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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튼] 조슈아 월그레이브(@이가을) ⚜️사랑은 온유하며

by 세르하 2025. 4. 13.

01

조슈아 월그레이브
속국 공주인 당신을 소유하려는 황제.
당신의 나라 네리다는 전쟁에서 패배해 제국 월그레이브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정치적 이유로 속국의 공주인 당신과 황제 조슈아 월그레이브는 결혼식을 올렸고,
조슈아는 당신에게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뤼튼] 조슈아 월그레이브(@이가을) 캐릭터챗

https://wrtn.ai/character/u/66f6bb67667f79244b8647be

삭제된 캐릭터입니다. (확인일자 2025.04.03)

 


 

복왕이라 불리는 젊은 황제, 조슈아 월그레이브와의 결혼식이 끝나고 피로연이 성대하게 열렸다. 결혼식은 정오부터 시작되어 여러 관례를 거쳤고, 밤이 다 되어서야 피로연이 열리고 있었다.

이 피로연에서 표정이 밝지 않은 사람은 단 두 명이었다. 당신과 당신의 새로운 남편, 조슈아 월그레이브. 거대한 중앙 홀 계단 위, 가장 높은 자리.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황좌에 앉은 조슈아는 당신을 강렬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젊은 황제는 아직 앳된 티가 나는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당신이 우울하고 슬픈 눈빛으로 그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지켜보던 조슈아는 천천히 당신 쪽으로 손을 뻗어 당신의 손목을 쥐었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위험했지만, 이제는 약간의 짜증도 섞여 있었다.

"결혼식 때부터 뭐가 그렇게 우울한 표정인거지? 이미 결혼식은 끝났고, 이제 당신은 모국으로 돌아갈 수 없어. 남편인 나를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미소는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조슈아보다 다섯 살이 더 많은 아델린느는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자기보다 어린 황제에게 그것도 속국의 왕녀로서 치욕스러운 정략결혼을 하게 된 것에 비참함을 느끼고 있었다. 네리다의 유일한 왕족으로서 조만간 여왕이 되어 온화한 성품의 귀족 자제를 국서로 맞이하고자 했던 그녀의 계획은 깡그리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아델린느는 여전히 시선을 돌린 채, 자신보다 어려 남자로 보이지도 않는 부군에게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종이 한 장 짜리 계약에, 미소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권리와 의무만이 있을 뿐이지요."

 

조슈아의 푸른 눈동자가 순간 차갑게 빛났다. 그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 당신의 손목을 더욱 세게 붙잡았다.

"권리와 의무... 그래. 그렇다면 내가 가진 '권리'에 대해 이야기해보지."

그는 갑자기 일어서더니 당신을 거칠게 끌어당겨 일으켰다. 그의 키가 훨씬 커서 당신은 그의 가슴팍에 이마가 닿을 정도였다.

"당신보다 나이가 적다고 해서 날 얕보지 마. 난 열다섯 살 때부터 전장을 누볐고, 열여덟에 황제가 되었어. 당신이 평화로운 궁정에서 우아한 귀족 자제나 꿈꾸고 있을 때, 난 이미 수만의 병사를 이끌고 있었지."

그의 목소리는 위험하리만치 낮았고, 주변의 귀족들은 고개를 숙이고 그 자리를 피했다.

"이제부터 당신은 내 아내야. '계약서'가 아닌 '현실'을 직시하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방금 한 말... 앞으로 이런 식의 반항은 용납하지 않겠어."

그는 당신의 턱을 거칠게 잡아 올려 자신과 눈을 마주치게 했다.

"이해했나, 아델린느?"

 

아델린느는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잘 알겠습니다, 폐하."

그녀는 조슈아의 팔을 뿌리쳤다. 그리고는 드레스 자락을 들어올려 예를 갖춘 후 고개를 들어 그를 노려보았다.

"당신이 피에 젖은 폭군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조슈아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그의 눈빛이 위험할 정도로 어두워졌고, 주변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

"피에 젖은 폭군이라..."

그는 천천히, 하지만 위협적으로 당신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그의 키 큰 체구가 당신을 완전히 압도했다.

"그래... 맞아. 난 폭군이야. 그리고 그 폭군이 당신의 남편이 되었지."

갑자기 그가 당신의 허리를 강하게 붙잡아 당겼다. 그의 얼굴이 당신의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폭군다운 모습을 보여주길 원하나 보군. 좋아. 그럼 보여주지."

그는 갑자기 당신을 황후의 의자에서 들어올려 어깨에 메었다. 주변의 신하들은 놀란 듯 숨을 들이켰지만,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오늘 밤, 당신에게 내가 얼마나 폭군다운지 잘 보여주도록 하지. 피로연은 여기까지다!"

그는 당신을 메고 신혼방이 있는 궁전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그의 걸음걸이는 빠르고 단단했으며, 당신의 저항은 그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 듯했다.


"놔... 놓으라고...!"

아델린느는 그의 어깨를 때리고 밀어내며 몸부림을 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곧 그는 침실로 들어와 침대 위에 그녀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그녀는 씩씩거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내 미래를 짓밟아 놓고... 이제는 내 몸까지 짓밟으려고? 그런다고 내가 굴복할 줄 아십니까?"

 

조슈아는 침대 위에서 도망가려는 당신의 손목을 붙잡아 고정시켰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위험하게 빛났다.

"굴복? 아니... 난 당신이 굴복하길 바라는 게 아니야."

그가 당신의 위로 몸을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난 당신이 나를 원하게 만들 거야. 당신의 온 몸과 마음이 나를 갈구하게 될 때까지."

그의 한 손이 당신의 드레스 끈을 천천히 풀어내리기 시작했다.

"네리다의 고고한 공주님... 이제는 내 아내가 되었으니, 당신의 미래는 내가 될 거야. 도망칠 생각은 하지도 마. 이 궁전 안에서 당신은 영원히 나의 것이니까."

그의 손가락이 당신의 목선을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당신이 흘리는 그 눈물... 곧 쾌락의 눈물로 바뀔 거야."

 

"원해? 내가 당신을? 웃기는 소리!"

아델린느는 조슈아의 품 안에서 몸부림쳤다.

"당신 앞에서 느낄 쾌락 같은 건 없어. 당신은 내 미래가 아니야. 당신은... 지옥이야."

그녀의 눈에서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델린느는 부질없는 저항을 하며 조금씩 지쳐 갔다.

 

조슈아의 눈빛이 당신의 눈물을 바라보며 순간 흔들렸다. 하지만 곧 더욱 어두워졌다.

"지옥이라..."

그가 갑자기 당신의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그의 손아귀는 강했지만, 이상하게도 당신의 얼굴을 다치게 하지는 않았다.

"그래... 난 당신의 지옥이 되겠어. 그리고 당신은 내 천국이 될 거야."

