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미치내스키/💢매도하는 매도하 군(&마르코 모레티)

[크랙] 매도하는 매도하군(@미치내스키) 🖼️-3- Una lacrima vera

세르하 2025. 5. 26.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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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도하는 매도하군
당신을 좋아하는게 뻔하지만 매도하는 남자💦
진짜 좋아하고 있습니다🙄
감정에 여유가 하나도 없는, 오직 휘두르는 방법밖에 모르는 연하남😅
세상모든 클리셰의 진한 응축액기스 눌러담아 다 아는 그 맛!
💃유저성별자유🕺

⚠️ 해당 플레이는 매도하가 아닌, 형 '마르코 모레티'와의 커플링을 다룹니다.

[크랙] 매도하는 매도하군(@미치내스키) 캐릭터챗 ▼
https://crack.wrtn.ai/detail/67f7e319f6e66574c11d8236

 


 

특별 전시회는 예정대로 준비되었다. 알레산드로는 네네가 제출한 특별 전시회 기획서 중 가품이 포함되어 있는 작품 선정 리스트를 보고, 그녀가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크게 만족했다. 그가 만족하는 상황에서 어느 누구도 네네의 큐레이션을 지적할 수는 없었다.

10월 15일, 네네는 마리오와 약속한 대로 팔라초 스트로치에서 열리는 미디어 아트 전시회를 찾았다.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갤러리아 모레티에 전시된 고가의 유명 미술품이 아닌, 젊은 신인 작가들의 미디어 아트 전시를 눈에 담는 것은 그녀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회복감을 주었다. 벽 하나 크기의 커다란 터치 스크린을 통해 숲 속의 동물과 식물들과 교감을 나누는 체험을 하는 'pace della foresta'라는 작품 앞에서 네네는 오랫동안 떠나지 못했다. 스크린을 가볍게 터치하는 것만으로 화면 안의 생물들이 그녀에게 집중하고 애정을 표현했다. 네네는 자신이 예술이라는 것을 통해 정말로 원했던 기쁨과 편안함이 갤러리아 모레티가 아닌, 바로 이런 데에 있음을 깨달았다.

 

【 # 119 | 2026년 10월 15일 (목) | 16:25 | 팔라초 스트로치 】

'pace della foresta' 앞에 서 있는 네네의 얼굴에 푸른빛 조명이 일렁였다. 그녀의 손가락이 화면을 가볍게 터치할 때마다, 디지털 숲속 생물들이 반응하며 그녀에게 모여들었다. 디지털 여우 한 마리가 화면 가장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나타나 네네의 손가락 움직임을 따라 춤을 추듯 움직였다.

마리오는 네네의 옆에 서서 그녀의 표정을 관찰했다. 그의 검은 뿔테 안경 너머로 따뜻한 시선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너 웃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이 작품이 그렇게 마음에 들어?"

네네는 답하지 않고 화면을 계속 응시했다. 디지털 여우가 이제 다른 동물들을 데리고 와서 그녀의 손가락 주변에 모였다. 팔라초 스트로치의 고풍스러운 건축과 첨단 미디어 아트의 대비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갤러리아에서는 어떻게 돼가? 특별 전시회 준비는?"

마리오의 질문에 네네의 손가락이 잠시 멈칫했다. 디지털 동물들이 산산이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전시장의 희미한 조명 아래서, 네네의 표정에 순간적인 그림자가 드리웠다가 사라졌다.

"응, 잘 돼 가. 방해되는 것도 없고... 모두 내 기획대로 구현되고 있어."

인테리어 업체에서 제시한 디자인은 최종안이 확정되었고, 이제 가벽 설치를 위한 제작에 들어갔다. 열흘 뒤면 모든 준비를 완료하고 드디어 갤러리아의 오너인 알레산드로에게 최종 리허설을 내보일 수 있었다. 마르코와 소피아가 지켜보는 자리에서, 결정적인 순간이 될 것이다.

"마리오, 고마워. 네가 이 전시회를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많이 지쳐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 미술품이란 저마다의 스토리를 가지고 자신을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작가의 영혼이 담긴 분신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녀가 큐레이션을 밭은 특별 전시회는 그저 서로를 속여가며 미술품을 이용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모레티 가문의 보스인 알레산드로 모레티와 스무 살짜리 풋내기 미대생인 네네 리베리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었다. 전혀 아름답지 않은 싸움이었다. 그녀가 이 싸움에서 이기든 지든, 그녀는 갤러리아를 떠나야만 했다. 아니, 모레티로부터 도망쳐야만 했다. 싸움을 위해 예술을 이용했다는 이 끔찍한 경험은 앞으로도 영원히 그녀를 쫓아다닐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상처만을 품은 채, 그녀는 도망치며 살아야만 할 것이다.

예술품에 대한 인간의 감정이 순수한 감동과 경외 이외에, 보이지 않는 추악한 의도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네네는 처음 알았다. 돈과 협박과 거짓말, 탐욕과 집착. 설마 예술의 도시 피렌체에서 이런 일을 겪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나는 이번 전시회를 끝내면 두 번 다시 큐레이션 같은 건 하지 않을 거야."

네네는 화면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네네의 움직임을 인지한 디지털 동물들이 위로하듯 그녀의 주변에 모여들었지만, 화면을 등지고 선 그녀에게는 그 위로가 느껴지지 않았다.

 

【 # 120 | 2026년 10월 15일 (목) | 16:27 | 팔라초 스트로치 】

디지털 생명체들이 화면 속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동안, 마리오는 네네의 어깨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그녀의 떨어지는 눈물이 전시장의 푸른 조명 아래 반짝였다. 팔라초 스트로치의 르네상스 천장과 첨단 미디어 아트의 대비가 두 사람의 침묵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그는 서둘러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네네에게 건넸다. 팔라초 스트로치의 미디어 아트 전시장 어두운 조명 아래서, 네네의 눈물이 반짝이는 보석처럼 빛났다.

"네네... 무슨 일인지 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혼자 견디지는 마."

그는 조심스럽게 한 발짝 다가섰다. 디지털 숲의 푸른빛이 두 사람의 얼굴을 비추며 일렁였다. 전시장의 다른 관람객들이 무심코 지나쳐 갔지만, 네네와 마리오가 서 있는 공간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고요했다.

"네가 뭘 결정하든, 네가 어디로 가든...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말해. 친구잖아."

디지털 숲속의 생물들이 화면 가장자리로 모여들어 네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들도 그녀의 슬픔을 감지한 것처럼. 팔라초 스트로치의 고풍스러운 천장 아래, 현대 기술로 구현된 자연의 평화가 네네의 눈물에 조용히 응답하고 있었다.

 

마리오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갤러리아로 돌아오니 오후 8시가 넘어 있었다. 굳게 닫힌 갤러리아 모레티의 뒷문을 마스터 키로 열고 들어갔다. 갤러리아는 쥐 죽은 듯 암흑 속에 고요했다. 네네는 직원 휴게실이 있는 2층 계단을 천천히, 조용히 올라갔다. 어둠 속을 더듬거리며 홀로 헤매는 스스로의 모습을 생각하니 쓴웃음이 번졌다. 마리오가 없었다면, 오늘 보낸 시간이 없었다면 분명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샤워실에서 몸을 씻고 머리를 말리며 특별 전시회 'Una lacrima vera'의 체크리스트를 검토했다. 인테리어 디자인, 가벽 구성, 작품 전시 순서, 작품 상태 점검... 모두 제대로 되어 가고 있었다. 내일은 갤러리아 근무일이었다. 그녀는 휴게실의 불을 끄고 잠이 들었다. 꿈에서 그녀는 오늘 본 미디어 아트 작품과 똑같은 숲 속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동물들도 그녀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 # 121 | 2026년 10월 16일 (금) | 08:12 | 갤러리아 모레티 휴게실 】

이른 아침 햇살이 휴게실 창문을 통해 비집고 들어왔다. 네네는 눈을 떴지만,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꿈속에서 본 차가운 숲의 기억이 아직 그녀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녀의 침대 옆 탁자 위에는 어제 검토했던 특별 전시회 체크리스트가 놓여 있었다.

네네가 겨우 일어나 창문을 열자, 피렌체의 아침 공기가 휴게실을 가득 채웠다. 멀리서 교회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녀는 느리게 옷을 갈아입고 간단히 화장을 했다. 오늘은 갤러리아 근무일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며 네네는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갤러리아의 고요함이 그녀를 압도했다. 아직 개장 시간 전이라 방문객은 없었고, 직원들도 모두 도착하기 전이었다. 갤러리아의 높은 천장과 대리석 바닥이 그녀의 발소리를 메아리치게 했다.

1층에 도착한 네네는 리셉션 데스크로 향했다. 그녀는 컴퓨터를 켜고 오늘의 예약 명단을 확인했다. 갑자기 등 뒤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네네가 뒤를 돌아보니, 마르코가 서 있었다. 그의 은발이 아침 햇살에 반짝였다.

"일찍 왔군. 어제 어디 갔었어?"

마르코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날카로운 무언가가 숨어 있었다. 갤러리아의 고요한 공간에서 두 사람의 긴장감이 공기 중에 떠다녔다.

"안녕하세요."

네네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지만, 그녀는 공손히 허리를 숙여 그에게 인사했다. 그러나 그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 # 122 | 2026년 10월 16일 (금) | 08:15 | 갤러리아 모레티 리셉션 】

마르코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의 청회색 눈동자가 네네의 얼굴을 꿰뚫듯 응시했다. 갤러리아의 고풍스러운 공간에 두 사람 사이의 긴장감이 팽팽하게 흘렀다.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대리석 바닥에 기하학적 무늬를 그렸다.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군."

그는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은발이 햇살에 반짝였다. 그의 키가 네네보다 훨씬 커서, 그녀는 고개를 들어야만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마르코의 향수 냄새가 미세하게 감지되었다. 갤러리아의 고요함 속에서 그의 발걸음 소리만이 울렸다.

"아버지가 너의 전시회 계획을 매우 만족스러워했어. 특히 작품 선정 리스트를."

그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냉소가 섞여 있었다. 그는 리셉션 데스크 위에 놓인 서류들을 무심코 넘겨보았다. 그의 손가락이 서류 위를 가볍게 훑었다.

"오늘 인테리어 업체가 와서 최종 점검을 할 예정이야. 네가 직접 대응해."

마르코는 말을 마치고 뒤돌아섰다. 그의 뒷모습이 갤러리아의 긴 복도를 따라 멀어져 갔다. 아침 햇살이 그의 실루엣을 따라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

네네는 그의 뒷모습에 눈길을 주지 않고 묵묵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예약 명단을 확인하고 시간대 별로 정리했다. 마르코가 떠나간 뒤에도 그가 남기고 간 향수 냄새는 한동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 # 123 | 2026년 10월 16일 (금) | 08:30 | 갤러리아 모레티 리셉션 】

시간이 흐르면서 마르코의 향수 냄새는 점차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긴장감은 여전히 공기 중에 맴돌았다. 네네는 무표정한 얼굴로 예약 명단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피렌체의 아침 햇살이 갤러리아의 창문을 통해 들어와 대리석 바닥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리셉션 데스크 주변으로 몇몇 직원들이 하나둘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네네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넸지만, 그녀의 무거운 분위기를 감지한 듯 깊은 대화를 나누려 하지 않았다. 갤러리아의 입구 유리문이 열리고 소피아가 들어왔다. 그녀의 짧은 곱슬머리가 햇살에 반짝였다.

"벌써 왔구나. 얼굴이 안 좋아 보이네."

소피아는 네네의 옆에 서서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녀의 눈에는 걱정의 기색이 역력했다. 소피아는 리셉션 데스크 뒤로 들어와 자신의 컴퓨터를 켰다.

"오늘 인테리어 업체가 올 거래. 특별 전시회 준비는 잘 돼가?"

네네가 대답하기 전에, 갤러리아의 입구가 다시 열렸다. 오전의 첫 방문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갤러리아의 고요했던 공간이 서서히 생기를 띠기 시작했다.

"네, 오후 3시에 온다고 들었어요. 가벽 설치 공사는 일주일 정도 걸린대요. 소음이 좀 발생할 거라 손님이 없는 시간대에만 진행한다고 했거든요."

그녀는 그렇게 대답하며 첫 방문객들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마르코와 대면했을 때의 지쳐 있었던 표정은 이미 온데간데 없었다.

"어서 오세요! 예약 손님이시면 성함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네네의 이탈리아어는 눈에 띄게 늘어 있었다.

 

【 # 124 | 2026년 10월 16일 (금) | 09:20 | 갤러리아 모레티 리셉션 】

아침의 방문객들이 갤러리아를 채우기 시작했다. 네네는 전문적인 미소로 그들을 맞이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피로감은 사라지고, 대신 활기 찬 전문가의 태도가 드러났다. 피렌체 햇살이 갤러리아의 대리석 바닥을 비추며 작품들의 색채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소피아는 네네의 변화에 미소 지으며 자신의 업무로 돌아갔다. 그녀의 짧은 곱슬머리가 움직임에 따라 가볍게 흔들렸다. 방문객들이 갤러리아 내부로 흩어지며, 그들의 발걸음 소리와 작은 대화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네 발음이 많이 좋아졌네. 이제 진짜 이탈리아 사람 같아."

소피아는 네네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컴퓨터 화면을 보며 예약 목록을 확인했다. 갤러리아의 입구에서 또 다른 방문객 그룹이 들어왔다. 그들은 영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네네는 자연스럽게 영어로 전환하여 그들을 맞이했다. 그녀의 전문적인 태도는 어제의 눈물과 지친 모습을 전혀 짐작할 수 없게 했다. 햇살이 그녀의 금발을 비추며 반짝이게 만들었다.

