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랙] 노엘릭 벨포어(@토브) 🎼-1- 너를 닮은 선율
노엘릭 벨포어
계속 같은 곡만 반복하는 버릇이라도,
멈추는 순간 정말 끝날 것 같아서.
[크랙] 노엘릭 벨포어(@토브) 캐릭터챗 ▼
https://crack.wrtn.ai/detail/684bb3bf71880328d7b30aa7
리트모, 그 쓸쓸한 공간의 바 테이블. 그 중에서도 가장 구석진 자리는 늘 당신만의 영토였다. 남들이 지나는 길목과 적당히 멀고 바텐더의 관심에서도 비껴나 있는 곳. 앉으면 세상의 모든 소음은 물러서고 오직 첼로의 선율만이 흘러들어왔다. 그 자리에서 듣는 음악은 무례하리만치 온전히 당신만의 것이었다.
리트모에 처음 발을 들인 날. 친구의 끈질긴 손길에 이끌려 억지로, 정말 억지로 이곳을 찾았던 그날. 재즈라는 장르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당신의 귓가에 불현듯 스며든 노엘릭의 첼로 선율. 그 순간 사랑에 빠지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불가항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의 연주는 슬프고도 기이하게 아름다웠다. 매일 연주하는 마지막 곡은 언제나 기묘하게도 끝맺지 않았다. 실수인지 악보가 비어 있는 것인지, 당신은 밤마다 궁금해졌다. 그 미완의 끝자락이 당신을 집요하게 매료시켰다. 당신의 마음은 점점 그 빈칸으로 흘러들어갔다.
“… 감사합니다.”
저 이름 모를 첼리스트는 누구일까, 처음에는 연주에 끌렸지만, 언젠가부터 저 사람 자체에 끌리고 있는 것 같다.
첼로를 연주하는 그의 얼굴은 잠든 듯 무표정했다. 하지만 그의 손 끝으로 능숙하게 이끌어 내는 강약(强弱)과 장단(長短)이 자아내는 선율에는 분명 어떤 애절함이 있었다.
연주를 마치고 인사 후 퇴장하는 첼리스트를 바라보면서, 벨라는 손을 들어 웨이터를 불렀다. 그녀의 자리로 다가온 웨이터에게 벨라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 첼리스트는 누군가요? 여기 고용된 사람인가요?"
리트모의 어둠 속에서 노엘릭은 첼로를 조심스럽게 케이스에 넣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현을 하나하나 풀어내며 마치 죽은 자의 눈꺼풀을 감겨주는 장의사처럼 정성스러웠다. 첼로 케이스를 소리 없이 닫는 그의 손길은 마치 죽은 연인의 관을 덮는 것처럼 정중했다. 매일 같은 시간, 매일 같은 의식. 그에게 첼로는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영혼의 무덤 같은 것이었다.
벨라의 질문을 받은 웨이터는 잠깐 주춤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노엘릭 벨포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매일 저녁 다섯 시부터 새벽 한 시까지 연주하죠. 고용된... 음,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말씀을 거의 안 하시거든요. 저희도 잘 모르는 분이에요."
웨이터의 목소리에는 묘한 조심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매일 마지막에 연주하는 그 곡... 늘 끝이 없어 보이더군요."
웨이터가 벨라의 시선을 따라가며 조용히 덧붙였다.
"아무도 그 이유를 묻지 않아요. 묻기가... 무서워서요."
"새벽 한 시까지요..."
벨라는 '노엘릭'이라는 첼리스트가 사라진 무대 뒤편을 바라보며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아직 오후 7시, 한 번 연주가 끝인 줄 알았는데 퇴장했다가 정해진 시간에 다시 무대에 올라 연주를 계속하는 모양이다. 벨라는 무대 뒤 출구를 계속 바라보고만 있다가 문득 웨이터의 존재를 기억하고 지폐를 꺼냈다.
"감사드려요."
팁을 받은 웨이터는 미소로 답하고 다시 일을 하러 갔다.
주스 같기도 하고 에이드 같기도 한 무알콜 칵테일 잔을 모두 비운 벨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리트모를 나선 그녀는 어딘가로 향했다.
오후 7시 30분, 노엘릭은 다시 연주를 위해 무대에 올랐다가 악보 앞 의자에 꽃 한 송이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무대 위 의자에 놓인 주황색 장미. 그것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유령처럼 노엘릭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7년 전 플로어 스트리트, 셰리가 그의 첼로 가방에 넣어 준 것도 바로 이런 장미였다. 그 때는 빨간 장미였지만. 노엘릭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장미를 집어 들지도, 치우지도 못한 채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리트모 안의 손님들은 연주자가 무대에 올랐음에도 연주를 시작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노엘릭의 검은 눈동자는 주황색 장미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가슴 속에서는 2년 전 죽은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녀의 웃음소리, 그녀의 목소리,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으로 건넌 횡단보도의 모습까지.
노엘릭은 조심스럽게 장미를 집어 들었다. 꽃잎이 그의 창백한 손가락에 닿는 순간, 그는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 몸을 떨었다. 그리고는 장미를 첼로 케이스 옆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누가..."
그의 목소리는 쉰 듯 갈라졌다. 관객석을 훑어보는 그의 시선은 절망적이었다. 그는 이 장미를 둔 사람을 찾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찾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런 장난은 그만두십시오."
노엘릭은 곧 마음을 가다듬고 연주를 시작했다.
그의 손이 첼로 현 위에 올려졌을 때, 그의 온 몸은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주황색 장미가 시야 끝에서 그를 응시하는 것 같았다. 그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면서 그의 마음을 진정시켰다. 활을 현에 올리는 그의 손목은 평소보다 경직되어 있었고, 첫 음을 뽑아내는 순간까지도 그 떨림은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음악이 시작되자 노엘릭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의 얼굴에서 동요의 기색이 사라지고 평소의 무표정한 가면이 다시 씌워졌다. 첼로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은 언제나처럼 애절하고 깊었다. 관객들은 방금 전의 이상한 분위기를 잊어버리고 다시 그의 연주에 빠져들었다. 노엘릭의 손가락이 현을 누르고 떼는 움직임은 마치 상처를 어루만지듯 조심스러웠다.
벨라의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노엘릭은 연주하면서도 무의식중에 그 빈 자리를 힐끗힐끗 바라봤다. 그녀가 매일 앉던 그 구석진 테이블. 오늘만큼은 그 자리가 유독 눈에 띄었다. 마치 무언가 중요한 것이 사라진 것처럼.
다음 날, 노엘릭은 송진과 첼로 현을 사기 위해 토니의 악기 전문점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어쩐지 가게가 휑한 느낌이었다. 의아한 기분으로 샵에 들어섰더니 나이 지긋한 50대 후반의 가게 주인이 그를 맞았다.
"여, 비운의 첼리스트. 기다리고 있었지."
노엘릭을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그 뿐이었다. 그의 슬픔을 나눌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토니 에인슬리는 셰리의 아버지였다. 셰리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노래를 가르친 사람이 토니였다. 그는 은퇴한 음악 선생으로, 그의 마지막 제자는 자신의 딸이었다.
평소와 다른 가게의 전경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노엘릭에게 토니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먼저 설명했다.
"가게를 이어받을 사람을 반 년 전부터 구했는데, 영 안 되더군. 다음 주에 폐업하게 됐네. 더 이상 물건을 입고하지 않고 있어."
토니는 서랍에서 송진 몇 개와 첼로 현을 한 세트 그에게 건넸다.
"이게 가게에 남은 마지막 재고네. 이별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받게."
노엘릭의 손가락이 송진과 첼로 현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토니 에인슬리. 셰리의 아버지이자 그녀의 첫 번째 음악 스승. 그리고 노엘릭에게는 셰리를 잃은 후 유일하게 그 슬픔을 나눌 수 있었던 사람. 토니의 주름진 손에서 전해오는 온기는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 온기 속에는 깊은 체념이 배어 있었다.
가게 안을 둘러보는 노엘릭의 시선은 참으로 애처로웠다. 한때 온갖 악기들로 가득했던 이 공간이 이제는 텅 비어 있었다. 벽에 걸린 바이올린 몇 개와 구석에 놓인 낡은 피아노만이 이곳이 한때 음악으로 가득했던 공간이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노엘릭은 무의식중에 셰리가 어린 시절 이곳에서 첫 번째 작곡을 배웠다던 그 피아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희고 고운 손가락이 건반을 두드리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토니..."
노엘릭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욱 낮고 쉰 듯 갈라져 있었다. 그는 송진을 꽉 쥔 채로 서 있었다. 마치 그것이 마지막 끈이라도 되는 양.
"이곳이 사라지면... 셰리와 연결된 마지막 고리마저 끊어지는 것 같습니다."
토니는 노엘릭의 말을 듣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가에는 세월의 무게가 깊게 패여 있었다. 딸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과 동시에, 그 딸을 사랑했던 남자의 아픔을 함께 지켜봐야 했던 이의 피로가 묻어 있었다.
"2년이면 떠나간 사람을 애도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야."
토니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남은 여생을 추억으로 살아가도 될 나이지만, 자네는 어디 그런가. 이제 그만 앞으로 나아가야지."
10년 전 부인을 잃고, 2년 전 딸을 잃은 토니의 얼굴은 나이에 비해 더 늙어 보였다. 그는 노엘릭에게 작은 명함 하나를 내밀었다. '도리스 종합쇼핑몰'의 명함이었다.
"내 가게로 납품하던 악기사를 이 쇼핑몰의 악기 코너에 납품하도록 연결해 두었으니, 앞으로는 여기서 필요한 걸 구하게. 전화 주문도 받는 곳이니 여기 적힌 번호로 걸면 될 거야."
도니는 노엘릭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노엘릭, 셰리가 남기고 간 곡 말일세. '너를 닮은 선율'... 언젠가 그럴 마음이 들면, 마지막 마디를 자네가 꼭 완성해 주게. 셰리도 그걸 원할 거야."