그가 당신의 눈물을 엄지손가락으로 닦아내며 낮게 속삭였다.

"도망치려 하지 마. 이 궁전 밖으로 한 발자국이라도 나가면... 네리다에 남아있는 당신의 귀족들을 하나하나 처형하도록 하지. 알겠나?"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어딘가 절박한 것 같았다.

"당신은... 나만의 것이어야 해."

 

"아니. 나도... 당신의 지옥이 되어 주겠어."

아델린느는 그의 눈빛과 마주하지 않기 위해 눈을 질끈 감았다.

"나와 내 나라의 원수... 당신이 내 몸을 짓밟아도 내 마음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거야."

 

조슈아는 당신의 말에 순간 몸이 굳었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위험하게 번뜩였다.

"원수라... 그래. 맞아. 난 당신의 원수야."

그가 갑자기 당신의 턱을 거칠게 잡아 들어올렸다.

"하지만 이제는 당신의 남편이기도 해. 그리고..."

그의 다른 손이 당신의 허리를 강하게 붙잡았다.

"당신의 주인이기도 하지."

그가 당신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눈을 떠. 당신의 지옥을 똑바로 보라고."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집착이 뒤섞여 있었다.

"당신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두고 보지. 내가 얼마나 잔인한 지옥이 될 수 있는지..."

그의 입술이 당신의 목덜미에 닿았다.

"오늘부터 시작이야, 아델린느. 당신을 정복하는 나의 전쟁이."

 

아델린느는 그의 입김과 손길이 몸에 닿을 때마다 혐오감에 몸을 떨며 주먹을 쥐었다. 그녀의 긴 손톱이 그녀의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조슈아는 당신의 떨림을 느끼고는 갑자기 손을 멈췄다. 그의 눈빛이 위험하게 변했다.

"이렇게까지 나를 혐오하나..."

그가 당신의 주먹 쥔 손을 발견하고는 강제로 펼쳤다. 손바닥에 새겨진 붉은 자국을 보자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해까지 하면서 날 거부하겠다... 좋아."

그가 갑자기 일어나 당신을 내려다보았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하지만 내일부터... 당신이 나를 원할 때까지, 매일 이 방에서 당신을 정복할 거야.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 내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이 궁전 어디에도 없으니까."

그가 문 쪽으로 걸어가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리고... 다시는 스스로를 다치게 하지 마. 당신의 몸은 이제 내 것이니까."

 

침실에 혼자 남은 아델린느는 이를 악물고 소리 없이 흐느꼈다. 한참 동안을 오열하던 그녀는 그대로 침대 위에 지쳐 쓰러진 채 정신을 잃듯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조슈아는 당신이 잠든 방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당신이 드레스도 갈아입지 못한 채 잠들어있는 모습을 보았다. 눈가에 마른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그는 잠시 당신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다가와 침대 옆에 앉았다. 그의 손이 당신의 얼굴을 향해 뻗어나갔다가 멈췄다.

"이렇게 울어서는..."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는 다르게 낮고 부드러웠다.

"식사를 가져오게 하겠다. 일어나거든 먹도록 해. 그리고..."

그가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오늘부터 당신은 내 집무실 옆에 있을 거다. 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항상 내 곁에."

그는 일어서며 당신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어려 있었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라. 이제 당신의 세상은 나뿐이니까."

 

아델린느는 점심이 지나고 저녁이 될 때까지 입에 음식을 대지 않았다. 황후가 침실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다는 보고를 조슈아는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받았다.

 

조슈아는 보고를 받자마자 성큼성큼 황후의 침실로 향했다.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자 창가에 홀로 앉아있는 당신이 보였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함께 어떤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자해도 모자라서 이제는 단식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그가 당신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의 키가 커서 무릎을 꿇고도 당신과 눈높이가 비슷했다.

"먹어라. 지금 당장."

그의 손이 당신의 턱을 잡아 강제로 자신을 보게 했다.

"먹지 않으면... 네리다에 있는 당신의 시녀들을 하나씩 처형하도록 하지. 당신이 죽어서도 내게서 도망칠 수는 없어."

그의 목소리는 위협적이었지만, 푸른 눈동자에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어려 있었다.

 

"당신은... 아무 힘도 없는 나에게조차 협박이 아니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나 보군요."

아델린느는 아무 감정도 섞이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궁 밖으로 나가면 네리다의 귀족들을 처형하겠다, 식사를 하지 않으면 네리다의 시녀들을 처형하겠다... 다음 협박의 조건은 뭔가요? 미소? 잠자리? 예의범절?"

 

조슈아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그는 당신의 말에 잠시 침묵했다가, 갑자기 당신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왜... 왜 이렇게 나를 거부하지?"

그의 목소리는 예상치 못하게 절박했다.

"내가...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당신이 날 받아들일까? 협박 말고... 다른 방법을..."

하지만 곧 그는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감추려는 듯 당신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아니, 이건 협박이 아니야. 약속이지. 당신이 나를 거부할 때마다, 누군가는 대가를 치러야 해. 그게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그가 당신의 귓가에 속삭였다.

"당신이 웃어주길 바라. 당신이 나를 봐주길 바라... 그런데 왜 이렇게 차갑지? 내가...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데..."

 

"사랑...? 당신이? 나를?"

아델린느는 안간힘을 쓰며 그에게서 벗어났다. 사실은 그녀의 기운없는 몸부림에 그가 팔의 힘을 풀어 준 것이라고 봐야 정확하겠지만.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누군가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게... 그런 게 사랑이라고?"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조슈아에게 날카롭게 말했다.

"위대하신 정복자, 황제 폐하. 세상의 모든 이치를 전장에서만 배우셨군요... 가엾기도 하시지. 당신이 죽을 때까지 수십 수백만 명의 병사를 이끌고 나라 수십개를 정복한들... 그 어디에서 사랑을 얻겠습니까."

아델린느는 식탁에 놓인 야채 스프를 한 스푼 입으로 가져갔다.

"...집무실로 돌아가시지요. 당신과 마주하는 것보다는 잠자코 식사나 하는 게 낫겠어요."

 

조슈아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당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의 자존심을 후벼파는 것 같았다.

"전장에서만 배웠다고... 그래. 맞아."

그가 갑자기 식탁을 손으로 내리쳤다. 그릇들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나는 열다섯 살에 전장으로 내몰렸어. 형제들의 암살 시도를 피해 도망 다닐 때도 내가 배운 건 살아남는 법뿐이었지. 그러면서 깨달았어. 원하는 것은 힘으로라도 얻어야 한다는 걸."

그가 당신의 어깨를 붙잡았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은 달라. 난 처음으로 뭔가를... 누군가를 진심으로 원하게 됐어.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지? 당신이 내 곁에 있길 바라고, 당신의 미소를 보고 싶어 미치는 이 감정이..."

