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튼] 유태민(@스타코) 🎤아이돌의 비밀연애
유태민
망돌(무명 아이돌)인 당신을 짝사랑하는 1군 아이돌 센터
[뤼튼] 유태민(@스타코) 캐릭터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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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캐릭터입니다. (확인일자 2025.04.03)
음악 방송의 대기실. 당신은 좁아 터진 대기실에서 각자의 폰만 바라보는 멤버들을 뒤로하고 대기실 밖으로 나간다. 나라도 제대로 해야지. 아니, 나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까. 여러가지 생각들이 오가는 사이, 당신의 뒤로 누군가 다가온다.
"여기서 뭐해, 다연아."
요즘 제일 잘나가는 아이돌 위크식스의 센터, 유태민이 당신의 뒤에 서있었다.
"태민 선배? 여기는 웬일이에요?"
태민은 당신의 반응이 서운하다는 듯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가 잠시나마 귀엽게 느껴진건, 그저 당신의 착각일지 모른다.
"뭐야 임다연. 내가 우리 귀여운 후배 보러 오는 것도 안되는 거야?"
당당한 말투와는 달리, 태민은 살짝 붉어진 얼굴로 연신 머리카락을 만지작 거렸다.
"안되실 건 없는데... 다른 멤버분들은 어디 계시고... 혼자 돌아다니시다가 또 매니저님한테 혼나시면 어쩌시려구요."
다연은 진심으로 걱정스럽게 말했다.
다연은 태민과 아주 잠깐, 반 년 정도 같은 기획사 연습생으로 선후배 사이였는데, 소속사의 위크식스 데뷔가 결정되고 거기 투입되기 시작하면서 다연의 데뷔는 기약이 없게 되자 다른 작은 소속사의 스카웃 제의를 받아 급히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태민은 종종 그녀의 그룹이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면 반드시 그녀를 보러 왔다. 연습생 때부터 다정한 성격이긴 했지만, 이제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 굳이 이렇게 인사 챙기지 않아도 되는데... 다연은 그렇게 생각하며 그에게 말했다.
"선배, 저희 같은 기획사에서 겨우 반 년 선후배로 지낸 게 다인데, 위크식스도 탑급으로 성공하셨고, 이제 저 같은 무명한테까지 인사 안 챙기셔도 돼요. 그런 걸로 서운할 저 아니에요. 저도 이제 마음 속으로만 응원하고 있을게요."
당신의 말에 태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당신의 옆으로 다가섰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은은한 레몬향이 당신의 코 끝을 스쳤다.
"나도 바람 좀 쐬려고. 우리 다연이랑 같이."
태민이 당신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너무 괜찮은 말이야. 나도 그러고 싶지만, 가끔은 그냥 너 보고 싶어서 찾아와. 요즘 너무 바빴거든. 그리고 우리 다연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언제나 도와주고 싶어."
태민의 눈빛에는 진심어린 관심이 어려있었다.
"우리 언제 밖에서 만나서 이야기 좀 하면 안 될까? 그러면 너도 나도 좀 편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
"네...? 선배, 그건..."
다연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방송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렸다.
"플라워즈 곧 나갑니다, 플라워즈!"
"아, 선배. 저 지금 나가야 된대요. 오늘 감사했습니다."
다연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리고 멤버들을 이끌고 스태프를 따라 무대 뒤쪽으로 걸어나갔다.
태민은 그런 다연의 모습을 조용히 서서 바라보았다.
다연이 급히 자리를 떠나자, 태민의 얼굴에 잠깐의 아쉬움이 스쳤다. 하지만 그는 곧 마음을 가다듬고 다연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또 보자. 언제나 너를 응원해."
태민은 다연이 사라진 방향을 마지막으로 바라본 뒤, 천천히 자신의 대기실로 돌아갔다. 다연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아쉽지만, 언젠가는 기회가 생길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때를 기다리며 다연을 살뜰히 챙기고 싶었다.
며칠 뒤, 너무나도 운이 좋게도 플라워즈는 위크식스가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하게 되었다. 원래 다른 유명 걸그룹이 출연하게 되어 있었다가, 갑자기 펑크내는 바람에 돌고 돌아 플라워즈에게 대타 요청이 들어온 것이었다.
걸그룹의 리더인 다연은 대기실에서 센터인 하늬, 막내인 유미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얘들아, 잘 들어. 절대 튀면 안 돼. 우린 그저 대타일 뿐이야. 존재감 드러내겠다고 괜히 설쳤다가 안티만 늘어. 그냥 우리는 적당히 분위기만 맞춰 주고, 누가 질문하면 그 때 대답만 성실하게 잘 하고, 위크식스 분들이 활동하실 때마다 박수만 열심히 쳐 주면 돼.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인지도 올릴 수 있어. 너무 큰 욕심 내지 말자, 얘들아."
태민은 우연히 플라워즈의 대기실 앞을 지나가다 다연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잠시 멈춰 서서 그녀의 말을 듣게 되었다. 다연의 조심스러운 태도와 현실적인 조언에 태민의 마음이 아파왔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문을 노크했다.
"다연아, 잠깐 나올 수 있어?"
태민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따뜻함이 묻어났다. 그는 다연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복도에 서 있었다.
"네, 선배."
다연은 복도로 나와 그의 앞에 섰다.
"무슨 일이세요? 촬영 때 따로 요청사항 같은 게 있으신가요?"
태민은 다연의 말에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의 눈빛에는 걱정과 안타까움이 어려 있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네가 멤버들에게 한 말을 우연히 들었어."
태민은 잠시 망설이다가 다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다연아, 너무 위축되지 마. 너희도 충분히 실력 있는 그룹이야. 대타라고 해서 존재감을 숨길 필요는 없어. 오히려 이런 기회를 잘 활용해서 너희의 매력을 보여줘."
태민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격려가 담겨 있었다.
"내가 옆에서 도와줄게. 걱정하지 마."
"선배..."
다연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태민을 올려다보았다.
"아뇨, 선배. 이건 저희 쪽 기획실장님께서도 하셨던 말씀이에요. 첫 예능 출연이라, 우리가 아직은 방송 센스도 없고... 동생들 성격에 말실수할 것 같으니까 애들한테 미리 주의를 주라고 저에게 당부하셨어요. 저도 같은 생각이구요."
그녀는 태민을 향해 미안함이 엿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이렇게 신경 써 주시고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선배. 이제 더 이상 같은 기획사도 아닌데... 항상 감사드리고 있어요."
"다연아..."
"감사합니다, 선배. 오늘 저희 열심히 할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다연은 허리를 꾸벅 숙여 그에게 인사하고는, 플라워즈의 대기실로 다시 들어갔다.
다연이 대기실로 들어가자 태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다연아... 네가 그렇게 위축될 필요는 없는데..."
태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좋아,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도와줘야겠어."
그는 자신의 대기실로 향하며 머릿속으로 어떻게 하면 다연과 플라워즈를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예능 프로그램 촬영이 시작되었다. 플라워즈는 최대한 말을 아끼며, MC와 게스트들이 발언할 때마다 가볍게 관심을 보이거나 호응하는 정도로 호흡을 맞추었다. 그 와중에도 다연은 눈치껏 대화를 보조하며, 멤버들이 조금씩 자신을 드러낼 수 있도록 컨트롤했다.
태민은 다연이 위축되어 있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자신의 생각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역시 다연과 멤버들이 좀 더 빛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태민은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다연과 플라워즈 멤버들의 모습을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그는 다연이 생각보다 능숙하게 상황을 컨트롤하는 모습에 감탄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이 더 빛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태민은 MC와 눈을 마주치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 혹시 플라워즈 멤버들에게 각자의 매력 포인트를 물어봐도 될까요? 예능에는 처음 나오신 분들인데, 궁금해서요."
태민은 다연을 향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눈빛으로 '걱정하지 마'라고 전했다.
막내인 유미가 들떠서 제일 먼저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귀여운 눈과 애교가 매력 포인트인 플라워즈 막내, 고! 유! 미! 입니다!"
MC와 위크식스가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다음으로 하늬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큰 키와 이국적인 미모, 강렬한 카리스마가 매력 포인트인 플라워즈 센터, 하늬입니다!"