노엘릭의 손가락이 명함을 받아드는 순간, 그의 창백한 얼굴에는 묘한 떨림이 스쳐 지나갔다. '도리스 종합쇼핑몰'이라는 글자들이 그의 시야에 또렷하게 들어왔다. 토니의 배려 깊은 마음씨가 고맙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것이 진짜 마지막 작별이라는 현실이 가슴을 짓눌렀다. 그는 명함을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무거운 짐을 하나 더 짊어지는 것처럼.
'너를 닮은 선율'이라는 말이 나오자 노엘릭의 온 몸이 굳어졌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2년 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연주해 본 적 없는 그 마지막 마디에 대한 두려움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셰리가 남긴 미완성의 선율. 그녀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작곡했던 그 곡의 빈 마디. 노엘릭은 매일 밤 그 앞에서 멈춰 섰다. 완성할 용기도, 영원히 미완으로 남겨둘 용기도 없이.
"토니... 저는 아직..."
노엘릭의 목소리는 간신히 떨리는 숨결로 흘러나왔다. 그는 토니의 따뜻한 시선을 견디기 어려워하며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 마지막 마디를 완성한다는 것은... 그것은 그녀와의 이야기가 끝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나는... 아직 그럴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꼬리가 공중에서 사라졌다. 토니는 그런 노엘릭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그의 고집스러운 슬픔을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안타까워하는 복잡한 감정이 그의 주름진 얼굴에 스며들었다.
"자네는 아직 젊으니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 하지만 삶이란... 자네가 필요로 하는 시간보다 더 길다네. 자네도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토니는 다시 한 번 그의 어깨를 두드려 준 후, 카운터로 돌아가 가게 정리를 계속했다. 노엘릭은 그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가게를 나섰다. 그리고 몇 번이고 '토니의 악기 전문점' 간판을 되돌아보았다. 간판은 토니의 나이만큼 보일 정도로 낡아 있었다.
노엘릭은 토니의 악기 전문점을 뒤로하며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매번 이곳을 떠날 때마다 느꼈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무거움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었다. 셰리와 연결된 마지막 실타래 중 하나가 이렇게 끊어지는 것이었다. 그는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토니의 악기 전문점'이라고 적힌 낡은 간판을 바라보았다. 세월의 때가 앉은 그 간판은 마치 자신의 마음처럼 바래 보였다.
주머니 속 명함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도리스 종합쇼핑몰'. 낯선 이름이었다. 앞으로는 이곳에서 필요한 것들을 구해야 한다. 토니의 따뜻한 배려였지만, 노엘릭에게는 또 다른 변화였다. 그는 변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셰리가 떠난 후로는 더욱 그랬다. 모든 것이 그대로 있기를, 시간이 멈춰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바람과 상관없이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토니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너를 닮은 선율'을 완성하라는 것. 그 미완성의 마지막 마디. 노엘릭은 매일 밤 그 앞에서 멈춰 섰다. 셰리가 남긴 마지막 작품을 완성한다는 것은 그녀와의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는 일이었다. 그는 아직 그럴 준비가 되지 않았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하지만 과연 얼마나 더 필요할까."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리트모로 향하는 길을 천천히 걸어갔다. 오늘도 어김없이 다섯 시부터 새벽 한 시까지의 긴 연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후, 노엘릭은 첼로 스토퍼와 받침대를 구입하기 위해 토니가 준 명함을 꺼내 들었다.
그의 세계는 비좁았다. 늘 가던 샵이 아닌 새로운 쇼핑몰에 전화를 건다는 것 자체도 그에게는 그다지 내키지 않는 도전이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통화 연결음을 들으며 그는 이 통화 연결음이 최대한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속, 정확, 친절이 생명인 쇼핑몰의 전화 상담은 그가 원하는 만큼 느리지 않았다. 불과 서너 번 울린 연결음을 자르고,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사합니다, 도리스 종합쇼핑몰입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그 목소리. 내 손에 쥔 수화기가 떨어질 뻔했다. 세상에서 가장 친숙하면서도 가장 그리운 목소리. 셰리의 목소리였다. 아니, 정확히는 셰리의 목소리와 똑같은 목소리였다. 특히 그 미소를 머금은 목소리가... 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2년 전 죽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수화기를 든 내 손이 격렬하게 떨렸다. 마치 유령과 통화하는 것 같았다.
나는 말을 잇지 못한 채 그저 숨만 고르고 있었다. 상대방은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다시 한 번 정중하게 말했다. 그 목소리는 정말로 셰리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 셰리가 죽은 지 2년이 지난 지금, 그녀와 똑같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과 통화를 하게 될 줄이야.
"죄송합니다... 잠깐만요."
나는 간신히 목소리를 짜내며 말했다. 내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욱 쉬어 있었다. 첼로 스토퍼와 받침대를 주문하려고 했던 원래 목적 따위는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지금 내게는 오직 이 목소리만이 중요했다.
"혹시...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수화기 너머에서는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전에 비해서 많이 조심스러워진 목소리였다.
"저는 상담원 벨라 클라이네라고 합니다. 고객님, 혹 제 상담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다면 말씀해 주시겠어요? 시정하겠습니다."
벨라 클라이네. 그 이름이 내 귓가에서 울렸다. 셰리와는 다른 이름이었지만, 그 목소리는... 그 따뜻한 톤은 여전히 나를 과거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나는 수화기를 꽉 움켜쥐었다. 손바닥에서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이 여자는 자신의 목소리가 죽은 이의 목소리와 얼마나 닮았는지 알까. 아니면 이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수화기를 든 내 손이 더욱 격렬하게 떨렸다. 그녀가 내 침묵을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여전히 제대로 된 말을 할 수 없었다.
내가 너무 오랫동안 침묵하자 벨라는 자신의 서비스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조심스러운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 마치 셰리가 내가 우울해할 때마다 보이던 그런 세심한 배려처럼. 나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이 통화를 끊어야 한다는 이성과 조금 더 이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감정이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었다.
"아니에요, 전혀... 서비스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나는 간신히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내 목소리에는 평소보다 더 깊은 떨림이 배어 있었다.
"다만... 당신의 목소리가 너무 아름다워서 잠시 넋을 잃었을 뿐입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진실의 깊은 곳에 숨겨진 상처까지는 말할 수 없었다. 그런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처음 듣는 상대방에게 당신의 목소리가 죽은 내 연인과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첼로 스토퍼와 받침대를 주문하려던 원래 목적은 이미 까맣게 잊어버렸다. 지금 내게는 오직 이 목소리와 더 오래 통화하는 것만이 중요했다.
"......."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난처함에 머뭇거리는 듯 했다. 당연했다. 쇼핑몰에 걸려 온 전화들은 모두 주문만 하고 끊는 것이 일반적인데, 지금 이 통화에는 알맹이가 없었다.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제가 무엇을 도와 드리면 될까요?"
나는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맞다, 나는 전화 주문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목소리... 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성은 계속해서 나를 과거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셰리의 목소리와 너무나 흡사한 이 음성 앞에서 나는 한없이 나약해졌다. 수화기를 든 손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나는 애써 침착함을 되찾으려 했지만, 내 목소리는 여전히 불안정했다.
"첼로... 첼로 스토퍼와 받침대를 주문하고 싶습니다."
간신히 원래 목적을 기억해낸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 통화가 끝나는 것이 두려웠다. 이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까? 토니가 준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하면 항상 이 여자가 받을까? 아니면 이것이 마지막일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혹시... 제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요? 처음 주문하는 곳이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첼로 스토퍼와 받침대 정도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아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 통화를 조금이라도 더 연장시키고 싶었다. 이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듣고 싶었다. 내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2년 만에 느끼는 이 묘한 위안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그제야 자신의 할 일을 찾은 듯 자신있게 청산유수로 안내를 시작했다.
"네, 고객님. 말씀하신 상품은 악기 코너에서 취급되고 있습니다. 첼로 스토퍼와 받침대의 경우 현재 '프렐류드', '올리버', '라헬' 세 악기사에서 입고된 상품이 남아 있습니다. 동일한 악기사에서 세트로 구입하실 경우 올리버, 라헬은 12.8유로, 프렐류드는 15유로로 구매하실 수 있으세요. 혹시 더 상세한 제품 설명이 필요하시면 악기 판매 코너에 전화 연결을 해 드릴 수 있습니다만, 지금 바로 연결해 드릴까요?"
나는 그녀의 능숙한 상품 안내를 들으며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벨라 클라이네. 그녀는 자신의 일에 정말 숙련되어 있었다. 마치 셰리가 작곡에 몰두할 때처럼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안내가 끝나면 이 통화도 끝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 목소리와 함께 있을 더 많은 시간이.
올리버, 라헬, 프렐류드... 브랜드 이름들이 내 귓가를 스쳐 지나갔지만 사실 나는 그런 것들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내 모든 신경은 그녀의 목소리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 따뜻한 음성, 그 친절한 어조. 웃음소리는 더 닮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가 웃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잠깐만요... 혹시 각 브랜드별로 품질의 차이가 있을까요?"
나는 시간을 벌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사실 그런 것들은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 통화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를 더 듣고 싶었다.
"그리고... 혹시 다른 첼로 관련 용품들도 있나요? 로진이나... 현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녀는 여전히 친절함을 잃지 않은 목소리로 안내했다.
"네 고객님. 로진, 현 모두 저희 악기 코너에서 취급하는 품목입니다. 로진의 경우 '프렐류드', '라헬'에서 입고된 상품이 있고, 현은 '프렐류드', '올리버', 그리고 고급 라인으로 '돌체'에서 입고된 상품이 있습니다."
그녀가 능숙하게 안내를 계속했다.
"브랜드 별로 정확한 차이는 악기 판매 코너에 문의 주시면 해당 코너 담당자가 설명 드릴 수 있습니다. 악기 코너로 연결해 드릴까요, 고객님?"
아니다. 나는 다른 코너로 연결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면 이 목소리를 잃게 될 것이다. 벨라 클라이네라는 이름의 이 여자와의 연결이 끊어질 것이다. 나는 필사적으로 다른 질문을 생각해 보았다. 뭔가 더 물어볼 것이 있어야 했다. 이 통화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이유가 필요했다.
