장 차림으로 도열했고, 에밋과 아이비는 이 특별한 날을 위해 가꾼 꽃들을 자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심지어 마리에타와 칼레브도 참석했다. 칼레브의 표정은 차분했지만, 진심 어린 축하의 마음이 느껴졌다.

드디어 웨딩 마치가 울려퍼지고, 로즈가 입장했다. 그녀는 미드나이트 이클립스 장미를 닮은 검은 자수가 놓인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엘레나가 그녀를 위해 손수 만든 웨딩 드레스였다. 푸른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그녀의 목에서 반짝였고, 백금빛 머리카락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로즈가 천천히 걸어오는 동안, 아시어스의 검은 눈동자에 감동의 빛이 어렸다. 한때 감정을 잃었던 그의 눈에서 이제는 깊은 사랑이 빛났다. 로즈가 그의 곁에 서자, 그는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오늘, 나 아시어스 그레일은 로즈 멜린을 내 황후이자 영원한 반려로 맞이합니다. 한때 나는 감정이라는 것을 잃었고, 세상은 무채색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내 정원에 사랑스러운 검은 장미를 심어 주었을 때, 내 마음에도 무언가가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아시어스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감정을 되찾은 그는 더 이상 차갑고 무감정한 황태자가 아니었다.

"로즈, 당신은 내 어둠 속에 빛이었습니다. 당신의 감정을 희생하면서까지 나를 구해 주었지요. 이제 나는 평생 당신을 사랑하고, 보호하며, 당신의 모든 꿈이 이루어지도록 돕겠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그레일 제국의 모든 정원에 피어날 장미처럼 영원히 아름답게 피어나길 맹세합니다."

 

그의 말에 앤드류와 엘레나는 눈물을 훔쳤고, 에반젤린 태후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 에시온은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이 반지를 교환하고 첫 키스를 나누자, 갑자기 작은 검은 고양이 '아시'가 분수대 근처에서 뛰어나와 로즈의 드레스 자락 주위를 맴돌았다. 하객들이 웃음을 터뜨렸고, 아시어스도 미소를 지었다.

로즈는 환하게 웃으며 에시온과 에이미가 함께 서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있는 힘껏 에이미를 향해 부케를 던졌다.

로즈가 부케를 던지자 에이미는 놀란 표정으로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아냈다. 그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고, 에시온은 그녀의 옆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하객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내 동생이 다음 차례인가 보구나."

아시어스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의 눈에는 더 이상 공허함이 없었다. 오직 행복과 사랑만이 가득했다.

 

에반젤린 태후는 눈물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신랑 신부에게 다가왔다.

"아들아, 이 날이 올 줄 알았단다. 네가 감정을 되찾고 진정한 사랑을 찾을 거라고."

그녀는 로즈의 손을 잡았다.

"이제 너는 우리 가족이란다, 로즈. 항상 너의 정원처럼 아름답고 생명력 넘치는 사랑을 키워가길 바란다."

이 때 작은 검은 고양이 아시가 갑자기 뛰어와 로즈의 드레스 자락 위로 기어 올라갔다. 하객들이 웃음을 터뜨렸고, 아시어스도 웃으며 고양이를 안아 올렸다.

 

결혼식이 끝나고 축하연이 시작되었다. 아시어스와 로즈는 하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첫 왈츠를 추었다.

"내 장미 여왕,"

아시어스가 로즈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제 우리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야. 내 감정을 되찾게 해 준 로즈... 이제는 평생 그대를 행복하게 해 줄게."

춤을 추는 동안, 아시어스의 눈에서는 한때 공허했던 어둠 대신 깊은 애정이 빛났다. 그의 움직임은 여전히 우아했지만, 이제는 차가운 정확함이 아닌 따뜻한 열정이 담겨 있었다.

 

앤드류는 딸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며 엘레나의 손을 꼭 잡았다. 그의 눈가에는 감동의 눈물이 맺혔다.