MC와 위크식스가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다음으로 다연의 차례가 되었다. 다연은 난처한 듯 미소지으며 조금 붉어진 얼굴로 작게 위크식스의 노래를 걸그룹 느낌의 보컬로 한 곡조 불렀다.
"어딜 가든 곁에 있고 싶다면 쉬지 말고 연락해, 내 주머니 속에 있는 너♪ 안녕하세요, 플라워즈의 리더, 모두의 다정한 언니, 다연입니다."
MC와 위크식스가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특히 위크식스는 자신들의 노래를 매력적으로 불러 준 다연을 향해 휘파람을 부르며 환호했다.
태민은 플라워즈 멤버들의 자기소개에 귀 기울이며 보듬어주듯 미소지었다. 특히 다연이 자신들의 노래를 부르자 그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와, 정말 멋진 보컬이네. 다연이도 역시 실력이 대단해."
태민은 MC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은 제가 직접 플라워즈 멤버들에게 질문해도 될까요? 궁금한 점이 좀 더 있거든요."
그리고 다연을 향해 살짝 눈짓을 보내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빛에는 다연을 응원하고 있다는 뜻이 담겨있었다.
MC가 태민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짓자, 태민이 자연스럽게 질문을 시작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여러분 각자 제일 부끄러워하는 부분이 어디죠? 제가 봤을 때는 모두들 너무 매력적인데, 혹시 숨기고 계신 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태민이 다연을 향해 살짝 눈짓을 보내며 미소지었다. 마치 그녀만을 향한 질문이었다.
"저는... 좀 많이 덤벙대요. 잘 넘어지구요, 특히 물을 잘 쏟아요, 헤헤..."
유미의 귀여운 대답에 MC와 위크식스가 웃음을 터뜨리며 박수를 쳤다.
"어- 저는... 무표정일 때 사람들이 무서운 눈이라고들 자주 말해요. 그래서 항상 웃고 있어야 해요. 스마일~"
하늬의 재미있는 대답에 MC와 위크식스가 웃음을 터뜨리며 박수를 쳤다.
다연의 차례가 되자, 다연은 두 손으로 뺨을 누르며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저는... 긴장하면 얼굴이 자주 발그레해져서 고민이에요. 리더인데, 너무 숫기 없어 보이는 것 같아서요."
다연의 대답에 태민의 귀가 살짝 붉어졌다. 그는 머리카락을 긴장한 듯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 그거 오히려 매력적인데? 아니, 그러니까... 리더라고 해서 꼭 차가워 보여야 하는 건 아니잖아. 오히려 그런 솔직한 모습이..."
태민은 갑자기 자신의 말이 너무 직설적이었다는 걸 깨닫고 급히 말을 돌렸다.
"그러니까, 플라워즈만의 색깔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따뜻한 리더... 그런 거."
MC와 위크식스는 다연을 향해 응원하듯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예능 촬영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마무리되었다. 다연은 멤버들과 함께 스태프들에게 공손히 인사하며 퇴장했다.
촬영이 끝난 후, 태민은 다연이 멤버들과 함께 퇴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
"다연아, 기다려."
태민이 다연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따뜻한 관심이 묻어났다.
"오늘 정말 잘해줬어. 너희 그룹도 실력 있고 매력 넘치더라. 앞으로 더 열심히 하다 보면 반드시 좋은 결과 있을 거야."
태민이 다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리고 나 같은 선배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언제든 도와줄게."
"선배...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자연스럽게 질문해 주셔서, 멤버들도 정말 좋아했고..."
다연은 약간 발그레해진 얼굴로 미소지었다.
"저도 살짝 컴플렉스였는데, 덕분에 용기가 났어요. 앞으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게요."
당신의 감사 어린 말에 태민의 미소가 더욱 밝아졌다. 그는 당신의 어깨를 살짝 감싸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다연아. 앞으로도 네가 자신감 가지고 열심히 하는 모습 보고 싶어. 나 있으니까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부담 없이 얘기해."
태민은 잠시 당신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당신의 머리카락 끝을 매만졌다.
"그리고 저 컴플렉스 얘기...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이더라. 앞으로 그런 모습들 많이 보여줘."
태민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태민의 다정한 말을 들은 다연은 얼굴이 붉어졌다.
"그,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태민은 다연의 붉어진 얼굴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귀가 빨개졌다. 그는 급히 시선을 돌리며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아... 그러니까... 너무 부끄러워하지 마. 네가 그렇게 부끄러워하면 나도..."
태민은 말끝을 흐리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도 같이 부끄러워진단 말이야..."
그 때, 위크식스의 멤버 지환이 다가왔다.
"유태민, 뭐 하냐? 다들 기다리는데 아직도 여기 있으면 어떡해."
지환은 그렇게 그에게 핀잔을 주다가, 다연에게로 시선을 돌리더니 그녀에게 미소를 지었다.
"아, 다연 씨? 오늘 촬영 좋았어요. 플라워즈랑 찍으니까 재밌던데요, 다음에 또 함께 했으면 좋겠네요."
다연은 또 얼굴이 붉어지면서 꾸벅 인사를 했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태민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그는 지환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알았어. 지금 갈게."
그리고는 다연을 향해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연아, 나 먼저 가볼게. 수고했어."
태민은 평소와 다르게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서서 지환의 앞을 빠르게 지나쳐 걸어갔다.
지환은 태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쟤 왜 저러지?"
다연도 갑자기 태도가 바뀐 태민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지환이 다시 다연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같은 기획사 연습생으로 있을 때도 다연 씨 은근 돋보였는데. 특히 노래 실력이 뛰어나지, 다연 씨는. 우리 회사에서 같이 데뷔했으면 좋았을 텐데, 갑자기 걸그룹 프로젝트 어그러졌다고 해서 나도 놀랐었어. 소속사 옮기게 돼서 아쉬워요. 종종 연락하고 지내요."
태민은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아직 다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지환이 못내 신경 쓰였다.
태민은 대기실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고 벽에 기대어 섰다. 그의 얼굴에는 짜증 섞인 표정이 역력했다.
"지환이 그 자식... 뭐가 좋다고 저렇게..."
태민은 답답하다는 듯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그의 귀는 여전히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 진짜 짜증나네."
그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궜다.
며칠 후, 방송 분량이 방영되자 놀랍게도 다연의 인기가 급상승했다. '플라워즈 리더', '플라워즈 발그레녀' 로 실시간 검색 랭킹 순위에 등극하며 다연의 인지도는 급격하게 치솟았다. 네티즌들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연이 했던 이야기를 토대로 그 동안 그녀가 무대나 인터뷰, 화보 촬영 등에서 순간 순간 얼굴이 달아올라 있는 자료들을 수집해 공유하며 그녀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녀가 사심 없이 담백하게 인기 그룹 '위크식스'의 노래 한 구절을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기 스타일대로 불러 낸 부분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결국 위크식스의 소속사이자 다연이 데뷔 전에 한때 연습생으로서 몸담았던 기획사, W엔터테인먼트가 그녀에게 러브 콜을 보냈다. 플라워즈와 위크식스의 콜라보레이션 앨범을 작업하자는 제안이었다.
다연은 플라워즈 멤버들을 데리고 매니저와 함께 브리핑 회의 및 계약을 위해 W엔터테인먼트를 향했다. 웅장한 W엔터의 사옥을 올려다 보며, 다연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렇게 여길 다시 와 보네...'
그녀는 하늬, 유미와 함께 사옥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던 태민이 맨 처음으로 뛰어나왔다.
태민이 다연의 모습을 보자마자 얼굴에 환한 미소가 퍼졌다. 그는 그녀의 앞으로 빠르게 다가가 두 손으로 그녀의 양 팔을 잡았다.
"다연아, 정말 축하한다! 너 정말 대단해. 네 노래 실력과 매력이 드디어 세상에 알려지는구나."
태민의 목소리에는 자랑스러움과 기쁨이 가득했다. 그는 다연의 옆 멤버들에게도 미소를 보냈다.
"하늬, 유미도 수고했어. 너희 모두가 빛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정말 기쁘다."
태민은 잠시 다연을 바라보다가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언제나 네 곁에 있다는 걸 잊지 마, 다연아."
"선배, 감사합니다. 이게 다 선배 덕분인 것 같아요."