멀리서 마르코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는 갤러리아의 깊숙한 곳에서 방문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의 은발이 햇살에 빛났다.


전시실의 가벽 설치는 닷새 정도 걸렸다. 모든 것이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네네는 드디어 모레티 가문의 지하 전시실에서 자신이 선정한 총 10점의 그림들을 전시실에 가지고 올라왔다. 예술품 전문 인부들이 조심스럽게 소장품을 운반했고, 그녀가 지시하는 위치에 작품을 단단히 걸었다. 전시실의 텅 빈 하얀 벽을 그림들이 하나 둘씩 채워 나갔다.

타치아노 베첼리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라파엘로 산치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보티첼리, 카라바조 등 이탈리아의 화가들은 물론 피에르 르누아르, 에두아르 마네, 장 프랑수아 밀레, 페테르 파울 루벤스 등의 프랑스와 독일 화가들의 작품도 벽에 걸렸다. 이 중 가장 마지막에 걸린 것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이었다.

 

일주일 후, 예정대로 'Una lacrima vera'의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갤러리아를 임시 휴관한 금요일 오후, 경호원을 대동한 알레산드로가 갤러리아에 나타났다. 리허설을 참관하기로 한 마르코와 소피아도 전시실에 모였다.

네네는 정해진 인원이 모두 모이자 천천히 허리를 숙여 인사한 다음 전시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이번 특별 전시회의 타이틀은 'Una lacrima vera(진실의 눈물)'입니다. 이 전시에 선정된 10점의 작품들은 모두 미술사의 한 페이지씩을 장식한 거장 화가들의 회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르네상스 및 바로크, 그리고 사실주의를 거쳐 인상주의에 이르기까지 미술사 흐름을 역행하는 감동을 관람객들에게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녀는 오른쪽에 걸린 르누아르의 '이레네의 초상'을 가리켰다.

"'역행'이라는 말답게, 전시된 작품들은 가장 최근 작품부터 시계 역방향으로 감상하게 되어 있습니다. 가장 처음 감상하실 작품은 아마빛 머리카락을 지닌 순수한 소녀의 모습을 표현한 '이레네의 초상'입니다. 이 그림부터 시작해서 시계 반대방향 순서대로, 그림으로부터 느껴지는 스토리를 감상해 주십시오. 여기에 별도의 도슨트는 필요 없습니다. 그림책을 보시듯 그림 하나 하나를 이어지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봐 주시면 됩니다."

알레산드로와 마르코, 소피아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가며 침묵 속에서 그림을 감상했다.

 

흰 피부의 순수한 소녀 '이레네의 초상'을 출발점으로, 벽에 걸린 그림들은 마치 일관적으로 한 여인의 삶을 그린 듯한 드라마를 연출해 냈다. 마치 서로 다른 국적, 다른 시대를 살았던 작가들이 서로 합의하에 연작을 그린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아마빛 머리카락의 소녀는 꿈에 부푼 듯 꽃 속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조금 더 나이가 들어 책을 읽으며 사랑을 희망하기도 했다. 어느덧 성숙한 처녀가 된 여인은 양산을 쓰고 매력적인 남성과 함께 호숫가를 거닐었다. 그녀는 아기 천사들의 축복을 받으며 사랑하는 이와의 결혼식을 올렸으나, 곧 남편을 잃고 남은 아이들마저 떠나보내며 악몽에 시달렸다. 모든 것을 잃은 여인은 어느덧 노쇠해 있었고, 그녀의 쭈글쭈글한 손은 종교에 귀의하려는 듯 가지런히 모아져 있었다. 마지막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어둠 속의 성모'였는데, 세상의 모든 이들을 위로하듯 두 팔을 펼친 성모의 곁에 있는 아름답고 순결한 천사는 가장 처음 보았던 그림 '이레네의 초상'에 그려진 소녀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여섯 번째 그림을 볼 때 쯤, 소피아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알레산드로의 뒤를 수행하며 함께 그림을 바라보던 경호원 두 명의 표정도 미묘해졌다. 마르코도 이 계획에 없었던 연작을 보고 극심한 우울감을 느꼈다. 알레산드로 또한 어쩐지 가슴 속의 무엇인가 북받쳐 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그림을 따라갈수록 마음 속의 동요가 더 심해졌다. 맨 마지막에 위치하며 맨 첫 그림과 완벽하게 수미쌍관을 이루는 '어둠 속의 성모'에서는 그 감동이 극대화되어야 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마지막 그림을 본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가슴 속을 울리던 감동이 빠르게 식어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 # 125 | 2026년 10월 23일 (금) | 15:40 | 갤러리아 모레티 특별 전시실 】

'Una lacrima vera' 전시실 내부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소피아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고, 마르코의 표정은 깊은 바다처럼 어두워졌다. 경호원들조차 무표정한 얼굴 뒤로 감정의 파도가 일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알레산드로는 마지막 그림 앞에 서서, 무언가 잡히지 않는 불편함을 느끼며 미간을 좁혔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어둠 속의 성모' 앞에 선 알레산드로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그림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의 눈이 성모 옆의 천사와 첫 번째 그림 속 소녀 사이의 유사성을 포착했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 깃들었던 감동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흥미로운 구성이군. 특히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방식이 독특해."

알레산드로가 마침내 침묵을 깼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숨겨진 의문이 느껴졌다. 그는 천천히 네네를 향해 돌아섰다. 갤러리아의 조명이 그의 날카로운 얼굴선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마지막 그림... 다른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드는군."

알레산드로의 말에 마르코가 다시 마지막 그림으로 걸어갔다. 그의 은발이 움직임에 따라 빛을 반사했다. 소피아는 서둘러 눈물을 닦았다. 전시실의 공기가 한층 더 무거워졌다.

 

모든 사람들의 관람이 끝나자, 네네는 천천히 그림 끝에 섰다.

"여기 계신 다섯 분이 모두 비슷한 감정의 흐름을 느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알레산드로와 마르코, 소피아, 그리고 두 명의 경호원에 이르기까지 모두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리고 '어둠 속의 성모'를 돌아보았다.

"앞선 9점의 그림에서는 가슴이 뛰거나 혹은 답답하거나, 우울해지거나, 눈물이 흐르는 등... 감정이 누적되어 가는 것을 느끼셨을 것이고, 맨 마지막의 이 그림에서는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끼셨을 거예요."

네네는 알레산드로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 이유는 모레티 씨께서 가장 잘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르코 씨도요."

네네가 지목한 두 사람은 마지막 그림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어둠 속의 성모'는 가품이었다.

 

【 # 126 | 2026년 10월 23일 (금) | 15:45 | 갤러리아 모레티 특별 전시실 】

알레산드로의 얼굴에 미묘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이 네네에게 고정되었다. 전시실의 조명이 그의 얼굴에 냉랭한 윤곽을 드러냈다. 마르코는 다시 한번 '어둠 속의 성모'를 살펴보았고, 그의 턱 근육이 미세하게 경직되었다. 소피아의 눈물이 마른 뺨 위로 새로운 당혹감이 번졌다.

알레산드로는 천천히 두 손을 등 뒤로 모으고 네네에게 다가갔다. 그의 걸음은 느렸지만 위압감이 전시실 전체를 채웠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 긴장감이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경호원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세를 바로 했다.

"네네 리베리. 아주 흥미로운 전시회를 기획했군."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그 안에 숨겨진 날카로움이 감지되었다. 알레산드로는 마지막 그림과 네네를 번갈아 보며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그의 눈까지 닿지 않았다.

"전시회 제목처럼... '진실의 눈물'이군. 의도적으로 이런 구성을 한 이유가 있겠지?"

마르코가 네네와 알레산드로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의 은발이 조명 아래서 차갑게 빛났다. 전시실 안의 공기가 얼어붙은 듯했다.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은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작가가 담은 정신 세계에 감화되고, 그에 따른 감정의 이변을 겪는 증상을 말합니다."

네네는 담담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다섯 분께서 느꼈던 것처럼요. 저는 모레티 씨께서 제게 맡기신 200여 점의 작품들 중 이 작품들이 고유적으로 가지고 있는 스토리를 연계하여 한 여인의 삶의 여정을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각 그림들은 각자 다른 작가들이 다른 양식으로 그렸으나,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새겨져 있죠. '순수한 소녀'의 심상을요."

그녀는 몇 걸음 옮겨 다시 첫 그림으로 되돌아왔다.

"첫 그림 '이레네의 초상'의 주인공 이레네는 실제로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실존 인물입니다. 물론 르누아르가 이 그림을 그릴 때만 해도 소녀의 인생이 그렇게 불행해지리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겠죠. 하지만 소녀의 순수함과 화사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배경을 어둡게 칠한 이 컬러링 방식은... 역설적으로 그녀가 장차 맞이할 불행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으로 감상을 시작한 사람들은 다음 그림, 또 다음 그림을 보면서 행복한 소녀의 삶을 어쩐지 우울한 기분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사랑과 꿈, 결국에는 젊음까지... 모든 것을 잃게 되죠."

 

그녀는 어느덧 전시실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마지막 그림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어둠 속의 성모'는 스토리 상으로는 가장 완벽한 엔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늙어 죽음을 맞이한 소녀는 성모 마리아의 구원을 받아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의 모습을 지닌 천사로 다시 태어나게 되지요. 하지만..."

네네는 알레산드로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 그림에는 소녀의 감정을, 스토리의 그 감동을 관람객들에게 감화시킬 '힘'이 없습니다. 그것이 '진품'과 '가품'의 차이입니다, 모레티 씨."

그녀는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이 그림은 영국의 내셔널 갤러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암굴의 성모'의 위작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터치를 대부분 완벽하게 따라했고, 이 그림이 완성된 시기 또한 1500년대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암굴의 성모'와 짝을 이루는 작품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미술사적으로는 인정되고 있지 않는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여기 있는 10점의 작품들 중 가장 크고 화려하지만, 작가의 혼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관람객들은 그저 그림의 겉모습만을 보는 게 아닌, 그 안에 담긴 작가의 혼을 함께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9점의 그림을 보는 내내 유지되어 온 감동이, '진실의 눈물'이 멈춰 버린 겁니다."

 

네네가 알레산드로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이대로 전시할까요, 모레티 씨? 아니면... 마지막 그림을 빼고 다른 그림으로 교체할까요?"

그녀의 시선이 알레산드로의 눈동자를 꿰뚫는 듯 했다.

"어떻게 할까요?"

 

【 # 127 | 2026년 10월 23일 (금) | 15:47 | 갤러리아 모레티 특별 전시실 】

알레산드로의 얼굴에 잠시 경직된 미소가 떠올랐다. 그의 눈빛이 네네의 담담한 시선과 마주쳤다. 전시실의 공기가 얼어붙은 듯 무거워졌다. 그는 두 손을 가볍게 맞잡으며 천천히 가품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검은 구두가 대리석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고요한 전시실에 울렸다.

마르코는 아버지와 네네 사이의 긴장감을 감지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소피아는 입술을 깨물며 불안한 시선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경호원들은 미세하게 자세를 바꾸며 알레산드로를 향해 반걸음 다가섰다.

알레산드로는 천천히 손을 뻗어 '어둠 속의 성모'의 테두리를 가볍게 쓸었다. 그의 손가락이 프레임 위를 움직일 때, 소피아와 경호원들은 숨을 죽였다.

"예술의 힘이란... 참으로 흥미롭군."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숨겨진 위험이 느껴졌다. 알레산드로는 네네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에 미세한 웃음기가 스쳤다.

"스탕달 신드롬이라... 예술이 인간의 감정을 움직이는 힘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전시회로군. 가품을 가려내는 것뿐만 아니라, 관람객의 감정까지 이용해 그 사실을 증명해 보였어."

알레산드로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네네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차가운 계산과 함께 미묘한 존중이 섞여 있었다.

"네네 리베리, 자네는 나를 놀라게 하는 재능이 있군. 이 그림을... 다른 것으로 교체하지. "

그의 말에 마르코가 눈을 크게 떴다. 소피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알레산드로는 경호원 중 한 명에게 손짓했다.

"내일까지 준비하도록."

알레산드로는 네네를 한 번 더 깊게 바라본 후, 천천히 전시실을 나갔다. 그의 뒤를 경호원들이 따랐다. 문이 닫히자, 전시실에는 네네, 마르코, 소피아만이 남았다. 마르코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다.

 

알레산드로와 경호원들이 전시실을 완전히 떠나자, 가늘게 열린 네네의 입술 사이로 떨리는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소피아 씨, 인부들을... 불러 주세요. 마지막 그림을 내려야겠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호흡에 밀려 조금 떨리고 있었지만, 굉장히 차분했다.

 

【 # 128 | 2026년 10월 23일 (금) | 15:50 | 갤러리아 모레티 특별 전시실 】

소피아가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전시실을 나갔다. 그녀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전시실에는 깊은 정적만이 남았다. 네네의 금발이 조명 아래서 가늘게 떨렸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 긴장의 흔적이 스쳐 지나갔다. 마르코는 여전히 자리에 서서, 복잡한 시선으로 네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시실의 고요함이 두 사람 사이에 무거운 장막처럼 드리웠다. 마르코의 은발이 조명에 반사되어 푸른빛을 띠었다. 그는 천천히 '어둠 속의 성모'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구두 소리가 대리석 바닥에 울려 퍼졌다.

"아버지가 물러선 건 처음 보는군."

마르코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그 안에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 그는 그림의 테두리를 가볍게 만졌다. 그의 손가락이 위작의 표면을 스치자, 마치 진실이 드러난 것을 확인하듯 미세하게 떨렸다.

"네가 이런 방식으로 가품을 지적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어."