"우리 딸이... 이제 황후가 되었구나."

그가 감격에 젖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았다는 거야."

엘레나도 눈물이 고인 눈으로 미소를 지었다.

에밋과 아이비는 정원 한쪽에서 그들이 정성껏 가꾼 꽃들이 이 특별한 날을 더욱 빛내는 것을 보며 뿌듯해했다.

"우리 아가씨가 드디어 행복을 찾았군."

에밋이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아이비도 감동의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연이 무르익을 무렵, 분수대 주변의 조명이 은은하게 밝혀졌다. 미드나이트 이클립스 장미들이 달빛 아래 신비롭게 빛났고, 하객들은 여전히 즐거운 대화와 춤을 즐기고 있었다.

아시어스는 로즈의 손을 잡고 조용히 정원 한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그들이 처음 만났던 작은 정원 벤치가 있었다. 그는 로즈를 벤치에 앉히고 그녀의 옆에 앉았다.

은은한 달빛이 정원을 비추는 밤, 아시어스와 로즈는 첫 만남의 장소인 작은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미드나이트 이클립스 장미들이 그들 주위를 감싸고 있었고, 작은 검은 고양이 아시가 로즈의 드레스 자락 위에서 졸고 있었다.

"내 장미 여왕, 로즈."

아시어스가 로즈의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말했다.

"감정을 잃었던 나에게 꽃을 선물해 주었던 그 때처럼, 오늘도 내 마음에 새로운 꽃이 피어났어. 내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더 이상 공허함이 없었다. 오직 사랑과 감사,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기대만이 가득했다.

멀리서 축하연의 음악이 울려퍼지고 있었고, 에시온과 에이미가 손을 잡고 춤을 추는 모습이 보였다. 앤드류는 엘레나와 함께 딸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갑자기 밤하늘에 불꽃이 터졌다. 미하일과 엘비세가 준비한 깜짝 축하 불꽃놀이였다.

"우리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는 거야."

아시어스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우리는 함께 그레일 제국의 모든 정원에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낼 거야. 황제와 황후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를 사랑하는 한 쌍으로서."

아시어스는 로즈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 안고 달콤한 키스를 나누었다. 그들의 발밑에서 검은 고양이 아시가 행복하게 그르렁거렸고, 하늘에는 계속해서 아름다운 불꽃이 피어올랐다.

 

 

-fin.

 


 

아시어스와 로즈 말고도 앤드류와 엘레나도 성사시켰습니다!

앤드류가 진짜 좋은 아버지라는 말에... 상처(喪妻)한 앤드류에게 재혼을 꼭 시켜 주고 싶었어요.


유저노트에는 엘레나를 이렇게만 추가했습니다.

 
※ 엘레나 일레인 : 36세. 일레인 남작가의 여성 가주. 미혼. 황궁의 의상실 총책임자. 캐서린과 같은 머리색.
엘레나는 로즈를 딸처럼 예뻐함. 앤드류와 엘레나는 로즈가 감정을 잃은 이후로 서로를 위로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사이가 깊어짐
 

 

아시어스의 사랑으로 로즈가 감정을 되찾는 것은 너무 진부하게 느껴졌어요.

뭐랄까 '말레피센트', '겨울왕국'처럼 꼭 남녀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다른 형태의 사랑이 감정을 깨워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앤드류와 엘레나의 결혼식을 먼저 진행했고...

엘레나가 던진 부케를 로즈가 받게 해 주고 싶었죠☺️

 

그리고 지금은 이 챗 그대로 이어서 칼레브를 공략 중이에요.

로즈를 짝사랑했던 칼레브가 새로운 사랑을 찾는 이야기가 후속편으로 계속됩니다ㅋㅋ

남편 칼레브, 시누이 마리에타... 과연 어떤 시트콤이 전개될지?! 두근두근!

 


크랙 :: 세르하 유스카✨Serha Jouska
구(久) 뤼튼 :: 세르하의 환상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