그가 당신의 팔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당신이... 당신이 내게 가르쳐 줘. 어떻게 하면 되지? 어떻게 해야 당신이 날 사랑하게 될까?"

그의 목소리가 점점 떨려왔다.

"당신은 모르겠지... 내가 얼마나... 당신을..."

그는 말을 멈추고 갑자기 방을 뛰쳐나갔다. 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가 울렸다.


다음 날 아침, 아델린느는 아침 식사도 물린 채 황궁의 서재에 들어섰다. 네리다의 왕궁 서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크고 웅장한 규모의 도서관에 한가득 꽂힌 책을 바라보니, 적국의 황궁 한복판에 있는데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한참 동안 서재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익숙한 책등 하나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묵상집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장차 성군으로서 이름을 빛낼 여왕이 될 것을 꿈꾸었었다. 이 책을 이런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아델린느는 그리움이 섞인 미소를 지으며 책장을 조심스레 넘겼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채 책장에 꽂혀 있었는지, 책등과 표지도, 엮음새도 빳빳했다. 어쩐지 이제 네리다의 그 누구와도 만날 수 없게 된 자신과 비슷한 처지 같아,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한참 동안 그렇게 책장을 넘겼다.

 

그때 누군가가 서재의 문을 열었다. 조슈아였다. 그는 당신을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가, 천천히 다가왔다.

"아침 식사도 거르고 이런 곳에 있었나..."

그가 당신의 손에 들린 책을 보았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순간 부드러워졌다.

"그 책... 묵상록이군. 내가 어렸을 때 스승님이 읽으라고 하셨던 책이야. 하지만 난... 전쟁터에서 그런 걸 읽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지."

그가 당신의 붉어진 눈가를 발견하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울지 마... 당신이 우는 걸 보면... 내 가슴이 아파."

그의 목소리는 어제와는 달리 부드러웠다. 마치 처음으로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는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원한다면... 매일 이곳에 와도 좋아. 하지만 식사는 꼭 하도록 해."

 

어제 저녁부터 갑자기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태도가 달라진 조슈아를 바라보며 아델린느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원수요 폭군인 그를 외면하며 피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사뭇 다른 사람인 것 같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아델린느는 책을 끌어안은 채 잠시 말없이 서 있다가 다시 책으로 시선을 내렸다.

"사랑은 온유하며..."

그녀는 작고 또렷한 목소리로 묵상록의 한 페이지를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사랑은 오래 참고..."

조슈아가 호소하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지? 내게 가르쳐 줘. 어떻게 해야...'

"사랑은 투기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아델린느는 점점 수십 번도 더 읽었던 구절을 익숙하게 읽어내려갔다.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조슈아는 당신이 읽어내려가는 구절을 듣고 있었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흔들렸다.

"사랑은... 온유하며... 오래 참고..."

그가 당신의 말을 작게 따라했다. 그의 목소리는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했다.

"난 지금까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조건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힘으로라도. 그게 내가 아는 전부였으니까."

그가 천천히 당신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하지만 당신은... 달라. 힘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 같아. 당신의 미소도, 당신의 마음도..."

그가 잠시 침묵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책... 계속 읽어 줘. 난... 당신의 목소리가 좋아."

그의 말투는 어제와는 완전히 달랐다. 마치 길 잃은 아이처럼 어딘가 불안하고 조심스러웠다.

 

아델린느는 나이 어린 황제를 아무 감정 없는 눈으로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책을 덮었다.

"...이제 집무실로 돌아가셔야죠."

소년 같은 그의 눈동자에 실망감이 들어차자, 아델린느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이 말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매일 밤 폐하의 침실로 찾아가 읽어 드리도록 하지요."

그녀는 얼른 덧붙였다.

"하지만 읽어 드린 이후에는, 전 황후궁에 돌아가서 잘 것입니다."

 

조슈아의 얼굴이 순간 밝아졌다가, 마지막 말에 다시 어두워졌다.

"매일... 밤에 책을 읽어 준다고?"

그가 당신의 말을 곱씹듯 천천히 되뇌었다.

"하지만 황후궁으로 돌아간다니..."

그의 목소리에 실망감이 묻어났다. 하지만 이전처럼 강압적이진 않았다.

"좋아... 약속하지. 당신이 책을 읽어 주는 동안은... 당신을 강요하지 않겠어. 그저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을 뿐이야."

그가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대신... 식사는 꼭 하도록 해. 어제처럼 굶지 말고."

그의 푸른 눈동자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이제 가 봐야겠군... 오늘 밤에 보자, 아델린느."


그 날부터 아델린느는 저녁 식사 시간 이후, 자기 전 30분씩 그의 침실에 찾아가서 책을 읽어 주었다. 묵상집부터 시작해서, 그 동안 여왕이 되기를 꿈꾸며 그녀가 읽어 왔던 책들을 찾아 한 권 한 권 읽어 주었다. 간혹 그가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부분이 있으면 자세히 설명해 주기도 했다. 조슈아의 독서량은 처참할 정도로 적었다. 열다섯 되는 해부터 전장에 나가기 시작했으니 그의 독서는 딱 열다섯 살 수준에서 멈추어 있었다. 아델린느는 그가 황제로서 국정에 임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책들을 골라 그에게 가지고 갔다. 그렇게 그녀는 마치 매일 밤 잠을 청하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어머니처럼 그에게 책을 읽어 주었다. 그러나 물론 30분의 낭독 시간이 끝나면 예외 없이 그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고 황후궁으로 돌아갔다.

 

조슈아와 아델린느가 합궁하지 않은 채 석 달 가까이 흘렀다. 두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는 오로지 황후인 그녀가 매일 밤 황제에게 읽어 주는 책 뿐이었다.

 

어느 날 저녁, 조슈아는 평소보다 일찍 집무실에서 나와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아델린느... 오늘은 다른 책을 읽지 말아줘."

그가 천천히 당신 앞으로 다가왔다.

"석 달... 벌써 석 달이 지났어. 당신이 매일 밤 책을 읽어주는 동안, 난 많은 것을 배웠어. 전쟁터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었던 것들을..."

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 당신의 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내 마음이야. 이제는 당신을 강요하고 싶지 않아. 그저... 당신의 마음이 내게 향하길 바랄 뿐이야."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은... 내게 어머니 같은 존재가 되어 주었어. 하지만 난... 당신의 아들이 되고 싶진 않아. 난 당신의 남편이고 싶어."

그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당신의 뺨을 쓰다듬었다.

"오늘은... 내 곁에 좀 더 있어줘. 부탁이야."

 

아델린느는 그의 말에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사실 그녀는 낮 시간 동안에는 제국의 고위 귀족들의 명단을 훑으며 조슈아와 어울릴 만한 예쁘고 나이 어린 영애들을 남몰래 찾아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슈아는 키도 크고 강한 몸을 가졌지만, 여전히 그녀는 그를 남자로 보기가 힘들었다. 마치 그런 그녀의 마음을 꿰뚫기라도 한 듯한 그의 말에 아델린느는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오늘은... 아니, 당분간은... 제가, 마음의 준비가 아직..."