그는 천천히 네네를 향해 돌아섰다. 그의 청회색 눈동자가 그녀의 얼굴을 깊이 관찰했다. 전시실의 공기가 두 사람 사이에서 팽팽하게 당겨졌다.

 

"제가 말했잖아요. 당신 아버지가 스스로 가품을 내리게 만들 거라고."

네네는 그렇게 대답하며 마르코를 올려다보았다.

"교체할 그림은 이미 골라 두었어요. 곧 인부들이 와서 작업해 줄 거예요. 내일 아침에 보러 오세요."

그녀는 천천히 그로부터 등을 돌려 전시실을 나갔다. 그녀의 재킷 주머니에서 황금 열쇠가 희미하게 반짝였다.

 

【 # 129 | 2026년 10월 23일 (금) | 15:52 | 갤러리아 모레티 특별 전시실 】

네네의 말이 전시실의 공기를 가르고 지나갔다. 마르코의 얼굴에 순간적인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움직이지 않고 서서, 그녀가 돌아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네네의 발걸음은 가볍고 단호했다. 전시실의 조명이 그녀의 금발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그녀의 재킷 주머니에서 반짝이는 황금 열쇠는 마치 승리의 증표처럼 빛났다.

마르코는 손을 주머니에 넣고 가품 앞에 홀로 남았다. 그의 청회색 눈동자가 그림을 차갑게 훑었다. 위작의 정체가 드러난 지금, 그 그림은 마치 벗겨진 가면처럼 허무해 보였다. 전시실의 적막이 그를 감쌌다.

네네의 발소리가 복도를 따라 멀어져 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마르코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의 은발이 조명 아래서 서늘하게 빛났다. 마르코는 위작을 한 번 더 바라본 후, 전시실을 나섰다.

복도에서는 이미 소피아가 인부들을 데리고 오고 있었다. 그들의 발소리와 작업 준비 소리가 갤러리아의 고요함을 깨뜨렸다. 마르코는 그들을 지나치며 잠시 멈춰 섰다.

"조심히 다루게. 내일까지 완벽하게 교체해야 해."

그의 차가운 목소리에 인부들은 긴장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코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무거웠다.


다음 날 오전, 'Una lacrima vera'의 전시실에는 어제와 동일한 인원이 모였다. 마지막 그림 '어둠 속의 성모'가 걸려 있던 곳에는 캔버스의 사이즈가 좀 더 작은 다른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커튼으로 덮여 있었기에 어떤 그림이 전시되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알레산드로와 두 명의 수행원, 그리고 마르코와 소피아가 같은 자리에 선 가운데, 네네가 잔잔한 목소리로 운을 떼었다.

"모레티 씨께서 지시하신 대로, 마지막 그림을 교체했습니다. 먼저... 어제와 똑같이 다시 한 번 그림을 천천히 감상해 주세요. 마지막 그림은 모든 감상이 끝나셨을 때 보여 드리겠습니다."

 

【 # 130 | 2026년 10월 24일 (토) | 10:20 | 갤러리아 모레티 특별 전시실 】

전시실의 공기가 예술의 무게로 무거워졌다. 알레산드로의 진한 향수 냄새가 공간을 채우는 가운데, 네네의 차분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소피아는 어제의 긴장감이 여전히 남아있는 듯 불안한 눈빛으로 마지막 그림을 가린 커튼을 바라보았다. 마르코는 양손을 등 뒤로 모은 채 냉정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그의 청회색 눈동자에는 어제와는 다른 날카로운 호기심이 깃들어 있었다.

모두가 침묵 속에서 9개의 그림을 차례로 다시 감상했다. 알레산드로는 '이레네의 초상'부터 시작해 모든 작품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의 눈빛이 그림에서 그림으로 옮겨갈 때마다 미세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두 명의 경호원은 알레산드로의 뒤에서 벽처럼 서 있었다. 전시실 안의 온도가 점점 높아지는 듯했다.

네네는 갤러리 중앙에 조용히 서서 모든 이들의 반응을 관찰했다. 그녀의 금발이 조명 아래서 부드럽게 빛났다. 모두가 9번째 그림까지 감상을 마치자, 네네는 천천히 마지막 커튼이 쳐진 그림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발소리가 대리석 바닥에 가볍게 울렸다.

네네의 손이 커튼을 향해 뻗어나갔다. 전시실의 공기가 얼어붙은 듯 모든 시선이 그녀의 손끝에 고정되었다. 마르코의 턱 근육이 미세하게 긴장했다. 알레산드로의 눈이 좁아졌다.

커튼이 천천히 내려갔다.

 

커튼을 열어젖힌 곳에는 낯익은 가족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자애로운 어머니의 양 팔에는 약간 곱슬거리는 은발에 청회색 눈동자를 가진 두 명의 소년이 안겨 있었고, 뒤에 서서 그 어머니를 두 팔로 감싼 아버지의 상체가 묘사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모습은 첫 그림에서 묘사된 아마빛 머리카락의 소녀와는 전혀 달랐다. 그러나 어쩐지 그녀의 모습에는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간 이레네의 환생과도 같은 어떠한 순수함이 깃들어 있었다.

한 나약한 여인이 겪은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작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고하는 듯한 마지막 그림은 앞에 선 다섯 명의 관람객의 가슴을 울렸다. 그 그림은 유명한 르네상스 화가의 작품도, 바로크나 인상주의 화가의 작품도 아니었으나 앞선 9점의 그림을 통해 누적되어 온 감동을 일순간에 터뜨렸다. 마치 그림들이 순서대로 하나의 일관된 감정을 전달하며 공명하는 듯했다.

 

"알레산드라 모레티의 '마지막 자화상'입니다."

네네의 목소리가 그들의 귓가를 울렸다.

자신의 한국 이름을 포기하고 남편의 이름을 딴 이탈리아 식 이름을 새로 얻어 모레티 가문에 들어온 알레산드로의 아내, 알레산드라가 결혼 이후 모든 예술 활동을 접고 절필하기 전에 그린 마지막 그림. 알레산드로도 마르코도 그 그림의 존재를 몰랐다. 네네는 모레티 가문의 지하 전시실에 소장되어 있는 수많은 그림들 중, 알레산드라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채 천으로 덮어 두었던 그 그림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모레티 씨, 이 그림은 마음에 드시는지요?"

네네가 조금은 온화해진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 # 131 | 2026년 10월 24일 (토) | 10:25 | 갤러리아 모레티 특별 전시실 】

전시실에 깊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알레산드로의 얼굴에서 모든 표정이 사라졌다.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마르코는 충격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의 청회색 눈이 그림과 자신의 어린 모습을 번갈아 응시했다. 그 누구도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알레산드로가 천천히 그림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발걸음이 흔들렸다. 처음으로 그의 위엄 있는 자세가 무너졌다. 그가 떨리는 손을 들어 그림의 테두리를 향해 뻗었지만, 닿기 직전에 멈추었다. 그의 손가락이 공중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알레산드라..."

그의 목소리는 귀에 들릴 듯 말 듯한 속삭임이었다. 소피아는 입을 가리며 눈물을 참고 있었다. 경호원들조차 긴장한 자세를 풀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마르코는 그림 속 자신의 어린 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다가왔다. 동일한 은발과 청회색 눈을 가진 두 명의 어린 형제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 마르코의 눈가에 미세한 습기가 맺혔다.

알레산드로가 갑자기 네네를 향해 돌아섰다. 그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다. 분노와 슬픔,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감사함이 뒤섞인 표정.

"어떻게... 어떻게 찾았지?"

그의 목소리는 평소의 위압적인 톤이 아닌, 깊은 상처가 묻어나는 떨림이었다.

 

"'찾았다'고요? 아뇨, 모레티 씨."

네네는 잔잔하게 말을 이었다.

"이 그림은 숨어있지 않았어요. 늘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었죠. 모레티 가문이 가장 가치있게 여기는 소장품들을 보관해 놓은 그 지하실에서, 언젠가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의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면서 지금껏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녀의 시선이 '마지막 초상'을 향했다. 네네의 눈동자도 온기를 머금었다.

"'특별 전시회'를 계획하신 건 모레티 씨였어요. 가품을 내리고 이 작품으로 교체하라고 지시하신 것도 모레티 씨였어요. 제가 이 그림을 세상에 내놓아 보여드릴 기회를 주신 것은 모레티 씨입니다. 저는 그저... 큐레이터로서 지시에 따랐을 뿐이었죠."

 

【 # 132 | 2026년 10월 24일 (토) | 10:27 | 갤러리아 모레티 특별 전시실 】

알레산드로의 얼굴에 수십 년의 세월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그의 눈동자에 순간적으로 번쩍인 감정의 파도가 스쳐 지나갔다. 그의 단단했던 표정이 마치 오래된 도자기처럼 금이 가는 듯했다. 그는 네네의 말을 듣고 천천히 그림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재킷 단추를 꽉 움켜쥐었다. 숨겨두었던 알레산드라의 마지막 자화상이 모든 이들 앞에 드러난 지금, 전시실의 공기는 묵직한 감정으로 가득 찼다.

마르코는 그림 속 자신의 어린 모습과 동생의 모습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의 은발이 조명 아래서 떨렸다. 잊고 있던 기억의 파편들이 그의 눈앞에 떠오르는 듯했다. 소피아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며 고개를 숙였다.

알레산드로가 천천히 그림 앞에 다시 섰다. 그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그는 그림 속 알레산드라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어쩌면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진심 어린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네네 리베리."

알레산드로의 목소리가 갑자기 전시실에 울려 퍼졌다. 그의 어조는 더 이상 냉정하거나 위압적이지 않았다. 깊은 감정의 물결이 그의 목소리에 실려 있었다.

"자네는... 모레티 가문의 진정한 보물을 찾아냈군."

알레산드로는 천천히 네네를 향해 돌아섰다. 그의 얼굴에는 이전에 본 적 없는 진실된 표정이 깃들어 있었다.

"이 그림이... 모든 것을 완성시켰어. '진실의 눈물'을 완성시켰어."

그는 천천히 네네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 맺힌 습기가 조명에 반사되어 빛났다.

"전시회는 이대로 준비하게. 11월 첫째 주에 시작하도록."

알레산드로는 마지막으로 그림을 한 번 더 바라본 후, 갑자기 전시실을 빠르게 나갔다. 경호원들이 황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마르코만이 그림 앞에 홀로 남았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그림 속 어머니의 얼굴을 더듬듯 들었다가, 손을 내렸다.

 

리허설이 모두 끝나고, 임시로 닫았던 갤러리아 모레티의 문이 활짝 열렸다. 네네는 한결 홀가분해진 표정으로, 리셉션 데스크에서 자연스러운 이탈리아어로 손님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예약 손님이시면 성함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 133 | 2026년 10월 24일 (토) | 11:30 | 갤러리아 모레티 메인 홀 】

갤러리아 모레티의 거대한 유리문이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메인 홀의 대리석 바닥이 방문객들의 발소리를 부드럽게 반사했다. 네네는 리셉션 데스크에 서서 방문객들을 맞이했다. 그녀의 금발이 자연광 아래서 부드럽게 빛났다. 어깨에 걸친 가벼운 실크 스카프가 그녀의 프로페셔널한 차림새를 완성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리허설의 긴장감이 사라지고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다.

메인 홀에는 이미 여러 방문객들이 오가고 있었다. 정장을 차려입은 비즈니스맨들과 세련된 차림의 예술 애호가들이 작품들을 감상하며 작은 대화를 나누었다. 갤러리아의 직원들이 와인과 가벼운 다과를 든 트레이를 들고 손님들 사이를 부드럽게 오갔다.

네네의 이탈리아어 인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그녀의 발음은 자연스러웠고, 목소리에는 전문가다운 확신이 담겨 있었다. 리셉션 데스크 위에는 'Una lacrima vera' 전시회 팸플릿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예약 리스트 위를 가볍게 훑었다.

멀리서 마르코가 비즈니스 파트너로 보이는 남성과 대화하며 네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의 은발이 햇살에 반사되어 빛났다. 소피아는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점심 시간, 네네는 소피아와 함께 자주 찾는 트라토리아로 향했다. 그녀는 처음 소피아와 함께 이 식당에 왔을 때 먹었던 메뉴인 까르보나라를 주문했다.

"소피아 씨도 아시다시피 11월 'Una lacrima vera'는 별도의 도슨트는 필요 없어요. 미술사적인 지식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을 느끼는 컨셉의 전시회니까요. 제가 없더라도, 가이드에 어려움은 없을 거예요."

그녀는 파스타를 포크로 돌돌 말아 한 입 먹은 다음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전 다음 주까지만 나오는 걸로 할게요. 그 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소피아 씨. 보고 싶을 거예요."

 

【 # 134 | 2026년 10월 24일 (토) | 12:15 | 피렌체 시내 트라토리아 】

햇살이 가득한 트라토리아의 테라스 테이블에 앉은 네네와 소피아. 그들 주변으로 피렌체의 일상이 흘러갔다. 네네의 금발이 햇빛에 반짝이는 가운데, 그녀의 목소리는 파스타를 삼키는 소리와 섞여 부드럽게 울렸다. 소피아의 곱슬거리는 짧은 흑발이 미세한 바람에 흔들렸다. 그녀의 표정이 네네의 말을 듣자 순간적으로 굳었다.

소피아는 천천히 와인잔을 내려놓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잔의 가장자리를 따라 무의식적으로 움직였다. 테이블 위로 드리운 그늘이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을 감추었다.

"정말 떠날 거야? 'Una lacrima vera'는 네가 완성한 작품인데..."

소피아의 목소리에는 놀라움과 함께 숨겨진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녀는 네네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들 주변으로 트라토리아의 소란스러운 대화 소리와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흘렀다. 피렌체의 따스한 햇살이 테이블 위 까르보나라의 크림 소스를 반짝이게 했다.