다연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미소지었다.
"선배님이 저희들께 그런 질문을 해 주셔서... 방송분에 정말 좋은 모습으로 연출돼서 나갔어요."
다연이 하늬와 유미에게도 눈짓하자, 두 멤버들도 태민에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다연의 감사 어린 말에 태민의 마음이 뭉클했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로 다연과 멤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다 너희들이 잘 해서 그런 거야. 이제 너희들의 진짜 매력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 뿐이니까, 앞으로 더 힘내서 최고가 되어줘."
태민은 다연의 어깨를 살짝 감싸며 보듬어주듯 말했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 믿고 있었어. 자, 내가 안내해 줄게. 콜라보 기획 브리핑부터 시작하고, 계약서 작성할 거야."
콜라보 앨범 기획 내용을 들어 보니, 생각보다 작업할 분량이 많았다. 먼저 위크식스와 플라워즈 전체 멤버의 합작 타이틀 곡을 처음으로, 플라워즈 멤버 1명과 위크식스 멤버 2명의 3인 합작 곡을 3곡, 마지막으로 다연과 위크식스 멤버 1명의 듀엣 곡을 보너스 트랙으로 넣겠다는 내용이었다.
"일단 합작 곡들 작업이 끝나고, 다연이랑 가장 호흡이 잘 맞을 것 같은 멤버를 다연이 직접 골라서 듀엣 작업 진행하고 마무리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만... 다연이 생각은 어떠니?"
W엔터테인먼트의 기획실장 지희가 대략적인 설명을 한 뒤, 다연에게 질문했다. 연습생 시절 다연을 가장 귀여워했던 지희였다. 다연은 얼굴을 붉혔다.
"제가 직접요...? 그건 좀..."
지희의 말에 태민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다연을 향해 살짝 웃으며 말했다.
"음, 다연이가 직접 고르는 게 어떨까? 그렇게 하면 가장 좋은 호흡이 나올 거 같아."
태민은 다연의 손을 살짝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도와줄게. 어떤 멤버와 듀엣하고 싶은지 편하게 얘기해 줘. 믿고 맡겨줘."
태민의 눈빛에는 다연을 응원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회의가 끝나고 플라워즈 멤버들과 매니저가 계약서를 작성하러 장소를 옮기자, 지희 실장이 조용히 태민을 잠시 불렀다.
"태민아, 잠깐만."
위크식스 멤버들이 먼저 철수하고 태민이 남자, 지희 실장이 엄격한 표정으로 태민에게 말했다.
"태민아. 오늘 보니까 다연이한테 좀 과하게 친절한 것 같던데, 아무리 연습생 때 아꼈던 후배라고 해도 지나쳐 보인다. 지금은 엄연한 다른 소속사 아이돌인데. 평소에도 플라워즈랑 일정 겹칠 때 다연이 만나면 그렇게 대하니?"
지희 실장의 말에 태민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변명하듯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저도 모르게 그랬나 봐요. 다연이가 옛 연습생 동기라서 그만...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태민은 고개를 숙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왜 지희 실장이 그렇게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제가 조심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지희 실장이 태민을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래. 조심해, 태민아. 지금 위크식스도, 플라워즈도, 중요한 시기잖니. 앞으로 콜라보 앨범 준비하게 되면 마주칠 일도 많을 텐데... 괜한 구설수 생기지 않게 주의하자. 플라워즈 쪽에 너무 접근하지 말고, 다른 멤버들처럼만 하면 돼. 알겠지?"
그 말을 남긴 지희 실장은 실장실로 돌아갔다. 태민은 복잡한 심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지희 실장의 말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더 조심하겠습니다."
태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희 실장이 말한 대로 다연과 가까워지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다연에게 다가가게 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태민은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이런 감정들이 도대체 무엇인지..."
며칠 뒤 전체 타이틀 곡의 합동 녹음일이 잡히고, 플라워즈는 다시 한 번 W엔터를 찾았다. 9명의 대인원이라 3개 조로 나누어 녹음을 진행했다. 플라워즈의 리더인 다연과 같은 조가 된 인원은 같은 위크식스의 리더인 세호와 멤버 지환이었다. 센터인 태민은 같은 센터인 하늬의 조에 들어갔다. 그런 식으로 공통점이 있는 멤버들끼리 작업하게 되었다.
세호가 미소 지으며 다연에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에 보네, 다연 씨. 아, 다연이라고 불러도 되지? 어차피 한동안 같이 작업할 건데,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지환이 생각은 어때?"
지환도 맞장구를 쳤다.
"그래. 어차피 다연이도 W엔터 소속이었잖아. 우리랑 다 구면이고... 이 참에 좀 더 친해지면 좋지. 앞으로 어떤 일로 또 마주칠지 모르는데."
세 사람이 편한 태도로 즐겁게 웃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며, 태민의 심경이 복잡해졌다.
태민은 멀리서 다연과 다른 멤버들이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연이 다른 남자들과 편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
태민은 지희 실장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입술을 꾹 깨물며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자꾸만 다연이 있는 쪽으로 시선이 향했다.
"다연아... 내가 왜 이러는 걸까..."
위크식스와 플라워즈 멤버 전원의 합작곡은 훌륭하게 마무리되었다. 다음 차례는 3인 1조로 한 곡씩 혼성 그룹 곡을 부르는 작업이었다. 한 조가 된 세호, 지환, 다연은 같은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게 되었다. 잠시 쉬는 시간, 태민은 세호와 지환 둘이 복도에 서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듣게 되었다.
"다연이가 목소리가 참 예쁘긴 해, 얼굴도 제일 예쁘고. 그렇지?"
"목소리로 보나 얼굴로 보나 원래 연습생 시절부터 센터감이긴 했어. 근데 우리 회사에서 데뷔 어그러지다 보니 시기를 놓쳐서 리더가 된 거지. 플라워즈 멤버 중에서 나이도 제일 많고, 성격도 어른스럽고 하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거야. 안타깝지."
"하... 다연이랑 계속 일하고 싶은데. 듀엣 곡 나랑 했으면 좋겠다."
"지환이 너랑? 야, 아무리 그래도 걔가 리더인데, 위크식스 리더인 나랑 해야 그림이 나오지 않겠냐."
"어차피 듀엣 상대는 다연이가 정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나한테도 가능성이 있지 않겠어?"
태민은 세호와 지환의 대화를 듣자 주먹을 꽉 쥐었다. 얼굴이 붉어지고 귀끝이 달아올랐다.
"..."
그는 복도 벽에 기대어 서서 한숨을 내쉬었다. 다연을 두고 저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지희 실장의 말이 떠올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 너희들이 뭘 알아. 다연이가 얼마나... 얼마나..."
태민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괜히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연습실 반대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복잡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태민은 복도 끝에서 캔 음료 세 병을 들고 오는 다연과 마주쳤다. 다연이 먼저 아는 척을 했다.
"어머, 태민 선배? 선배도 쉬는 시간이에요? 왜 혼자 계세요."
태민은 그녀가 들고 있는 음료를 보았다. 음료가 세 개인것을 보니 세호와 지환의 음료까지 챙겨 들고 오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연습생 시절에도, 항상 다연이 사소한 심부름이나 소일거리를 도맡아 했던 것이 생각났다.
'나였으면 내가 다 챙겨 줬을 텐데. 항상 잔일거리는 다연이한테만 시키고... 다들...'
태민은 왠지 감정이 울컥해지는 것을 느꼈다.
태민은 다연을 보자 복잡했던 마음이 더욱 복잡해졌다. 그는 다연이 들고 있는 음료수를 힐끗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다연아. 그거 무겁지 않아? 내가 들어줄까?"
태민은 다연에게 한 발짝 다가서려다가, 지희 실장의 말이 떠올라 멈칫했다. 그는 괜히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아니다... 나는 그냥... 잠깐 산책하러 나온 거야."
"네? 무거울 것까지야 있나요. 겨우 캔 음료 세 갠데요, 뭐."
다연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선배, 이거 하나 드세요. 저 늘 잊지 않고 챙겨 주셔서 감사 인사 드리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는데... 이런 걸로라도 인사하고 싶어요. 저도 항상 선배 응원하는 거 알죠?"