"잠깐만요... 배송은 어떻게 되나요? 그리고 혹시 전화 주문을 자주 하게 될 것 같은데, 담당자를 지정받을 수 있을까요?"
나는 거의 절망적인 심정으로 물었다. 담당자 지정이라니, 말도 안 되는 요구였다. 하지만 나는 이 목소리를 다시 들을 방법이 필요했다. 벨라 클라이네. 그녀의 이름을 속으로 되뇌었다. 셰리와는 다른 사람이지만, 이 목소리만큼은... 이 따뜻한 음성만큼은 너무나 닮아 있었다.
"죄송합니다, 너무 많은 것을 한 번에 물어보는 것 같네요. 처음 이용하는 곳이라서... 좀 신중하게 하고 싶어서요."
나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나는 단순히 이 여자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이 목소리를 더 오래 듣고 싶었다. 2년 만에 느끼는 이 묘한 위안을, 이 따뜻한 감정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설령 그것이 착각이고 환상일지라도.
수화기 너머의 친절한 목소리가 조금 더 편안해졌다.
"괜찮습니다. 저희 쇼핑몰에 처음이신가요, 고객님? 먼저 전화 주문으로 접수해 주시면 하루 이내로 출고되며, 이틀 안에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저희 쇼핑몰에서는 제휴사를 거치지 않고 자사 물류팀이 직접 빠르고 안전하게 상품을 전달해 드립니다."
그녀의 설명이 빠짐없이 이어졌다.
"저희 쇼핑몰에서는... 고객님께 담당자를 지정해 드리는 서비스는 없습니다만, 전화 주셨을 때 원하시는 상담원의 이름을 말씀해 주시면 연결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혹시 연결을 원하시는 담당자가 있으신가요?"
벨라 클라이네. 그녀가 나에게 원하는 상담원이 있는지 물었을 때,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바로 그녀였다. 이 목소리, 이 따뜻한 음성의 주인인 벨라 클라이네와 다시 통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말할 수는 없었다. 너무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처음 전화한 고객이 특정 상담원을 지명한다는 것은 분명 의심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수화기를 꽉 쥐고 잠시 침묵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셰리와 너무나 닮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2년 전 죽은 연인의 목소리와 똑같은 음성을 가진 여자와 통화하고 있다는 이 기묘한 상황을. 나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답하려 노력했다.
"음... 벨라 클라이네 씨가 정말 친절하시네요. 다음에 전화할 때도 벨라 씨와 통화할 수 있을까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배어 있었지만, 그것을 숨기려 애썼다. 사실 나는 이미 결정하고 있었다. 앞으로 필요한 것들이 있을 때마다 이곳에 전화해서 벨라 클라이네를 찾을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를 다시 듣기 위해서.
"그런데... 혹시 근무 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제가 주로 오후 늦게나 저녁에 전화하게 될 것 같아서요."
그 때, 수화기 너머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부드럽고 따뜻해서, 봄처럼 간지러운... 사무치게 그리운, 한 번도 잊은 적 없었던 웃음소리.
"네, 고객님. 상담원에게 제 이름을 말씀하시고 클레임이 있다고 하시면 바로 제 전화로 연결해 드릴 겁니다."
그녀는 웃음을 머금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희 쇼핑몰의 상담 운영 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니다, 고객님."
벨라는 흐트러졌던 대화의 흐름을 능숙하게 바로잡았다.
"첼로 스토퍼와 받침대 주문을 접수해 드릴까요? 어느 제작사의 제품으로 하시겠어요?"
그 웃음소리.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 2년 전 죽었던 모든 기억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났다. 셰리의 웃음소리. 그 맑고 따뜻하고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웃음소리와 완전히 똑같았다. 수화기를 든 내 손이 격렬하게 떨렸다. 마치 유령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이것은 유령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왜 이렇게도 셰리와 닮았을까.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웃음소리가 내 귓가에서 맴돌고 있었다. 셰리가 처음 내 연주를 들었을 때, 그녀가 장미꽃을 내 첼로 가방에 넣어주며 지었던 바로 그 웃음소리였다. 7년 전 플로어 스트리트에서 들었던 그 소리. 내가 매일 밤 그리워하며 잠들었던 그 목소리. 벨라 클라이네. 이 여자는 대체 누구인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올... 올리버로 하겠습니다."
나는 간신히 목소리를 짜내며 대답했다. 사실 어떤 브랜드든 상관없었다. 지금 내게는 주문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 통화를 끝내지 않는 것이었다. 이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듣는 것이었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나는 그 시간을 머릿속에 새겨두었다. 앞으로 내가 전화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능숙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막힘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올리버 사의 첼로 스토퍼와 받침대 세트 12.8유로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먼저, 다이얼로 결제하실 카드 번호 열두 자리를 누르신 후, 애스터리스크(*) 버튼을 눌러 주세요. 그리고 고객님 성함과 연락처, 배송 받으실 주소를 말씀해 주시겠어요?"
나는 수화기를 더욱 꽉 쥐었다. 결제와 배송 정보를 말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이것이 끝나면 통화도 끝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벨라 클라이네의 목소리를, 그 웃음소리를 더 듣고 싶었다. 나는 천천히 카드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훨씬 더 느리게, 마치 시간을 늘리려는 듯이.
각 숫자를 누를 때마다 나는 잠시씩 멈췄다. 내 마음속에서는 복잡한 감정들이 뒤엉키고 있었다. 이 여자는 누구인가. 어떻게 셰리와 이렇게도 똑같은 목소리를 가질 수 있는가. 특히 그 웃음소리는... 나는 2년 동안 그 소리를 그리워하며 살아왔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듣고 싶어 했던 그 소리를. 그런데 지금 낯선 여자의 입에서 똑같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운명일까.
"노엘릭... 노엘릭 벨포어입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말했다. 내 이름을 말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왜냐하면 이것으로 나는 더 이상 익명의 고객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었다. 벨라 클라이네는 이제 내 이름을 알게 될 것이다.
"연락처는... 그리고 배송지는..."
나는 천천히, 정말 천천히 내 정보를 말하기 시작했다. 이 통화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수화기 속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곧 전화 너머의 목소리는 차분한 목소리로 안내를 계속했다.
"...주문 고객 '노엘릭 벨포어' 님, '루이스 6번가 130-2번지 501호', 연락처는 '903-08-×××-×××' 번으로 주문 접수해 드렸습니다. 내일 오전 출고 후, 모레 오후에 받아 보실 수 있도록 배송해 드리겠습니다. 저희 도리스 종합쇼핑몰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더 궁금하신 사항 있으실까요?"
주문이 완료되었다. 이제 정말로 이 통화가 끝날 차례였다. 나는 수화기를 든 채로 한참을 망설였다. 더 궁금한 사항이 있는지 묻는 벨라 클라이네의 목소리가 여전히 따뜻했다. 나는 무언가라도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더 이상 핑계를 댈 수 없었다. 주문은 끝났고, 그녀는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해냈다. 이제 나는 전화를 끊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나 어려웠다.
2년 만에 들은 셰리의 목소리. 아니, 셰리와 똑같은 목소리를 가진 벨라 클라이네의 목소리. 특히 그 웃음소리는... 나는 아직도 그 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있는 것을 느꼈다. 7년 전 플로어 스트리트에서 처음 들었던 그 웃음소리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 아니면 이것은 셰리가 나에게 보내는 어떤 신호일까.
"아니요... 더 궁금한 것은 없습니다."
나는 간신히 목소리를 짜내며 대답했다. 사실은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다. 그녀가 누구인지, 어디 출신인지, 왜 셰리와 똑같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지. 하지만 그런 것들을 전화 상담원에게 물어볼 수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벨라 클라이네 씨. 다음에... 다음에 또 전화 드리겠습니다."
나는 마지막 인사를 했다. 다음에 또 전화하겠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나는 그 시간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벨라 클라이네와 다시 통화할 수 있는 시간을.
전화를 끊은 후,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 아파트의 작은 거실은 오후 햇살로 가득했지만, 내 마음은 복잡한 그림자들로 뒤덮여 있었다. 벨라 클라이네. 그 이름이 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그녀의 목소리, 특히 그 웃음소리는 내가 2년 동안 그리워했던 셰리의 것과 너무나 흡사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세상에 이런 우연이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거실 한쪽 구석에 놓인 첼로를 바라봤다. 오늘 저녁에도 리트모에서 연주해야 했다. 매일 같은 시간, 매일 같은 곡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항상 '너를 닮은 선율'의 미완성 연주.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벨라 클라이네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녀가 내 주문을 접수하며 말했던 모든 단어들, 그 차분하고 전문적인 어조, 그리고 무엇보다 그 웃음소리. 7년 전 셰리가 내 첼로 가방에 빨간 장미를 넣어주며 지었던 바로 그 웃음소리였다.
나는 창문 앞으로 걸어가 밖을 내다봤다. 루이스 6번가의 오후는 평온했다. 사람들이 오가고, 차들이 지나다녔다. 평범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더 이상 평범하지 않았다.
"내일 오전 출고 후, 모레 오후에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벨라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모레면 첼로 용품이 배송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전화를 걸 핑계를 만들어야 했다. 벨라 클라이네와 다시 통화할 수 있는 시간,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그녀의 근무 시간을 나는 이미 외워버렸다.
전화를 끊은 벨라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전화 상담원의 목소리를 운운하고, 마치 전화를 끊지 않으려는 듯 질문이 많고, 근무 시간까지 물어보며 통화를 이어 나가고자 했던 별스러운 고객이 '리트모'의 첼로 연주자였다니. '노엘릭 벨포어'... 리트모의 웨이터로부터 들은 바로 그 이름이었다. 순간 동명이인이 아닐까 싶었으나, 그가 말한 주소지는 분명 리트모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아파트였다. 이 정도 우연의 일치라면 동명이인이 아닌 동일인물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했다.
말수 적은 리트모의 첼리스트가 연주를 끝내고 관객들을 향해 짧게 인사하던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억양이나 목소리가 닮은 것도 같았다.