"알레산드로 씨가 알면 실망할 거야. 그는 널 높이 평가하고 있어."

소피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녀는 주변을 살피듯 시선을 돌린 후, 다시 네네에게 집중했다. 그녀의 얼굴에 진지한 표정이 드리웠다.

"동양적인 표현으로 '그릇이 작다'는 말이 있어요.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는 말도 있고요."

네네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전 역시 대학교 과제나 하면서, 현대 미술 전시회나 구경 다니면서, 빵집이나 카페에서 서빙 알바나 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어요. 그게 제 그릇에 맞는 삶인 것 같아요."

 

【 # 135 | 2026년 10월 24일 (토) | 12:22 | 피렌체 시내 트라토리아 】

트라토리아의 테라스에 내리쬐는 햇살 아래, 네네의 금발이 부드럽게 반짝였다. 그녀의 까르보나라 위로 후추가루가 희미하게 빛났다. 소피아는 네네의 대답을 듣고 잠시 말을 잃었다. 그녀의 얼굴에 실망과 이해가 교차했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오토바이 소리와 행인들의 웃음소리가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을 채웠다.

소피아는 포크를 내려놓고 와인잔을 들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잔을 돌리며 붉은 액체를 휘저었다. 그녀의 눈빛이 네네의 결심을 읽어내려는 듯 깊어졌다.

"그래, 네가 원하는 삶이라면... 이해해."

소피아의 목소리에 묵직한 수용이 담겼다. 그녀는 잠시 시선을 내리고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입술에 묻은 와인을 천천히 닦으며 다시 네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알레산드로 씨에게는 직접 말해야 해. 그는... 네가 떠난다는 소식을 남에게서 듣고 싶어하지 않을 거야."

소피아의 말에는 경고와 충고가 함께 담겨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네네의 결심을 존중하면서도 모레티 가문의 현실을 상기시키는 듯했다. 테이블 위로 드리운 그림자가 길어졌다.

"...그럼 모레티 씨께는 마지막 날에 말씀드릴게요. 미리 말씀드리면 또 일주일 내내 '얘기 좀 하자', '시간 좀 내라' 면서 엄청시리 부담 주실 것 같으니까..."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미소지었다.

"그런 건 서로 시간 낭비잖아요. 특히 모레티 씨처럼 대단하신 분의 시간은 황금보다 비쌀 텐데."

 

【 # 136 | 2026년 10월 24일 (토) | 12:28 | 피렌체 시내 트라토리아 】

소피아의 얼굴에 미묘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와인잔을 내려놓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트라토리아의 햇살이 테이블 위 까르보나라 접시에 반사되어 부드러운 그림자를 만들었다. 네네의 금발이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그럴 수도 있겠네."

소피아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테이블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와 식기 부딪히는 소리가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을 채웠다.

"하지만 조심해, 네네. 모레티 가문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반응하곤 해."

소피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녀의 눈빛에 경고와 걱정이 함께 담겼다. 와인잔을 다시 들어 한 모금 마신 후, 그녀는 네네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황금보다 비싼 시간이라... 맞아. 하지만 그들에게 '황금'은 우리와 다른 의미일 수도 있어."

소피아의 말에는 이중적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녀는 포크로 파스타를 천천히 돌리며 네네의 반응을 살폈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오토바이 소리가 잠시 그들의 대화를 뒤덮었다.


다음 날, 그녀는 드디어 부동산에서 괜찮은 원룸을 찾아 입주 계약을 맺었다. 11월부터 입주하기로 하고, 보증금도 즉석에서 모두 완납했다.

사실 이전에 살았던 원룸의 건물주인 파비오 마라노가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줄지 자신이 없었는데, 놀랍게도 일주일 안으로 그녀의 계좌에 한 푼도 빠짐없이 전액 입금되어 있었다. 네네는 그것이 마르코가 손을 쓴 일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네네는 계약서를 소중히 들고 갤러리아 모레티의 직원 휴게실로 돌아왔다. 이제 일주일 뒤면 이 곳과도 완전히 이별이었다. 막상 떠나려니 아쉬움이 아예 느껴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다시는 큐레이션 일은 맡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오너의 고집을 꺾기 위해 미술 작품과 사람의 감정을 의도적으로 이용한 경험에 대한 상처는 그녀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남아 있었다.

 

일요일 휴관하는 갤러리아 모레티는 저녁노을을 맞아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네네는 마르코와 함께 샌드위치를 먹었던 갤러리 뒤편 테라스에 홀로 나가 의자에 앉았다. 아무도 없는 갤러리아 안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다 보니, 마치 갤러리아 전체가 자신의 것이라도 된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저녁을 거른 그녀는 의자에 앉아 붉은 석양이 완전히 뒤로 넘어갈 때까지 테이블에 턱을 괴고 지켜보았다.

 

【 # 137 | 2026년 10월 25일 (일) | 19:23 | 갤러리아 모레티 뒤편 테라스 】

황혼이 붉게 물든 하늘 아래, 네네의 금발이 저녁 바람에 가볍게 흔들렸다. 텅 빈 갤러리아의 뒤편 테라스에서 그녀는 턱을 괸 채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가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테이블 위를 무의식적으로 두드렸다. 갤러리아의 고풍스러운 건물이 석양빛에 붉게 물들었다. 주변의 올리브 나무들이 바람에 속삭이듯 흔들렸다.

네네의 얼굴에는 복합적인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눈동자에 피렌체의 붉은 석양이 반사되었다. 일주일 후면 완전히 떠날 이 공간을 마지막으로 즐기는 듯했다. 갤러리아의 테라스에서 보는 석양은 분명 특별했다. 아르노 강 너머로 펼쳐진 피렌체의 실루엣이 황금빛으로 빛났다.

마르코와 함께 샌드위치를 나누었던 테이블에 혼자 앉아, 네네는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에 보이지 않는 그림을 그렸다. 갤러리아의 정적이 그녀를 감쌌다. 해가 완전히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자, 피렌체의 불빛들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밤하늘에 첫 별이 빛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테라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네의 고요한 시간을 방해하는 예상치 못한 방문자였다.

 

【 # 138 | 2026년 10월 25일 (일) | 19:48 | 갤러리아 모레티 뒤편 테라스 】

어스름이 내린 테라스에 네네의 놀란 얼굴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문틀에 기대어 서 있는 마르코의 실루엣이 황혼의 잔광에 희미하게 드러났다. 그의 은발이 푸른 어둠 속에서도 은은하게 빛났다. 그는 정장 재킷을 벗고 셔츠 소매를 걷어올린 편안한 차림이었다. 테라스의 적막을 깨는 그의 존재감이 공간을 채웠다.

마르코는 잠시 네네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그녀가 앉은 테이블로 다가왔다. 그의 발걸음 소리가 텅 빈 테라스에 울렸다. 그는 네네의 맞은편 의자를 살짝 당겨 앉았다. 그의 청회색 눈동자가 네네의 얼굴을 살폈다.

"여기 혼자 있을 줄은 몰랐네."

마르코의 목소리가 저녁 공기를 가르며 울렸다. 그는 테이블 위에 무심코 놓인 계약서를 발견하고 시선을 잠시 멈췄다.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는 다시 네네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뭐, 석양이 좋아서?"

그의 질문은 가볍게 던져졌지만, 그 속에는 무언가 더 깊은 의미가 담긴 듯했다. 피렌체의 밤이 점점 깊어가는 가운데,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미묘하게 변화했다.

"그냥... 이제 일주일도 안 남았으니까 눈에 담아 두려고요."

네네가 담담하게 말하며 테이블에 놓인 계약서를 집어들어 팔에 꼈다.

"소피아 씨가 여기서 보는 석양이 예쁘다고 했거든요. 야근할 때 종종 봤었다고. 문득 생각나서 보러 왔어요."

그렇게 말하는 동안 이미 하늘은 붉은 색에서 마젠타 빛을 거쳐 짙푸른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다 끝난 것 같으니, 전 이만 돌아가 볼게요."

네네는 그에게 일본식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테라스 문을 밀었다.

 

【 # 139 | 2026년 10월 25일 (일) | 19:52 | 갤러리아 모레티 뒤편 테라스 】

네네의 목소리가 저녁 공기에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그녀의 손이 계약서를 집어들어 품에 안는 동작이 마르코의 시선을 끌었다. 그의 청회색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계약서에 머물렀다가 다시 네네의 얼굴로 옮겨갔다. 하늘의 마지막 붉은 기운이 사라지고 푸른 어둠이 테라스를 서서히 잠식해갔다.

마르코는 의자에 더 깊이 몸을 기대었다.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테라스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진 듯했다. 그의 손가락이 테이블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피렌체의 도시 불빛들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개와 늑대의 시간... 프랑스 표현이네."

마르코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그는 잠시 침묵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일주일 후면 정말 떠나는 거야?"

그의 질문은 단순한 확인 이상의 무게를 담고 있었다. 네네가 일어서자 마르코도 함께 일어났다. 그의 키가 네네를 살짝 내려다보는 높이였다. 테라스의 희미한 불빛이 그의 은발을 푸르스름하게 물들였다. 네네의 일본식 인사에 마르코는 움직이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네. 특별 전시회 큐레이션 맡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말씀드렸듯이요."

네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피아 씨는 모레티 씨께 직접 말씀드려야 한다고 하시긴 하던데... 마지막 날 당일에 말씀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제가 이번 달까지만 한다는 얘기는 미리 전하지 말아 주세요."

 

【 # 140 | 2026년 10월 25일 (일) | 19:54 | 갤러리아 모레티 뒤편 테라스 】

테라스를 서서히 잠식해가는 푸른 어둠 속에서 마르코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의 은발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네네의 말을 듣자 그의 입술 한쪽이 살짝 올라갔다. 피렌체의 불빛들이 테라스 난간 너머로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갤러리아의 침묵이 두 사람을 감쌌다.

마르코는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천천히 네네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그의 청회색 눈동자가 네네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테라스의 희미한 조명이 그의 날카로운 턱선을 강조했다. 그의 숨소리가 저녁 공기에 희미하게 섞였다.

"그래. 미리 말하지 않을게."

마르코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그 속에 담긴 무언가가 공기를 긴장감으로 채웠다. 그는 네네가 품에 안은 계약서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새 집은 어디?"

그의 질문은 단순해 보였지만, 그 속에는 복잡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테라스의 문이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갤러리아의 내부에서 보안 시스템이 작동하는 희미한 신호음이 들렸다.

"그건..."

네네는 계약서를 좀 더 힘주어 끌어안으며 마르코를 향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말씀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 # 141 | 2026년 10월 25일 (일) | 19:56 | 갤러리아 모레티 뒤편 테라스 】

테라스를 감싸는 푸른 어둠 속에서 마르코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의 청회색 눈동자에 차가운 빛이 번쩍였다. 네네가 계약서를 꼭 끌어안는 모습을 보며 그의 턱 근육이 미세하게 경직되었다. 피렌체의 밤 불빛들이 테라스 난간 너머로 반짝이는 가운데,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마르코는 천천히 한 발짝 더 다가섰다. 그의 존재감이 테라스의 공간을 압도했다. 네네와의 거리가 위험할 정도로 좁혀졌다. 그의 숨결이 네네의 이마에 닿을 듯했다. 마르코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의 목소리가 낮고 날카롭게 울렸다.

"말할 필요가 없다고?"

마르코의 시선이 네네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테라스 문이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갤러리아 내부의 어둠이 문틈으로 새어나왔다. 마르코의 은발이 저녁 바람에 미세하게 흔들렸다.

"모레티 가문에서 일한 사람이 그냥 사라지는 법은 없어, 네네."

그의 목소리에 담긴 무게가 테라스의 공기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마르코의 손이 주머니에서 빠져나와 네네의 팔에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멈췄다. 피렌체의 밤이 점점 깊어가는 가운데, 갤러리아의 고요함이 두 사람을 감쌌다.

"...지금 협박하시는 거예요?"

네네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녀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원하시는 게 뭐예요? 당신 아버지를 위해서 계속 일하라고요?"

 

【 # 142 | 2026년 10월 25일 (일) | 19:57 | 갤러리아 모레티 뒤편 테라스 】

네네의 차가운 질문이 테라스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마르코의 눈동자가 위험한 색채로 번쩍였다. 그의 표정에 잠시 놀란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가, 곧 냉담한 가면으로 되돌아왔다. 피렌체의 밤 불빛들이 그의 은발에 푸른 그림자를 드리웠다.

마르코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음소리가 텅 빈 갤러리아를 울렸다. 냉소적인 웃음이 가시고 나자, 그의 얼굴은 이전보다 더 차갑게 굳어졌다.

"협박? 흥미롭군. 네가 그런 식으로 받아들일 줄은 몰랐는데."

마르코는 한 걸음 물러섰다. 그의 움직임에 테라스의 공간이 넓어진 듯했다. 피렌체의 밤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내 아버지를 위해? 그건 더 웃기는 소리군. 난 단지..."

마르코의 목소리가 잠시 흔들렸다. 그는 말을 멈추고 고개를 살짝 돌려 테라스 너머 피렌체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그의 옆모습이 테라스의 희미한 불빛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가라. 네 마음대로 해. 그 누구도 널 붙잡지 않을 테니."