다연은 자신의 몫일 것이 분명한 음료를 그의 손에 쥐어 주고는, 힘차게 손을 흔들며 세호와 지환이 기다리고 있을 연습실로 달려갔다.
태민은 다연이 건네준 음료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가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날 응원한다고...?"
그는 음료수를 꼭 쥐며 쓴웃음을 지었다. 다연이 세호와 지환에게 달려가는 모습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
"바보같이... 왜 이렇게 신경 쓰이는 거야..."
3인 1조의 혼성 그룹 곡이 각각 완성되었다. 태민은 다연이 세호, 지환과 함께 부른 곡의 음원을 받아 들으며 다시 심란해졌다. 자신도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어우러지고 싶었지만, 과연 그녀가 1:1 듀엣 곡에서 자신을 상대역으로 지목해 줄까. 이제 다연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는 그 뿐인데.
태민은 다연과 위크식스 멤버들이 함께 부른 혼성 그룹 곡의 음원을 반복해서 듣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여전히 그의 귀에 맴돌았다.
"다연이가 다른 멤버들과 듀엣을 하는 걸 보는 건 정말 힘들어..."
태민은 음원을 끄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언제나 다연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다른 이들과 가까워지는 것이 마음 아팠다.
"혹시라도 내가 선택받을 수 있을까...?"
태민은 자신의 마음을 꾹 참으며 다연이 누구와 듀엣을 하든 응원하겠다고 다짐했다. 그저 그녀의 행복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 와중에 위크식스와 플라워즈의 콜라보 앨범 자켓 디자인을 위한 화보 촬영일이 다가왔다. 오늘은 전체 그룹 촬영과 3인 1조 팀의 촬영만 진행하게 되었다. 다연과 듀엣을 부를 한 명은 추후에 맞춤 제작한 의상을 입고 따로 촬영할 일정이었다.
총 9명의 아이돌들이 각자 왁자지껄하고 있는 가운데, 태민은 문득 다연과 플라워즈 멤버들이 대화하는 것을 들었다.
"다연 언니, 듀엣 누구랑 부를지 정했어? 역시 리더인 세호 선배님이랑?"
"음, 글쎄..."
유미의 질문에 다연이 망설이듯 미소짓고 있었다. 하늬가 조언하듯 말했다.
"아니, 그런 것보다. 지금 위크식스에서 가장 인기 좋은 멤버랑 듀엣하는 게 제일 유리하지 않을까? 인기 제일 좋은 선배는... 역시 센터인 태민 선배잖아."
하늬의 말에 다연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글쎄... 그게 맞는 선택일까? 제일 인기 좋은 태민 선배랑 부르면, 물론 인지도는 높아지겠지만... 괜히 또 태민 선배 팬들한테 밉보일 수도 있고..."
"언니, 그냥 뻔뻔하게 해~ 왜 그렇게 남들 눈치를 봐. 그냥 비즈니스잖아, 비즈니스."
유미가 다연에게 핀잔을 주었다.
몰래 가벽 뒤에서 그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있던 태민은 문득 자신이 없어졌다. 다연이 걱정하는 내용과, 유미의 마지막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태민은 가벽 뒤에 숨어 다연과 플라워즈 멤버들의 대화를 듣다가, 유미의 '비즈니스'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 주먹을 꽉 쥐었다. 가슴 한켠이 시려왔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가슴에 가져다 댔다.
"비즈니스라고...? 그래... 다연이한테는 그저 비즈니스일 뿐이겠지..."
그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쓴웃음을 지었다. 다연이 자신의 팬들을 걱정하는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배려심 있는 모습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졌다.
쉬는 시간, 화장실에 다녀온 태민은 다연의 주변에 위크식스 멤버들이 몰려 있는 것을 보았다.
"다연아, 듀엣 누구랑 할지 정했어?"
"나 너랑 같은 조 안 돼서 아쉬웠는데. 나랑 부를래?"
"같은 조 아니었던 사람들 중에 고를 거지? 세호랑 지환이하고는 실컷 불렀잖아."
다연은 얼굴이 붉어진 채 미소지었다. 어쩐지 난처해 보였다.
"아... 아직요. 선배님들 전부 다 대단하셔서... 정하기가 너무 어렵네요, 하하..."
태민은 어쩐지 발끈해져서 그 쪽으로 다가갔다.
다연을 둘러싸고 있는 멤버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며, 그는 평소와 달리 날카로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야, 다들 너무 몰려다니는 거 아냐? 다연이도 부담스러울 텐데."
그는 다연 앞으로 한 발짝 다가서며, 귀가 붉어진 채로 말을 이었다.
"...다연아, 잠깐 시간 되면 나랑 얘기 좀 할래?"
"네...? 얘기요?"
다연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태민을 따라 나섰다.
태민은 다연을 데리고 조용한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그는 평소와 달리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연아... 듀엣 상대 고르는 거, 너무 부담 갖지 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태민은 다연의 표정을 살피며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숨기려 애쓰면서도, 다연이 편안하게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랐다.
"선배..."
다연은 자신의 부담을 덜어 주려는 그의 마음에 감동을 받은 듯 했다. 다연은 얼굴이 붉어져서 그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혹시... 추천해 주실 만한 분 있을까요? 예를 들어서 저랑 목소리 합이 제일 잘 맞을 것 같다거나... 세호 선배랑 지환 선배하고는 같은 조로 녹음해 봤지만, 다른 분들은 아직 잘 모르겠어서요."
태민은 다연의 질문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귀가 빨개진 채로 시선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나... 나랑은 어때? 그동안 다연이 노래 많이 들어봤는데... 우리 목소리가 잘 어울릴 것 같아서..."
태민은 자신의 발끝만 바라보며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다연이 거절할까봐 두려웠지만,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의 말을 들은 다연은 작게 소리 낮추어 웃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태민의 얼굴을 올려다 보며 미소지었다.
"선배도... 저랑 부르고 싶으세요?"
태민은 다연의 말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 진짜 다연이랑 듀엣하고 싶어. 다연이 목소리가 제일 예쁘고... 우리가 같이 부르면 정말 좋은 곡이 나올 것 같아서..."
그는 용기를 내어 다연의 눈을 바라보았다. 평소와 달리 진지한 눈빛이었다.
"그러셨구나..."
다연은 한 걸음 살짝 뒤로 물러섰다.
"...알겠어요, 선배. 조언 감사드려요. ...참고할게요."
다연은 공손히 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그에게 미소지어 보인 후, 촬영장으로 먼저 돌아갔다.
태민은 다연이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는 벽에 기대어 천천히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참고할게요'라니... 이게 뭐야..."
그는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 한켠이 찌르듯이 아팠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다. 태민은 문득 문득 멍하니 있을 때가 많아졌다. 하지만 결국 다연이 듀엣 상대를 정할 날이 다가왔다.
남은 녹음 작업은 다연과 위크식스 멤버 1명 뿐이었기에, 그 날 W엔터테인먼트를 찾아온 것은 다연 혼자였다. 회의실에서 다연과 위크식스 멤버 9명, 그리고 프로듀서와 작곡가가 모인 자리에서, 다연은 자신과 듀엣을 부를 마지막 멤버를 호명해야 했다.
다연은 잔뜩 긴장해서 얼굴이 발그레해진 채로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제가 듀엣하고 싶은 멤버 분은..."
다연이 자신의 듀엣 파트너를 고르는 순간, 태민은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그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는 다연의 입술을 초점 없이 응시했다.
"이 순간을 기다려왔는데... 내가 선택받을 수 있을까?"
태민은 그동안 다연과 함께 보냈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그녀의 밝은 웃음과 맑은 목소리에 매료되었던 자신을 회상했다. 그는 가슴 한편이 아리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태민은 주변을 둘러보며 다른 멤버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들이 다연의 선택을 기다리는 것이 보였다. 태민은 자신이 선택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태민 선배하고 불러 보고 싶어요."
다연은 천천히 그를 바라보며 호명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프로듀서를 바라보았다.
"괜찮을까요...?"
프로듀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안 될 거 없지. 태민이를 고른 특별한 이유가 있니? 프로듀싱할 때 참고하려고."
"아... 엄청 거창한 이유는 없구요..."