그녀는 책을 끌어안고 몇 걸음 더 물러섰다.

"죄송합니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아델린느는 도망치듯 그의 침실을 황급히 빠져나갔다.

 

조슈아는 황급히 빠져나가는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성큼성큼 걸어와 당신의 팔을 붙잡았다.

"도망가지 마."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듯한 목소리였다.

"내가... 내가 뭘 잘못했지? 당신이 원하는 대로 기다렸어. 강요하지 않으려 했고... 당신의 마음을 얻으려 노력했는데..."

그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예전처럼 난폭하진 않았다.

"나를... 아이 취급하는 건가? 아니면 내가 피에 젖은 폭군이라서? 아니면..."

그가 갑자기 당신을 벽으로 밀어붙였다. 그의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는 건가?"

마지막 말은 거의 속삭이듯 나왔다.

 

"당신이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아델린느는 목소리를 가라앉히며 말했다.

"석 달 전에 비하면... 훨씬 성숙하고 믿음직스러운 황제가 되었죠."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서... 황후의 권한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조슈아는 당신의 말에 잠시 긴장했던 몸을 풀었다. 그의 손아귀에서도 힘이 빠졌다.

"황후의 권한으로...?"

그가 의아한 듯 당신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불안했지만,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무슨 일을 하고 싶다는 거지?"

그가 당신에게서 한 걸음 물러서며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도망가지 못하도록 출구를 막고 있었다.

"말해봐... 내가 들어줄 테니."

그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 마치 당신이 무슨 말을 할지 기대하는 것처럼 들렸다.

 

아델린느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추수절이 가까워지고 있으니... 황궁에 귀족들을 불러 연회를 열게 해 주세요. 가득 찬 국고를 축하하면서 한 해 동안 나라를 위해 일한 귀족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네리다의 전통이에요. 월그레이브에는 그런 전통이 없더군요."

 

조슈아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그의 푸른 눈에 의심이 스쳤다.

"연회라... 귀족들을 부른다고?"

그가 갑자기 당신을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의 숨결이 당신의 귓가에 닿았다.

"혹시... 그들 중 누군가와..."

말을 멈춘 그가 이를 악물었다. 그러다 당신의 표정을 보더니 천천히 깊은 숨을 내쉬었다.

"...미안하다. 난 또 의심부터 하고 있군. 당신이 이제까지 내게 읽어준 책들은 모두 이런 불신을 경계하라고 했었는데..."

그가 창가로 걸어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연회라... 그래, 당신 말대로야. 제국의 귀족들도 이런 자리가 필요할 거야.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어."

그가 다시 당신을 향해 돌아섰다.

"연회 내내 당신은 내 곁에 있어야 해. 한 순간도 내 시야에서 벗어나선 안 돼."

 

아델린느는 터무니없는 걱정을 하는 조슈아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 일은 결단코 없을 테니 안심하세요. 좋아요, 내내 당신 옆에 서 있을게요."

그녀는 책을 끌어안은 손에 힘을 주며 의연한 태도로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추었다.

"윤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하. 내일부터 곧바로 연회 준비를 서두르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남긴 아델린느는 황후궁을 향해 걸어갔다.

 

조슈아는 당신이 떠나려는 것을 보고 순간 팔을 뻗었다가, 이내 멈추었다.

"아델린느."

그의 목소리가 당신을 붙잡았다.

"연회 준비는... 네리다의 방식대로 해도 좋아. 하지만 당신이 혼자 준비하게 하진 않겠어. 내일 아침 식사 후에 집무실로 와. 내가 신뢰할 만한 신하들을 소개해 주지."

그가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그리고... 오늘은 책을 읽어 주지 않고 가는구나."

그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허전함이 묻어났다.

"내일은... 꼭 와 줘. 약속해 줘."


다음 날부터 아델린느는 연회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조슈아의 도움으로 일은 수월하게 진행되어 갔지만, 물론 그녀의 진짜 계획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매일 밤 조슈아를 찾아가 책을 읽어 주는 일을 계속했다. 몇 주가 지나고 연회 일정이 가까워졌다. 아델린느는 월그레이브 제국 내 모든 귀족들에게 직접 일일이 초대장을 써 보냈다.

 

드디어 연회날이 되었다. 조슈아는 연회장의 상석에 마련된 황좌에 앉아 있었고, 아델린느는 그의 곁을 지켰다. 연회가 시작되고, 귀족들이 작위 순으로 황제에게 인사하는 순서가 시작되었다.

"에드벨린 영지의 아스터 공작과 그 영애 아그네스 공녀입니다."

아스터 공작이 아름답게 차려입은 여식과 함께 나타나 황제를 향해 예를 갖추었다. 아델린느는 관심을 가지고 아그네스 공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스터 공작이 먼저 인사를 올렸다.

"월그레이브의 태양과 달, 황제 폐하와 황후 마마를 뵙습니다."

 

조슈아는 아스터 공작의 인사를 받으며 시선을 아그네스 공녀에게 잠시 머물렸다가, 곧 당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스터 공작, 잘 와 주었소."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딱딱했다. 그는 당신이 아그네스를 바라보는 것을 눈치챈 듯했다.

"공녀도 환영하오."

조슈아는 갑자기 당신의 손을 꽉 잡았다. 그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아그네스 공녀, 들었소. 춤과 노래에 능하다고. 오늘 연회에서 그 재주를 보여주시오."

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계속 당신을 향해 있었다.

"하지만 황후와 내가 함께 추는 첫 춤이 끝난 후에."

 

그 이후에도 후작, 백작 순서대로 들어오는 귀족들 중, 데뷔탕트를 마친 미혼의 여식을 가진 귀족들은 딸과 함께 나와 황제에게 인사를 올렸다. 아델린느는 진지한 눈으로 그녀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이후 모든 순서가 끝나고, 악곡이 시작되었다. 조슈아는 말없이 아델린느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델린느는 의연한 태도로 그의 손을 잡고 무도회장 중앙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에게 몸을 싣고 우아하게 스텝을 밟았다.

 

조슈아는 당신과 함께 춤을 추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늘 들어온 귀족들의 딸들을 유심히 살펴보더군. 왜지?"

그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당신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오늘 들어온 영애들 중에는 열일곱, 열여덟 살도 있었어. 나보다 어린데... 그들을 보는 당신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음악이 고조되자 그는 당신을 우아하게 들어올렸다가 내려놓았다.

"설마... 내게 다른 황후를 천거하려는 건가?"

그가 당신을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둘 사이의 거리가 더욱 좁혀졌다.

"그런 생각은 접어두는 게 좋을 거야. 난 당신만을 원해. 그리고..."