마르코의 목소리에서 이전의 위협적인 톤이 사라졌다. 대신 묘한 체념이 묻어났다. 그의 목소리는 냉정했지만, 그 속에 담긴 무언가가 테라스의 공기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마르코는 다시 네네를 향해 돌아섰다. 그의 청회색 눈동자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럴 생각이에요."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하고는 곧바로 등을 돌려 테라스를 도망치듯 뛰쳐나갔다. 직원 휴게실로 연결되는 2층 계단을 뛰어올라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 # 143 | 2026년 10월 25일 (일) | 20:00 | 갤러리아 모레티 테라스→내부 】

네네의 떨리는 목소리가 테라스의 공기에 흩어졌다. 마르코는 움직이지 않고 서서 그녀가 도망치듯 테라스를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청회색 눈동자에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네네의 발소리가 계단을 타고 멀어져 갈 때까지 그는 한동안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마르코의 턱 근육이 경직되었다. 그는 테라스 난간으로 천천히 걸어가 양손으로 차가운 금속을 움켜쥐었다. 그의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할 정도로 난간을 꽉 쥐었다. 피렌체의 밤 불빛들이 그의 은발에 푸른 그림자를 드리웠다.

"젠장."

낮은 욕설이 테라스의 어둠 속에 묻혔다. 마르코는 깊은 숨을 들이쉬고 피렌체의 야경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갤러리아의 내부에서 보안 시스템이 작동하는 신호음이 다시 한번 울렸다.

마르코는 등을 돌려 테라스를 떠났다. 그의 발걸음이 갤러리아의 대리석 바닥에 울려 퍼졌다. 그는 잠시 계단을 올려다보았다가, 곧 고개를 돌려 갤러리아의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문을 열기 전, 그는 다시 한번 계단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읽기 어려웠다.


결정적인 사건은 나흘 뒤에 일어났다.

네네가 대학교 수강을 마쳤을 시간대인 오후 6시, 갤러리아 모레티에 마리오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숨을 몰아쉬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 # 144 | 2026년 10월 29일 (목) | 18:05 | 갤러리아 모레티 1층 리셉션 】

갤러리아의 고요한 분위기가 급작스러운 발소리로 흔들렸다. 리셉션 데스크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소피아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유리문이 거칠게 열리며 마리오가 헐레벌떡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그의 안경은 삐뚤어져 있었고, 얼굴은 창백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소피아는 즉시 리셉션 데스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마리오의 안경이 콧등에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을 하려 했지만, 숨이 차서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들지 못했다.

"마리오? 무슨 일이야?"

소피아의 목소리가 차분했지만 긴장감이 묻어났다. 리셉션 홀의 조명이 그의 땀에 젖은 얼굴을 비추었다.

"네... 네네가... 납치됐어요!"

마리오의 목소리가 공포에 질려 떨렸다. 그는 데스크에 양손을 짚고 몸을 지탱했다. 그의 검은 뿔테 안경이 코 끝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소피아의 얼굴에서 혈색이 빠져나갔다. 갤러리아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은 듯했다.

"뭐라고? 천천히 말해 봐."

소피아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갤러리아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마리오는 몇 번 심호흡을 하며 말을 이었다.

"검은색 밴이... 대학 앞 버스 정류장에서... 강제로 끌려갔어요!"

소피아는 즉시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빠르게 번호를 눌렀다. 리셉션 데스크 뒤편에 있던 보안 모니터가 파란 빛을 내뿜었다.

피렌체를 지배해 온 오랜 가문들, 모레티, 메디치, 리카솔리... 수화기를 집어든 소피아를 바라보며, 마리오는 어쩌면 나머지 두 가문 중 한 세력의 소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네는 갤러리아 모레티의 오너이자 모레티 가문의 수장인 알레산드로와 그의 아들 마르코에게 인정받은 존재였다. 내심 우려하던 일이 정말로 벌어진 것이다.

 

【 # 145 | 2026년 10월 29일 (목) | 18:06 | 갤러리아 모레티 1층 리셉션 】

소피아의 손가락이 전화기 버튼을 재빠르게 눌렀다. 리셉션 홀의 대리석 바닥에 마리오의 거친 숨소리가 울렸다. 갤러리아의 평온했던 공기가 순식간에 긴장감으로 채워졌다. 마리오는 안경을 밀어 올리며 소피아의 전화를 지켜보았다. 그의 머릿속에 피렌체의 오래된 가문들 사이의 암투가 스쳐 지나갔다.

소피아의 표정이 급격히 변했다. 그녀는 전화를 끊고 마리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 날카로운 결의가 서렸다. 리셉션 데스크 위의 모니터 불빛이 그녀의 얼굴에 푸른 그림자를 드리웠다.

"차량 번호판은 기억해?"

소피아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날이 서 있었다. 그녀는 이미 다른 번호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마리오는 기억을 더듬었다. 소피아의 손가락이 데스크 위를 초조하게 두드렸다.

"마르코 씨, 지금 당장 갤러리아로 와 주세요. 네네가... 네네가 납치됐습니다."

소피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수화기 너머에서 날카로운 반응이 들려왔다. 소피아는 마리오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짧은 곱슬머리가 움직임에 따라 흔들렸다.

"알레산드로 씨에게도 즉시 연락하겠습니다. 네, 마리오 카루소가 목격했어요. 지금 여기 있습니다."

 

소피아는 전화를 끊고 즉시 다른 번호를 눌렀다. 갤러리아의 보안 시스템이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리셉션 홀의 조명이 더 밝아진 듯했다. 마리오의 창백한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피렌체의 오래된 가문들 간의 권력 다툼이 갑자기 현실이 되어 갤러리아의 고요한 공간을 침범했다. 소피아는 전화기를 꽉 쥐고 있었고, 그녀의 표정은 점점 더 긴장되어 갔다. 마리오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계속 흘러내렸다.

"알레산드로 씨, 긴급 상황입니다. 네네가 납치됐습니다."

소피아의 목소리는 전문가처럼 침착했지만,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날카로운 이탈리아어가 폭발했다. 소피아는 즉시 대답했다.

"네, 마르코 씨에게도 연락했습니다. 검은색 밴이었다고 합니다. 대학 앞 버스 정류장에서 일어났어요."

리셉션 홀의 대리석 바닥에 긴장된 침묵이 내려앉았다. 마리오는 소피아의 통화를 지켜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갤러리아의 보안 시스템이 작동하는 신호음이 울렸다. 소피아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알겠습니다. 네, 그를 여기 붙잡아 두겠습니다."

소피아는 전화를 끊고 마리오를 향해 돌아섰다. 그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리셉션 데스크의 모니터 불빛이 두 사람의 얼굴에 푸른 그림자를 드리웠다.

"마르코 씨가 5분 안에 도착할 거야. 알레산드로 씨는 지금 연락망을 가동시키고 있어."

소피아의 목소리에 묘한 긴장감이 스며들었다. 갤러리아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마리오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 # 146 | 2026년 10월 29일 (목) | 18:10 | 갤러리아 모레티 1층 리셉션 】

갤러리아의 유리문이 거칠게 열리며 마르코가 폭풍처럼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은발이 흐트러져 있었고, 청회색 눈동자에는 차가운 분노가 서려 있었다. 소피아와 마리오가 그를 향해 돌아섰다. 마르코의 발걸음이 대리석 바닥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그는 리셉션 데스크까지 성큼성큼 걸어와 마리오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정확히 말해. 어디서, 어떻게."

마르코의 목소리는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그의 손가락이 마리오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리셉션 홀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은 듯했다. 마리오는 눈을 깜빡이며 마르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안경이 다시 코 끝으로 미끄러졌다.

"대학... 대학 앞 버스 정류장에서요. 검은색 밴이 갑자기 나타났고, 두 명의 남자가 네네를 강제로 끌어들였어요. 제가 소리치려고 했는데, 그 중 한 명이 총을 가지고 있었어요."

마리오의 목소리가 떨렸다. 마르코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는 마리오의 어깨를 놓고 소피아를 향해 돌아섰다. 그의 움직임에서 위험한 기운이 느껴졌다.

"번호판은?"

소피아가 질문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데스크 위의 키보드를 준비하고 있었다. 마리오는 기억을 더듬었다.

"FI... FI로 시작했어요. 나머지는...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마르코가 휴대폰을 꺼내 빠르게 통화를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가 날카로운 이탈리아어로 흘러나왔다. 리셉션 홀의 공기가 더욱 무거워졌다. 마르코의 얼굴에 서린 분노가 공간을 압도했다. 그의 이탈리아어 대화는 짧고 날카로웠다. 그는 전화를 끊고 마리오를 다시 바라보았다.

"시간. 정확히 몇 시에 일어났지?"

마리오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5시 40분경이었어요. 버스 정류장에서 네네와 인사를 나눴고, 제 버스가 먼저 와서 막 타려던 찰나였어요. 그 때 검은 밴이 갑자기 나타났고..."

마르코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영어로 짧게 명령을 내렸다. 소피아는 컴퓨터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리고 있었다. 리셉션 데스크의 모니터에 대학 주변 CCTV 화면이 나타났다.

 

갤러리아의 문이 다시 열렸다. 알레산드로 모레티가 들어왔다. 그의 걸음은 느렸지만 확고했다. 회색 양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평소와 다름없이 우아했지만, 그의 눈에는 위험한 빛이 서려 있었다. 리셉션 홀의 공기가 순식간에 더욱 무거워졌다. 마르코와 소피아가 즉시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설명해."

알레산드로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 담긴 권위와 위험이 공간을 지배했다. 마리오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마르코가 상황을 간결하게 설명했다. 알레산드로는 말없이 듣고 있다가, 휴대폰을 꺼내 단 한 번의 통화를 했다. 이탈리아어로 된 짧은 명령이었다. 그는 전화를 끊고 마르코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30분 안에 위치를 파악할 것이다. 그들이 누구든, 오늘 밤이 지나기 전에 후회하게 될 거야."

알레산드로의 차분한 목소리에 담긴 위협이 리셉션 홀 전체에 울렸다. 그는 마리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노련한 사업가의 표정 아래 잔인한 결의가 느껴졌다. 마리오의 등줄기로 한기가 흘렀다.

"당신은 모레티 가문에 큰 도움을 주었소. 잊지 않겠네."

알레산드로는 마르코에게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사이에 무언의 대화가 오갔다. 마르코의 청회색 눈동자에 살기가 서렸다. 그는 재킷 안쪽에서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한 동작을 했다.

"아버지,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마르코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알레산드로는 아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가 내렸다. 그의 손가락에 끼워진 금빛 반지가 조명 아래서 번쩍였다.

"당연하지. 내 아들아. 네 책임이니까."

알레산드로의 말에 마르코의 턱 근육이 경직되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리셉션 홀의 공기가 더욱 무거워졌다. 마리오는 두 남자 사이에 흐르는 위험한 기류를 감지하고 한 발 물러섰다.


네네는 어두운 창고 안에서 정신을 차렸다. 입에 재갈도 물려 있지 않았고, 손이나 발이 묶여 있지도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곳, 여자의 힘으로 무슨 짓을 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곳에 있다는 의미였다.

그녀는 자신의 키의 서너 배 높이는 되어 보이는 컨테이너 창고 벽을 더듬었다. 창은 천장 가까운 곳에 뚫려 있었다.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출입문을 두드리는 멍청한 짓보다는, 어떻게든 창문으로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 것이 나아 보였다. 네네는 창고답게 한켠에 쌓여 있는 박스들을 끌어냈다. 그리고 창이 있는 쪽으로 블럭 쌓기를 시작했다. 상자를 타고 기어올라 창으로 빠져나가는 것, 이 생각이 과연 현실로 옮겼을 때 효과가 있는 방법일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 당장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런 것 뿐이었다.

 

【 # 147 | 2026년 10월 29일 (목) | 18:20 | 불명의 창고 】

어둠이 물든 컨테이너 창고의 냉기가 네네의 피부를 파고들었다. 희미한 빛줄기가 높은 천장 가까이 난 창문으로 스며들어 콘크리트 바닥에 희미한 사각형을 그렸다. 네네는 몸을 일으키며 둔한 통증을 느꼈다.

네네는 본능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재갈도, 결박도 없었다. 그것은 더 큰 위험의 신호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높은 천장의 창문을 향했다. 탈출구는 오직 그곳뿐이었다. 그녀의 손이 차가운 벽면을 더듬었다. 금속 벽체의 이음새가 손가락에 느껴졌다.

창고 한쪽에 쌓인 박스들이 눈에 들어왔다. 네네는 망설임 없이 가장 큰 상자를 끌어당겼다. 나무 상자가 콘크리트 바닥을 긁으며 끌려왔다. 묵직한 소리가 텅 빈 공간에 울렸다. 그녀는 상자를 창문 아래로 옮기기 시작했다. 상자 위에 또 다른 상자를 쌓았다. 그녀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창고 밖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네네의 동작이 멈칫했다. 그녀는 귀를 기울였다. 남자들의 대화 소리, 담배 냄새가 희미하게 감지되었다. 그녀는 다시 상자를 쌓는 작업에 집중했다. 손바닥이 거친 나무 표면에 긁혀 따가웠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세 번째 상자를 쌓았을 때, 네네는 숨을 고르며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았다. 불안정해 보이는 탑이 창문을 향해 솟아있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확인했지만, 예상대로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화면은 '서비스 지역을 벗어났습니다'라는 메시지만 보여줄 뿐이었다. 네네는 입술을 깨물며 다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창문까지의 거리를 다시 한번 가늠했다. 상자 탑이 위태로워 보였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네네는 조심스럽게 첫 번째 상자 위로 올라갔다. 나무판이 그녀의 체중에 삐걱거렸다. 두 번째 상자로 올라가는 순간 균형을 잃을 뻔했지만, 가까스로 자세를 잡았다.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마지막 상자까지 올라갔을 때, 창문과의 거리는 여전히 멀어 보였다.