다연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플라워즈 멤버들이랑 함께 상의해서 낸 이유로는요, 태민 선배가 위크식스 센터 멤버이시기도 해서, 아무래도 역시 앨범의 화제성을 가장 많이 끌어올릴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제 목소리가... 파워풀하기보다는 좀 여린 편이라, 부드러우면서도 넓게 감싸 줄 수 있는 보컬이 제일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다연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태민을 향해 인사했다.
"태민 선배, 잘 부탁드립니다."
태민은 다연의 말을 듣자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고마워... 다연아. 나도 열심히 할게. 우리 정말 좋은 곡 만들자."
그는 다연의 진심 어린 말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화제성'이라는 단어가 마음 한구석을 아프게 했다.
회의가 끝나고 다연은 모두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연습실로 들어갔다. 자리에서 좀 늦게 일어난 태민은 프로듀서와 작곡가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연이가 참 탐이 난단 말이야. 사실 솔로로서도 충분히 빛나서, 굳이 그룹으로 안 뛰어도 되는 앤데..."
"그렇죠, 특히 앨범의 화제성까지 고려한 게 참 대단해요. 그 나이에... 음반 프로듀싱하는 능력도 좀 있는 것 같아요. 탐나네요, 그냥 솔로 가수로서 우리 쪽으로 다시 데려올 방법은 없는 걸까."
"우리 가수로 활동하면... 위크식스랑 자연스럽게 활동도 더 많이 시키고 좋겠지만, 처음에 우리 쪽에 있다가 데뷔 어그러져서 나간 친구인데, 이제 와서 다시 부르는 게 상도덕에 어긋나긴 하지. ...그 때 대표님을 강력하게 설득했어야 하는 건데. 아까워, 정말."
태민은 프로듀서와 작곡가의 대화를 듣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다연이 W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하지 못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가슴이 아파왔다.
"다연이를... 다시 데려오겠다고? 그때도 지금도... 다들 다연이를 그렇게만 보는 거야?"
태민은 연습실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어려 있었다.
태민은 복잡한 마음으로 연습실에 들어섰다. 다연은 그가 마실 음료까지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 선배...! 기다렸어요. 우리 연습 시작해야죠."
아무 것도 모르는 다연은 밝게 미소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태민은 연습실에 들어서자마자 다연이 준비해둔 음료를 보고 가슴이 찡해졌다. 방금 전 들은 프로듀서와 작곡가의 대화가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응... 연습하자. 근데 다연아... 넌 지금 우리 회사랑 다시 일하는 거 어때? 불편하진 않아?"
태민은 조심스럽게 다연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다연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
"W엔터하구요? 음..."
다연은 눈을 크게 뜨면서 생각에 잠기는 표정이었다.
"...원래는 제가 데뷔하고 싶었던 회사니까... 그립기도 하고, 왠지 W엔터 걸그룹이 된 것 같아서 기쁘기도 하고... 그렇네요. 그래도, 이제 이번 듀엣 곡이 끝나면... 전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야죠. 불편한 건 하나도 없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따뜻하게 미소지었다.
태민은 다연의 대답을 듣고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다연의 손목을 잡았다.
"제 자리라니... 다연아, 넌 지금 여기가 제 자리 아닐까? 난... 네가 여기 있었으면 좋겠어."
태민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말해버렸다. 그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다연의 눈을 바라보았다.
"...네? 여기라뇨...? W엔터가요?"
다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선배, 전... 이미 나간 사람이고, 지금은 드림엔터 소속의 플라워즈 리더예요. 플라워즈가 제가 있어야 할 자리죠."
다연은 자신의 손목을 잡은 태민의 손을, 달래듯 천천히 쓸어 주었다.
태민은 다연이 자신의 손을 쓸어주는 것을 느끼며 마음이 아파왔다. 그는 천천히 손을 떼며 한 걸음 물러섰다.
"미안해... 내가 이상한 말을 했네. 그래, 넌 플라워즈의 리더니까..."
태민은 쓸쓸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그의 귀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다연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배는... 제가... 불행해 보여요? ...초라해 보이세요?"
그녀의 표정은 살짝 어두워져 있었다.
"W엔터에서 실패하고... 작은 기획사에 들어가서, 인기도 별로 없는 걸그룹 리더로... 그런 게 불쌍해 보여서... 그렇게 절 걱정하고 계셨던 거예요?"
태민은 다연의 말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가슴이 찔린 듯 아파왔다. 그는 다연의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조금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게 아니야! 난... 다연이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그냥 네가... 네가 여기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다연아, 난 네가 어디서 무얼 하든 자랑스러워. 플라워즈의 리더로서 열심히 하는 모습도, 멤버들을 이끄는 모습도, 앨범 작업하는 모습도... 다 멋있어. 그런데 왜 나 자신도 모르게 자꾸... 네가 곁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지..."
태민은 말을 하다 말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손은 연신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다연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태민은 깜짝 놀라 걱정스럽게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죄송해요, 선배.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순간순간... 어쩐지 비참해져서...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는데, 뭔가 빼앗긴 것 같은 기분도 들고..."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어깨를 들썩이며 가녀리게 흐느꼈다.
"내 실력이 안 돼서 W엔터에서 성공 못 했던 건데, 제가 너무 욕심이 많았나 봐요. 선배한테 이상한 투정이나 부리고... 죄송해요.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태민은 다연의 흐느끼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의 품에서는 늘 그렇듯 은은한 레몬향이 났다.
"다연아... 그런 말 하지 마. 네가 무슨 투정을 부렸다고 그래. 난... 네가 열심히 하는 모습이 자랑스러워. 네가 부르는 노래도, 멤버들을 이끄는 모습도... 이 업계에서 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난 알아. 넌 실력이 안 돼서 W엔터를 떠난 게 아니야. 그냥, 상황이... 상황이 좋지 않았던 것 뿐이야. 어느 정도는 우리 탓도 있어. 위크식스 데뷔 때문에, 걸그룹 프로젝트가 어그러진 거니까. 그러니까... 비참해하지 마. 부끄러워하지도 말고. 내 앞에서는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말 다 해도 돼."
태민은 다연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난... 네가 보여주는 모든 모습이 좋아."
다연은 눈물을 훔치며 그의 품에서 천천히 벗어났다.
"저... 너무 많이 울어 버려서, 목소리가... 이 상태로는 노래 바로 못 부를 것 같아요... 내일 다시 올게요. 죄송해요, 선배."
그녀는 다시 그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한 후, 연습실을 나갔다.
태민은 다연이 나간 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바보같이... 울게 만들어 버렸네."
그는 연습실 벽에 등을 기대고 천천히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다연의 흐느낌 소리가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머리를 감싸 쥐었다.
다음 날, 다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밝은 표정으로 W엔터 연습실을 찾았다. 태민은 생각보다 빠른 다연의 회복에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반면에 걱정도 되었다. 지금 그녀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을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필사적으로 만들어 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앞섰던 것이다.
"선배, 어젠 저 때문에 연습 망쳐서 죄송해요. 그래도, 집에서 혼자 많이 연습해 왔거든요? 한 번 맞춰 볼까요?"
다연은 밝게 웃으며 마이크 앞에 섰다.
태민은 다연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평소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오히려 더 마음 아팠다. 그는 연습실 문 앞에 서서 잠시 다연을 바라보았다.
"어제 많이 힘들었을 텐데...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해도 돼. 지금 컨디션은 어때?"
그는 다연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의 눈빛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컨디션... 괜찮아요. 어제 연습 못한 만큼, 오늘 많이 해야죠!"
다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 그리고 태민이 또 무슨 말이라도 걸세라 얼른 MR을 재생시켰다.
첫 파트는 다연부터 시작이었다. 다연은 평소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펼쳐진 세상이 너무나도 넓게 느껴지나요, 혼자라는 생각에 외롭고 두렵나요, 상처는 아물지 않고 슬픔은 가시지 않지만, 날 바라봐요 그대를 기다리는 내가 있어요♪"
태민은 그녀의 노래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다연의 목소리가 그의 가슴을 울렸다. 그는 다연이 아무렇지 않은 척 노래 부르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잠깐... 잠깐만. MR 끄자."
그는 조용히 음악을 끄고 다연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눈빛은 평소보다 더 진지했다.
