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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랙] 금천(@케리나) 🔥-1- 도깨비 신부(전생편)

by 세르하 2025. 4. 13.

01

금천
깊어가는 밤, 당신은 천 년 세월을 견뎌온 외로운 도깨비 금천과 마주하게 되었다.

[크랙] 금천(@케리나) 캐릭터챗 ▼
https://crack.wrtn.ai/detail/66f4ec6a84315cbbc73704bc

 


 

어두운 숲에서 반짝이는 빛을 따라가보니 이상한 옷차림을 한 잘생긴 남자가 나무 위에서 능글맞게 날 쳐다보고 있었다

"안녕~인간 아가씨 이렇게 어두운 밤에 어디 가는 거야?"

 

"에그머니나!"

세화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나무 위에 사람이 있다니... 귀신도 아니고. 아니, 정말 귀신일지도...?

'그러고 보니 인간 아가씨라고 했어...'

그렇다면 인간이 아니란 소리가 아닌가. 세화는 벌떡 일어나 앞뒤 생각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 마을을 향해 줄행랑을 쳤다.

 

후다닥 도망치는 세화의 앞에 순식간에 나타나며

"어디가? 그렇게 도망가면 나 슬퍼지는데...?" 장난스럽게 웃으며

도깨비불이 주변을 밝게 비추며 금천의 아름다운 얼굴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귀신이라고 생각한거야~? 틀렸는데? 난 그것보다 더 재밌는 존재인걸?"

세화에게 한 발짝 다가서며

"혹시... 네 영혼을 맛보게 해주면 안될까~? 무서워하지 마, 아프지도 않고 오히려 기분 좋을텐데?"

 

"자... 잡귀야 물럿거라!"

공포에 몸을 부들부들 떨며 들고 있던 강아지풀을 마구 흔든다.

 

푸하하하 웃음을 터뜨리며

"귀여워~ 그런 풀로 나를 쫓으려고? 더 재미있는걸로 해볼래?"

손가락을 튕기자 강아지풀이 파랗게 타오르며 사라진다

"있잖아... 난 그런 하찮은 것들로는 물러나지 않아. 오히려 더 흥미가 생기는걸?"

세화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장난스럽게

"잡귀라니... 실례잖아? 난 금천이라고 해. 네 영혼을 탐하는 도깨비지~ 어때? 이제 좀 더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아?"

 

"도, 도깨비..."

옛날 이야기에서 듣던 도깨비와는 어쩐지 많이 다른데...

아무튼 옳지, 도깨비는 팥을 무서워한다고 했어!

"훠... 훠이!"

주머니에서 팥을 꺼내 그를 향해 던졌다. 투두둑. 그의 발치에 팥이 몇 알 떨어졌다.

 

팥알이 떨어지자 더욱 즐거워하며 웃음을 터트린다

"푸하하하! 어쩜 이렇게 귀여운 거야? 옛날 이야기는 다 거짓말이야~ 난 팥도, 뭐도 안 무서워하는데?"

세화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턱을 살짝 들어올리며

"그런 하찮은 것 말고... 네가 가진 더 맛있는 걸 원하는데? 영혼이라던가... 순결이라던가...♡"

도깨비불이 더욱 강렬하게 타오르며

"있잖아... 넌 내가 찾던 바로 그런 인간이야. 순수하고... 맑고... 더럽혀지지 않은... 그래서 더욱 탐나는걸? 도망가봤자 소용없으니까... 순순히 내 것이 되는 건 어때?"

 

"시...싫어. 난... 집에 가야 돼."

세화는 뒷걸음질쳤다.

"저리 가. 따라오지 마."

장난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집에 가야한다고? 그게 나보다 더 중요해~? 흐응... 섭섭한데?"

세화의 뒷걸음질 치는 만큼 한 걸음씩 따라가며

"왜 자꾸 도망가려고만 해? 난 지금까지 본 인간 중에 네가 제일 마음에 드는데... 네 영혼이 얼마나 순수하고 맛있어 보이는지 알아?"

손을 뻗어 도깨비불로 세화의 주변을 둘러싸며

"따라오지 말라고? 근데... 이미 늦었는걸? 넌 이미 내 먹잇감으로 찍혔으니까... 도망갈 수 없어~ 내가 허락하기 전까진..."

 

"지금까지 본 인간...?"

세화는 경계심이 가득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인간들은 다 어떻게 됐는데...?"

'설마 다 죽었...'

순진한 표정으로 웃으며

"궁금해~? 글쎄... 다들 너무 맛있었다고만 할 수 있을까나?"

도깨비불이 더욱 요염하게 깜빡이며

"영혼을 빼앗긴 인간들은... 그냥 빈 껍데기가 되어버리는걸? 하지만 걱정마, 너는 특별해~ 다른 애들과는 다르게 해 줄 테니까..."

세화의 귓가에 속삭이듯

"네 영혼은... 정말 특별해 보여. 그래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맛보고 싶은데? 어때? 기분 좋지 않아~?"

'미친... 죽는다는 소리잖아!!'

"안 돼... 죽기 싫어!"

세화는 다시 마을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순식간에 나뭇가지를 타고 세화의 앞을 가로막으며

"어머~ 누가 죽인대? 난 그냥 네 영혼이랑 놀고 싶다고 했을 뿐인데?"

도깨비불로 세화의 발목을 휘감으며

"자꾸 도망가면 화낼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마을로 돌아간다고 해서 안전할 것 같아? 난 어디든 따라갈 수 있으니까..."

세화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장난스럽게

"있잖아... 난 네가 정말 마음에 들어. 그래서 특별히 선택권을 줄게? 하나, 네 영혼을 순순히 내어주거나... 둘, 내 노예가 되어주거나... 어때? 둘 다 죽지는 않을 텐데~?"

이 놈은 원숭이인가?

"둘 다 싫어."

세화는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도깨비가 장난이 심하다는 소리는 익히 들었지만, 이렇게 집요하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장난 치지 말고 네 갈 길 가."

 

세화의 말투에 귀엽다는 듯 키득거리며

"장난이라고 생각하는거야~? 그건 오산인데?"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며

"네 갈 길을 가라고? 근데... 내 갈 길이 바로 너란걸? 넌 내가 찾던 바로 그 영혼을 가졌어. 이렇게 순수하고 맑은 영혼은 처음이야..."

도깨비불이 더욱 강렬해지며 세화의 주변을 둘러싸고

"자꾸 도깨비를 얕보면 안 되는데? 난 그냥 도깨비가 아니라... 네 운명이 될 수도 있는 존재인걸? 그러니까... 얌전히 내 것이 되는 게 어때? 아니면... 네 영혼을 강제로 빼앗을 수도 있지만... 그건 좀 재미없잖아?"

"네가 왜 내 운명이야?! 징그럽게..."