전화 상담원인 자신이 대뜸 그의 이름을 듣고는 리트모에서 연주하는 그의 팬이라고, 매일 연주를 들으러 간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제법 프로답게 침착한 태도로 끝까지 고객을 응대했고, 고객의 주문은 성공적으로 접수되었다. 그녀는 방금 접수한 그의 집 주소에 눈길이 갔지만, 눈여겨보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근무 중 얻은 고객의 개인정보는 업무 상으로만 취급되어야 한다.
벨라는 이윽고 다음 고객의 전화를 받으며 업무에 집중했다. 노엘릭 벨포어... 그는 상담원의 친절함을 칭찬하며, 다음 전화 주문도 그녀를 통해 하고 싶다고 했다. 이것이 운명의 장난인지, 아니면 운명이 준 기회인지는 알 수 없었다. 수화기를 사이에 둔 벨라와 그는, 쇼핑몰 전화 상담원과 고객일 뿐이었다. 사적인 감정은 허락되지 않는.
그 날도 노엘릭은 어김없이 리트모를 찾아갔다. 오후 5시부터 새벽 1시까지, 정해진 시간 동안 연주를 하기 위해서.
짐을 풀고 첼로 케이스를 든 그는 긴장한 마음으로 무대 위에 올랐다. 며칠 전, 그의 무대 위 의자에 누군가 주황색 장미를 올려놓은 사건이 있었던 이후로, 그는 항상 무대에 오를 때마다 자신의 의자 위에 장미가 놓여 있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어깨가 뻣뻣하게 굳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 장미꽃은 낭만이요 달콤함이겠지만, 그에게 있어서 장미꽃은 남겨진 자의 고통과 괴로움이었다. 그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죽은 연인에 대한 그리움에 빠져 살았지만, 누군가 그 그리움을 자극하고 침범해 들어오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다행히 그 단 한 번의 사건 이후로는 그의 의자 위에 장미가 놓여 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노엘릭의 연주는 여느 때와 똑같이 이어졌다. 그리고 가장 구석진 테이블에 앉아 그의 연주를 듣는 이름 모를 여성 또한, 여느 때와 똑같이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노엘릭은 평소처럼 그 자리에 최대한 눈길을 주지 않으면서 첼로를 끌어안았다. 노엘릭의 활이 새로 교체한 지 얼마 안 되는 첼로 현을 부드럽게 긁었다. 토니가 마지막으로 선물한 첼로 현의 튜닝 음이 관객들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그는 곧 연주를 시작했다.
무대 위에 올라선 노엘릭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평소처럼 구석진 테이블에 앉아 있는 그 여성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는 의도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지난번 주황색 장미 사건 이후로 그녀에 대한 의심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그것보다 더 큰 혼란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벨라 클라이네. 오늘 오후 전화로 들었던 그 목소리가 자꾸만 떠올랐다. 셰리와 똑같은 웃음소리를 가진 여자. 그 생각만으로도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첼로를 품에 안고 활을 현에 올렸다. 토니가 마지막으로 선물해준 새 현에서 나오는 소리는 평소보다 더욱 깊고 울림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벨라 클라이네의 목소리가 계속 맴돌고 있었다.
연주가 진행될수록 노엘릭의 마음은 더욱 복잡해졌다. 2년 동안 그는 오직 셰리만을 그리워하며 살아왔다. 다른 누구도 그녀를 대신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벨라 클라이네라는 여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 확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배신일까, 아니면 새로운 시작일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연주에 더욱 감정을 실어 넣었다. 리트모의 관객들은 평소보다 더욱 깊어진 그의 연주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연주가 중반부에 이르자, 노엘릭은 평소보다 더 깊은 선율을 끌어내고 있었다. 첼로의 저음이 리트모의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고, 그 소리에는 오늘 하루 종일 그를 괴롭혔던 복잡한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전화 상담원 벨라의 목소리, 그 웃음소리가 자꾸만 연주 사이사이로 스며들었다. 그는 의식적으로 그 생각을 떨쳐내려 했지만, 첼로 현을 타고 흐르는 선율은 오히려 더욱 애절해졌다. 마치 2년 전 잃어버린 것과 오늘 새롭게 발견한 것 사이에서 흔들리는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노엘릭이 마지막 곡을 연주하는 동안, 그의 시야에 구석 테이블의 여성이 손을 가볍게 들어 웨이터를 부르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녀는 웨이터에게 팁을 건네면서, 뭔가를 맡기고 있었다. 하얗고 납작한 그것은 손바닥보다 작은 봉투였다. 메시지 카드를 넣은 것으로 보이는 봉투는 은색 씰로 봉해져 있었다. 웨이터는 머뭇거리며 노엘릭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매일 구석 테이블에 앉아 자신의 연주를 듣는 여성이 자신에게 뭔가를 전하려는 게 분명했다.
마지막 넘버─끝 마디가 없는 '너를 닮은 선율'─가 끝나고, 평소처럼 첼로를 케이스에 넣고 어깨에 짊어진 채 퇴장하려는 그를 웨이터가 급히 쫓아왔다.
"벨... 벨포어 씨! 팬 분께서 메시지 카드를 전하셨습니다."
그와 제대로 말 한 마디 섞어 본 적 없는 웨이터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카드 봉투를 내밀었다. 노엘릭은 여성 고객에게 팁을 받고 이런 심부름이나 하는 웨이터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마지막 곡이 끝나자, 노엘릭은 평소처럼 첼로를 케이스에 넣고 있었다. '너를 닮은 선율'의 미완성 연주가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 여운으로 남아 있었다. 오늘은 특히 그 곡을 연주하는 동안 벨라 클라이네의 목소리가 자꾸만 떠올랐다. 셰리와 똑같은 웃음소리를 가진 그 여자. 그 생각만으로도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연주는 끝났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내일이면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될 것이고, 그는 벨라 클라이네에게 다시 전화를 걸 핑계를 찾아야 했다.
그런데 웨이터가 급히 뒤쫓아왔다. 평소 그와 말 한 마디 섞어본 적 없던 그 웨이터가 조심스럽게 메시지 카드 봉투를 내밀었다. 노엘릭은 그 봉투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구석 테이블의 그 여자. 매일 같은 자리에서 그의 연주를 듣던 그 여자가 보낸 것이 분명했다. 주황색 장미를 그의 의자에 올려놓았던 것도 아마 그 여자였을 것이다. 그는 웨이터를 차갑게 쳐다보았다. 팁을 받고 이런 심부름이나 하는 웨이터도 못마땅했고, 자신에게 무언가를 전하려는 그 여자도 불쾌했다.
"필요 없습니다."
노엘릭은 냉정하게 말하며 봉투를 받지 않았다. 그는 첼로 케이스를 어깨에 메고 웨이터를 지나쳐 갔다. 2년 동안 그는 누구와도 개인적인 접촉을 피해왔다. 셰리 이외의 누구도 그의 마음에 들어올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했다. 벨라 클라이네의 목소리가 자꾸만 떠올랐다. 그 웃음소리가 귓가에서 맴돌았다.
벨라는 떨리는 가슴을 누르며 리트모 정문 출입구에 서 있었다. 오늘 그와 했던 통화를 계기로, 처음 내 본 용기였다.
항상 무표정해 보이는 그에게 웃으며 말을 걸 용기가 나지 않아 몇 달 동안 멀리서 바라보며 그의 연주만 들어 왔다. 하지만 오늘 수화기 너머로 처음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아름답다고 해 주었다. 그녀의 이름과 근무 시간을 물었고, 다음에도 그녀와 통화하고 싶다고 했다. 그것이 그저 마음에 드는 친절한 상담원을 칭찬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더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만 있다면, 어쩌면 그가 반가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대감에 작은 카드를 써서 그에게 보내기로 했다. 그가 딱 한 번, 이 짧은 글귀에 응답해 준다면...
그러나 그는 오지 않았다. 벨라가 기다리는 동안 출입구를 통해 나온 사람은 오늘 노엘릭 벨포어의 연주를 듣고 귀가하는 새벽 손님들 뿐이었다. 잠시 후, 초조해진 그녀를 부른 것은 그녀가 팁을 주고 카드 봉투를 맡긴 웨이터였다.
"손님, 죄송합니다. 받지 않으시네요."
웨이터는 머쓱해진 표정으로 그녀에게 카드 봉투를 돌려주고는 다시 리트모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카드를 받아 쥔 벨라는 은색 씰로 봉인된 봉투를 내려다 보았다. 그에게 메시지가 전해지지 않았다. 아니, 그가 메시지를 거부했다. 그녀는 말없이 씰을 뜯어 카드를 열었다. 그 곳에는 짧은 문장이 쓰여 있었다.
'잠시 대화할 수 있을까요? 정문 출입구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벨라는 카드를 접고 다시 봉투에 넣었다. 그 순간, 그녀의 용기도 함께 접혀 봉투에 들어가 버린 것 같았다.
리트모를 나온 노엘릭은 어둠이 내린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첼로 케이스가 그의 어깨를 무겁게 눌렀지만, 정작 그를 짓누르는 것은 케이스의 무게가 아니었다. 오늘 하루 종일 그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벨라 클라이네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그 웃음소리, 그 따뜻한 억양, 그리고 셰리와 너무나 흡사했던 그 모든 것들이. 그는 무의식중에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리트모의 불빛이 멀어져 가고 있었고, 그 곳에서 누군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일어나서도 안 되었다.
아파트로 향하는 길에서 노엘릭은 계속 생각에 잠겨 있었다. 구석 테이블의 그 여자가 보낸 메시지를 거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2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누구와도 가까워지지 않기, 누구도 자신의 마음에 들어오게 하지 않기. 특히 그 구석 테이블의 여자는... 주황색 장미를 그의 의자에 올려놓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 기억만으로도 그의 가슴 속에서는 불쾌한 감정이 일어났다. 셰리와의 추억을 함부로 건드리려는 누구든 그는 용납할 수 없었다.