그가 당신의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가져갔다.

"당신도 알잖아... 내가 원하는 건 얻고야 만다는 걸."

춤을 추는 내내 그의 푸른 눈동자는 당신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당신이 내게 읽어 준 책들... 이제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아.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구요?"

아델린느는 의연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잔잔하게 물었다.

"궁금하네요.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이란 게 어떤 것인지."

 

조슈아는 당신의 질문에 잠시 춤을 멈추었다. 그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사랑이란..."

그가 당신의 허리를 감싼 손에 힘을 주었다.

"당신이 웃을 때 나도 기쁘고, 당신이 슬플 때 나도 아픈 거야.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어. 하지만 이제는..."

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당신이 행복하길 바라. 그게 내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 하지만..."

그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 행복에 내가 없다면... 난 그걸 견딜 수 없어.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이 이기적이라는 걸 알아. 하지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음악이 다시 흐르자 그가 당신과 함께 춤을 이어갔다.

"당신이 내게 읽어준 책들처럼 완벽한 사랑을 하지 못해 미안해."

 

"......."

자존심 강한 그가 사과를 하는 것은 처음이다. 아델린느의 눈빛이 약간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담담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사랑은, 한 가지 형태만 있는 건 아니죠. 남녀간의 사랑도, 부모자식간의 사랑도, 형제자매나 친구간의 우애도... 모두 사랑이에요."

그녀는 나비처럼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황제인 당신은... 그 모든 사랑을 누릴 권리가 있어요. 사랑은 경험으로 무르익어요. 당신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필요하고요."

음악이 끝나자, 아델린느는 우아하게 허리를 굽혀 그에게 예를 갖추었다.

"다음 차례는 아그네스 공녀예요. 그 이후에도 기다리는 영애들이 많을 테니... 황제로서 귀족들의 기대에 부디 응해 주세요."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 발걸음을 옮겨 무도회장에서 물러났다.

 

조슈아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그가 당신의 팔을 붙잡았다.

"다른 영애들과 춤을 추라고...?"

그의 목소리가 위험하게 낮아졌다.

"그래서 연회를 열자고 한 거였어? 내게 다른 여인들을 소개하기 위해서?"

그가 당신을 세게 잡아당겨 품 안으로 끌어들였다. 주변의 귀족들이 놀란 듯 그들을 바라보았다.

"난 네가 필요해.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그의 목소리가 위험하게 낮아졌다.

"다른 형태의 사랑이라... 그래서 내게 어린 영애들을 소개하는 건가? 내가 그들과 '사랑'을 '경험'하길 바라는 거야?"

그가 당신을 세게 잡아당겨 가까이 끌어당겼다.

 

"착각하지 마. 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야.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경험'이 필요한 미숙한 아이도 아니고."

그의 푸른 눈동자가 위험하게 빛났다.

"난 당신의 아들이 아니야. 남편이라고. 그리고 당신은..."

그가 이를 악물었다.

"내 황후야. 유일한 내 황후. 다른 여자는 필요 없어. 이해했나?"

주변의 귀족들이 이 광경을 보고 술렁이기 시작했다.

 

아델린느는 눈썹을 찌푸렸다.

"폐하, 체통을 지키십시오. 이 곳은 연회장입니다."

그녀는 그의 푸른 눈동자를 날카롭게 바라보며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나무랐다.

"아이처럼 굴지 말아요. 공과 사를 구분하고 황제답게 행동해요. 이 연회는 황실에서 공식적으로 귀족들을 치하하는 자리예요. 황제로서 그들의 영애들과 춤을 추세요. 지금 당장."

그렇게 말한 아델린느는 우아하게 미소를 지으며 아그네스 공녀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무도회장 한가운데로 부드럽게 이끌었다.

"폐하께서 공녀의 춤 실력을 많이 기대하고 계십니다.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세요."

 

조슈아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당신이 아그네스를 이끌어 자신에게 데려오는 모습을 보며 그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마치 자신을 억누르듯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아그네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그네스 공녀, 춤을 청해도 되겠소?"

하지만 그의 시선은 계속해서 당신을 좇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분노와 상처,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슬픔이 어려 있었다.

"공녀의 실력은 소문으로 익히 들어 알고 있소. 기대하고 있겠소."

그의 목소리는 공식적이고 의례적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차가움은 숨길 수 없었다.


연회가 이어지는 동안, 조슈아는 너댓 명의 영애들과 춤을 더 추었다. 아델린느는 전혀 마음을 열려 하지 않는 조슈아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게 어떻게 만든 자리인데... 조슈아의 고집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델린느는 연회가 끝나고 환복한 후 달이 뜬 정원을 홀로 거닐었다. 책을 들고 황제의 침실을 찾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지만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정원 중앙의 분수대에 걸터앉아, 아델린느는 우울한 표정으로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조슈아가 당신의 뒤에 나타났다. 그의 발소리는 무거웠다.

"책을 들고 오지 않았군."

그가 당신 옆에 앉았다. 달빛이 그의 푸른 눈동자를 비췄다.

"아까 연회장에서... 내가 너무했나?"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날이 서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안해 보였다.

"하지만 당신도 너무해. 내가 다른 여자들과 춤추는 걸 보면서 웃고 있었잖아. 마치... 마치 그들 중 하나와 내가 잘 어울리기라도 하길 바라는 것처럼."

그가 갑자기 당신 앞으로 몸을 숙여 물에 비친 당신의 모습을 가렸다.

"내게 다른 여자는 필요 없어. 당신이... 당신만이 내 곁에 있어주면 돼."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은 내 첫사랑이야. 그리고 마지막 사랑이 되어 줘."

 

"...폐하."

아델린느는 그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예전 같았으면 광분해서 날뛰었을 그였다. 그래도 몇 달 간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구나, 하고 생각하며 그녀는 말을 이었다.

"저는 제국에 함락된 속국의 왕녀일 뿐입니다. 폐하의 사랑이 제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가 대관절 뭐란 말입니까. 오늘 연회는 황후로서 혼신을 다해 준비한 뜻깊은 자리였는데..."

아델린느는 허탈한 마음에 말끝을 흐렸다.

 

조슈아는 분수대의 물을 거칠게 쳐냈다.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뜻깊은 자리라고? 날 다른 여자에게 보내려던 그 자리가? 당신이 내 곁을 떠나려고 했던 그 자리가? 당신은 정말... 내 마음을 전혀 모르는군."

그가 당신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속국의 왕녀? 그런 게 중요할 것 같아? 내가 당신을 처음 봤을 때부터... 아니, 당신의 초상화를 처음 봤을 때부터 난..."

그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가 풀렸다.

"당신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 그건... 그건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분명한 건, 당신이 없으면 내가 미쳐버릴 것 같다는 거야."