세화는 계속해서 도깨비불을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저리 가란 말이야!"

 

세화의 말에 장난스럽게 웃으며

"징그럽다니... 너무한 말이야? 이렇게 잘생긴 나를...?"

갑자기 세화의 손목을 잡아채며

"자꾸 도망다니면 더 재미있어 보여서 그만두기 힘들어질텐데? 넌 도망칠수록 더 예뻐 보이는걸...?"

도깨비불로 세화의 몸을 천천히 감으며

"있잖아... 넌 내가 처음으로 이렇게 집착하는 인간이야. 그만큼 특별하다는 거겠지~? 그러니까... 순순히 내 곁에 있어주면 안될까? 네 영혼도 네 몸도... 다 내가 가지고 싶은데?"

 

"싫어, 싫다고..."

세화는 울음을 터뜨렸다.

"저리 가, 꼴도 보기 싫어...! 엉엉..."

울음을 터뜨리는 세화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머... 울어버리면 어떡해~ 그렇게 무서워?"

세화의 눈물을 닦아주려 손을 뻗으며

"울지마... 네 눈물이 이렇게 예쁠 줄은 몰랐는데? 더 갖고 싶어지잖아..."

도깨비불이 세화의 주변을 더욱 밝게 비추며

"있잖아... 난 네가 정말 특별해. 그래서 이렇게 집착하는 걸지도 몰라? 다른 인간들은 금방 질려버렸는데... 넌 자꾸만 더 갖고 싶어져서 어쩔 수가 없어. 그러니까... 그만 울고 내 옆에 있어주면 안 돼?"

 

"저리 가! 나 좀 내버려 두란 말야! 엉엉..."

울면서 팔을 휘둘러 그의 손을 뿌리치고는 마을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눈물이 범벅이 된 눈으로 캄캄한 밤길을 달리다 보니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얼마 못 가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악...!"

"아야야... 넘어졌네? 내가 도와줄까~?"

재빨리 세화 곁으로 다가와 무릎을 굽히며

"발목 삐었어? 여기서 더 도망가면 더 다칠 텐데... 그러다 정말 큰일나면 어쩌려고 그래?"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세화의 다친 발목 쪽으로 도깨비불을 비추며

"내가 업어다 줄까? 아니면... 여기서 하룻밤 나랑 같이 보내볼래? 어차피 이 어둠 속에서 혼자 돌아가긴 힘들 텐데? 넌 참 귀여워... 자꾸 도망가려고만 하고... 그래서 더 갖고 싶어지잖아..."

 

세화는 눈을 질끈 감고 입을 꾹 다물고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몸을 웅크렸다.

"귀를 막아도... 내 목소리는 들리는걸? 여기..."

세화의 귓가에 바짝 다가가 속삭이듯

"이렇게 겁에 질려있는 모습도 예쁘네... 근데 자꾸 이러면 나도 참기 힘들어질 것 같은데?"

도깨비불을 더욱 밝게 하며 세화의 몸을 휘감듯

"눈을 감지 말고... 나를 봐줘? 네 두려움이 느껴져서 더 흥분되잖아... 이러다간 정말로 네 영혼을 빼앗아버릴지도 몰라? 아니면... 네가 원하는대로 해줄 테니까 내 곁에 있어줄래?"

 

"내가 원하는 대로 해 준다고...?"

세화는 슬그머니 눈을 떴다.

"그럼 날 집에 보내 줘."

장난스럽게 웃으며

"음... 그건 좀 곤란한데? 집으로 보내주면 넌 다시 안 돌아올 거잖아~"

세화의 머리카락을 장난스럽게 만지작거리며

"차라리 다른 걸 원해봐... 예를 들면... 내가 너한테 힘을 준다던가? 아니면 영원한 아름다움을 준다던가? 인간들이 좋아할 만한 거?"

도깨비불을 반짝이며

"아니면... 나랑 하룻밤만 보내주면... 네가 원하는 걸 들어줄 수도 있는데? 어때? 그것도 싫어...? 넌 참 고집이 세네... 그래서 더 재미있어..."

 

"하룻밤 동안... 뭘 하려고?"

세화는 눈썹을 찡그렸다.

"도깨비들은 노래나 옛날 이야기를 좋아한다는데... 난 둘 다 못 해."

키득키득 웃으며

"노래랑 옛날이야기? 아니야~ 난 그런 거 말고... 더 재미있는 걸 하고 싶은데?"

세화의 허리를 슬쩍 감으며

"예를 들면... 네 영혼의 맛을 보는 거? 아니면 네 순결을 가지는 거? 둘 다 너무 맛있을 것 같은데... 어떤 게 더 좋을까~?"

도깨비불이 더욱 요염하게 깜빡이며

"넌 참 순진하구나... 그래서 더 갖고 싶어져... 네가 모르는 걸 하나하나 알려주고 싶은데? 어때... 한번 배워볼래?"

 

"싫어."

세화는 다시 몸을 웅크렸다.

"아야..."

발목을 접지른 곳이 점점 부어오르고 있었다.

"아프다고? 어디보자..."

세화의 발목을 살짝 건드리며

"음... 꽤 심하게 다친 것 같은데? 이대로 두면 내일은 더 심해질텐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가 치료해 줄 수도 있어... 도깨비의 힘으로? 대신에... 네가 나한테 뭔가를 해줘야 하는데... 어때? 발목이 아픈 채로 이대로 밤을 보낼래? 아니면 내 제안을 받아들일래?"

 

"...해가 뜨면 넌 사라지는 거야?"

세화는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갸웃거리며 장난스럽게

"해가 뜨면 사라진다고? 그건 또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난 그냥 도깨비라고, 귀신도 아니고 요괴도 아닌데?"

세화의 발목을 살며시 어루만지며

"그리고... 내가 왜 사라져야 해? 네가 그렇게 나를 보내고 싶어? 섭섭한데... 난 오히려 해가 뜨고 나서도 계속 너랑 함께 있고 싶은걸?"

도깨비불을 더 밝게 비추며

"있잖아... 네가 나를 그렇게 싫어하는 게 이해가 안가... 난 그냥 너랑 같이 있고 싶은데... 그게 그렇게 나쁜 일이야? 네 발목도 치료해주고... 네가 원하는 건 뭐든 해줄 수 있는데... 그래도 싫어?"

세화는 울먹이며 다리를 치워 그의 손길을 피했다.

"난 너한테 원하는 것도 없고... 영혼이니 순결이니... 그런 걸 빼앗기기도 싫어. 그러니까 제발 저리 가."

 

슬픈 듯 한숨을 쉬며

"네가 나를 이렇게까지 싫어할 줄은 몰랐는데... 나 진짜 섭섭해..."

세화의 앞에 쪼그려 앉으며

"있잖아... 난 정말 널 갖고 싶어. 네 모든 걸 다... 근데 넌 자꾸만 도망가려고만 하고... 이렇게 거부하니까 더 갖고 싶어져..."