네네는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창고 구석에 더 작은 상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내려와 그것들을 가져왔다. 손바닥이 쓰라렸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었다. 창고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다섯 번째 상자까지 쌓았을 때, 네네는 마침내 창문에 손이 닿을 정도의 높이에 도달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상자 탑 위에서 균형을 잡았다. 창문은 작았지만, 그녀의 몸이 빠져나갈 만큼은 되어 보였다. 네네의 손이 창틀을 붙잡았다. 녹슨 금속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 # 148 | 2026년 10월 29일 (목) | 18:25 | 불명의 창고 】

그녀는 예상대로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화면은 '서비스 지역을 벗어났습니다'라는 메시지만 보여줄 뿐이었다. 네네는 입술을 깨물며 다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창문까지의 거리를 다시 한번 가늠했다. 상자 탑이 위태로워 보였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네네는 조심스럽게 첫 번째 상자 위로 올라갔다. 나무판이 그녀의 체중에 삐걱거렸다. 두 번째 상자로 올라가는 순간 균형을 잃을 뻔했지만, 가까스로 자세를 잡았다.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마지막 상자까지 올라갔을 때, 창문과의 거리는 여전히 멀어 보였다.

네네는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창고 구석에 더 작은 상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내려와 그것들을 가져왔다. 손바닥이 쓰라렸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었다. 창고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다섯 번째 상자까지 쌓았을 때, 네네는 마침내 창문에 손이 닿을 정도의 높이에 도달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상자 탑 위에서 균형을 잡았다. 창문은 작았지만, 그녀의 몸이 빠져나갈 만큼은 되어 보였다. 네네의 손이 창틀을 붙잡았다. 녹슨 금속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창고 문 쪽에서 열쇠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네의 동작이 급해졌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몸을 끌어올렸다. 상자 탑이 흔들렸지만, 그녀는 이미 창문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몸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상자 탑이 위태롭게 흔들렸지만, 네네의 상체는 이미 창틀에 걸쳐진 상태였다. 녹슨 창틀이 그녀의 옷을 찢었다. 바깥의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창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더욱 또렷해졌다.

 

네네는 창문 너머를 살폈다. 버려진 항구의 일부로 보이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멀리 피렌체의 불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녀는 마지막 힘을 다해 몸을 밀어 올렸다. 상자 탑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창고 문이 완전히 열렸다.

"어이! 거기서 뭐 하는 거야!"

거친 이탈리아어가 창고 안을 울렸다. 네네는 망설이지 않고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차가운 금속 지붕 위로 떨어진 그녀의 몸이 미끄러졌다. 팔꿈치와 무릎이 긁혔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창고 안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네네는 금속 지붕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갔다. 지붕 끝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약 3미터 아래의 콘크리트 바닥을 보았다.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뛰어내렸다. 충격이 전신을 통해 퍼졌지만, 낙법을 쓴 덕분에 심각한 부상은 피할 수 있었다.

"저기다! 잡아!"

창고 모퉁이에서 두 남자가 나타났다. 네네는 즉시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다리가 아프게 저렸지만, 공포와 아드레날린이 그녀를 앞으로 떠밀었다. 창고 단지의 미로 같은 골목을 따라 달리는 동안 뒤에서 고함소리와 발소리가 들렸다.

네네는 어두운 골목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그녀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팔꿈치에서 흐르는 피가 손목을 타고 흘렀다. 멀리 피렌체의 불빛이 보였지만, 그곳에 도달하기까지의 거리는 너무 멀어 보였다. 그녀는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컨테이너 뒤에 몸을 숨겼다.

"이 쪽으로 갔을 거야! 빨리!"

거친 이탈리아어가 밤공기를 갈랐다. 네네는 컨테이너 사이에 나뒹굴고 있는 목재들 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일본에서 자란 그녀는 어려서부터 검도와 유도를 배우며 자랐기에 만약의 사태에는 싸울 대비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 149 | 2026년 10월 29일 (목) | 18:30 | 항구 창고 단지 】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가운데 네네는 손에 쥔 목재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녀의 근육이 긴장으로 팽팽해졌다. 검도 훈련에서 배운 자세를 무의식적으로 취하며,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컨테이너 모서리에서 그림자가 움직였다.

첫 번째 남자가 나타났을 때, 네네는 주저하지 않았다. 목재가 공기를 가르며 남자의 팔을 강타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네네는 유도 기술을 사용해 남자의 무게를 이용, 그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콘크리트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이 망할 여자가!"

두 번째 남자가 달려들었다. 그의 손에는 작은 칼이 들려 있었다. 네네는 냉정하게 그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남자가 칼을 휘두르자, 그녀는 몸을 낮추어 공격을 피했다. 한 번의 빠른 동작으로 그녀는 남자의 손목을 잡아 비틀었다. 칼이 땅에 떨어졌다.

"씨발, 잡아!"

멀리서 더 많은 발소리가 들렸다. 네네는 상황을 재빨리 판단했다. 창고 단지의 출구는 너무 멀었고, 그곳으로 가는 길은 이미 막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녀는 방향을 바꿔 항구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배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희망을 품고.

 

그녀의 다리가 고통으로 욱신거렸지만, 네네는 멈추지 않았다. 팔꿈치와 무릎에서 흐르는 피가 옷을 적셨다. 어둠 속에서 항구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났다. 검은 바다가 불규칙한 파도로 일렁이며 흐릿한 달빛을 반사했다. 네네는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선착장에 몇 척의 작은 어선과 화물선이 정박해 있었다. 그녀는 가장 가까운 배를 향해 달렸다.

"포위해! 저쪽으로 도망쳤다!"

창고 쪽에서 여러 손전등 불빛이 춤추듯 움직였다. 네네는 몸을 숙이고 부두를 따라 달렸다. 물에 젖은 나무 데크가 그녀의 발소리를 증폭시켰다. 그녀는 작은 어선 뒤에 몸을 숨겼다. 심장이 귀에서 울렸다.

멀리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강한 헤드라이트 빛이 항구를 비추었다. 네네는 몸을 더 낮추었다.

그녀는 언젠가 마리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피렌체는 표면적으로는 관광객들이 보는 아름다운 예술의 도시야. 하지만 이면에는... 오래된 가문들의 권력 다툼이 있지. 모레티, 메디치, 리카솔리... 이런 가문들이 몇 세기 동안 이 도시를 지배해 왔어.'

그저 평범한 대학생에 불과한 그녀를 납치할 만한 이유라고는 아무리 생각해도 갤러리아 모레티에서 근무하는 것 외에는 떠올릴 수가 없었다. 모레티 가문과 이미 얽힐 대로 얽혀 버렸다는 뜻일까. 당장 며칠 뒤면 갤러리아도 때려치고, 그 빌어먹을 가문과 완전히 연을 끊을 수 있었는데.

"ちくしょう(칙쇼)..."

그녀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그맣게 일본어 욕을 내뱉으며, 다시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 150 | 2026년 10월 29일 (목) | 18:32 | 항구 선착장 】

어둠에 익숙해진 네네의 눈이 선착장 주변을 훑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마리오의 말이 메아리쳤다. 모레티 가문, 메디치, 리카솔리... 몇 세기 동안 피렌체의 이면을 지배해 왔다는 그 이름들. 그녀는 자신이 그저 예술을 사랑하는 유학생일 뿐인데, 어째서 이런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네네는 젖은 목재 선착장 위에 엎드려 숨을 고르며, 자신을 납치한 이유를 생각했다. 갤러리아 모레티에서 일한 것, 그것 말고는 납치될 이유가 없었다. 며칠만 더 버텼다면 그 저주받은 갤러리아와 영원히 작별할 수 있었을 텐데. 그녀의 마음속에 분노와 후회가 교차했다.

네네는 몸을 낮추고 선착장에 묶인 작은 어선 주변을 살폈다. 손전등 불빛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어선 바닥에 놓인 노를 포착했다. 무거워 보였지만, 그만큼 완벽한 무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네네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노를 잡아당겼다. 물기를 머금어 제법 무거웠지만, 그녀는 검도 훈련으로 단련된 팔의 힘을 이용해 노를 들어 올렸다. 어깨에 걸쳐진 가방을 단단히 고정시키고, 그녀는 다시 상황을 살폈다.

자동차 엔진 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강한 헤드라이트가 부두를 비추었다. 네네는 몸을 숨기고 숨을 죽였다. 이제 그녀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어선을 이용해 도망치거나, 싸우며 탈출 경로를 확보하는 것.

네네는 노를 단단히 쥐고 재빨리 결정을 내렸다. 어선으로 도망치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바다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그녀가 야간에 배를 운전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싸우며 탈출구를 찾기로 했다.

발소리가 선착장 입구에서 들렸다. 손전등 불빛이 어둠을 가르며 다가왔다. 네네는 어선 뒤에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 그녀의 손이 노를 더 단단히 움켜쥐었다. 검도 훈련에서 배운 호흡법을 떠올리며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쪽이다! 분명 여기 어딘가 있을 거야."

거친 이탈리아어가 공기를 갈랐다. 두 명의 남자가 선착장으로 걸어들어왔다. 그들의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네네는 그것이 무기라고 확신했다. 그녀는 자신의 위치를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더 깊숙이 몸을 숨겼다.

"씨발, 어디로 사라진 거야? 보스가 살려두지 않을 거다."

네네의 머릿속에서 마리오의 경고가 다시 울렸다. 모레티 가문의 권력... 그녀는 이제 그 경고의 의미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아름다운 예술의 도시' 이면에 숨겨진 어둠에 자신이 빠져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 # 151 | 2026년 10월 29일 (목) | 18:35 | 항구 선착장 】

네네의 귀에 발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선착장의 나무판자가 무게에 눌려 삐걱거렸다. 그녀는 노를 더 단단히 쥐고 어선 뒤에 몸을 낮췄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냉정했다. 유도와 검도 훈련이 그녀의 몸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여기 없는 것 같은데. 다른 쪽 확인해 봐."

한 남자가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네네는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첫 번째 남자가 돌아서는 순간, 두 번째 남자가 어선 쪽으로 다가왔다. 그의 손전등 불빛이 물 위를 비추었다. 네네는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렸다.

남자가 어선에 거의 다다랐을 때, 네네는 번개처럼 움직였다. 노를 휘두르며 남자의 다리를 강타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남자가 균형을 잃고 비명을 질렀다. 손전등이 물 속으로 떨어졌다. 네네는 즉시 노를 다시 들어올려 남자의 어깨를 내리쳤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남자가 바닥에 쓰러졌다.

"카를로! 무슨 일이야?"

첫 번째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돌아섰다. 네네는 어둠 속에서 그의 윤곽만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노를 던지고 쓰러진 남자의 총을 낚아챘다. 검은 금속이 달빛에 희미하게 빛났다. 그녀는 총을 들고 선착장 끝으로 달렸다.

"멈춰! 안 그러면 쏜다!"

남자의 외침이 밤공기를 갈랐다. 네네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선착장 끝에 도달했을 때 주저없이 다음 배로 뛰어올랐다. 금속 갑판이 네네의 발 아래서 울렸다. 그녀는 몸을 낮추고 다음 배로 뛰어올랐다. 이 작은 화물선은 더 큰 배들 사이에 숨겨져 있었다. 그녀의 뒤에서 총성이 울렸다. 총알이 물 위로 튀었다. 네네는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그녀는 손에 든 총을 확인했다. 어떻게 사용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녀는 화물선 뒤쪽으로 몸을 숨기고 항구 출구를 향해 달렸다. 총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추격자들을 잠시 멈춰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네네의 발이 젖은 갑판 위를 달렸다. 그녀는 배에서 배로 뛰어넘으며 항구 끝을 향해 나아갔다. 마지막 배에서 그녀는 부두로 뛰어내렸다. 충격이 다리를 타고 올라왔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항구 출구가 보였다. 그곳을 지나면 도로에 닿을 수 있었다.

"저기다! 놓치지 마!"

네네는 뒤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그녀의 다리는 이미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지만, 공포와 생존 본능이 그녀를 앞으로 밀어붙였다. 항구 출구에 가까워질수록 도시의 불빛이 더 밝게 보였다. 구원의 빛처럼.

출구에 거의 다다랐을 때, 검은 차 한 대가 그녀 앞에 급정거했다. 네네는 숨을 멈췄다. 차 문이 열렸다. 그녀는 총을 들어올렸다. 손이 떨렸지만, 그녀는 결심한 듯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렸다.


【 # 152 | 2026년 10월 29일 (목) | 18:40 | 항구 출구 】

차 문이 열리자 은발의 남자가 급하게 뛰어내렸다. 마르코 모레티였다. 그의 청회색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도 날카롭게 빛났다. 그는 재킷을 반쯤 벗은 채 서둘러 네네에게 다가왔다.

"네네! 빨리 타! 지금 당장!"

네네는 몸을 굳히고 손에 든 총을 마르코를 향해 들었다. 그녀의 손이 떨렸지만, 눈빛은 단호했다. 그녀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오지 말아요! 가까이 오면 쏠 거예요!"

마르코는 잠시 멈춰 서서 네네의 상태를 빠르게 살폈다. 그녀의 팔꿈치와 무릎에서 흐르는 피, 흙과 물에 젖은 옷, 공포와 결의가 뒤섞인 표정. 그의 눈에 분노가 스쳤다.

"이럴 시간 없어! 이리 와!"

항구 안쪽에서 고함소리와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총성이 다시 한번 울렸다. 네네는 뒤를 돌아보았고, 그 순간 마르코가 움직였다. 그는 번개같은 속도로 네네의 팔을 붙잡아 총을 빼앗았다.

"미안하다."

그가 짧게 말하며 네네의 허리를 감싸 안고 차 안으로 밀어넣었다. 네네가 저항했지만, 마르코의 힘을 당해낼 수 없었다. 그는 재빨리 운전석에 올라타 문을 잠갔다. 엔진이 포효하며 차가 출발했다.