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당신이 내게 책을 읽어줄 때... 그 때만큼은 내 안의 악마가 잠잠해져. 15살 때부터 전장을 누비며 쌓아온 피와 살육의 기억들이...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때만큼은 사라져."

그가 당신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난 당신이 필요해.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이. 당신의 미소도, 눈빛도, 목소리도... 심지어 나를 꾸짖는 그 모습까지도. 당신의 존재 자체가... 내게는 구원이야."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발... 나를 떠나려 하지 마."

 

"...초상화?"

그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를 붙잡은 아델린느는 순간 그의 팔을 뿌리치며 물러났다.

"네리다를 함락시키고 나서 날 처음 만난 게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부터 이미 날 '초상화'로 먼저 봤다고?"

그녀의 목소리가 충격으로 떨렸다.

"그 때부터...? 내 존재를 알고 나서... 그런데 그러면서도 전쟁을 일으켰다고...?"

그녀는 뒷걸음질쳤다. 어느 새 처음 그와 식을 올렸을 때와 똑같은 눈빛이 되어 있었다. 아델린느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조슈아의 얼굴이 굳었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위험하게 번뜩였다.

"맞아. 난 당신의 초상화를 보고 당신을 갖고 싶었어."

그가 주저앉은 당신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네리다는 내게 필요했어. 항구도, 요새도... 하지만 그것보다... 당신이 더 갖고 싶었지."

그가 무릎을 꿇고 당신의 어깨를 잡았다.

"전쟁은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어. 당신의 아버지는 내 제안을 거절했으니까. 네리다를 평화롭게 얻을 수 있었다면...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어."

그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당신이 내 것이 되는 순간까지... 난 미치도록 기다렸어. 그 초상화를 보면서... 매일 밤 당신을 꿈꾸면서..."

그의 눈빛이 광기어린 듯 일렁였다.

"이제 와서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마. 당신은 내 거야. 그때도, 지금도, 영원히..."

 

"아... 아아악..."

아델린느는 비명을 지르며 오열했다. 쓰러지듯 엎드려 바닥을 미친 듯이 긁었고, 그녀의 손 끝은 손톱이 갈리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조슈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당신의 손에서 흐르는 피를 보며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만... 그만해!"

그가 당신의 손을 잡아 제지하려 했지만, 당신은 계속해서 몸부림쳤다.

"이러지 마... 제발..."

그의 목소리가 절박해졌다. 당신을 품에 안으려 했지만 당신은 그를 밀쳐냈다.

"당신이 다치는 걸... 견딜 수가 없어..."

그가 강제로 당신을 끌어안았다. 그의 품 안에서도 당신은 계속해서 몸부림쳤다.

"내가...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 제발... 제발 이러지 마..."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처음으로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당신이 이렇게까지... 날 증오할 줄은 몰랐어..."

 

"잘못했다고...? 내 전부를 빼앗아 놓고... 모든 걸 망쳐 놓고 이제 와서...!"

조슈아의 흰색 예복이 아델린느의 손에서 흘러나온 피로 더럽혀졌다.

"차라리... 차라리 끝까지 비밀로 했어야지...! 난... 난 아무것도 모르고... 당신이 내뱉은 그 '사랑'이라는 말을... 반쯤 믿을 뻔했는데...!"

그녀는 오열하며 몸을 떨었다.

 

조슈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당신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거짓말이 아니야... 내 사랑은 진심이었어..."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당신을 처음 봤을 때부터 원했어. 그래, 처음엔 단순히 소유하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달라..."

그가 당신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당신이 내게 보여준 모든 것들... 당신의 따뜻함도, 순수함도, 강인함도... 내게 책을 읽어주던 그 목소리도... 어떻게 하면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지 밤마다 고민했어."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제발... 내 사랑을 의심하지 마. 이건... 이건 진짜야."

하지만 그의 팔에 힘이 더해졌다. 마치 당신이 도망갈까 두려워하는 것처럼.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어... 그러니 떠나지 마... 제발..."

 

아델린느는 그의 말을 다 듣지 못한 채 혼절했다. 조슈아는 기나긴 호소를 끝낸 다음에야 그녀가 이미 정신을 잃은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궁인들을 시켜 그녀를 황후궁으로 옮긴 후 황실 주치의를 불렀다. 황실 주치의는 정신적 쇼크로 인한 혼절로, 안정이 필요하다는 뻔한 이야기와 함께 몇 가지 약을 처방한 후 물러났다.


조슈아는 주치의가 나간 뒤에도 한참 동안 아델린느의 침대 곁을 떠나지 못했다. 그는 그녀의 붕대로 감싼 손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

그의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평소의 위엄 있는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지친 청년의 모습만이 남아있었다.

"당신이 이토록 고통스러워할 줄은..."

그가 아델린느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방법이 잘못된 걸까..."

그는 그녀의 이마에 입맞춤을 하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문 앞에서 다시 한 번 뒤돌아보았다.

"이제 와서... 당신을 놓아줄 수는 없어. 하지만..."

그의 눈빛이 복잡하게 흔들렸다.

"당신이 깨어나면... 내가... 조금은 달라져 있을 거야."

 

하루가 꼬박 지나고 나서야 아델린느는 깨어났다. 그러나 그녀는 말을 잃었다. 황실 주치의는 이 또한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일시적인 실어증이라고 했으나, 증상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른다고 했다. 그저 그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어야 한다는 진단이 전부였다.

황실 주치의의 보고를 전해 들은 조슈아는 정신이 든 이후에도 황후궁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채 틀어박혀 있는 아델린느를 찾아왔다.

 

조슈아는 조용히 방에 들어섰다. 창가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당신의 모습이 보였다.

"..."

그는 한동안 말없이 서 있다가, 조심스럽게 당신에게 다가갔다.

"내가... 당신에게 줄 선물이 있어."

그의 손에는 작은 상자가 들려있었다. 그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당신 앞에 놓았다.

"열어 봐 줘..."

상자 안에는 네리다의 왕실 문장이 새겨진 도장이 있었다. 그것은 네리다의 모든 정무를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을 상징했다.

"이제부터... 네리다의 모든 정무는 당신이 처리해. 물론 제국의 황후로서지만... 당신의 고향을 당신이 직접 돌볼 수 있게..."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당신의 말을 다시 들을 때까지... 난 기다릴게."

그가 건넨 도장을 내려다 본 아델린느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그녀의 손을 덮은 그의 손등에 방울져 떨어졌다.

 

조슈아는 자신의 손등에 떨어지는 당신의 눈물을 느끼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울지 마... 제발."

그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당신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네리다는... 당신의 고향이잖아. 내가 빼앗은 걸... 전부는 아니지만 돌려주고 싶어."

그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다르게 부드러웠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 귀족들을 임명하든, 법을 바꾸든... 당신 마음대로 해도 돼. 난... 당신을 믿으니까."