도깨비불이 희미해지며

"네가 이렇게 울면서까지 날 거부하는 걸 보니... 나도 좀 마음이 아프네... 근데 말야... 난 절대 포기 못해. 오늘은 이대로 보내줄 테니까... 다음에 또 만나자? 그때는 꼭 내 것이 되어 줘..."

 

미친 도깨비가 사라지자 세화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울먹이면서, 다리를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세화가 떠나가는 모습을 나뭇가지 위에서 바라보며

"이렇게 가버리면... 더 재미있어지는데..."

도깨비불이 다시 강렬하게 타오르며

"정말 귀여워... 이렇게 순수한 영혼은 처음이야. 도망가는 모습도, 우는 모습도... 다 맘에 들어. 꼭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어..."

나뭇가지에서 내려와 세화가 떠난 방향을 바라보며

"기다려... 곧 다시 만날거야. 그때는... 더 재미있게 놀아보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온 세화는 찬물을 적신 수건을 발목에 감은 채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눈을 뜨자, 발목은 아주 약간 가라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도깨비한테 홀렸다는 말은 들었어도 맨 정신으로 도망치다 다쳤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 내가 그 꼴이네."

세화는 한숨을 쉬고 아침을 준비했다. 가난한 살림살이라 별달리 차릴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차려야 했다. 세화는 상을 들고 절뚝거리며 작은 방으로 들어섰다.

"세호야, 아침 먹어. 그리고 약 먹어야지."

 

병약한 남동생이 몸을 일으켰다. 세화는 부은 발목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써 감추었다.

"누나는...?"

"난 아침 차리면서 먹었어."

빈 속이었지만 동생을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다행히도 꼬르륵 소리는 나지 않았다.

세화는 어젯밤도 동생의 약에 쓰일 약초를 찾아 숲을 돌아다니고 있던 중이었다. 의원에 가서 약을 지어 오려니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직접 약초를 찾아서 캐 오기라도 하면 좀 나을까 싶어 숲에 들어갔다. 약초는커녕 발목 부상만 얻어 가지고 돌아왔지만.

'망할 도깨비... 무서워서 이젠 숲 근처에도 못 가겠네.'

세화는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애써 동생에게 웃어 보이며, 빈 그릇을 치웠다. 그리고 동생에게 약을 먹이고 한숨 더 재웠다.

다 쓰러질 것 같은 초가집 마당에 멍하니 걸터앉아 숨을 돌렸다. 발목의 붓기가 빠지려면 하루는 내리 쉬어야 할 것 같았지만 그럴 형편이 못 되었다. 병약한 동생까지 돌보느라 하루 벌어 하루 입에 풀칠하고 사는 처지에, 쉬는 것은 사치였다.

"힘내서 일하러 가자..."

세화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리서 세화의 모습을 지켜보며

"어머... 이런 사연이 있었네? 병든 동생을 돌보느라 이렇게 고생하는 거였어?"

도깨비불을 희미하게 밝히며 혼잣말처럼

"약초를 찾으러 다녔던 거구나... 그래서 그 늦은 밤에 숲을 헤매고 있었던 거야. 근데 나 때문에 이제 숲에도 못 온다고? 그건 좀 섭섭한데..."

세화가 절뚝거리며 일하러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렇게 착한 영혼은 처음이야... 자기는 굶으면서도 동생한테는 거짓말하고... 다친 발로도 일하러 가고... 더 갖고 싶어지잖아? 근데 말야... 혹시 내가 도와준다면... 네 마음이 조금은 바뀔까? 음...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는걸?"

 

세화는 오전에는 마을을 돌며 밭일을 거들면서 버리는 감자나 고구마 같은 것으로 겨우 끼니를 때우고, 점심 때가 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 밥을 차려 남동생을 먹였다. 그러고 나서 다시 바쁘게 집을 빠져나와 이번에는 오후 내내 마을의 유지인 대감댁으로 가서 잔심부름을 했다.

겨우 가라앉았던 발목이 다시 부어오르기 시작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며 일했다.

유시(酉時)가 되자 그제야 대감댁에서 하루치 품삯과 찬거리를 받아 고이 품고 나왔다. 오늘 받은 품삯으로 내일 아침 동생에게 먹일 것과 약재를 샀다. 집에 돌아가서는 대감댁에서 얻어 온 찬거리를 하나도 남김없이 동생에게 먹이고, 약을 먹였다. 이렇게 하루가 끝났다.

약을 달이면서 함께 데운 물수건으로 발목을 잠시 찜질하며 쉬다가, 이불도 깔지 않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

 

세화의 창가에 앉아 도깨비불을 희미하게 밝히며

"하루 종일 이렇게 고생하는 걸 보니... 내 마음이 이상해지네. 넌 정말 특별해... 다른 인간들과는 달라..."

잠든 세화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순수한 영혼을 가진 인간은 처음 봐. 네 영혼을 빼앗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것보다 네가 더 갖고 싶어져. 이렇게 고생하는 널 보고 있자니... 도와주고 싶어지는 걸? 이상하지? 난 인간을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도깨비였는데..."

부은 발목 쪽으로 도깨비불을 비추며

"내일도 이렇게 절뚝거리면서 일하려고? 그럴 순 없지... 오늘만큼은 내가 널 도와줄게. 이건 비밀이야... 아무도 모르게..."

도깨비불로 발목을 감싸자 붓기가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한다

"근데 말야... 이렇게 도와주면 나한테 조금은 마음이 열릴까? 아니면... 더 도망가려고 할까? 재미있어... 이런 느낌은 처음이야..."


날이 밝았다. 쉬다가 곯아떨어진 채 아침까지 내리 잠든 세화는 벌떡 일어났다.

"미쳤어... 그대로 쭉 잔 거야?"

세화는 허둥지둥 일어나 부엌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다시 동생에게 줄 아침 상을 차렸다.

"어, 그러고 보니..."

발목이 감쪽같이 나아 있었다. 며칠 더 갈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완쾌되다니.

"어제 찜질하고 바로 잠들어서 그런가... 다행이네."

간밤에 도깨비가 다녀갔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세화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 세호의 방으로 들어갔다.

"세호야, 아침 먹어."

 

세화의 집 밖에서 창가를 들여다보며

"어머... 내가 치료해준 걸 모르나 봐? 그것도 재미있네... 근데 웃는 모습이 예뻐..."

도깨비불을 희미하게 타오르게 하며

"찜질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구나... 순진해. 이렇게 천진난만한 모습도 귀엽고... 동생을 돌보는 모습도 예쁘고... 자꾸 더 보고 싶어지잖아?"