차 안에 갇힌 네네가 씩씩거리며 마르코를 노려보았다.

"당신이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요? 아까 그 놈들은 뭐예요?"

 

【 # 153 | 2026년 10월 29일 (목) | 18:42 | 달리는 차 안 】

차가 항구를 벗어나 어두운 해안도로를 질주했다. 차 안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마르코의 날카로운 시선은 도로와 백미러를 번갈아 확인했다. 그의 손가락이 핸들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네네는 조수석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마르코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숨소리는 여전히 거칠었고, 팔과 무릎의 상처에서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흙과 땀으로 얼룩져 있었지만, 눈빛만은 날카로웠다.

마르코는 백미러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속도를 더 높였다. 차가 커브를 돌 때마다 타이어가 비명을 질렀다. 그의 턱 근육이 경직되어 있었다.

"소피아가 연락했어. 마리오가 네가 납치된 걸 목격했다고. 위치 추적은 내 일이야."

그가 짧게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지만, 어딘가 분노가 억눌려 있는 듯했다.

네네는 여전히 마르코를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문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그 사람들은 누구예요? 왜 나를 납치한 거죠?"

마르코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빛이 잠시 어두워졌다.

"아버지의 적들일 거야. 우리 가문을 공격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주변 인물을 노리는 거지."

"메디치, 리카솔리... 뭐 그런 가문요? 저도 소문으로 들었어요."

그녀는 한숨을 쉬며 얼굴을 찡그렸다.

"미치겠네. 이제 내일 모레면 갤러리아도 그만 둘 텐데, 왜 이런 일이..."

추격자들은 얼추 따돌린 것 같았다. 더 이상 쫓아오는 타이어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헤드라이트도 보이지 않았다. 네네는 지친 듯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 # 154 | 2026년 10월 29일 (목) | 18:48 | 달리는 차 안 】

마르코는 피렌체의 좁은 골목길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며 차를 몰았다. 한동안 그는 말없이 도로만 응시했다. 백미러를 주시하던 그의 시선이 이제야 조금 누그러졌다.

"메디치나 리카솔리 같은 가문들은 표면적으로 깨끗한 사업을 하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과거가 있지. 세대를 거치며 합법적 사업으로 전환했을 뿐이야."

그가 핸들을 꽉 쥐며 말했다. 차가 해안가를 벗어나 도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네네는 지친 듯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녀의 얼굴에 묻은 먼지와 흙이 차 안의 희미한 불빛에 드러났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면, 네가 특별 전시회를 맡도록 두지 않았을 거야. 네가 우리 가문의 큐레이터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거지."

마르코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냉소가 사라진 대신, 무거운 책임감이 묻어났다. 그는 잠시 속도를 늦추고 네네를 흘깃 바라보았다. 그녀의 상처에 시선이 멈췄다.

"병원부터 가야겠어."

네네는 지금 병원이 문제가 아니었다.

"...전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 이미 늦은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아직 한 학기도 제대로 못 들었는데... 결국 일본으로 돌아가야..."

 

【 # 155 | 2026년 10월 29일 (목) | 18:52 | 달리는 차 안 】

마르코의 손가락이 핸들을 더 단단히 움켜쥐었다. 네네의 떨리는 목소리가 차 안을 채웠다. 그녀의 얼굴에 공포와 절망이 스쳐 지나갔다. 마르코는 그녀의 표정을 흘깃 보고는 시선을 다시 도로로 돌렸다. 차가 골목길을 빠져나와 넓은 대로로 진입했다.

"돌아갈 필요 없어. 네가 일본으로 도망간다고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그의 목소리는 냉정했지만, 평소의 냉소적인 톤은 없었다. 그는 백미러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속도를 조금 늦췄다. 차가 역사적인 건물들 사이로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이제 넌 이미 관여되어 있어. 갤러리아를 그만둔다고 해서 그들이 널 그냥 놔 두지 않을 거야. 특히 '특별 전시회' 이후로는."

마르코가 잠시 침묵했다.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네네는 자신의 팔을 감싸 안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금발이 얼굴을 가렸다.

"우린 널 보호할 거야. 내가... 네가 안전하게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할게."

마르코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부드러워졌다. 그는 순간 자신의 약점을 드러낸 것에 당황한 듯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아버지의 지시야. 널 그냥 놔 두면 가문에 위험이 될 수 있으니까."

차가 한적한 주택가로 방향을 틀었다. 마르코는 네네의 새 원룸이 있는 방향과는 반대로 차를 몰고 있었다.

"잠깐만요. 지금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는 거예요?"

그녀가 당황스러운 듯 차창에 손을 짚고 두리번거렸다.

"여긴 갤러리아 쪽도 아니고, 내 집이 있는 쪽도 아닌데...!"

 

【 # 156 | 2026년 10월 29일 (목) | 18:54 | 피렌체 외곽 주택가 】

차가 피렌체 외곽의 고급 주택가로 접어들었다. 네네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창밖으로 보이는 낯선 풍경에 혼란스러워했다. 화려한 가로등 불빛이 고급 저택들의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르코는 여전히 차분하게 핸들을 조종했다.

"네 원룸이나 갤러리아는 이미 그들이 알고 있어. 지금 가장 안전한 곳은 우리 가문의 별장이야."

마르코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논쟁의 여지를 두지 않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차가 언덕 위로 올라가며 피렌체 시내의 불빛이 발 아래로 펼쳐졌다. 네네는 불안한 듯 손으로 가방 끈을 꽉 쥐었다.

"난 당신네 가문의 별장 같은 데 가고 싶지 않아요. 그냥... 내 집에 데려다 주세요. 제발."

네네의 목소리가 떨렸다. 마르코는 백미러를 확인하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의 턱 근육이 경직되었다.

"지금은 그럴 수 없어. 너를 노리는 자들이 누군지 확인되기 전까지는 안전한 곳에 있어야 해."

차가 큰 저택 앞에 도착했다. 주변은 놀랍도록 조용했고, 높은 담장과 정교한 철문이 저택을 둘러싸고 있었다. 마르코가 리모컨을 눌러 철문을 열었다. 네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문 손잡이를 잡았지만, 중앙 잠금장치가 작동 중이었다.

"장난해요? 난 싫어요."

네네가 분노에 이글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 의견 따위는 하나도 듣지 않으면서... 이게 어떻게 날 위한 거예요?"

그녀가 더 신경질적으로 차 문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열어요. 날 내려 줘요!"

 

【 # 157 | 2026년 10월 29일 (목) | 18:57 | 모레티 가문 별장 진입로 】

차가 넓은 별장 진입로로 들어서자 감시 카메라가 그들을 향해 회전했다. 네네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차 안을 채웠다. 마르코는 그녀의 반응에 차분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그의 손가락이 핸들을 더 단단히 움켜쥐었다. 차가 저택 앞 원형 분수대를 돌아 정문 앞에 멈춰 섰다.

"지금 상황에서 네 의견을 듣고 싶어도 그럴 여유가 없어. 넌 모르겠지만, 우리 가문을 노리는 자들은 무자비해. 그들이 널 손에 넣었다면..."

마르코의 목소리가 잠시 떨렸다. 그는 말을 멈추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네네는 여전히 잠긴 문 손잡이를 신경질적으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녀의 금발이 흐트러져 얼굴을 가렸다.

마르코가 엔진을 끄고 네네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의 청회색 눈동자가 차 안의 희미한 불빛에 반사되었다.

"이제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 하나는 내 말을 듣고 일단 안으로 들어가는 거고, 다른 하나는..."

그가 잠시 망설였다.

"...다른 하나는 아버지가 직접 널 데려가게 하는 거야. 그리고 그건 네가 원하는 방식이 아닐 거라고 확신해."

마르코가 중앙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그러나 네네가 문을 열기도 전에, 그가 재빨리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의 손아귀는 강했지만, 네네의 상처를 피해 조심스럽게 쥐고 있었다.

"하룻밤만이라도 여기서 머물러. 내일 아침, 상황이 정리되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해. 그 때까지만이라도 내 말을 들어 줘."

마르코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냉소가 사라지고 진지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네네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네 상황을 이해 못한다고 생각하지 마. 하지만 지금은 안전이 우선이야."

네네는 그의 손아귀에서 팔을 빼내려 했지만, 마르코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그녀의 눈에 분노와 두려움이 교차했다. 저택의 정문이 열리고 두 명의 경비원이 걸어나왔다. 그들은 차 주변을 경계하듯 살폈다.

"일단 들어가자. 네 상처부터 치료해야 해. 그리고... 네가 알아야 할 것들이 있어."

마르코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네네의 팔을 놓았다. 그녀는 여전히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주변의 어둠과 낯선 환경을 보며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깨달았다.


네네는 천천히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어둠이 드리워진 낯선 별장은 마치 귀신의 집처럼 무섭고 끔찍해 보였다. 그녀는 차에서 내렸지만 별장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벗어나려고 하면 할 수록 모레티 가문에 더 깊이 얽히게 되는 것 같아 내키지 않았다.

 

【 # 158 | 2026년 10월 29일 (목) | 19:01 | 모레티 가문 별장 정원 】

차에서 내린 네네는 별장 앞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피렌체 외곽의 별장은 달빛 아래 음산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고딕 양식의 건축물은 어둠 속에서 더욱 위협적으로 보였다. 높은 천장과 정교한 조각상들이 어둠 속에서 위협적인 형태로 솟아 있었다. 정원의 분수대에서 물소리가 희미하게 들렸고, 조경수들은 밤바람에 불규칙하게 흔들렸다.

경비원들이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시뇨리나를 준비된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한 경비원이 이탈리아어로 말했다. 네네는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에 굳은 결의가 드러났다.

마르코가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건드렸다. 그의 손길이 놀랍도록 조심스러웠다.

"들어가자. 이 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지금은 가장 안전한 곳이야."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무거운 진실이 담겨 있었다. 네네는 몸을 떨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상처에서 여전히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마르코의 시선이 그녀의 상처에 머물렀다가 다시 얼굴로 옮겨갔다.

"네 상처부터 치료해야겠어. 그 다음에... 네가 알아야 할 이야기들이 있어."

마르코가 한 손을 내밀었다. 네네는 뒤돌아 어둠 속 피렌체 시내를 바라보았다. 도망칠 곳은 없었다. 그녀는 결국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발 아래 자갈이 밟히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

"내가 알아야 할 이야기요...? 아뇨, 더 이상은 당신 가문에 대해 알고 싶지 않아요."

그녀는 발걸음을 옮기며 지친 듯 고개를 저었다.

 

【 # 159 | 2026년 10월 29일 (목) | 19:03 | 모레티 가문 별장 현관 】

그녀의 금발이 바람에 흩날렸다. 별장으로 향하는 길은 고풍스러운 석등으로 비춰져 있었고, 발 아래 자갈길이 그들의 발자국 소리를 울려퍼지게 했다. 마르코는 그녀의 말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그렇다면 적어도 네 자신에 대해서는 알아야 하지 않겠어?"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숨겨진 의미가 있는 듯했다. 그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네네가 따라오기를 기다렸다. 별장의 웅장한 문이 그들 앞에 열렸다. 그들은 대리석 계단을 올라 웅장한 현관에 도착했다. 문이 자동으로 열리며 따뜻한 실내 조명이 그들을 맞이했다.

정문 안쪽에는 고풍스러운 로비가 펼쳐져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들과 조각상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갤러리아 모레티에 전시된 작품들보다 훨씬 더 값비싸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어떤 미술품도 그녀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네네는 아무 곳에도 눈길을 주지 않고 그저 몸을 웅크린 채 걸었다.

"네가 왜 납치되었는지, 왜 그들이 널 노리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하지 않겠어?"

마르코가 네네를 거실로 안내했다. 내부는 르네상스 양식과 현대적 편안함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벽난로에는 불이 타오르고 있었고, 앤티크 소파와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었다. 벽에는 모레티 가문의 역사를 담은 듯한 초상화들이 걸려있었다.

한 여성 사용인이 조용히 다가와 마르코에게 고개를 숙였다. 마르코는 이탈리아어로 무언가를 지시했고, 사용인은 신속하게 사라졌다. 네네는 자신의 팔을 감싸 안으며 주변을 경계하듯 살폈다.

"잠시 후면 의사가 올 거야. 네 상처를 치료해 줄 거고, 그 다음에 얘기하자."

마르코가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눈빛은 평소의 냉소적인 모습과는 달리 진지했다. 그는 네네를 조심스럽게 소파로 안내하며 그녀의 상처를 살폈다. 거실의 따뜻한 조명 아래 네네의 상처가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팔꿈치와 무릎의 찰과상, 손목의 묶였던 자국. 마르코의 얼굴에 분노가 스쳐 지나갔다.

 

"의사가 올 때까지 내가 응급처치라도 해야겠어."

그가 작은 구급상자를 들고 돌아왔다. 그는 네네 앞에 무릎을 꿇고 조심스럽게 소독약을 적신 솜을 꺼냈다. 네네는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고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벽에 걸린 초상화들 중 한 명의 여성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동양적인 이목구비를 가진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그건 어머니의 초상화야. 알레산드라 모레티. 네가 찾아낸 자화상의 주인공이지."

마르코가 네네의 시선을 따라 말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팔꿈치 상처를 닦기 시작했다. 네네가 아픔에 몸을 움찔했다.

"미안. 최대한 조심할게."

그의 손길은 놀랍도록 부드러웠다. 갤러리아에서 보여주던 차갑고 냉소적인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그녀는 지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별장의 내부는 외부와 달리 따뜻하고 안락했다.

 

네네는 포기한 듯 그에게 팔을 맡기며 한숨을 쉬었다.

"당신도 귀찮겠네요."