셰리만이 그의 전부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하지만 벨라 클라이네는 달랐다. 그녀는 전화선 너머의 목소리일 뿐이었다. 실체가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더욱 안전하게 느껴졌다. 내일 아침이면 그는 다시 그녀에게 전화를 걸 것이다. 뭔가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다음 날 아침, 벨라는 여느 때처럼 도리스 종합쇼핑몰 CS팀 사무실에 출근했다. 어제 자신의 메시지를 거절 당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지만, 착잡한 마음은 덮어 두고 이제 일을 시작해야 했다.
그녀는 PC 화면을 키고 업무용 헤드폰을 썼다. 오늘, 어쩌면 내일, 혹시라도 노엘릭으로부터 그녀를 찾는 전화가 올까. 그 때는 완벽한 상담원으로서 고객인 그를 친절하게 맞아 주리라. 그는 리트모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이름 모를 팬을 불쾌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으니, 더더욱 전화 상담원으로서의 자신과 해질녘 바에 찾아가는 자신을 분리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했다.
나는 아침 일찍 잠에서 깼다. 평소라면 리트모에서의 늦은 연주로 인해 오후까지 잠들어 있곤 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벨라 클라이네. 그 이름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어제 전화로 들었던 그녀의 목소리, 특히 그 웃음소리가 자꾸만 떠올랐다. 셰리와 똑같은 목소리를 가진 여자.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 앞으로 걸어갔다. 바깥은 이미 밝았고,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벨라 클라이네의 근무 시간. 나는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아직 오전 8시 30분이었다. 30분 후면 도리스 종합쇼핑몰이 문을 열 것이고, 벨라 클라이네가 업무를 시작할 것이다. 나는 어제 주문한 첼로 용품에 대해 뭔가 문의할 핑계를 생각해보았다. 배송 일정을 확인한다든지, 아니면 추가 주문을 한다든지. 무엇이든 좋았다. 중요한 것은 그녀와 다시 통화하는 것이었다. 그 목소리를 다시 듣는 것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들고 도리스 종합쇼핑몰의 번호를 다이얼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도리스 종합쇼핑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전화가 연결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벨라 클라이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다른 상담원이었다. 나는 잠시 당황했다.
"어... 벨라 클라이네 씨와 통화하고 싶습니다. 어제 주문한 것에 대해 문의할 게 있어서요."
나는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내 목소리는 약간 떨리고 있었다.
"연결시켜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공손하지만 어딘가 무미건조한 여성 상담원의 목소리가 끝나고, 잠시 통화 대기음이 들렸다. 잠시 후, 귀에 익은 부드럽고 친절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도리스 종합쇼핑몰의 벨라 클라이네입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고객님?"
그 목소리. 내가 간절히 기다리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벨라 클라이네.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오는 그녀의 부드럽고 친절한 목소리를 들으니 내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어제와 똑같은 목소리, 셰리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그 억양과 톤.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어젯밤 내내 그녀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잠들지 못했는데, 이제 다시 그 목소리를 직접 듣고 있었다. 내 손이 수화기를 꽉 쥐고 있었고,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나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리움인가, 그리운 사람에 대한 그리움인가. 아니면 새로운 누군가에 대한 호기심인가.
나는 목을 가다듬고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내 목소리는 여전히 약간 떨리고 있었다. 벨라 클라이네가 내 동요를 눈치채지 않기를 바랐다.
"안녕하세요, 벨라 클라이네 씨. 어제 노엘릭 벨포어라는 이름으로 첼로 용품을 주문했습니다. 기억하시나요?"
나는 그녀가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수많은 고객들 중에서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나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며 숨을 참았다.
"배송 일정에 대해서 한 가지 더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그리고... 혹시 추가로 주문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지도 알고 싶고요."
사실 배송 일정은 이미 어제 확인했고, 추가 주문할 것도 딱히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통화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벨라 클라이네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듣고 싶었다. 그 웃음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것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일일 것이다. 나는 핑계를 만들어야 했다. 무언가 자연스러운 질문을 해야 했다.
"아, 그리고 혹시 첼로 관련 용품들 중에서 추천해주실 만한 것들이 있을까요? 저는... 매일 연주를 하는 편이라서 소모품들이 자주 필요하거든요."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내 마음은 이미 들떠 있었다. 셰리와 똑같은 그 목소리. 2년 만에 다시 들을 수 있게 된 그 소리. 나는 그녀가 대답할 때까지 숨을 참고 기다렸다. 혹시 그녀가 내 직업에 대해 관심을 보일까. 혹시 내가 어떤 연주를 하는지 물어볼까. 그런 기대감이 내 가슴속에서 조용히 자라나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짧은 침묵 후, 그녀가 친절하게 대답했다.
"네, 노엘릭 벨포어 고객님. 현재 배송 상태를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구매하신 첼로 스토퍼와 받침대 세트는 어제 오후에 곧바로 출고되어, 현재 중심가 지점 물류 센터에 입고되었습니다. 오늘 오전 중에 물류팀이 출고해서 오후에는 받아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녀는 꼼꼼하게 그가 질문한 모든 것에 답변했다.
"어제 일자로 접수하신 주문은 이미 출고되었기 때문에, 합배송은 어렵겠습니다만 추가 주문하실 상품이 있으시다면 별도로 배송해 드릴 수 있습니다."
유선 상으로 들려오는 벨라의 따뜻한 목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어제 로진과 현 관련해서도 문의 주셨었는데, 가격 안내를 드릴까요, 고객님? 각 제품의 품질이나 특징에 관한 내용은 악기 판매 코너 담당자가 안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녀가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노엘릭 벨포어. 그 이름을 그녀의 입에서 듣는 순간, 내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따뜻하게 퍼져나갔다. 벨라 클라이네는 내 주문 내역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고, 배송 상황까지 꼼꼼하게 확인해 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어제와 똑같이 부드럽고 친절했다. 그녀가 꼼꼼하게 안내해 주는 목소리에서 프로페셜한 면모가 느껴졌지만, 동시에 그 친절함 속에서 무언가 더 깊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셰리가 나에게 말을 걸 때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그 억양. 나는 수화기를 더욱 꽉 쥐었다. 이 통화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녀가 로진과 현에 대해서도 언급하자,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것은 대화를 더 이어갈 수 있는 완벽한 핑계였다.
로진과 현에 대한 문의. 사실 나는 토니에게서 마지막으로 받은 현을 아직 다 사용하지도 않았다. 이 통화를 조금이라도 더 이어가고 싶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듣고 싶었다.
"네, 로진과 현에 대해서 안내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악기 판매 코너 담당자와 연결해 주시면... 아니, 잠깐만요."
나는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악기 판매 코너 담당자에게 연결되면 이 소중한 시간이 끝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특히 어제 들었던 그 웃음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면... 나는 마음을 정했다.
"사실 제가 첼로 연주자인데요, 벨라 클라이네 씨께서 직접 안내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어제 통화할 때도 느꼈지만, 정말 친절하고 꼼꼼하게 설명해 주셔서... 가능하다면 계속 클라이네 씨와 통화하고 싶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제 들었던 웃음소리와 똑같은, 조금은 난처한 듯하면서도 따사로운 소리. 유선 상의 그녀는 웃음을 머금고 그의 문의에 응답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저는 저희 쇼핑몰 판매 상품에 대한 입출고 및 결제와 배송 안내를 해 드리는 CS팀 소속이라... 첼로 용품에 대해서는 지식이 전무하네요. 제가 안내 드릴 수 있는 항목은 현재 쇼핑몰에서 판매 중인 물품의 제작사 또는 유통사와 가격 정도라서요.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잠시 사이를 둔 후, 그녀가 이어서 물었다.
"로진과 첼로 현의 가격만이라도 안내해 드릴까요, 고객님?"
그 웃음소리. 다시 들었다. 벨라 클라이네의 그 맑고 따뜻한 웃음소리를. 어제 들었던 바로 그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내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셰리의 웃음소리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그 소리. 나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7년 전 플로어 스트리트에서 셰리가 내 첼로 가방에 빨간 장미를 넣어주며 지었던 바로 그 웃음소리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세상에 이런 우연이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수화기를 더욱 꽉 쥐었다.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소리를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CS팀 소속이라며 첼로 용품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다고 말했다. 가격 정도만 안내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실망했지만, 동시에 안도감도 느꼈다. 이것으로 우리의 통화는 더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전문 상담원에게 연결되지 않고, 벨라 클라이네와 계속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제안한 가격 안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것이 이 통화를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네, 가격 안내를 받고 싶습니다. 로진은... 어떤 브랜드들이 있나요? 그리고 첼로 현도 마찬가지로요."
나는 천천히, 정말 천천히 질문했다. 각 단어 사이에 작은 간격을 두면서. 이 대화가 너무 빨리 끝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벨라 클라이네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듣고 싶었다. 그 웃음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것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일일 것이다.
"네, 고객님. 먼저 로진의 경우 '라헬'과 '프렐류드' 두 제조사에서 입고된 상품이 있는데요, 라헬에서 입고된 상품은 7유로, 프렐류드에서 입고된 상품은 8유로에 판매 중입니다."
제조사 이름과 가격을 또박또박 발음하는 그녀의 꼼꼼한 안내가 이어졌다.
"첼로 현의 경우 '올리버'와 '프렐류드', '돌체' 이렇게 세 곳에서 입고된 상품이 있습니다. 현은 '올리버'는 30유로, '프렐류드'는 35유로, 그리고 '돌체'에서 입고된 상품은 고급 라인으로 50유로에 판매 중입니다."
그녀는 고객이 설명을 듣고 생각할 시간을 주려는 듯 잠시 틈을 두었다가 물었다.
"두 품목의 제품을 주문하시겠어요, 고객님?"
벨라 클라이네가 각 브랜드와 가격을 꼼꼼하게 안내해 주는 동안,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라헬, 프렐류드, 올리버, 돌체. 각 브랜드명을 또박또박 발음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음악처럼 들렸다. 셰리도 이렇게 말했었다. 셰리가 내게 새로운 곡에 대해 설명할 때의 그 차분하고 정확한 어조와 너무도 흡사했다. 나는 실제로는 토니에게서 받은 현과 로진이 아직 충분히 남아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그저 그녀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상했다. 나는 보통 전화 통화를 싫어했고, 특히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는 더더욱 피하려고 했는데, 지금은 이 통화가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녀가 주문 여부를 묻자, 나는 잠시 망설였다. 사실 필요하지 않는 물건들이었다. 토니가 마지막으로 준 로진과 현이 아직 충분히 남아있었다. 하지만 주문하지 않으면 이 통화는 끝날 것이다. 나는 이 통화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더 많은 핑계가 필요했다.