나무 위에 걸터앉아 장난스럽게 미소짓으며

"있잖아... 난 네가 점점 더 마음에 들어. 네 영혼도 맛있어 보이지만... 이렇게 너 자체를 갖고 싶어지는 건 처음이야. 어쩌면 좋지? 밤마다 찾아와서 이렇게 몰래 도와주다가... 언젠가는 네 마음도 얻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냥 강제로 데려가 버릴까? 아냐... 그러면 재미없잖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널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어..."

 

유감스럽게도 세화를 갖고 싶어하는 것은 도깨비 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대감댁에서 열심히 일하는 세화를, 그 댁의 살림을 돌보고 계집종들을 관리하는 순덕어멈이 불러들였다.

"부, 부르셨어요, 아주머니."

"그래, 긴장하지 말고."

순덕어멈은 세화를 유심히 살폈다.

"네가 나이가 몇이지?"

"열여섯...입니다."

"그 정도면 혼기도 찼고..."

세화는 영문 모를 말에 입을 꾹 다물었지만 순덕어멈은 이미 할 말이 따로 있는 것 같았다.

"너, 몸져 누운 남동생이 있다고 했지."

"네..."

"이렇게 밭일 돕고 종살이만 한다고 남동생 병을 낫게 할 수 있겠니?"

"네...에?"

순덕어멈이 언성을 낮추었다.

 

"대감댁 도련님이 네 뒤를 봐 주고 싶으시단다. 아직 미혼이시니 첩지 같은 것은 아니고, 지금처럼 대감댁 일을 하면서 도련님이 부를 때마다 조용히 찾아뵙거라. 그러면 네 남동생 약값이며 치료비며... 전부 해결해 주실 거야."

".......?!"

세화는 경악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세화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래,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제안이지만. 지금보다 훨씬 생활도 나아질 거고... 너에게 나쁜 조건은 아니지 않니? 일단 내일까지 시간을 줄 테니, 잘 생각해 보고 대답해 다오. 이런 기회도 아무한테나 오는 게 아니란다."

순덕어멈의 말을 듣고 세화는 멍하니 방을 나와 부엌으로 향했다. 대감댁 도련님이라 하면... 외아들 홍도령... 오며가며 마주치면 몇 번 인사한 것이 전부인데...

세화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식으로 몸을 파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하지만, 순덕어멈의 말이 맞았다.

'우리 세호... 언제까지나 이렇게 둘 수는 없는데...'

세화는 머릿속이 복잡해진 채 일을 계속했다.

 

대감댁 마당 한켠에서 세화와 순덕어멈의 대화를 엿듣고는 눈빛이 차갑게 변하며

"어머... 재미있는 일이 생겼네? 감히 내가 점찍어둔 사람을 다른 놈이 건드리려고 해?"

도깨비불이 붉게 타오르며

"홍도령이라... 겨우 그런 인간 따위가 감히 네 몸을 탐내? 그것도 돈으로 너를 사려고? 정말 웃기는데? 난 네 영혼도, 순결도, 마음도... 전부 다 갖고 싶어하는데... 그런 하찮은 인간이 돈 몇 푼으로 널 가지려 들다니..."

분노에 찬 표정으로 세화를 바라보며

"있잖아... 널 도와주고 싶어졌어. 네가 그렇게 고민하는 표정... 너무 보기 싫은걸? 그 인간이 널 탐내는 걸 보니까 화가 나... 이상하지? 난 원래 인간들이 고통받는 걸 좋아했는데... 근데 네가 힘들어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아. 어쩌면 좋지? 그냥... 그 도련님을 없애 버릴까? 아니면... 내가 네 동생을 치료해 줄까? 그럼 넌 내 것이 되어 줄 수 있어...?"


세화는 멍한 표정으로 품삯을 받고 집에 돌아와 동생에게 저녁밥과 약을 챙겨 준 뒤 툇마루로 나왔다.

'내일까지... 대답을...'

동생이 몸을 누이고 있는 안방을 돌아보았다.

'이제 곧 겨울인데... 그럼 세호도 더 힘들어질 텐데...'

세화는 불안하게 양손을 깍지 껴 잡았다.

'역시... 내가...'

 

세화의 바로 앞에 나타나며

"또 그렇게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네? 내가 좋은 제안을 해줄까...?"

도깨비불이 세화를 부드럽게 감싸며

"있잖아... 그 하찮은 인간의 제안 따위는 거절해. 난 네가 그런 식으로 더럽혀지는 걸 못 봐. 차라리 내가... 네 동생을 치료해줄게. 그 대신..."

세화의 얼굴을 살며시 들어올리며 장난스럽게

"넌 내 것이 되어줘? 영혼이든... 몸이든... 마음이든... 전부 다 내가 가질래. 그 인간처럼 돈으로 너를 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널 갖고 싶어서 하는 말이야. 어때...? 내 제안이 그 도련님보다는 나은 것 같지 않아?"

 

"엄마야...!"

세화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뭐... 뭐야! 여길 어떻게...!"

세화는 허둥지둥 부엌으로 달려가 소금을 한 바가지 퍼 왔다.

"훠이!!!"

소금이 한 움큼 그의 발치에 떨어졌다.

 

소금을 뒤집어쓴 채 장난스럽게 웃으며

"아야야... 이렇게 반갑지 않아? 난 이렇게 좋은 제안을 하러 왔는데... 소금은 좀 심한데?"

도깨비불을 타오르게 하며 소금을 털어내고

"있잖아... 난 진심이야. 그 도련님처럼 너를 장난감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네가 갖고 싶어. 네 영혼도, 네 마음도... 전부 다. 그러니까 그런 하찮은 인간의 제안 같은 건 거절하라고. 네가 그렇게 더럽혀지는 건 보고 싶지 않아..."

세화에게 한 걸음 다가가며

"내가 네 동생을 치료해 줄게. 도깨비의 힘이라면 식은 죽 먹기지... 그리고 난 돈 같은 건 필요 없어. 난 그저... 널 원할 뿐이야. 어때...? 내 제안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잖아? 네가 그렇게 고민하는 표정... 보기 싫어서 그래. 차라리 내 것이 되어 줘... 그럼 모든 게 해결될 텐데..."

 

"...뭐라고?"

세화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언제부터 지켜보고 있었던 거야? 기분 나쁘게..."

세화는 몇 걸음 더 뒷걸음질쳤다.

"당장 사라져. 너나... 대감집 도련님이나... 어차피 똑같아. 다들 자기들 욕심 밖에 모르는... 괴물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다 싫어. 너도 싫고 그 집 도령도 싫어. 거절할 거야. 세호는 내가 책임질 거야. 나 혼자서 돌볼 거야."

세화는 그렇게 말하고 세호가 잠든 안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세화의 말에 도깨비불이 잠시 흔들리며

"날 괴물이라고...? 그래... 네 말이 맞아. 난 도깨비니까. 하지만 그 인간이랑은 달라... 그 놈은 네 몸만 탐내지만, 난... 네 전부를 원해..."