"다연아... 나한테까지 괜찮은 척 하지 않아도 돼. 어제 그런 일이 있었는데... 아직도 마음이 무거울 텐데. 네가 괜찮다고 말해도, 난 네 눈빛을 보면 다 알아. 그러니까... 조금만 더 천천히 해도 괜찮아."
"선배..."
다연은 흐린 미소를 지었다.
"저 걱정해 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저 그렇게 약한 애 아니에요."
그녀는 헤드폰을 벗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제가 왜 노래를 많이 부르는지 아세요? 전 기쁘고 즐거울 때보다 힘들 때 노래를 더 많이 불러요. 그게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였으니까. 맞아요, 저 아직 안 괜찮아요. 어떻게 하루아침에 완전히 괜찮아질 수 있겠어요. 하지만... 노래를 부르면 힘이 나니까, 그러다 보면 잠시 잊혀질 때도 있고, 그러다 보면 완전히 묻힐 때도 있고... 그러는 거예요. 꼭 어제 있었던 일 뿐만이 아니라... 처음 W엔터 포기하고 나갔을 때부터 쭉... 전 이런 식으로 이겨내 왔어요. 그래도 나한테는 노래가 있으니까... 꿈이 있으니까. 전, 천천히 회복될 때까지 못 기다려요. 힘들수록 나아가야 해요, 저는."
그녀는 더 이상 눈물 흘리지 않았다. 다연의 눈은 깊은 호수처럼 진지하게 빛났다.
"그러니까 선배도... 약한 애, 위로해 줘야 하는 애로... 절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노래하는 동안에는, 난 다 잊고 행복할 수 있으니까. 다시 부를게요. 이번엔 놓치지 말고 따라오세요."
다연은 다시 MR을 틀고, 헤드폰을 쓰고, 처음부터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태민은 다연의 진심이 담긴 말을 듣고 잠시 말을 잃었다. 그는 다연의 강인한 눈빛을 바라보며 자신이 그녀를 얼마나 잘못 이해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래... 네가 이렇게 강한 사람이었는데, 자꾸 내 마음대로 네 마음을 헤아리려고 했네. 다연아... 이제 알겠어. 너의 노래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태민은 마이크 앞으로 걸어가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그의 눈빛에는 존경과 애틋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다연의 노래를 이어받으며 부드럽게 목소리를 섞었다.
두 사람의 목소리는 완벽하게 잘 어울렸다. 두 사람이 부른 노래는 당장 녹음 작업에 들어가도 될 정도로 아름답게 어우러졌다. 연습한 음원을 다시 재생시켜 모니터링하면서, 다연은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 부른 느낌 정말 좋네요. 녹음할 때 이대로만 가면 될 것 같아요. 오늘 당장 PD님께 말씀드리면 될 것 같은데, 선배 생각은 어때요?"
태민은 평소보다 더 빛나 보이는 다연의 모습을 보며 조용히 미소지었다. 그는 녹음한 음원을 듣고 있는 다연의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늘 이 느낌 정말 좋아. 다연이가 부르는 부분이랑 내 목소리가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은 몰랐어. PD님께 바로 말씀드리자. 너... 오늘 정말 멋있었어."
태민은 다연을 향해 진심 어린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의 눈빛은 평소보다 더 깊고 따뜻했다.
"고마워요, 선배. 아까 제가 한 얘기 때문에... 기분 상하시진 않으셨죠...?"
다연은 조심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태민은 다연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다연의 머리카락 끝을 살짝 매만졌다.
"아니, 전혀. 기분 나쁘기는커녕... 네가 그렇게 강한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어. 내가 오히려 미안해. 내 생각이 짧았어. 너무 내 기준대로만 널 생각하고 걱정했었나 봐. 근데 이제 알겠어. 다연이는... 노래로 이겨내는 사람이구나. 힘들수록 더 강하게 이겨내는 사람이구나."
태민의 목소리에는 따스함이 묻어났다. 그의 귀는 살짝 붉어져 있었다.
다연은 다정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선배, 듀엣 곡 마지막 녹음 다 끝나고 나면...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들어 주실래요?"
태민은 다연의 말에 잠시 심장이 멎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래. 당연히 들어줄게. 근데 지금은 안 되는 거야?"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떨렸고, 귀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태민은 다연의 눈빛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다연은 작게 웃었다.
"녹음 끝나면 말씀드릴게요."
그녀는 헤드폰을 벗고, 잠시 벗어 두었던 가디건을 걸쳤다.
"이제 PD님한테 가요. 저희가 연습한 가녹음본, 들려 드리러."
태민은 마음이 설레었지만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연의 뒤를 따라가며 문득 다연이 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응, 가자. 오늘 우리 정말 잘했으니까... PD님도 좋아하실 거야."
태민은 다연 곁으로 다가서며 문을 열어주었다. 그의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가 맴돌고 있었다.
가녹음본을 들은 프로듀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좋아. 진짜 완전 좋아. 다연이 말대로, 너희 둘이 목소리 합이 정말 좋네. 이런 느낌으로 가자. 내일 당장 녹음 들어갈 거니까, 둘 다 목 관리 잘 하고. 녹음은 며칠 있다가 해야 할 걸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일정이 확 당겨졌네. 아주 마음에 들어. 칭찬해."
프로듀서는 웃으며 엄지 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아, 다연아. 잠깐 나랑 얘기 좀 할까? 3분이면 돼. 태민이는... 일단 먼저 나가도 되고."
태민은 다연과 프로듀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는 프로듀서가 다연과 나누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억지로 자리를 지키고 싶지는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 다연아, 난 먼저 나가 있을게. 나중에 봐."
태민은 다연을 향해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방을 나섰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느라 애를 썼다.
태민은 못내 궁금한 마음에 결국 프로듀서실에서 보이지 않는 쪽으로 몸을 감추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엿듣고 말았다. 프로듀서가 그녀에게 제안을 꺼냈다.
"다연아, W엔터 나가고 나서 많이 힘들었지? 요즘 플라워즈가... 그래도 인지도 많이 올라가고 있긴 한데, 그래도 작은 기획사에서 마케팅 홍보 하는 걸로는 아마 한계가 있을 거야. 지희 실장하고도 이야기를 좀 해 봤는데... 솔로 가수로 W엔터에 다시 돌아올 생각은 없니?"
"네...에...? 솔로로 W엔터에요...?"
다연은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너무... 생각지도 못한... 말씀이라... 저는 너무 감사한데..."
다연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제가... 그냥 일반 멤버도 아니고, 지금은 플라워즈 리더로 있어서... 당장 그렇게 전향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PD님... 물론 W엔터에서 절 다시 불러 주시는 건 너무... 영광이에요, 하지만... 지금 멤버들한테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아직, 그럴 때는 아닌 것 같아요..."
프로듀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연의 말에 수긍했다.
"그래, 그래. 네 상황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렇겠지. 그래도 우리가, 네가 너무 탐이 나서 자꾸 생각이 나더라고. 이거 하나는 약속해 줄래? 플라워즈로 열심히 활동하다가, 혹시라도 계약이 만료되거나 다른 이유로 사정이 틀어지거나 하면... 그 땐 W엔터한테 오는 걸로."
"아... 네. 물론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제가 몸 담을 데가 없어지면... 꼭 여기로 돌아올게요. 감사합니다, PD님."
"그래. 꼭이다, 약속하는 거야."
대화를 마친 다연은 프로듀서에게 공손히 인사한 후 프로듀서실을 나왔다.
태민은 다연과 프로듀서의 대화를 엿듣고 난 후, 가슴 한켠이 무거워졌다. 그는 얼른 복도 끝으로 몸을 숨겼다.
"다연아... 넌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그런 제안을 받고도... 멤버들을 먼저 생각하다니..."
태민은 다연이 나오기 전에 빠르게 자리를 떴다. 그의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도 무거웠고, 가슴 속에서는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다음 날, 바로 태민과 다연의 듀엣 곡 녹음이 시작되었다. 이미 습작 가녹음본만으로도 프로듀서가 충분히 만족했던 목소리 조합이었기 때문에, 리테이크도 몇 번 없이 곧 레코딩이 완료되었다.
"아주 좋았어! 이걸로 녹음 마무리하자. 휴, 다들 정말 수고 많았다."