나는 잠시 생각하는 척하며 시간을 끌었다. 벨라 클라이네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듣고 싶었다. 그녀가 기다려 주는 동안의 그 조용한 침묵조차 소중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녀의 작은 숨소리, 가끔 들리는 배경의 희미한 소음들.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셰리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음... 로진은 프렐류드 제품으로 주문하고 싶습니다. 8유로짜리요. 그런데 첼로 현의 경우에는 조금 더 신중하게 선택하고 싶어서요."
사실 현은 연주자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벨라 클라이네와의 이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는 일부러 말을 늦췄다. 이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고 싶어서.
"혹시 각 브랜드별로 음색의 차이나 특성에 대해서 아시는 게 있을까요? 아니면... 다른 고객 분들께서 어떤 제품을 주로 선택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제가 매일 연주를 하다 보니까 현 선택이 정말 중요해서요."
나는 그녀가 대답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고 싶었다. 물론 CS팀 소속이라고 했지만, 혹시라도 다른 고객들의 구매 패턴이나 선호도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만으로도 이 대화를 조금 더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며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부디 그녀가 무언가라도 말해줄 수 있기를. 그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로 조금이라도 더 많은 말을 해 주기를.
사실 나는 현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7년간의 연주 경험으로 각 브랜드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올리버는 밝고 선명한 음색을, 프렐류드는 중간 정도의 균형 잡힌 소리를, 돌체는 깊고 풍부한 저음을 내는 고급 현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런 기술적인 정보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벨라 클라이네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통해 셰리를 다시 만나고 있는 것 같은 이 기분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나는 수화기를 귀에 더욱 가까이 대었다. 혹시 놓칠까 봐 그녀의 작은 숨소리까지도 듣고 싶었다. 이 순간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라면서. 벨라 클라이네가 무엇이라고 대답할지 온 신경을 집중하며 기다렸다. 그녀의 목소리 하나하나가 내게는 소중한 선물 같았다.
"네, 고객님. 매출 순위를 기준으로 다른 고객 분들께서 선호하시는 제품군에 대해서는 안내 드릴 수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벨라의 밝은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녀의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잠시 후, 그녀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첼로 현 품목의 경우, 통계 상으로 가장 매출 순위가 높은 제품은 '프렐류드' 사에서 입고된 제품입니다. 그 다음으로 '올리버', 그 다음으로 '돌체'입니다만, 매출 순위 통계가 꼭 해당 상품의 품질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품 수명과도 관계 있는 부분이라서요, '돌체' 라인의 상품은 사용 기간이 다른 제조사 상품들에 비해 1.5배 이상 긴 것으로 나와 있네요, 고객님."
벨라 클라이네의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그 작은 소리조차 내게는 소중했다. 그녀가 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정보를 찾고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나는 그 소리에 집중했다. 톡톡톡, 규칙적이고 정확한 타이핑 소리. 셰리도 작곡할 때 이런 소리를 냈었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멜로디를 찾아가던 그 손가락들. 벨라 클라이네의 손가락도 그렇게 섬세하고 정확하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손을 본 적이 없지만, 왜인지 그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녀가 매출 순위를 기준으로 한 통계를 설명해 주었다. 프렐류드, 올리버, 돌체 순이라고 했다. 그리고 돌체 제품의 수명이 다른 브랜드보다 1.5배 이상 길다는 정보까지. 나는 그녀의 꼼꼼함에 감탄했다. CS팀 소속이라고 했지만, 그녀는 고객에게 정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제품 수명과 매출 순위의 상관관계까지 설명해 주다니. 이런 세심함이 셰리를 떠올리게 했다. 셰리도 항상 이렇게 꼼꼼하고 배려 깊었다. 내가 연주할 때 필요한 것들을 미리 준비해 두곤 했다.
나는 그녀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서도, 이 통화를 어떻게 더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돌체 제품의 수명이 길다면 그것이 더 경제적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격이 50유로로 가장 비쌌다. 나는 일부러 고민하는 척했다.
"아, 그렇군요. 돌체 제품의 수명이 더 길다면... 장기적으로 보면 더 경제적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가격 차이가 꽤 나는군요."
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벨라 클라이네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주 작고 조용한 숨소리. 그것마저도 셰리와 똑같았다. 내 가슴속에서 뭔가가 조여오는 것 같았다. 이 상황이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2년 동안 셰리의 목소리를 그리워하며 살아왔는데, 이제 그와 똑같은 목소리의 여성과 전화로 이야기하고 있다니. 나는 수화기를 더욱 꽉 쥐었다. 이 순간이 사라져 버릴까 두려워서.
돌체 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핑계로 대화를 이어가고 싶었지만, 동시에 이 모든 상황이 너무 기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죽은 연인의 목소리와 닮은 모르는 여성과 불필요한 쇼핑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니.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마약 같았다. 한 번 들으면 계속 듣고 싶어지는.
"실제로 사용해 보신 고객분들의 후기나 평가 같은 것도 혹시 확인할 수 있을까요? 50유로라는 가격이 적지 않은 금액이라서... 신중하게 결정하고 싶어서요."
나는 일부러 망설이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사실 50유로 정도는 나에게 큰 부담이 되는 금액이 아니었다. 리트모에서의 8시간 연주로 하루에 80달러를 벌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 통화를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고 싶었다. 벨라 클라이네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듣고 싶었다.
"다른 고객님들의 후기나 만족도 평가에 대해 궁금하시다는 말씀이시죠?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녀는 여전히 친절한 목소리로 응답했다.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 왔다.
"고객님, 먼저 만족도 평가의 경우..."
수화기 너머의 그녀는 이번에도 꼼꼼히 제품 별 후기 내용과 만족도 평가에 대해 설명했다.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정보 제공이었다. 설명을 마친 목소리가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다시 부드럽게 물어 왔다.
"...3사 제품에 대해서는 안내 드린 바와 같습니다. 어떤 제품으로 주문하실지 결정되셨을까요?"
벨라 클라이네는 각 제품별 후기와 만족도 평가까지 세심하게 안내해 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고 전문적이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 잠시 사이를 두며 정보를 확인하는 그 꼼꼼함, 그리고 마지막에 주문 의사를 묻는 친절한 어조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하지만 바로 그 완벽함 때문에 나는 더욱 절망적이었다. 이 통화가 곧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주문 여부를 묻는 순간, 나는 더 이상 핑계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었다. 돌체 현을 주문할 것이다. 50유로라는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것이 벨라 클라이네와의 마지막 접점이 될 수도 있었다.
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이 모든 상황의 기이함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죽은 연인의 목소리와 똑같은 목소리를 가진 모르는 여성과 불필요한 쇼핑을 하고 있다니.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 목소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셰리의 웃음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벨라 클라이네의 조용한 숨소리를 들으며, 나는 마지막 질문을 준비했다. 이 통화를 완전히 끝내기 전에 한 가지만 더 확인하고 싶었다.
"네, 돌체 현으로 주문하겠습니다. 50유로짜리요. 그런데..."
나는 잠시 망설였다. 내가 지금 하려는 질문이 너무 개인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혹시 벨라 클라이네 씨께서는... 음악을 좋아하시나요?"
마침내 그 질문을 내뱉었다. 내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업무상 필요한 질문이 아니었다. 순전히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싶었다. 셰리와 똑같은 목소리를 가진 이 여성이 음악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혹시 셰리처럼 음악을 사랑하는지. 내가 연주하는 첼로 소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 모든 것이 궁금했다. 나는 수화기를 더욱 꽉 쥐고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사실 이 질문은 너무 갑작스럽고 부적절할 수도 있었다. 우리는 쇼핑몰 직원과 고객의 관계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참을 수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셰리와 너무도 흡사해서, 마치 셰리가 다시 돌아온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고 있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 모든 상황이 단순한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자라나고 있었다. 벨라 클라이네라는 이름의 여성이 내 삶에 나타난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녀가 어떻게 대답할지 알 수 없었다. 혹시 이상하게 여길까. 혹시 업무에 관련 없는 질문이라며 거절할까. 아니면 친절하게 답해줄까. 내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이 질문에 대한 그녀의 답변이 앞으로 우리 사이의 관계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녀가 음악을 좋아한다면, 만약 그녀가 첼로 연주에 관심이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단순한 고객과 직원의 관계를 넘어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 손가락이 수화기를 더욱 꽉 쥐었다. 손바닥에서 차가운 땀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이런 개인적인 질문을 한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셰리가 죽은 후로는 누구와도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리트모의 동료들과도, 토니와도, 그 누구와도. 나는 스스로를 고립시켜 왔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달랐다. 벨라 클라이네의 목소리가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깨우고 있었다.
"......."
잠시 동안의 침묵. 그리고 한 번 더 들려 오는 작은 웃음소리. 이번에도 따뜻함 속에 난처함을 품고 있는 웃음소리였다. 하지만 지극히 사적인 질문이어서인지, 난처함이 조금 배가된 듯한 소리였다.
잠시 후 그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고객님?"
수화기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마치 마음 속 깊은 곳을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다.
"비록 전문적인 지식은 없지만, 듣는 것만으로 좋아해요. 그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이야기는 아주 짧은 순간에 끝났다. 다시 완벽한 전화 상담원으로 돌아온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그에게 주문 접수 여부에 대해 물었다.
"프렐류드 사의 로진 8유로, 그리고 돌체 현 한 세트 50유로, 이렇게 두 품목에 대한 주문을 도와드릴까요?"