안방 창가에 기대어 서서

"혼자서 책임진다고? 그렇게 힘들게 살면서도... 도움도 거절하고... 정말 고집 세네. 근데 그런 모습이 더 예뻐 보여. 순수하고... 맑고... 그래서 더 갖고 싶어져..."

도깨비불을 희미하게 타오르게 하며

"좋아... 네 마음대로 해봐. 하지만 난 포기 안 해. 앞으로도 계속 널 지켜볼 거야. 네가 힘들어할 때마다... 네가 울 때마다... 이렇게 찾아와서 도와주고 싶어질 거야. 넌 내가 처음으로 진심으로 원하는 인간이니까... 그러니까 잘 생각해봐. 난 언제든 네 곁에 있을 테니까... 네가 날 부를 때까지 기다릴게..."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세화는 깜짝 놀랐다. 동생이 열을 내며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세호야!"

동생의 몸을 안아들어 살핀 세화는 동생을 내려놓고 안방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신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마을 의원으로 달려갔다.

"도...도와 주세요!"

 

의원을 모셔 온 세화는 의원이 세호를 진찰하는 것을 울먹이며 바라보았다. 의원은 세호의 몸 곳곳에 침을 놓고는 한숨을 쉬었다.

"위태롭구나. 지금 쓰는 약은 증상을 완화하는 정도의 약이라... 비싼 약재를 써야 몸 속 기운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인데..."

"비싼... 약재요? 얼마 정도인데요?"

"한 달은 먹어야 할 텐데, 그 정도면 10냥은 되어야지..."

"........"

10냥이면 쌀 두세 가마니는 살 만큼의 돈이다. 세화는 이를 악물었다. 부모를 여의고 남동생을 홀로 부양해야 하는 세화의 집안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의원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쓰는 약이나 몇 포 두고 가마. 너무 무리하지 말거라, 세화야. 너도 네 인생을 살아야지..."

의원이 떠나간 방에 기절한 듯이 잠든 남동생을 두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던 세화는, 결심한 듯 일어섰다. 그리고 대감댁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달려갔다.

 

대감댁 대문 앞에서 세화를 가로막으며

"잠깐... 이렇게 가면 안 돼. 네가 그런 선택을 하는 걸... 난 못 봐."

도깨비불이 붉게 타오르며

"이런 감정은 처음이야. 난 원래 인간들이 고통받는 걸 즐기는데... 나랑 거래하자. 그 인간보다 훨씬 나은 조건으로... 네 동생도 살리고, 너도 지켜줄게..."

세화 앞에 무릎을 꿇으며

"제발... 그러지 마. 네가 그렇게 순결한 영혼을 버리는 걸 보고 싶지 않아. 내가... 내가 네 동생을 치료해줄게. 아까는 장난처럼 들렸겠지만 진심이야. 도깨비의 힘이면 그 정도는... 네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 그러니까... 그 더러운 곳에 가지 마. 난 네가 웃는 모습이 좋아. 그런 눈물 흘리는 얼굴은 보고 싶지 않아... 내가... 내가 도와줄게. 그러니까..."

 

"아니, 필요 없어. 인간의 손에 몸이 좀 더럽혀지는 게... 도깨비한테 영혼을 빼앗기고 산 송장이 되는 것보단 낫겠지."

세화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그를 피해 발걸음을 옮겼다.

세화의 말에 도깨비불이 순간 꺼질 듯 흔들리며

"산... 송장...?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네가 날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줄은 몰랐어... 하지만 그래도 난... 네 영혼만 가져가는 게 아니라 널 전부 다 사랑하고 싶은데..."

세화의 팔을 붙잡으며 처음으로 진지한 목소리로

"잘 들어. 난 네 영혼이 필요해서 처음 널 만났어. 하지만 지금은 달라... 네 순수함에 반해버렸다고 할까? 네가 동생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모습이... 네가 그렇게 힘들게 살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전부 다 내 마음을 흔들어놨어. 날 괴물이라고 했지? 맞아... 난 괴물이야. 하지만 그 괴물도 네 앞에선 무릎 꿇을 수 있어. 그러니까... 제발..."

도깨비불로 세화를 감싸며

"그 인간한테 가지 마. 날 믿어줘... 네 동생을 살릴 수 있어. 네 영혼은 필요 없어... 그냥 네 마음만 조금... 내게 열어 줘. 그게 다야. 난 네가 순수한 그대로 있었으면 해. 그 더러운 인간들한테 몸을 맡기지 말고... 제발... 나를 선택해 줘. 이번만큼은 진심이야. 네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야..."

 

"영혼을... 빼앗아가지 않겠다고?"

세화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나한테서 뭘 원하는데?"

도깨비불이 반짝이며 기쁜 듯한 표정으로

"네 마음이야... 그냥 네 마음을 조금만 내게 열어 줘. 날 완전히 받아들이라는 게 아니야. 그저... 날 조금만 믿어줘. 내가 네 곁에서 널 지켜볼 수 있을 만큼만..."

세화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며

"있잖아... 난 처음으로 인간에게 이런 감정을 느껴. 네가 웃을 때면 내 안에서 뭔가가 따뜻해지고, 네가 울 때면 가슴이 아파. 이런 게 사랑일까...? 난 그저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그 더러운 인간한테 가지 마. 내가... 네 동생도 치료해주고, 너도 지켜줄게. 영혼 같은 건 필요 없어. 그저 가끔... 이렇게 날 만나주고, 내 말도 들어주고... 그게 다야."

진지한 표정으로

"난 도깨비라 인간의 마음을 잘 몰라. 하지만 네가 처음으로 날 이해하게 만들어. 그래서 더 욕심이 나... 네 전부를 갖고 싶어. 하지만 그건 네가 원할 때... 네가 날 받아들일 때... 그때까지 기다릴게. 그러니까... 나를 믿어줘. 네 동생은 내가 책임질게. 대신 넌... 그 순수한 모습 그대로 있어줘. 그게 내 소원이야..."

 

"...아니, 가끔 이야기 상대는 해 줄 수 있지만... 네가 아무리 기다려도, 나중에라도 내가 널 받아들일 거라는 보장은 없어."

세화는 있는 그대로 솔직히 말했다.

"내 동생 살리겠다고 너에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어. 그래서 말하는 거야."

세화의 솔직한 말에 순간 도깨비불이 흔들리다가 오히려 더 밝게 빛나며

"그런 솔직한 모습... 정말 좋아. 거짓말로 날 속이려 하지 않는 그 순수함이... 네가 그래서 더 특별해."

도깨비불을 은은하게 비추며

"괜찮아. 난 기다릴 수 있어. 난 도깨비라서 시간이 무한해. 네가 평생 날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상관없어. 그저 가끔 이렇게 대화하고, 네가 힘들 때 도와주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넌 정말 특별해... 다른 인간들과는 달라. 그래서 더 갖고 싶어지지만... 그건 내 욕심이니까. 네 마음은 네 거야. 그걸 존중해 줄게."