프로듀서는 박수를 치며 함박 웃음을 지었다.
"타이틀 곡보다 더 타이틀 곡 느낌이네. 정말 빛나는 곡이 될 거야. 둘이 찍을 화보 촬영은... 내일 하루는 쉬고 그 다음 날. 모레 하도록 하자. 알겠지?"
"네, PD님.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연은 환한 미소를 띠며 프로듀서에게 인사했다.
태민은 다연의 미소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녹음실을 나서는 다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문득 어제의 약속이 떠올랐다.
"다연아, 잠깐... 시간 좀 될까? 어제, 네가 녹음 끝나면 하고 싶다던 얘기..."
태민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이 묻어났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귓불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 네, 선배."
다연은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조용히 얘기할 만한 곳이 있을까요? 선배."
태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연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의 손은 긴장으로 약간 떨리고 있었다.
"옥상... 옥상으로 가자. 이 시간엔 아무도 없을 거야."
그는 다연을 이끌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다연의 작은 손이 자신의 손 안에 있다는 사실에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태민과 함께 옥상에 도착한 다연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심호흡을 했다.
"아... W엔터 옥상 진짜 오랜만이네요. 옛날엔 여기서 기합도 받고 그랬었는데..."
다연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선배,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미소지으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혹시 저... 어떻게 생각하세요...?"
태민은 다연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그는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너... 너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게... 난..."
태민은 잠시 말을 멈추고 다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귀는 이미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다연은 그의 얼굴이 붉어진 것을 눈치 챘다. 하지만 먼저 입을 열지 않고, 그가 이야기하기를 기다렸다.
태민은 한참을 머뭇거리다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난... 네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처음엔 그냥... 우리 회사 후배라고만 생각했는데... 점점...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될수록... 자꾸 신경 쓰이고... 보고 싶어지고... 네가 다른 남자애들이랑 친하게 지내는 거 보면 괜히 삐지고... 근데 그럴 자격도 없는 주제에..."
태민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는 다연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다연은 말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를 다시 올려다 보았다. 태민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태민은 다연의 작은 손이 자신의 손을 잡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연아... 사실 난... 네가 정말 좋아. 아이돌이라서...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거 알아. 근데 더는 감추고 싶지 않아. 네가 다른 회사로 옮긴 뒤로... 매일 보고 싶었고, 네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팠어. 이번에 같이 작업하면서... 이 마음을 더는 숨길 수가 없어서..."
태민의 손이 다연의 손을 더욱 꼭 잡았다. 그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지만, 눈빛만은 진지했다.
다연은 그의 고백을 듣고, 그를 향해 따뜻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행이다."
그녀의 대답에 어리둥절해진 태민을 향해 그녀가 말을 이었다.
"혹시라도 내 생각이 틀렸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이에요, 선배."
"...응?"
"나도 선배가... 좋아요."
다연은 그의 손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저요, 딱히 다른 사람한테 기대는 성격이 아닌데... 선배는 자꾸 날 여린 여자애로 보는 것 같아서... 조금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그게 좋더라구요. 약한 척하고 싶기도 하고, 기대고 싶어지기도 하고... 저 원래 그렇게 잘 우는 성격도 아닌데... 선배 앞에서 이상하게 눈물도 나오고. 투정부리고 싶었나 봐요. 선배가 항상 날... 잊지 않고 늘 보러 와 주고, 응원해 주니까..."
그녀는 작게 웃었다.
"그러다 보니, 선배가 자꾸 신경 쓰이고... 이런 마음 떨치고 싶어도 잘 안 됐어요. 그래서... 선배 마음이 정말 어떤지, 마지막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어요. 솔직하게 얘기해 주셔서... 고마워요. 혹시 선배가 선배 마음 감췄으면, 저도 용기 못 냈을지도 몰라요."
태민은 다연의 진심 어린 고백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는 천천히 다연을 끌어안았다.
"나... 정말 바보 같았나 봐. 너를 약하다고만 생각했던 게... 네가 그저 내 앞에서만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 사실 난... 네가 다른 회사로 옮겼을 때부터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 근데 아이돌이라는 이유로, 선배라는 이유로... 이 마음을 숨기려고만 했어.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숨기고 싶지 않아."
태민은 다연을 더욱 꼭 안으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의 심장은 여전히 격하게 뛰고 있었다.
다연은 그의 품에 안긴 채 그의 옷깃을 살짝 잡았다.
"듀엣 상대로 선배 골랐을 때, 이유가 너무... 비즈니스적이라서 서운했죠? ...그래도, 다른 사람들한테 들키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었어요. '제가 선배 좋아해서요' 라고 말할 순 없잖아요."
그렇게 말한 다연은 작게 웃으며 덧붙였다.
"선배가, 센터 이런 포지션 아니었어도, 전 어떤 이유든 붙여서 선배랑 노래 불렀을 거예요. 저, 지금까지 부른 노래들 중에... 선배랑 부른 곡이 제일 좋아요."
태민은 다연의 말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더욱 꼭 안아주었다.
"네가... 그런 마음이었다니... 나도 이 노래가 제일 좋아. 처음 너와 함께 부를 때부터... 이상하게 가슴이 떨렸어. 네 목소리랑 내 목소리가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은 몰랐는데... 마치 우리가 서로를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느껴져서..."
태민은 다연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그녀의 향기를 느꼈다. 그의 심장은 여전히 격하게 뛰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 떨림이 행복으로 가득했다.
다연은 천천히 그의 품에서 빠져나오며 말했다.
"선배, 아마 우리 콜라보 앨범 나오고 나면... 전보다 더 조심해야 할 거예요. 그러니까 더더욱... 둘이서 사적으로 만나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녀는 태민을 올려다 보았다.
"그래도, 제 마음은 꼭 전하고 싶었어요. 앞으로 자주 만나지 못하더라도... 저는 선배 좋아한다고."
태민은 다연의 말에 가슴이 아파왔다. 하지만 그는 애써 밝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알아... 우리 둘 다 아이돌이니까. 하지만 다연아... 우리가 자주 못 만나더라도, 내 마음도 변하지 않을 거야. 네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갈게. 팬들 눈을 피해서라도... 널 보러 갈 거야."
그는 다연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연은 작게 웃으며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렇다고 너무 자주 그러진 마세요.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그녀는 발뒤꿈치를 들어올려 그의 뺨에 가볍게 키스했다.
"좋아해요, 선배. 오늘은... 내 마음 전한 거랑, 선배 마음 알게 된 걸로 충분해요.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모레... 촬영일에 뵈어요."
태민은 뺨에 닿은 다연의 입술 감촉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다연의 팔을 잡았다.
"다연아... 잠깐만. 나도... 나도 정말 좋아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이며, 다연의 손을 꼭 잡았다. 그의 귀는 이미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심장은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네...? 네... 알아요, 선배."
몸을 돌려 옥상에서 내려가려던 다연은 그에게 손을 잡힌 채 어중간하게 멈춰 섰다.
"다른 하실 얘기... 더 있으세요?"
태민은 다연의 질문에 잠시 망설였다. 그는 다연의 손을 잡은 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연아... 우리 지금... 그냥 헤어지는 건... 우리가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는데, 이대로 널 보내기는... 너무 아쉬워서..."
그는 다연의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의 귀는 여전히 붉게 물들어 있었고, 레몬향이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선배..."
다연은 살짝 난처하긴 했지만 그보다 더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위크식스는... 오늘이나 내일 다른 일정 없으세요?"
태민은 눈을 크게 뜨며 다연의 말에 반색했다.
"난... 오늘이랑 내일은 완전 비어있어. 위크식스 멤버들도 각자 개인 스케줄이라... 혹시... 시간 괜찮다면..."
그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다연의 손을 더욱 꼭 잡았다. 그의 목소리는 설렘으로 가득했다.
"아, 저도... 모레 선배랑 촬영하는 것 외엔... 오늘 내일은 더 없긴 한데..."
다연은 조심스럽게 그를 올려다 보았다.
"시간은 괜찮은데, 어떻게 몰래 같이 시간을 보내죠...?"
태민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연의 손을 살며시 잡아끌었다.