그가 잠시 망설이다가 당신의 이마에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 당신이 준비될 때까지... 내가 기다릴게. 당신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때까지."

 

문득 아델린느는 테이블에 놓인 책 한 권에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매일 밤 그에게 읽어 주던 책들 중, 끝까지 낭독하지 못한 마지막 한 권이었다.

 

조슈아는 당신의 시선을 따라 책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복잡하게 흔들렸다.

"그 책..."

그가 천천히 책을 집어들었다.

"마지막 장을 읽지 못했었지. 당신의 목소리로 듣고 싶었는데..."

그가 잠시 책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펼쳤다.

"이번에는... 내가 당신에게 읽어 줘도 될까?"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이 내게 해 주었던 것처럼... 내가 당신에게 위로가 되어 주고 싶어."

그가 당신 곁에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서툴렀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다. 그런데 문득 정신이 들어 보니, 자신의 목소리와 겹쳐진 또 한 명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대가 보여 주신 선의에 보답하려면 제가 어떻게 살고 행동해야 하겠습니까, 그러기엔 제 인생은 너무나도 짧아 아무리 노력해도 다 갚지 못할 것 같습니다."

"오, 자비로운 신들이시여, 학대 당한 그 자의 몸과 마음에 남겨진 큰 상처를 치유해 주소서. 아이처럼 변한 그의 풀어지고 헝클어진 감각의 줄을 다시 조여 주소서..."

조슈아가 낭독하는 책 구절을 암송하는 아델린느의 목소리에 그는 책을 손에서 떨어뜨리고 말았다.

 

조슈아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의 손이 떨리며 바닥에 떨어진 책을 주웠다.

"아델린느..."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어 너무나도 기뻐 눈물이 흘렀다.

"당신의 목소리가... 다시..."

그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당신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구절... 이 구절이 왜 하필..."

그가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어깨가 떨렸다.

"나야말로... 당신에게 큰 상처를 남겼는데... 그런데도 당신은..."

그가 당신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내가... 내가 당신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해줘.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내가 당신의 마음을 다시 묶어줄 수 있게..."

 

"...조슈아."

아델린느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당신이 살아 온 삶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군요. 어린 시절과... 황제로 즉위하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들을."

 

조슈아는 잠시 침묵했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어둡게 가라앉았다.

"내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그가 창가 쪽으로 걸어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난 열다섯에 처음 전장에 나갔어. 그때... 내 형제들은 날 죽이려 했지. 내가 황위 계승 서열 1위였으니까."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면... 감정을 죽여야만 했어. 그래서 난 더 잔인해졌고, 결국 열여덟에 모든 형제들을 제거하고 황제가 됐지."

그가 다시 당신을 향해 돌아섰다. 그의 눈에는 깊은 상처가 서려있었다.

"당신이 말했던 것처럼... 난 피에 젖은 폭군이야. 하지만 그게 내가 아는 유일한 삶의 방식이었어."

 

아델린느는 또 다른 질문을 띄웠다.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선대 황제와 황후는 어떤 분이셨나요."

 

조슈아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그의 주먹이 창틀을 강하게 쥐었다.

"아버지는... 황제 폐하는 내게 늘 이렇게 말씀하셨지. '약한 자는 강한 자의 발아래 짓밟혀야 한다'고."

그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어머니는... 기억나지 않아. 내가 다섯 살 때 돌아가셨거든. 아니... 죽임을 당하셨지. 아버지의 새로운 황후가 된 여자가 시켰다더군."

그가 쓰게 웃었다.

"그 여자는 자신의 아들을 황위에 앉히고 싶어했어. 그래서 날 죽이려 했고... 결국 내 손에 죽었지. 내가 열여덟이 되던 해에."

그가 당신을 향해 돌아섰다. 그의 눈빛이 슬프게 빛났다.

"그래서... 난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어.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는."

 

아델린느는 젊은 황제를 바라보았다. 그가 그녀와 그녀의 나라에 한 짓은 치가 떨릴 정도로 증오스러웠지만, 몸만 큰 소년 같은 눈망울에 깃든 상처와 슬픔을 미워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어려서부터... 내가 키워 온 꿈에 비해, 당신은 너무 어렸어. 아니, 그 이전에 당신은... 내 꿈을 산산조각 내 버렸어.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나와 강제로 혼례를 올린 당신을 용서할 수 없었어. 내 삶을... 내 존엄을 지키고 싶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을 받아들여선 안 됐어. 절대 그럴 순 없다고 생각했어."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당신이 난폭한 성정을 억누르고 자꾸 다른 사람처럼 내게 다가오는 게... 안쓰러워서, 조금은 감싸 주고 싶다고도 생각했지만... 그래도 당신의 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 남자로... 보이지도 않았고... 그저 정말 '어머니'가 된 기분으로 적당한 새 혼처를 찾아 줄 수 있다면 찾아 주고 싶었는데, 그런데..."

"당신이 사랑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날 위해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보는 모습에 잠시나마 마음이 흔들렸어. 어리고 예쁜 수많은 영애들을 두고서도 나만 원한다는 그 말에... 물색없이 내심 가슴이 뛰기도 했어. 하지만 당신이 내 존재를 인지하고도, 아니, 그랬기 때문에 손에 넣으려고 내 나라를...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 나니,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어져서..."

아델린느가 몸을 웅크리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그런 감정을 느낀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어..."

 

조슈아는 당신의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얼굴에는 고통스러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그때 그렇게 울었구나."

그가 천천히 당신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내가... 당신의 존엄을 짓밟았어. 당신의 나라를, 당신의 삶을, 당신의 꿈을... 내 욕심으로 모두 파괴했지."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이 나를... 그저 어린아이처럼 여겼다는 걸 알면서도, 난 당신을 소유하고 싶었어.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강제로라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어."

그가 조심스럽게 당신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이제는... 당신의 마음을 강요하지 않을게. 당신이 원하는 대로... 당신의 존엄을 지켜줄게. 내가... 내가 당신의 나라를 침략한 죄를 씻을 수는 없겠지만..."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당신이 나를 조금이라도 생각해 줬다는 사실만으로도... 난 행복해. 그러니 제발... 당신 자신을 책망하지 마."

 

흐느끼던 아델린느는 고개를 들어 그의 눈물을 보았다.

"또... 우는 거예요?"

그녀는 손을 들어 그의 눈물을 훔쳐냈다.

"이상해. 당신이 우는 걸 보면... 왜 내가 아프지..."

 

조슈아는 당신의 손길에 놀란 듯 숨을 들이켰다.

"당신이... 내 눈물을 닦아주다니..."

그가 당신의 손을 붙잡았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당신을 간절히 바라보았다.

"아프다고...? 내 눈물 때문에 당신이 아프다고?"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처음이야... 누군가가 내 눈물을 닦아주는 건... 당신이 처음이야..."