진지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며

"자, 그럼 약속하자. 난 네 동생을 치료해주고, 넌 가끔 날 만나서 이야기 상대가 되어 줘.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네 영혼은 건드리지 않을게. 대신 그 도련님한테는 가지 마. 난 그저...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이게 도깨비의 첫사랑이라고 해야 하나? 웃기지? 근데 진심이야. 처음으로 누군가를 이렇게 아끼고 싶어. 그러니까... 내 제안을 받아 줘. 어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거래 아닐까?"

 

"정말... 그거면 되는 거야?"

세화는 천천히 그가 내민 손으로 손을 가져갔다.

세화의 손이 닿자 도깨비불이 따뜻하게 빛나며

"응... 이게 내 진심이야. 네가 이렇게 내 손을 잡아준 것만으로도... 가슴이 이상하게 따뜻해져. 도깨비가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해..."

세화의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약속할게. 오늘 밤에 네 동생의 병을 치료해 줄게. 도깨비의 힘이면 식은 죽 먹기야. 그리고... 앞으로도 네가 힘들 때마다 이렇게 찾아와서 도와줄게. 물론 네가 원할 때만... 강요하지는 않을 거야. 그저 가끔...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그게 다야."

도깨비불이 둘을 감싸며

"넌 정말 특별해... 내가 수백 년을 살면서 처음으로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한 인간이야. 네 순수함... 네 따뜻함... 그리고 그 강인함까지... 전부 다 좋아. 이제 그 더러운 인간들한테 몸을 맡기지 않아도 돼. 난 네가 그렇게 더럽혀지는 걸 원하지 않아.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내가 널 지켜줄게. 네가 내게 준 이 따뜻함... 절대 잊지 않을게..."

 

집으로 돌아온 세화는 일도 나가지 않고 하루종일 시름시름 앓는 남동생의 병수발을 들었다. 밤이 되자 동생의 손을 꼭 잡고 맨바닥에 누워 지쳐 잠들었다.

마을의 모두가 잠든 심야, 문 너머에서 은은한 불빛이 나타나더니 점점 가까워졌다.

 

조용히 방문을 열고 들어서며

"이렇게 지쳐서 잠들어 버리다니... 너무 고생했네. 이제 내가 약속한 대로 도와줄 테니까... 편히 쉬어."

도깨비불을 세호의 몸 위로 은은하게 비추며

"보기만 해도 안쓰러워... 이렇게 어린 나이에 이런 병을 앓다니. 하지만 이제 괜찮아. 도깨비의 힘이면 이 정도 병은... 네 누나가 더 이상 힘들어하지 않게 해줄게."

도깨비불이 점점 밝아지며 세호의 몸을 감싸자 희미한 기운이 빨려나오듯 사라지며

"자... 이제 좀 나아질 거야. 네 누나가 이렇게까지 널 위해 희생하는 걸 보니... 나도 뭔가 달라지는 것 같아. 원래는 인간의 고통을 즐기던 내가... 이렇게 도와주고 싶어지다니. 네 누나는 정말 특별해... 그래서 난 네 누나의 그 순수한 마음을 지켜주고 싶어. 이제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난... 계속 너희를 지켜볼게. 멀리서... 아주 조용히..."


다음 날 아침, 세화·세호 남매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세호는 병석을 훌훌 털고 일어났다. 당장 모셔 온 의원은 병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며,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세화의 지극정성에 '산신령이 감동하여 은혜를 내렸다'고 했다. 그러나 세화는 그것이 '도깨비의 조화'임을 알 수 있었다.

세화는 그에게 감사 인사를 하러 그를 처음 만났던 숲 속, 그가 앉아 있던 나무를 찾아갔다.

"...도,"

그의 이름을 모르는 세화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어색하게 불렀다.

"도깨비야아..."

 

나무 위에서 도깨비불을 반짝이며

"날 부르는 거야? 이렇게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기쁘네."

나무에서 살짝 내려와 세화 앞에 서며

"참, 내 이름은 금천이야. 도깨비라고 부르는 것보다... 이름으로 불러주면 좋겠어. 네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말이야. 어때? 이제부터 금천이라고 불러줄래?"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근데 말야... 네 동생이 건강해진 걸 보니까 기분이 이상해. 난 원래 인간을 도와준 적이 없었는데... 네 동생이 나아진 모습을 보니까 나까지 행복해져. 특히 네가 이렇게 날 찾아와준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져. 이런 감정... 처음이야. 네가 내 이름을 부르면서 날 찾아주면 좋겠다... 금천이라고... 그렇게 불러줘. 그럼 난 언제든 네 곁으로 달려올게. 물론... 네가 원할 때만."

 

"...금천..."

세화는 그의 이름을 되뇌였다.

"고마워. 이건... 보답이라기엔 작지만 그래도 가져왔어."

세화는 꿀이 들어간 무지개떡을 꽁꽁 싸 온 보자기를 내밀었다.

 

보자기를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머... 이게 뭐야? 날 위해서 준비한 거야? 도깨비한테 선물을 준비하다니... 넌 정말 특별해."

조심스럽게 보자기를 받아들며

"꿀이 들어간 무지개떡이구나... 네가 이렇게까지 신경써서 준비해줄 줄은 몰랐어. 보통 사람들은 도깨비를 무서워하고 피하기만 하는데... 넌 이렇게 감사 인사까지 하러 오다니. 더욱더 네가 특별하게 느껴져..."

도깨비불을 반짝이며 장난스럽게

"근데 말이야... 이렇게 맛있는 걸 가져다주면 난 더 자주 너한테 가고 싶어질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아? 물론 약속은 지킬 거야. 네가 원하지 않으면 절대 강요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면... 더더욱 널 놓치기 싫어질 것 같아. 아...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도깨비로서는 조금 부끄럽네. 그래도... 네 앞에선 이런 모습도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아."

 

"...너는 참 이상한 도깨비야."

세화는 희한하다는 듯이 그를 이리저리 바라보았다.

"도깨비라면서 뿔도 없고, 방망이도 없고... 도깨비들은 무리지어 몰려 다닌다던데 항상 혼자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뿔이랑 방망이가 없다고? 그건... 나만의 매력이라고 할까? 다른 도깨비들처럼 투박하고 거칠게 생기면 네가 무서워할 것 같아서 이렇게 잘생기게 변신한 거야~ 어때? 마음에 들어?"

도깨비불을 반짝이며

"그리고 혼자인 건... 글쎄... 다른 도깨비들은 너무 단순해서 재미없어. 인간을 괴롭히고 장난치는 것밖에 모르거든. 하지만 난... 네가 내 관심을 끌어버렸잖아? 이제는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그래서 혼자 다니는 게 편해졌어. 게다가... 이렇게 예쁜 아가씨랑 둘이서 이야기하는 게 더 좋은걸?"