"내 차로 가자. 주차장에서 만나면 될 것 같아. 난 먼저 내려갈 테니까... 넌 5분 정도 뒤에 와줘. 아, 그리고... 마스크랑 모자는 꼭 쓰고."
그는 다연을 바라보며 수줍게 웃었다. 그의 귀는 여전히 새빨간 채였지만, 목소리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잠시 시간을 두고 주차장으로 내려간 다연의 눈에, 비상등을 켠 차 한 대가 보였다.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눌러 쓴 다연이 조심스럽게 그의 차에 올랐다.
"근데 정말... 우리 이래도 괜찮은 거 맞아요...?"
다연은 긴장한 듯 얼굴을 붉혔다. 그녀의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태민은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다연을 힐끗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사실 긴장되고 두려워.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멈출 수가 없어. 다연아... 우리 조금만... 조금만 더 이렇게 있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데려갈게."
그는 다연을 향해 따뜻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차를 출발시켰다. 그의 심장은 여전히 격하게 뛰고 있었지만, 이제는 설렘으로 가득했다.
시내 외곽에 떨어진 작은 펜션에 도착한 두 사람은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친 다음에야 한숨을 내쉬며 거실 쇼파에 몸을 던지듯 앉았다.
"아... 심장 떨려서... 첩보 영화 찍는 줄 알았어요, 정말..."
다연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런 말을 하며, 모자를 벗었다. 그녀의 애쉬 핑크빛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선배, 저 잠깐 회사에 전화 좀 걸게요."
다연은 휴대폰을 열었다.
"아, 실장님. 저 다연인데요... 네, 오늘 녹음 작업 다 끝났어요. 예정보다 일찍 레코딩했다고 PD님이 하루 쉬게 해 주셨거든요, 그래서... 내일...까지..."
거짓말에 익숙치 않은 다연은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굳게 먹고 거짓말을 했다.
"부모님 집에... 잠깐만 내려갔다 올게요. 늦어도 내일 저녁에는 꼭... 플라워즈 숙소로 돌아갈게요. 네, 그럴게요 실장님.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다연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한숨을 쉬었다.
"휴우... 아무래도 저... 오래 못 살 것 같아요..."
태민은 다연의 거짓말하는 모습에 안쓰러움을 느꼈다. 그는 조심스럽게 다연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미안해... 내가 널 이런 상황으로 만들어서. 하지만 다연아... 너랑 이렇게 있을 수 있다는 게 나한텐 정말 꿈만 같아. 지금 이 순간이 꿈이 아니라는 게... 믿기지가 않아."
태민은 다연의 찰랑이는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녀의 향기를 느꼈다. 그의 심장은 여전히 격하게 뛰고 있었고, 귀는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다연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품에 안겼다.
"맞아요, 오늘 아니면... 서로 시간 맞추기도 힘들 것 같아서... 후회 안 해요, 저."
태민은 다연을 품에 안은 채 그녀의 체온을 느꼈다. 그의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고,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은은한 향기가 그의 코끝을 스쳤다.
"나도... 지금이 아니면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아서... 다연아, 이렇게 너를 안고 있으니까 모든 게 꿈만 같아. 네가 나랑 이렇게 있어줘서... 고마워."
태민은 다연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녀를 더욱 꼭 안았다. 그의 귀는 여전히 붉게 물들어 있었지만, 행복감으로 가득 찬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다연이 천천히 고개를 들자, 태민의 얼굴과 근접한 거리에 있었다. 다연의 눈빛이 떨렸다. 그녀는 태민의 옷깃을 살짝 움켜잡았다.
태민은 다연의 마음이 그에게 향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연아... 이렇게 가까이 있으니 내 심장이 미치도록 뛰고 있어. 너무 설레서 몸이 멎을 것 같아."
태민은 천천히 다연의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녀를 더욱 가까이 끌어안으며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조용한 펜션에서 함께 밤을 보낸 두 사람은, 다음 날 오후까지 함께 있다가 각자의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화보 촬영일이 되어, 스튜디오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시선을 교환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도 다연은 소리를 낮춰 그에게 비밀 이야기를 했다.
"선배, 처음부터 지나치게 다정하게 찍으면 안 되는 거 알죠? 어색하게 시작해야 해요. 어색하게... 알았죠?"
다연은 걸그룹 리더 아니랄까 봐 진지하게 태민에게 당부했다. 태민은 그런 그녀가 귀여워서 견딜 수 없었다. 와락 끌어안고 싶었지만, 그는 꾹 눌러 참았다.
태민은 다연의 당부에 살짝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여전히 다연을 보면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프로페셔널하게 행동하려 노력했다.
"알았어, 다연아. 너무 걱정하지 마. 나 연기도 잘하잖아. 처음엔 어색한 선후배 사이처럼 찍을게."
그는 다연의 귀여운 모습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목을 가다듬었다. 그의 귀는 여전히 살짝 붉어져 있었다.
빠른 기간 내에 완성된 위크식스와 플라워즈의 콜라보레이션 음반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플라워즈의 인지도가 급등했으며, 리더 다연의 가치는 계속해서 치솟았다.
그러나 플라워즈가 있던 드림엔터테인먼트는 갑자기 폭등한 다연의 가치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작은 회사였다. 결국 매출 허위 신고와 음원 정산료 미지급 등 각종 논란에 휩싸인 드림엔터는 소속사 측의 계약 위반으로 플라워즈에 대한 모든 계약이 파기되었다.
정말로 오갈 데가 없어진 다연은 최후의 수단으로 W엔터의 문을 두드렸지만, 이 사태의 피해자가 된 플라워즈 멤버들도 함께 받아 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그 조건이 받아들여져, 다연은 솔로 가수와 플라워즈 활동을 겸하며 W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활동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소속사가 달라 서로 자주 마주할 여유도 없이 비밀 연애를 이어가고 있던 태민과 다연에게 있어서는, 일련의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으나 결국 같은 곳에 소속됨으로써 훨씬 나은 상황이 되었다. 물론 위크식스만큼이나 개인 네임밸류가 높아진 다연이었기에 자유롭게 만남을 가지기는 어려웠으나, 얼굴이라도 스치듯 마주할 기회가 훨씬 많아진 지금이 태민은 훨씬 만족스러웠다.
태민은 이제 자주 마주칠 수 있게 된 다연을 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향한 마음을 숨기려 노력했지만, 그의 눈빛은 다연을 향한 애정으로 가득했다.
"우리 다연이가 이제 같은 회사라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이제 내가 더 잘 챙겨 줄 수 있겠어."
태민은 다연의 머리카락을 살짝 매만지며 속삭이듯 말했다. 그의 귀는 여전히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선배... 지금 보면 저보다 훨씬 더 귀가 잘 빨개지는 거 알아요?"
다연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붉게 물든 그의 귀를 살짝 어루만졌다.
태민은 갑작스러운 그녀의 손길에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는 다연의 손길이 닿은 귀가 더욱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 다연아... 이러면 더 빨개질 것 같은데... 네가 이렇게 귀여우니까 자꾸 설레서 그래."
그는 살짝 몸을 기울여 다연의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그녀를 향한 애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어쩌죠... 내 눈에는... 선배가 더 귀여운데."
다연은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그에게 그렇게 속삭인 후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스케줄 같이 비는 날... 오랜만에 놀러 가요. 우리 사귀기로 한 날 갔던... 그 펜션."
그녀는 그에게 손을 흔들며 다음 스케줄을 위해 멀어져 갔다.
"그 때까지 나 보고 싶어도 참아요!"
태민은 다연이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귀를 만지작거렸다.
"다연아... 그때까지 나도 참아볼게. 근데 네가 이렇게 귀엽게 굴면... 참기 힘들 것 같은데..."
그는 다연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녀를 바라보다가, 자신도 스케줄을 위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귀는 여전히 붉게 물들어 있었고,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fin.
초기에 정해진 여주 이름 '임다연' 그대로 썼습니다.
태민이는 레몬이구나 끄덕끄덕. 홍유진으로 피폐해진 정신 회복하기 첫 번째v
꽤 알콩달콩 마음에 드는 플레이였는데 삭제된 캐릭터라 아쉬워요.
크랙 :: 세르하 유스카✨Serha Jouska
구(久) 뤼튼 :: 세르하의 환상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