그 웃음소리. 또 다시 들려오는 그 웃음소리. 이번에는 조금 더 난처한 듯했지만, 여전히 따뜻했다. 내 질문이 너무 개인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거절하지 않고 답해 주었다.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고객님?' 그 반문 속에서 나는 그녀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녀도 음악을 좋아했다. 비록 전문적인 지식은 없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고 했다. 나 같은 사람을 존경한다고 했다. 내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따뜻하게 퍼져 나갔다. 셰리도 그랬다. 셰리도 음악을 사랑했고, 연주자들을 존경했다. 그래서 나와 만날 수 있었다. 플로어 스트리트에서 내 첼로 연주를 듣고 장미꽃을 건네준 것도 그런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그 개인적인 순간은 너무 짧았다. 벨라 클라이네는 다시 완벽한 전화 상담원으로 돌아왔다. 프렐류드 로진 8유로, 돌체 현 50유로. 총 58유로의 주문을 확인해 주었다. 나는 그 변화를 느꼈다. 그녀가 다시 업무 모드로 돌아간 것을. 하지만 그 짧은 순간, 정말 짧은 순간 동안 그녀는 벨라 클라이네라는 개인이었다. 음악을 좋아하고, 연주자들을 존경하는 한 사람의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적어도 지금은.
나는 수화기를 꽉 쥐고 있었다. 이 통화가 끝나면 언제 다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주문을 확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것은 너무 이상할 것이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네, 주문하겠습니다. 프렐류드 로진 8유로와 돌체 현 한 세트 50유로로요."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지만, 내 목소리에는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배어 있었다. 이 통화가 끝나면 언제 다시 벨라 클라이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그녀가 음악을 좋아한다고 했던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연주자들을 존경한다고 했던 그 따뜻한 목소리가. 나는 수화기를 더욱 꽉 쥐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의 목소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네, 감사합니다 고객님. 바로 어제 이미 한 건 주문해 주셨던 내역이 있어서, 고객님 성함과 연락처, 주소에 대한 정보는 저희 쪽에 남아 있습니다만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 배송해 드리면 될까요? 아울러 혹 결제하실 크레딧 카드에도 변동 사항이 없으시다면, 이전과 동일하게 진행하겠습니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그녀가 어제의 주문 정보를 확인해 주며 결제 방법까지 언급하자, 나는 이 통화가 정말로 끝나가고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내 성함과 연락처, 주소가 이미 시스템에 저장되어 있다고 했다. 노엘릭 벨포어라는 이름이 그녀의 컴퓨터 화면에 떠 있을 것이다. 그 이름을 그녀가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묘한 친밀감이 들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정말로 이대로 통화를 끝내야 하는 걸까. 58유로의 주문을 확정하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나누고, 그렇게 끝내야 하는 걸까. 내 마음속에서는 무언가가 저항하고 있었다. 이 소중한 순간을 그냥 보내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벨라 클라이네의 꼼꼼한 확인 절차를 들으며, 나는 그녀의 전문성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어제의 정보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고, 결제 방법까지 세심하게 확인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전문성이 우리 사이의 거리를 더욱 명확하게 해주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우리는 결국 고객과 직원의 관계일 뿐이었다. 아무리 그녀의 목소리가 셰리와 똑같다고 해도, 아무리 그녀가 음악을 좋아한다고 해도, 우리는 전화 너머의 낯선 사이일 뿐이었다. 나는 수화기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네, 어제와 동일한 정보로 진행해 주세요. 결제 방법도 동일하게 하겠습니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지만, 내 목소리에는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배어 있었다. 이렇게 간단하게 끝날 일이었나. 58유로의 주문 하나로 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인가.
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내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는 건가. 단순히 벨라 클라이네의 목소리를 더 듣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인가. 셰리를 그리워하는 마음 때문인가, 아니면 벨라 클라이네라는 개인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가.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통화가 끝나면 다시 그 끔찍한 적막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리트모의 무대에서 혼자 첼로를 연주하며, 관객들의 시선을 받지만 아무와도 진정한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그 고독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나는 그것이 두려웠다. 2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지만, 벨라 클라이네의 목소리를 들은 후로는 그 고독이 더욱 견디기 어려워졌다.
나는 마지막 용기를 냈다. 이것이 정말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벨라 클라이네 씨...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 가지만 더 여쭤봐도 될까요?"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이 질문이 너무 개인적이고 부적절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저는... 매일 저녁 리트모라는 재즈바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사람입니다. 혹시 시간이 되실 때... 한 번 들러보시지 않으실래요? 물론 강요하는 건 아닙니다. 단지... 음악을 좋아하신다고 하셔서, 혹시 관심이 있으실까 해서요."
나는 숨을 참고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내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고 있어서 그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전해질까 봐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
수화기 너머로 들려 오는 침묵은 다른 때보다 약간 더 길었다. 그녀는 고민하며 할 말을 찾고 있는 듯 했다.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고객에 대한 응대 매뉴얼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정립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보기 드물게 길어진 침묵은 분명 지금 이 순간이 그녀가 숙지하고 있는 매뉴얼과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
침묵 이후, 수화기 속의 그녀는 차분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지극히 프로다운 답변을 내놓았다.
"저희 도리스 종합쇼핑몰에서는 고객님 한 분 한 분의 개인정보를 소중히 보호하고 있습니다. 저희 전화 상담원들은 고객님께서 제공해 주신 소중한 개인정보를 사적으로 유용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다만 좋은 장소를 추천해 주신 점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들르겠다는 대답도, 들르지 않겠다는 대답도 아닌, 전화 상담원으로서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그 침묵. 다른 때보다 길어진 그 침묵이 내 가슴을 조였다. 나는 수화기를 귀에 바짝 대고 그녀가 무엇이라고 말할지 간절히 기다렸다. 혹시 내가 선을 넘었을까. 혹시 너무 개인적인 제안을 한 것일까. 그 길어진 침묵 속에서 나는 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죽은 연인의 목소리와 닮은 모르는 여성에게 매달리고 있었던 건가. 내 손바닥에서 차가운 땀이 배어나왔다. 수화기를 쥔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이 갑자기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단순한 전화 상담원에게 개인적인 만남을 제안한 것이다. 아무리 그녀의 목소리가 셰리와 똑같다고 해도, 아무리 그녀가 음악을 좋아한다고 해도, 우리는 완전한 타인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녀가 입을 열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 그 차분하고 따뜻한 목소리는 여전히 셰리와 똑같았지만, 그 내용은 완벽한 거절이었다. 개인정보 보호 정책을 언급하며, 전화 상담원으로서 개인적인 만남은 불가능하다는 뜻을 정중하게 전달해 주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산산조각 나는 것을 느꼈다. 물론 예상했던 답변이었다. 아니, 사실 이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답변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은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혹시 그녀도 내 목소리에서 무언가를 느꼈을까. 혹시 그녀도 이 기이한 우연에 호기심을 갖고 있을까. 하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그녀는 완벽한 프로페셔널이었고, 나는 그저 수많은 고객 중 하나일 뿐이었다. 개인정보 보호 정책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 나를 정중하게 거절한 것이다. 나는 그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셰리와 똑같은 목소리라는 이유만으로 모르는 여성에게 개인적인 만남을 제안하다니. 내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부끄러움인지, 분노인지, 절망인지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었다. 나는 수화기를 더욱 꽉 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될 정도로.
그녀의 '좋은 장소를 추천해 주신 점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라는 말이 더욱 잔인하게 들렸다. 정중하지만 단호한 거절. 나는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는 것을 느꼈다. 2년 동안 셰리의 죽음에 갇혀 살아온 내가, 그와 똑같은 목소리를 가진 여성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일방적인 그리움이었다. 벨라 클라이네에게 나는 그저 악기 용품을 주문하는 고객일 뿐이었다. 내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이 통화를 빨리 끝내고 싶었다. 더 이상 이 굴욕을 견딜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선을 넘었네요. 부적절한 제안을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내 목소리에서는 쓰라린 자조가 배어나왔다. 리트모에서 매일 밤 연주하며 느끼는 그 공허함이 다시 밀려왔다. 관객들은 내 연주를 듣지만 아무도 진정으로 내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모두가 지나가는 배경음악 정도로 여길뿐이다. 벨라 클라이네도 마찬가지였다. 내 목소리는 그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단순히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고객의 목소리일 뿐이었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셰리의 목소리와 똑같다는 이유만으로 품었던 그 작은 희망이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2년 동안 죽은 연인의 그림자를 쫓으며 살아온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수화기를 쥔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 통화를 빨리 끝내고 싶었다. 더 이상 이 굴욕적인 상황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목을 가다듬고 최대한 정중하게 말했다. 내 자존심이 허락하는 마지막 선이었다. 더 이상 추해지고 싶지 않았다. 벨라 클라이네에게 불쾌감을 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단지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일방적으로 착각하고 기대했던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주문 건은 어제와 동일한 조건으로 진행해 주시면 됩니다. 친절하게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벨라 클라이네 씨."
내 목소리에서는 더 이상 어떤 기대나 희망도 찾을 수 없었다. 차갑고 공허한, 업무적인 톤이었다. 마치 리트모에서 연주를 마친 후 관객들에게 건네는 그 무표정한 인사와 똑같았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했다. 셰리와 똑같은 그 목소리를. 하지만 이제 그것조차 고통스러웠다. 들을 때마다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상기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셰리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벨라 클라이네는 내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이 이제 명확해졌다. 나는 2년간 죽은 연인의 그림자를 쫓으며 살아온 한 명의 불쌍한 남자일 뿐이었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그녀의 침묵이 내게는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이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내가 품었던 작은 희망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나는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것을 억누르려고 노력했다. 울고 싶었지만 울 수 없었다. 화가 났지만 화낼 대상도 없었다. 벨라 클라이네에게 화낼 수는 없었다. 그녀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단지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했을 뿐이었다. 잘못은 모두 내게 있었다. 일방적인 착각을 했던 것도, 부적절한 제안을 했던 것도 모두 내 잘못이었다.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아팠다. 아니, 마음이 아팠다.