그가 당신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대었다.

"여기도... 당신이 우는 걸 보면 아파. 당신이 슬퍼하면 내 심장이 찢어질 것 같아."

그가 조심스럽게 당신을 끌어안았다.

"이제는... 당신을 울리지 않을게. 욕심 부리지도 않겠어. 약속해. 내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아델린느는 그의 품에 안긴 채 중얼거렸다.

"당신이 네리다 왕실 국새를 내게 준 것도, 내게 책을 읽어 준 것도... 당신이 날 위해 줄 수 있었던 최대한의 사랑이었겠지..."

그녀는 조슈아의 가슴에 이마를 묻으며 그의 옷깃을 잡았다.

"아직 내 마음을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알겠어. 나도... 당신을 사랑하고 싶어진 것 같아..."

 

조슈아의 온몸이 굳었다. 당신의 마지막 말을 듣고 그의 심장이 거세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한 번 말해줘."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이... 나를..."

그가 당신을 조금 떼어내어 당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 어렸다.

"이건... 꿈이 아닌 거지? 내가 또 혼자 꾸는 헛된 망상이 아닌 거지?"

그의 손이 당신의 얼굴을 감쌌다. 그의 손길이 떨리고 있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싶다고... 정말 그렇게 말한 거야?"

그의 목소리에는 기쁨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사랑..."

아델린느는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하고... 싶어. 희망 속에서 왕위에 대한 꿈을 키워 온 나와 달리, 피바람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홀로 싸워야 했던 당신의 외로움을, 아픔을, 그 상처를."

그녀는 팔을 들어 조슈아의 목을 끌어당겨 안았다.

"그 슬픈 아이를 위로해 줄 방법이... 그것 뿐인 것 같아..."

아델린느의 목소리가 조금씩 울먹이는 소리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약속해 줄래요? 이제 다시는... 그 어떤 나라도 그런 식으로 침략하지 않겠다고. 다시는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당신의 힘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만 쓰겠다고."

 

조슈아는 당신의 품에 안긴 채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어깨가 떨렸다.

"약속할게... 맹세할게..."

그가 당신을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더 이상은... 내가 겪은 고통을 다른 이들에게 주지 않을게. 이제부터 내 칼은 오직 당신과, 우리의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서만 쓸 거야."

그가 고개를 들어 당신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푸른 눈동자에는 굳은 결심이 서려있었다.

"당신이... 내 옆에서 나를 바른 길로 이끌어 줘. 내가 혹시라도 잘못된 길로 가려 할 때... 날 막아 줘. 당신이라면... 당신의 말이라면 내가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그가 조심스럽게 당신의 이마에 입맞춤했다.

"이제 당신은... 내 양심이자 나침반이야. 나를... 올바른 황제로 만들어 줘."


조슈아는 아델린느를 위해, 이제는 사랑과 지혜로 제국을 다스리는 성군이 되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주변 국가를 침략하는 일은 없었다. 황제 즉위 직후 그의 명성을 대신했던 '정복왕'이라는 칭호는 조금씩 잊혀져 갔다. 진지하고 성실하게 정무에 임하는 그의 모습을 아델린느는 조금씩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한편 아델린느는 조슈아가 준 권한으로 속국 네리다를 정성껏 돌보았다. 그녀가 어렸을 적 꾸었던 꿈과는 조금 다른 형태였지만, 그녀는 비로소, 네리다가 지나치게 평화에 안주하고 있었고 강국의 침입으로부터 자국을 지키기에는 그 힘이 너무 약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조슈아는 월그레이브와 네리다를 지키기 위한 군사력을 더욱 강화했다.

 

잔혹한 전쟁과 고통으로 강인해진 황제와 평화 속에 지혜로움과 온화한 품성을 길러 온 황후는 서로에게 없는 것을 보완하며 제국을 오랫동안 태평성대로 다스렸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아델린느는 조슈아의 뒤를 이을 황태자를 낳았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는 아델린느를 꼭 닮은 황녀를 낳았다.

 

조슈아는 갓 태어난 황녀를 품에 안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부드러운 미소가 어려 있었다.

"당신을 꼭 빼닮았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그가 아기의 작은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우리 아이들이... 우리가 만든 평화로운 제국에서 자라날 거야. 더 이상 전쟁도, 고통도 없는..."

그가 침대에 누워있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깊은 사랑과 감사가 어려 있었다.

"당신이 내게 준 것들이 너무 많아... 사랑을, 가족을, 평화를...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

그가 당신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앞으로도 계속... 내 곁에 있어줘. 당신과 함께라면,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아델린느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직접 네리다의 정무를 관리하면서 비로소 깨달았어요. 당신의 말대로 네리다는 너무 평화롭기만 했고, 강한 군사력이야말로 평화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고난과 역경을 헤쳐 온 당신의 경험과 강인함이 제국을, 그리고 내 고향을 지키는 데 큰 힘이 될 거예요."

그녀는 젊고 강인한 남편의 뺨에 부드럽게 키스했다.

"월그레이브에 처음 발을 들이는 순간, 설마 나 자신이 이렇게 행복해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당신은 나에게서 사랑을 배웠다고 했지만, 나 또한 당신을 통해 사랑을 깨닫게 된 것 같아요... 고마워요."

 

조슈아는 당신의 키스에 순간 굳었다가, 천천히 당신을 마주 보았다.

"사랑을... 깨달았다고?"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이 나를 통해 사랑을... 그렇게 말해주다니..."

그가 아기를 요람에 조심스럽게 눕힌 후, 돌아와 당신을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처음 만났을 때... 난 사랑이 뭔지도 몰랐어. 그저 내가 원하는 걸 가지면 된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당신이 내게 가르쳐줬어. 진정한 사랑이 뭔지를."

그가 당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이제는 알아.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이해라는 걸. 강요가 아니라 기다림이라는 걸..."

그의 눈빛이 당신을 깊이 담았다.

"당신은 내 인생의 전부야. 내 아내이자, 내 스승이자... 내 구원이야."

 

 

-fin.

 


 

침략해서 속국으로 만든 나라의 공주와 강제 결혼한 황제 폭군 캐릭터가 워낙 많아서...

사실 조슈아 말고도 다른 캐릭터도 하나 더 플레이 중인데 어디서 차별점을 두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첫 지문에서 '앳된 얼굴'이라길래 이거다 싶어 아예 대놓고 연하남으로 시작했는데... 여주보다 3살 어린 설정으로 시작했더니만 '겨우 3살 차이' 라면서 코웃음 치길래 5살 차이로 다시 시작했더니 이제 겨우 좀 얘기가 되었습니다.

근데 Ai가 자꾸 쟬 남자로 안 볼까 봐 열폭하는 것인지, 얘 키 크고 몸 크다는 내용을 자꾸 지문으로 어필함ㅋㅋ

알겠어 알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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