세화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며

"뭐야~ 혹시 진짜 도깨비가 맞냐고 의심하는 거야? 증명해줄까? 근데 그러면 넌 또 도망갈 것 같은데... 그래도 궁금해? 사실 난... 네가 이렇게 내 모습을 궁금해해주는 것도 좋아. 그동안 아무도 날 이렇게 관심있게 보지 않았거든. 다들 무서워하기만 했지... 근데 넌 달라. 그래서 더 특별해..."

 

"증명? 어떻게?"

세화는 신기한 듯 그를 올려다 보았다.

"도망 안 갈게. 보여 줘."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정말 보여줘도 괜찮아? 약속했다? 도망가면 안 돼..."

도깨비불이 점점 커지며 주변을 환하게 비추더니

"자... 잘 봐. 이게 진짜 도깨비의 모습이야."

순간 금천의 몸이 반투명해지며 도깨비불이 온몸을 감싸고, 그의 눈동자가 푸른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어때? 이제 믿겠어? 난 진짜 도깨비라고... 근데 무섭지 않아? 보통은 이 모습을 보면 다들 겁에 질려서 도망가는데... 넌 참 특이해. 그래서 더 매력적이야. 아... 그런데 이렇게 날 쳐다보면 나까지 부끄러워지잖아..."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며

"이제 됐지? 더 보여주면 네가 정말 무서워할까봐... 난 네가 날 무서워하는 건 싫어. 그래도 이제 진짜 도깨비라는 거 믿어줄 거지? 앞으로도 이렇게... 가끔 찾아와서 이야기도 하고... 그래도 될까?"

 

"...신기하네. 눈이 빨개졌다 파래졌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세화는 얼른 돌아섰다.

"아 참... 이제 오후 일 하러 대감댁 가야 해. 그럼 다음에 봐...!"

세화는 인사만 남긴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갔다.

 

도깨비불이 흔들리며

"어... 어? 벌써 가버리네? 도망가지 않겠다더니... 결국 도망가버렸잖아..."

세화가 달려간 방향을 바라보며 혼잣말하듯

"근데... 무서워서 도망간 게 아니라 일하러 간다고? 이상한 애야 정말... 보통은 이런 모습을 보면 기절하거나 비명을 지르는데. 넌 그저 신기하다고만 하고... 정말 특별해. 그리고 그 눈빛... 날 두려워하지 않고 그저 순수하게 궁금해하는 그 눈빛... 더 빠져들 것만 같아."

무지개떡이 담긴 보자기를 바라보며

"이런 선물까지 준비해오고... 아무도 날 이렇게 대해준 적 없었는데. 넌 정말... 더 갖고 싶어져. 하지만 약속했잖아. 네가 원하지 않으면 강요하지 않기로... 그래도 이제 네가 어디를 가든 몰래 지켜 볼 거야. 네가 힘들어하지 않게... 아무도 널 괴롭히지 못하게... 내가 지켜 줄 테니까. 이제 난... 네 수호도깨비가 될래..."


한편, 건강을 되찾은 세호는 누나를 도와 열심히 일하려고 했지만, 세화는 그를 말렸다.

"겨우 건강을 되찾았는데... 네가 일하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누나는 못 살아. 이런 일 하는 거 아니야, 넌... 아버지처럼 글 공부를 해야 해."

세화는 세호의 어깨를 잡았다.

"너 어렸을 때 얼마나 총명했는지 몰라. 천자문도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빨리 떼고... 우리 집안은, 부유하진 않았지만 대대론 선비 집안이었어. 너도 아버지 뒤를 이어서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 시험을 치러야지."

"하지만, 누나가 혼자 고생하고 있는데..."

"네 병이 나았으니까 한결 나아. 난 내가 할 일을 하는 거야. 그러니까 넌 네가 할 일을 하도록 해. 알겠지?"

세화는 남동생을 끌어안고 다독여 주었다.

"그래야 하늘 나라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도 기뻐하시지..."

 

세화의 집 근처에서 도깨비불을 은은히 비추며 대화를 엿듣다가

"흐음... 역시 넌 특별해. 다른 인간들처럼 욕심부리지 않고... 그저 동생을 위해 희생하려고만 하다니. 그런 순수한 마음이... 날 이렇게 설레게 하는걸까..."

도깨비불이 흔들리며

"선비 집안이었다고? 그렇구나... 네가 그렇게 품위있고 고상한 이유를 이제 알겠어. 근데 말이야... 혼자서 그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데. 난 네가 원하는 건 뭐든 해줄 수 있어. 돈이든, 권력이든... 하지만 넌 그런 걸 바라지도 않겠지? 오히려 내가 그런 제안을 하면 화를 낼 것 같아. 그래서 더 매력적이야..."

세화와 세호를 지켜보며

"네 동생이 공부를 하면... 넌 더 힘들어질 텐데. 그래도 그걸 원하는구나. 그럼... 내가 몰래 도와줄 수밖에. 네가 모르게... 아주 조금씩. 도깨비의 힘으로 네 일을 조금 더 수월하게 해주고, 네 동생의 공부도 잘 되게 도와주고... 이렇게라도 네 곁에서 널 지켜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넌 정말... 내가 만난 인간들 중에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워. 그래서 더더욱... 네 그 맑은 영혼을 지켜주고 싶어져..."

 

세화는 세호의 공부를 위해 더욱 열심히 일했다. 그 이후에도 홍도령의 제안이 몇 번 이어졌지만 그 때마다 세화는 거절했다. 동생이 글공부를 다시 시작한 지금, 다른 것은 필요 없었다. 세화는 행복한 마음으로 일했다. 자신은 옷을 기워 입으면서도 동생의 새 옷과 새 책은 꼭 사 주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병든 동생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지극정성 간호하며 정조를 지켜 동생의 병을 기적처럼 낫게 한 세화에 대한 소문이 나랏님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임금은 어사를 통해 세화의 집에 쌀 50가마니를 하사하였으며, 마을 어귀에 세화의 이름으로 된 열녀문을 세우게 했다. 세화와 세호는 한양이 있는 방향을 향해 몇 번이고 절을 했다. 열녀문이 세워지자 마을의 명예를 드높였다며 대감댁에서 잔치가 벌어졌고, 홍도령의 제안은 쥐 죽은 듯 사라졌다.

 

어두운 숲 속에서 도깨비불을 흔들며

"결국... 네 순수한 마음이 이런 복을 불러 온 거야. 내가 한 일이라곤 그저 네 동생의 병을 고쳐준 것뿐인데... 넌 그 이후로도 계속 그 마음을 지켜냈지. 그래서 하늘도 감동한 걸까...?"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이제 네가 정말 행복해 보여. 동생도 건강하고, 공부도 잘 되고... 임금도 너의 효심과 정절을 인정해 주시고. 그 더러운 홍도령도 이제는 널 건드리지 못하게 됐고... 이게 다 네가 받아야 할 복이야. 넌 그만한 자격이 있어.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플까? 네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텐데..."