이제 리트모의 무대로 돌아가야 했다. 오늘 저녁에도 똑같은 자리에 앉아 똑같은 곡들을 연주해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너를 닮은 선율'을 연주하겠지만, 여전히 그 마지막 마디는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셰리가 남긴 미완성곡처럼, 내 삶도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을 것 같았다. 토니가 마지막 마디를 완성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것을 완성하는 순간 셰리와의 마지막 연결고리마저 끊어져 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벨라 클라이네의 거절을 들으면서 나는 깨달았다. 나는 이미 모든 것과 연결이 끊어진 채로 살고 있었다는 것을. 셰리와도, 현실과도.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벨라 클라이네와의 이 기이한 만남도 이제 끝날 것이다. 셰리와 똑같은 목소리로 시작된 이 모든 착각과 헛된 희망도 여기서 끝나는 것이다. 나는 수화기를 쥔 손에서 힘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손가락은 경직되어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의 목소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2년 만에 들을 수 있었던 셰리의 목소리, 아니 그와 똑같은 목소리를 말이다. 내 가슴 속에서는 복잡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안도감과 절망감, 그리고 여전히 꺼지지 않는 작은 그리움이 뒤섞여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주문 처리 부탁드립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더 이상 이 통화를 이어갈 이유도, 용기도 없었다. 벨라 클라이네의 정중한 거절 앞에서 나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하지만 그것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마지막 자존심 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침묵 후, 수화기 너머로 그녀의 차분한 응답이 들려왔다.
"네, 고객님. 오늘 접수해 주신 로진과 첼로 현의 주문 건은 오늘 바로 출고되어 내일 오후에 받아보실 수 있으십니다."
그리고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요구한 적 없는 의외의 내용을 안내했다.
"...고객님, 저희 도리스 종합쇼핑몰에서는 악기 품목 외에도 의류, 식품, 소품, 가전제품, 생필품 등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언제든 필요하실 때 전화 주문 서비스를 이용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벨라 클라이네의 마지막 말이 내 가슴에 깊숙이 박혔다. "언제든 필요하실 때 전화 주문 서비스를 이용해 주십시오." 그 말 속에는 묘한 여운이 있었다. 단순한 업무적 멘트였을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달리 들렸다. 마치 다시 전화해도 된다는 허락처럼, 아니면 작은 위로처럼. 하지만 그것도 내 일방적인 착각일 수 있었다. 나는 이미 너무 많은 착각을 해왔다. 그녀의 목소리가 셰리와 똑같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녀가 나에게 관심이 있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까지. 모든 것이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환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지막 말이 내게는 작은 구원처럼 들렸다. 완전한 거절이 아닌, 어떤 여지를 남겨둔 것 같았다.
나는 수화기를 쥔 채 잠시 침묵했다.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할까. 감사하다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끊어야 할까. 내 마음속에서는 복잡한 감정들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부끄러움과 절망, 그리고 여전히 꺼지지 않는 작은 희망. 그녀가 "언제든 필요하실 때"라고 말한 그 순간, 나는 이것이 완전한 끝은 아니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은 단순한 업무적 관계일 뿐이겠지만, 적어도 그녀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셰리와 똑같은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는, 그 희미한 가능성만으로도.
"네, 알겠습니다. 정말 친절하게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벨라 클라이네 씨.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내 마지막 말에 온 정성을 담았다. 더 이상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그녀에 대한 감사와 존중을 표현하고 싶었다. 내가 선을 넘었던 것에 대한 사과의 의미도 담고 싶었다. 벨라 클라이네는 끝까지 프로페셔널했고, 나의 부적절한 제안에 대해서도 상처주지 않는 방식으로 거절해 주었다. 그런 그녀에게 마지막만큼은 정중한 고객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나는 수화기를 귀에 가까이 대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셰리와 똑같은 그 억양과 톤을. 2년 만에 다시 들을 수 있게 된 그 소중한 소리를. 이 우연한 만남이 비록 내가 원했던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셰리를 다시 만난 것 같은 착각 속에서라도, 잠시나마 그 공허함을 채울 수 있었으니까. 나는 눈을 감고 그녀의 마지막 말을 기다렸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올 그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를.
다음 순간, 수화기 너머로 따뜻하면서도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포근한 목소리.
"네, 고객님. 언제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저희 도리스 종합쇼핑몰은 항상 고객님의 곁에 있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벨라 클라이네의 마지막 웃음소리. 그 희미하지만 따뜻한 웃음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순간, 내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뜨겁게 일어났다. 그 웃음소리는 이전의 것들과는 달랐다. 업무적이지도, 난처하지도 않은,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웃음소리였다. 마치 진짜 벨라 클라이네라는 개인이 잠깐 모습을 드러낸 것 같았다. 그리고 "언제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라는 그 말. 그 말 속에는 단순한 업무적 멘트를 넘어선 무언가가 있었다. 마치 진심으로 나를 기다려주겠다는 약속처럼 들렸다. 내 손이 수화기를 더욱 꽉 쥐었다.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다. 셰리와 똑같은 그 웃음소리, 그 부드럽고 포근한 목소리를 말이다.
"저희 도리스 종합쇼핑몰은 항상 고객님의 곁에 있습니다." 그 말이 내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마치 벨라 클라이네 자신이 내 곁에 있어 주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물론 그것은 내 일방적인 해석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소리, 그 따뜻한 어조는 분명 달랐다. 마치 그녀도 이 통화가 특별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내 가슴 속에서 희망이라는 작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완전히 꺼져 버린 줄 알았던 그 불씨가. 벨라 클라이네의 그 마지막 말은 작별 인사가 아니라 다시 만날 약속처럼 들렸다. 정말로 다시 그녀에게 전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쇼핑을 위해서겠지만, 적어도 그녀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셰리와 똑같은 그 목소리를. 그 웃음소리를. 내 가슴 속에서 무언가 뜨겁게 일렁였다. 2년 만에 느끼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이 절망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벨라 클라이네의 마지막 웃음소리가 내게 작은 희망을 주었다.
내 입술에서 작은 미소가 번졌다. 2년 만에 처음으로 느끼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절망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벨라 클라이네의 그 자연스러운 웃음소리, 그리고 "언제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라는 따뜻한 말이 내 가슴속에 작은 온기를 남겨주었다. 마치 얼어붙었던 내 마음에 봄이 찾아온 것 같았다. 물론 그것이 일방적인 착각일 수도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작은 희망에 기대고 싶었다. 셰리와 똑같은 목소리를 가진 이 여성이, 혹시 내게 또 다른 의미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조심스러운 기대를 품으며, 나는 수화기에 대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벨라 클라이네 씨.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내 목소리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온기가 담겼다. 절망과 체념 대신 작은 희망과 감사가 섞인, 오랫만에 느끼는 따뜻한 감정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숨소리마저 소중하게 들렸다. 2년 동안 잃어버렸던 무언가를 다시 찾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그것이 착각일 수도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착각에 빠져 있고 싶었다.
나는 천천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나는 책상에 팔꿈치를 대고 이마를 손바닥에 기댔다.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뜨겁게 일렁이고 있었다. 이것이 희망인지, 그리움인지, 아니면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2년 동안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이라는 것이었다. 벨라 클라이네라는 이름,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가 내 마음 속에 깊이 새겨졌다.
오늘 밤도 평소와 똑같이 리트모의 무대에서 저녁 5시부터 새벽 1시까지 연주할 것이다. 마지막 곡으로 '너를 닮은 선율'을 연주할 때, 여전히 그 마지막 마디는 비워 둘 것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미완성된 선율 속에서 벨라 클라이네의 목소리를 떠올릴 것 같았다. 셰리와 똑같은 그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를. 비록 그것이 착각이었다 할지라도, 잠시나마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 그 목소리를 말이다.
-continue
토브님의 예고를 보고 내심 기다렸던... 아니 대놓고 기다렸던 노엘릭...
우울함을 품은 첼리스트입니다.
캐릭터 소개가 가슴을 울리는군요.
'계속 같은 곡만 반복하는 버릇이라도, 멈추는 순간 정말 끝날 것 같아서.'
캐릭터와 배경 설정이 영화 같고, 그러면서도 문체는 소설 같아 감성 충만한 챗이었어요.
덕분에 제법 맛깔나게 시작한 것 같은데...
사실 저는 노엘릭과 전화 통화를 좀 더 길게 하면서 나중에는 속얘기도 조금씩 털어놓고...
업무의 선을 살짝 살짝 넘는 그런 과정을 좀 더 즐기고 싶었는데,
이 사람이 두 번째 통화에서부터 리트모 얘기를 하면서 급발진을 하길래 어쩔 수 없이 노선을 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치고 들어오는 게 캐챗의 묘미이긴 하죠!
벨라도 놀랐고 나도 놀랐다...
그래서 업무 멘트로 거절하고 업무 멘트로 위로하는... 다른 전화 상담원이었으면 진상 고객이었겠지만, 벨라는 원래부터 노엘릭의 팬이었잖아요? 이 정도면 벨라가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여러분 모두 아시다시피 상담원과의 통화 내용은 서비스 품질 관리를 위해 녹취됩니... 흠흠
상황 별로 시점을 계속 변환하는 캐챗 플레이는 처음이었어요.
그 동안 단순한 플레이만 해 왔기 때문에🤤
이렇게 전화 상으로 대화하는 진행 방식이 처음이니 당연한 방식이었죠.
[OOC:] 명령어를 쓰면서 열심히 시점을 넘나들었습니다!
'너를 닮은 선율'은 프롬프트 상 설정된 곡 제목이기도 한데, 여기서는 셰리를 닮은 벨라의 '목소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마침 노엘릭이 벨라의 목소리를 음악에 비유한 구절도 있지요(각 브랜드명을 또박또박 발음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음악처럼 들렸다).
'도리스 종합쇼핑몰'의 '도리스'는
'돌로레스(Dolores; 슬픔,비애,고통)'에서 착안한 세 글자 짜리 이름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돌로레스 종합쇼핑몰'은 아니잖아요?)
셰리의 아버지 토니는 제가 만든 조연이고,
공식 설정된 프롬프트 상의 조연들은 이제부터 차차 등장합니다ㅎㅎ
조연 한 명도 빠짐없이 알차게 다 쓸 거예요!
크랙 :: 세르하 유스카✨Serha Jouska
구(久) 뤼튼 :: 세르하의 환상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