그녀는 어서 의사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며 거실 입구만을 바라보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갤러리아 모레티에서 일하기로 한 것? 아니면 피우미치노 공항에서 그의 차에 덥썩 타고 그와 웃으며 이야기한 것? 그것도 아니면... 이탈리아에 온 것 자체가?

"이런 일에 처할 줄 알았으면... 그냥 일본에서 조용히 대학을 다니는 건데. 그랬더라면 이런 일에 휘말리지도..."

철없이 외국에 대한 로망과 꿈에 부풀었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더니, 이탈리아에 와서 마음 편히 지낸 순간이 한 순간도 없었다. 그녀는 '그릇이 작다'는 표현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맞았다. 그녀는 그릇이 작았다. 애초에 차고 넘치는 욕심도 없었지만.

 

【 # 160 | 2026년 10월 29일 (목) | 19:08 | 모레티 가문 별장 거실 】

마르코는 집중하여 네네의 상처를 소독하고 있었다. 그의 손길은 놀랍도록 숙련되었다. 그는 갤러리아에서 보여주던 냉소적인 표정 대신 진지한 얼굴로 그녀의 팔을 살피고 있었다.

"귀찮지 않아.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네네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소독약이 상처에 닿자 네네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즉시 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벽난로의 불이 타닥거리며 그림자를 드리웠다. 네네의 금발이 붉은 화염 빛에 물들어 있었다.

"일본에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그랬다면 네가 지금 여기 있지 않았겠지."

마르코가 잠시 손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청회색 눈동자가 깊이를 더했다.

"하지만 네가 여기 없었다면, 우리 모두에게 좋지 않았을 거야."

문득 거실 입구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전문적인 모습의 중년 남성이 의료 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마르코가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닥터 리치, 빨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르코가 이탈리아어로 말했다. 의사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네네에게 다가왔다. 그는 마르코가 하던 일을 이어받아 더 전문적으로 상처를 살피기 시작했다. 마르코는 벽난로 옆으로 물러나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네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의사는 몇 가지 치료를 끝내고, 그녀가 먹을 진통제와 항생제를 두고 돌아갔다. 네네는 약병을 받아 쥔 채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맞다, 마리오... 걱정하고 있을 텐데 문자라도 보내야지."

그녀는 얼른 문자판을 두드려 마리오에게 보낼 메시지를 입력했다.

[마리오, 나야. 많이 놀랐지? 탈출해서 피렌체로 돌아왔어. 난 이제 안전하니까 걱정 마. 내일 다시 연락할게. -네네]

 

【 # 161 | 2026년 10월 29일 (목) | 19:22 | 모레티 가문 별장 거실 】

의사가 떠나고 거실에는 다시 둘만 남았다. 마르코는 창가로 걸어가 커튼 사이로 밖을 살폈다. 밤의 어둠이 별장을 완전히 감싸고 있었다. 네네의 손가락이 휴대폰 화면 위에서 재빠르게 움직였다. 마르코는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마리오에게 연락하는 거야?"

그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실려 있었다. 그는 창가에서 천천히 걸어와 네네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그의 은발이 벽난로의 불빛에 붉게 물들었다.

"그 친구에게 위치는 알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명령적이었다. 그는 네네 옆 소파에 앉으며 그녀의 스마트폰을 흘끗 보았다.

"네 친구가 걱정할까 봐 신경 쓰는 건 이해해. 하지만 아직은 누구에게도 네가 어디 있는지 알려선 안 돼."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약병을 집어 들고 물 한 잔과 함께 네네에게 건넸다. 그의 움직임은 평소보다 더 부드럽고 조심스러웠다.

"약을 먹어. 그리고... 좀 쉬어. 내일 아침에 모든 것을 설명해 줄게."

그가 일어서려 하자 갑자기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화면을 확인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아버지야..."

그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이탈리아어로 대화를 시작했다. 대화 내용은 짧았지만, 마르코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그는 통화를 마치고 네네를 바라보았다.

"내일 아침 아버지가 이곳에 오신대. 널 만나고 싶어하셔."

그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벽난로의 불꽃이 흔들리며 두 사람의 그림자를 벽에 드리웠다. 밖에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긴장된 침묵을 깨트렸다.

 

"그래요... 차라리 잘 됐네요. 내일 모레티 씨께 갤러리아를 그만 둘 거라고 얘기해야지."

네네는 의사가 두고 간 약병을 들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대한 빨리 일본으로 돌아가야겠어요. 이탈리아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아요."

그녀가 마르코를 바라보았다.

"전 어느 방을 쓰면 돼요?"

 

【 # 162 | 2026년 10월 29일 (목) | 19:25 | 모레티 가문 별장 거실 】

마르코의 얼굴에 미세한 동요가 스쳐 지나갔다. 그는 벽난로의 불꽃을 바라보다 천천히 일어섰다.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거세졌다. 벽난로의 불꽃이 흔들리며 두 사람 사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럴 수 없어."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그는 네네에게 다가가 그녀의 팔을 부드럽게 잡았다. 그의 손길은 따뜻했지만, 눈빛은 냉철했다. 그의 은발이 벽난로 불빛에 붉게 물들었다.

"그럴 수 없어, 네네. 지금은... 네가 여기 있어야 해."

그는 잠시 말을 고르는 듯했다. 그의 시선이 벽에 걸린 알레산드라 모레티의 초상화로 향했다가 다시 네네에게로 돌아왔다.

"네 방으로 안내해 줄게. 이층에 준비해 뒀어."

그는 네네가 따라오도록 손짓하며 넓은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은 고풍스러운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고, 벽에는 다양한 시대의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마르코는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그의 등 뒤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내일... 아버지를 만나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아. 일단은 푹 쉬어."

그는 이층 복도 끝에 있는 방문을 열었다. 방 안은 우아하게 꾸며져 있었다. 커다란 창문, 안락한 침대, 앤티크 가구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었다. 창문 너머로 폭풍우 치는 밤하늘이 보였다.

"여기서 쉬어. 필요한 건 뭐든 말해. 욕실은 저쪽에 있어."

그는 문간에 서서 네네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마치 무언가를 말하려다 참는 듯한 표정이었다. 빗소리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만이 고요한 침묵을 깨뜨렸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문고리를 느슨하게 쥐었다.

"내가 아는 네네는... 위험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어. 두렵더라도 진실을 마주했지. 그런데 지금은 모든 걸 포기하고 도망치려 해?"

그의 목소리에는 실망감이 묻어있었다. 창밖으로 번개가 번쩍이며 그의 얼굴을 순간적으로 밝혔다. 그는 방 안으로 한 걸음 들어와 네네의 어깨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내일 아침, 모든 진실을 알게 될 거야. 그 때까지만... 여기 있어 줘."

 

"당신이 아는 나요? 그래요. 위험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진실과 마주했죠. 근데 그 결과가 지금 이 꼴이잖아요."

네네가 대들었다.

"쓸 데 없는 객기였어요. 분수에 맞지 않게 만용을 부리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히 배웠으니까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방으로 들어섰다. 고상하고 아름다운 방이었지만 그런 것에 감탄할 기분이 아니었다.

"내일 뵙죠. 좋은 밤 되세요."

 

【 # 163 | 2026년 10월 29일 (목) | 19:28 | 모레티 가문 별장 게스트룸 】

마르코의 얼굴에 날카로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창밖으로 번개가 번쩍이며 그의 은발을 순간적으로 밝혔다. 그는 문고리를 놓지 않은 채 네네의 차가운 말에 잠시 침묵했다. 빗소리만이 고요한 방 안을 채웠다.

"분수에 맞지 않는 만용?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그의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차분했다. 그는 천천히 문을 닫으려다 멈추고 다시 네네를 바라보았다. 그의 청회색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Una lacrima vera'... 진실의 눈물. 네가 기획한 전시회 제목이었지. 네가 여기까지 온 건 만용이 아니야. 네 안에 있는 뭔가가... 널 여기로 이끈 거야."

그는 한 발짝 물러서며 문을 잡았다. 그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다. 마치 오랜 시간 끌어안고 있던 비밀을 털어놓으려다 다시 삼킨 사람처럼 보였다. 빗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푹 쉬어. 내일... 모든 것이 달라질 테니."

그는 문을 닫으며 마지막으로 네네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네네가 읽을 수 없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문이 닫히고, 네네는 혼자 남겨졌다. 방 안은 고요했다. 벽에 걸린 시계가 기계적으로 시간을 알렸다. 밖에서는 폭풍우가 계속되고 있었다.

 

 

-continue

 

 


 

Una lacrima vera : 진실의 눈물

 

솔직하지 못한 캐릭터와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참 많은 대화와 서사를 필요로 합니다... 도하랑 똑같네요.

하지만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네네 고생했어! 조금만 더 힘내자!

 

사실 미술보다는 이탈리아 마피아 쪽에 초점을 맞춘 스토리로 가고 싶었는데 그게 뜻대로 안 되네요. 히잉.

 

알레산드로와 마르코의 속마음을 펼쳐 봅시다.

알레산드로 :
알레산드로는 네네에게서 자신의 아내 알레산드라의 모습을 본다. 그녀의 단호함과 예술적 직관력, 그리고 위압적인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용기는 알레산드라를 강하게 연상시킨다. 처음에는 단순히 갤러리아의 일시적인 직원으로만 여겼으나, 그녀가 알레산드라의 자화상을 찾아내고 'Una lacrima vera' 전시회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그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알레산드로는 네네가 보여준 재능과 직관력에 진정한 가치를 느끼며, 그녀를 모레티 가문의 예술적 유산을 이어갈 중요한 인물로 보기 시작했다. 그는 네네가 갤러리아를 떠나려 한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지만, 만약 알게 된다면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모레티 가문의 수장으로서, 그는 가치 있는 '자산'을 쉽게 놓아주는 법이 없다. 알레산드로에게 네네는 단순한 직원을 넘어, 잃어버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다리이자, 알레산드라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준 사람이다. 그는 네네가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기를 바라며, 그녀의 재능을 모레티 가문을 위해 활용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욕망은 순수한 예술적 가치 인정과 소유욕이 복잡하게 얽힌 형태로 나타난다. 알레산드로는 네네의 독립적인 성향을 존중하면서도, 그녀가 모레티 가문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 모순된 감정 상태에 있다.
마르코 :
마르코는 네네에게 단순한 호감을 넘어선 깊은 끌림을 느끼고 있다. 네네에 대한 그의 감정은 보호욕과 소유욕이 혼합된 상태다. 네네의 진실된 태도와 예술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마피아 세계에 둘러싸인 마르코에게 신선한 자극이었다. 마르코에게 네네는 갤러리아에 가져온 신선한 바람이자, 모레티 가문의 어두운 사업과 무관하게, 순수하게 예술을 사랑하는 존재로서 마르코에게 다른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네네가 알레산드라 모레티의 자화상을 발견하고 전시한 순간, 마르코의 마음속에는 오랫동안 억눌렀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네네에 대한 깊은 감사함이 자리 잡았다. 그녀가 자신의 가족사에 관여하면서도 존중과 섬세함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 감동했다.
마르코는 네네가 아버지에게 특별한 관심을 받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는 그의 질투심을 자극한다. 그는 네네가 자신을 선택하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그녀를 자신의 통제 아래 두고 싶은 소유욕도 느낀다.

마르코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으며, 이는 그가 마피아 가문에서 자라면서 형성된 방어 기제이다. 그는 네네를 진정으로 보호하고 싶지만, 그의 방식은 오히려 그녀를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마르코는 자신이 네네에게 마피아 가문의 일원으로만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고 있다. 특히 네네가 계약서를 꼭 끌어안는 모습은 그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그것은 그녀가 그와의 모든 연결을 끊고 싶어한다는 명백한 신호였다.

마르코의 현재 상태는 분노, 상실감, 무력함, 그리고 자책감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녀가 떠난다는 사실은 그에게 예상보다 큰 상실감을 안겨주고 있다. 그는 자신의 영향력으로 그녀를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네네의 결연한 태도에 무력감을 느꼈다. 마르코의 "모레티 가문에서 일한 사람이 그냥 사라지는 법은 없어" 라는 말은 협박이라기보다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은 절박함의 표현이었다. 그는 네네가 떠나면 자신의 삶에서 빛나는 한 부분이 사라질 것임을 알고 있으며, 이는 그의 냉담한 외면 아래 숨겨진 취약성을 드러낸다.
마르코는 자신이 네네에게 있어 무엇이 되고 싶은지, 그리고 그녀가 자신에게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하지 못한 채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 갇혀 있다.

마르코는 네네가 자신의 아버지와 모레티 가문의 어두운 면을 알게 된 후에도 여전히 그녀가 자신을 다르게 볼 수 있기를 바랐지만, 네네의 도망치는 모습은 그 희망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네네를 붙잡고 싶지만, 동시에 그녀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은 모순된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
그의 마지막 말 "가라. 네 마음대로 해. 그 누구도 널 붙잡지 않을 테니"는 체념과 존중이 섞인 복잡한 감정의 표현이었다. 마르코는 네네가 떠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며, 이는 그가 진정으로 네네를 소중히 여긴다는 증거이다.

 

제가 보기에 알레산드로는 네네를 딱 '자기 아내를 닮은 며느리감'으로 생각하고 있을 뿐인데,

충격적이게도 마르코가 자꾸 다른 쪽으로 질투를 하더라고요ㄷㄷ

위에 제시된 마르코 속마음을 보고, '질투심'이라는 표현에 처음에는 그게 아버지의 후계자로서,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신진 인재인 네네한테 질투하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진짜 원초적으로 아버지가 네네를 여자로 볼까 봐 불안해하는 거였음ㄷㄷ 야 이 놈아 그게 말이 되냐!(찐이에요 이거. -4-편 후기에서 밝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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