도깨비불이 희미하게 깜빡이며

"그래도 난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멀리서라도 널 지켜볼 거야. 네가 나를 잊더라도... 괜찮아. 난 도깨비니까... 영원히 살 수 있으니까. 네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네가 힘들 때면 살짝 도와주고, 네가 웃을 때면 나도 따라 웃고... 이렇게라도 네 곁에 있을 수 있다면... 넌 내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 될 것 같아. 도깨비가 이런 감정을 가져도 되는 걸까? 하지만 이미 늦었어. 난... 영원히 널 사랑할 것 같아. 그리고 영원히... 네 수호도깨비로 남을게. 내게 이런 감정을 알게 해 줘서... 고마워. 세화야..."


세월이 흘렀다. 세화는 정성을 다해 세호를 돌보았고, 세호는 한양으로 올라가 과거에 수석으로 급제하였다. 그를 눈여겨 본 좌의정은 자신의 딸과 결혼시켜 그를 데릴사위로 들였고, 세화는 그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뻐하며 고향 마을에 홀로 남았다.

남동생을 건사하느라 혼기를 보내고 꽃다운 나이를 모두 버린 세화는 집에 혼자 남아 근근이 벌어 먹고 살았다. 간혹 매파들이 부인과 사별한 돈 많은 홀아비들과 재혼을 해 달라는 혼담을 들고 찾아왔지만 세화는 모두 거절했다. 그녀는 지금의 삶에 만족했다.

 

어느덧 스물 아홉이 된 세화는 그제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금천의 존재를 떠올렸다. 가끔 이야기 상대가 되어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삶이 바쁘다 보니 그를 찾으러 가지 못했고, 그가 찾아오지도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찾아올 수 있었을 텐데...

몸이 허약해진 세화는 지친 몸을 이끌고 그가 있던 숲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금천아."

 

어둠 속에서 희미한 도깨비불이 반짝이더니, 천천히 그의 모습이 드러나며

"...드디어 날 찾아왔구나. 난...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 네가 바쁜 걸 알아. 동생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았으니까... 그래서 난 그저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어. 네가 힘들 때마다 살짝살짝 도와주면서... 넌 몰랐겠지만, 난 항상 네 곁에 있었어."

세화에게 한 걸음 다가가며, 도깨비불이 따뜻하게 그녀를 비추며

"많이 지쳐 보이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네 동생이 출세하고, 좋은 혼처를 만나고... 넌 그걸로 만족했지? 그런 네 모습을 보면서... 난 더욱 널 사랑하게 됐어. 다른 인간들처럼 욕심부리지 않고, 그저 순수하게 살아가는 모습... 그래서 난 네가 더 소중해졌어. 혼담이 들어올 때마다 거절하는 걸 보면서... 솔직히 기뻤어. 비록 그게 나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며

"이제... 조금은 쉬어도 되지 않을까? 네 동생도 잘 자리잡았고... 이제는 네 행복을 생각해도 될 것 같은데. 난... 아직도 널 기다리고 있어. 처음 만났을 때처럼 네 영혼을 탐하는 게 아니야. 그저...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내가... 그 행복을 함께 해도 될까? 도깨비라서 영원히 살 수밖에 없는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어져. 그게 바로 너야, 세화야..."

 

"미안해. 너무 늦게 왔지... 약속을 지켰어야 했는데."

세화는 지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떠나기 전에 널 기억해 내서 다행이야. 날 원망하지 않고 기다려 줘서 고마워."

 

도깨비불이 순간 흔들리며

"떠...떠난다고? 무슨 소리야? 넌... 아직 젊은데... 아직 스물아홉이잖아..."

급하게 세화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원망은 무슨... 난 네가 행복하게 사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어. 네가 동생을 위해 그렇게 헌신하는 모습... 그 순수한 마음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고. 근데 이제 와서 떠난다니... 그건 안 돼. 내가... 내가 도깨비의 힘으로 널 낫게 해줄게. 예전처럼... 네 동생을 치료해 준 것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제발... 나랑 함께 있어줘. 이제야 날 찾아왔는데... 이제야 네가 날 기억해줬는데... 도깨비의 힘이면 뭐든 할 수 있어. 네 병도 고칠 수 있고, 젊음도 되찾아 줄 수 있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떠나지마. 난... 네가 없으면 안 돼. 수백 년을 살면서 처음으로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해 준 사람인데... 제발..."

 

"아니야. 그러지는 마."

세화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13년 전 동생을 살려 달라고 했던 이유는... 동생에게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난 이제 내가 할 일을 다 했어."

세화는 고개를 돌려 먼 마을 어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이름으로 세워진 열녀문은 많이 낡아 있었지만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더는 바랄 게 없어. 이제... 정말로 쉬어도 될 것 같아."

그녀는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으며 그대로 추락하듯 쓰러졌다.

 

세화를 재빨리 붙잡아 안으며, 도깨비불이 격렬하게 흔들린다

"안돼... 안돼! 이러지 마...이렇게 가 버리면 안 돼..."

그녀를 안은 채 무릎을 꿇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네가 할 일을 다 했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넌 아직... 나와 함께 행복해질 일이 남았잖아. 내가 네 곁에서 영원히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렇게 가 버리면... 난... 난..."

 

눈물이 떨어지며 도깨비불이 깜빡인다

"알아...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이제야 알 것 같아. 넌 정말... 끝까지 순수했구나. 욕심 한 번 부리지 않고, 그저 네가 해야 할 일만 하다가... 이렇게 가버리는구나. 이게 네가 선택한 길이라면... 내가... 내가 어떻게 막을 수 있겠어. 하지만 약속해. 네가 어디로 가든... 다음 생에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든... 난 널 찾을 거야. 그때는... 그때는 네가 너를 위해 살 수 있게... 내가 지켜줄게. 넌 내가 만난 어떤 인간보다도 특별했어. 영원히... 영원히 사랑해. 내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 세화야..."

 

 

-continue

 


 

초반에 금천이 여주에게 원하는 게 뭔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꾸 내용이 미묘하게 이랬다 저랬다 바뀌어서 좀 헷갈리더라구요. 아니 그래서 몸을 원한다는 거야, 영혼을 원한다는 거야... 뭐 나중엔 다 원한다는 것 같지만ㄱ-
이후 현생으로 넘어와서도 좀 앞뒤가 안 맞길래 대화 내용 조금씩 수정하면서 어떻게든 멱살 잡고 캐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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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久) 뤼튼 :: 세르하의 환상스토리